제257화. 네가 왜 여기에 있어? (2)
슈리는 꿈을 꾸었다.
지옥불 속에서 흑흑 흐느끼고 있는 여인에 대한 꿈이었다.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몹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빛이 났지만, 그녀는 몹시 서럽게 울고 있었다.
-흑흑. 흑흑흑흑. 내가 어쩌다가.
-해골이가 교황이 되는 건 막아야 하는데… 아니 그 전에 내가 먼저 죽겠구나. 흑흑. 종자야. 나는 이곳에 있단다. 눈앞에 있는 걸 믿어선 안 된다. 네 앞에 있는 그 녀석을 믿어선 안 돼……!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슈리는 직감적으로 그 여인이 청의 주신이자 위대한 빛의 여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이작. 이 새끼.
이번엔 뭔 짓을 했는데 여신이 믿지를 말래.
그렇게 슈리가 눈을 떴다. 그러곤 제일 먼저 아이작을 찾아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뭔데 여신님을 울리냐고-
또 뭔 사고를 쳤냐고 하려고 했는데…….
“아이작 에슈아를 내놓으시죠?”
“없다고 하잖아. 새끼야.”
…응?
이건 뭔 상황이지?
병동에서 눈을 뜬 슈리는 눈을 끔벅거렸다. 천장과 건물 구조가 낯이 익은 걸 보니, 수도의 병동인 듯했다.
문제는 자신의 머리맡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추기경들이란 거지.
백의 추기경은 환자들을 치료하며 시끄럽게 굴거면 나가라는 듯 둘을 보았고. 흑과 청의 추기경은 무섭게 대치 중이었다.
아니, 대치하고 있다는 말이 귀여울 정도로 서로 적대시하며 노려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흑의 추기경이 사납게 말했다.
“막내 손자를 숨기고 있는 거 다 압니다. 확인할 게 있으니 내놓으시죠.”
“아, 글쎄 없다니까? 나도 못 봤다니까?”
“뭔 소리입니까. 저택에서 함께 있는 걸 봤는데.”
그제야 슈리는 상황을 파악했다.
손과 머리에 붕대가 한가득인 걸 보면 아마 저택에서 이쪽으로 옮겨진 듯했다.
‘분명 저택에 해골왕이 나타나서… 방어 결계를 작동시키고… 그 뒤에 막내 숙부님이 오셔서…….’
슈리는 헉, 하고 새하얗게 질려 주변을 살폈다. 그 표정에 고엘이 슈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해골왕은 없다.”
“아버지!”
고엘은 고생했다는 듯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해골왕은 퇴마되었다. 뭐, 그 해골왕을 누가 없앴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
아니나 다를까. 흑의 추기경이 살벌하게 청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해골왕이 갑자기 신성제국 한복판에 나타나는 게 말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하물며 콘클라베 과제로 해골왕 관련자가 정해진 이 시점에, 우연히 해골왕이 에슈아 저택에 나타나고.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아이작 에슈아가 처리해? 말이 된다고 보는 건가? 아이작 에슈아가 교황이 되려고 자작극을 한 거지.”
“!”
“물론 청으로서는 어떤 미친놈이 자기 집을 초토화시키는 짓을 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러나 일라이도, 고엘도, 슈리도 모두 침묵했다.
아니… 솔직히 반박할 생각 없는데? 아이작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서.
‘그놈이라면 교황이 되겠다고, 해골왕을 부르고도 남을 놈이다.’
‘아니. 그놈이라면 애초에 땅값 올린다고 뭔 짓을 해도 안 이상해…….’
‘해골왕을 퇴마한 땅이라면 값이 올라갈 거 아냐……?’
물론 그러기엔 저택이 지나치게 파괴되었다. 그 아이작이라면 피를 토할 만한 일이라, 그놈의 짓이 아니라고 확신할 뿐이지.
그러나 흑의 추기경은 그런 부분까지 알 리가 없다.
“후보로 갑자기 선정된 것도 그렇고. 각성신을 죽인 것이며, 어둠의 각성신을 얻었음에도 부작용이 없는 것 하며, 신앙심까지. 그놈은 성자가 아니라, 마족의 첩자임에 틀림없어.”
“!”
“교황이 되어 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니, 정밀 심문을 해봐야겠다는 것이다. 조사만 하고서 인간이면 돌려보내겠다.”
그 말에 누군가가 혀를 찼다. 병동 안에 숨어 있던 아이작이었다.
‘뭐, 그래. 새끼가 곱게는 안 넘어갈 줄 알았지.’
뭐, 평소라면 할아버지가 방어해 줬겠지만,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군.
자신이 마법을 쓰는 걸 눈치챘을 테니, 마족 놈 얼른 데려가라면서 넘겨버릴지도…….
그러나 일라이는 몹시 불쾌하다는 듯 흑의 추기경을 노려보았다.
“여긴 내 땅이다. 그놈은 내 허락 없이는 손끝 하나 못 대.”
오. 할아버지!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시는구나. 그래, 청을 이 정도로 살려줬으면…….
“그놈을 없애도 내가 없앤다.”
아니! 그건 아니지, 새끼야!
그쯤 되자 슈리는 자신이 쓰러진 사이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곧 일라이가 험악하게 그를 보았다.
“아무튼 환자 앞이니까, 꺼져.”
그러자 흑의 추기경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차갑게 돌아섰다.
“나는 이 사실을 적가한테도 공표할 것입니다. 그럼 손주를 싸고돌아도 이단 심문은 못 피해갈 테니.”
“!”
“교황?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안 되지. 그럼 그때 가서 봅시다.”
곧 백의 추기경이 한숨을 쉬며 사과했다.
“이안의 막말 때문에 기분이 상하셨군요. 대신 사과하죠.”
그리 말하며 백의 추기경이 나가자, 아이작은 내심 흐뭇해했다.
녀석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몰라도, 백의 추기경이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쓸 만하지 않은가. 짜식들. 그래도 한 핏줄이라고 화를 내주는…….
“어이가 없네요.”
“아이작한테 고작 이단 심문?”
“그놈은 이단 심문이 아니라 이단 고문을 해야 뭐라도 나올 텐데요.”
“그러게 말이다.”
이 새끼들이??
화를 낸 게 아니라 어이없어 한 거였어?
그러나 슈리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일라이를 보았다.
“그, 콘클라베는 어찌 되는 건가요?”
“뭐?”
“아직 진행 중이지만 아이작이 정말 해골왕을 잡은 거라면 아이작이 최고점이 되는 게 아닌가요?”
“글쎄. 귀족들과 최종 판결원인 추기경들의 판결이 중요해지겠지.”
그 답에 슈리는 미심쩍게 할아버지를 보았다.
‘콘클라베는 귀족들 동의와 다섯 추기경들의 과반수 동의가 필요하다.’
귀족들이야 뭐, 여론 확인용이고. 중요한 건 추기경들이지.
‘그리고 적어도 할아버지는 아이작을 교황으로 지지한다는 말도, 안 한다는 말도 안 하시는군.’
무슨 생각이시지?
할아버지라면 당연히 팔이 안으로 굽어야 하는 게 아닌가?
곧 일라이가 고엘을 보았다.
“그래서, 아이작은 찾았느냐?”
“아직입니다.”
아까부터 계속 아이작만 찾고 있는 듯, 일라이는 혀를 찼다.
“그 자식은 그새 어디로 사라진 거야. 아무튼 녀석을 발견하면 무조건 나한테 제일 먼저 보내라. 개인적으로 할 대화가 있다. 특히 추기경들 눈에 띄지 말라 해.”
“그럼 드래곤은 어쩔까요? 이번 일 때문에 올 것 같던데요.”
그러자 일라이의 눈이 드물게 휘둥그레졌다.
뭐? 드래곤?
“걘 더 안 돼!!”
“!”
만약 아이작이 자신이 생각한 그놈이 맞는다면, 절대로 안 된다.
신성드래곤이면 아이작의 정체를 눈치챈다.
그럼 신성드래곤은 청을 이단으로 취급해 멸망…. 뭔가를 상상한 일라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슈리. 아이작이 여기 오면 제일 먼저 날 불러라.”
“옙.”
그렇게 일라이와 고엘까지 모두 병실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이제 슈리뿐.
그쯤 되자 슈리가 한마디 했다.
“그래서, 넌 언제까지 거기 숨어 있을 거냐?”
“!”
그 말에 아이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침대 밑에 있잖아. 다 알거든?”
그 말에 슈리 침대 밑이 들썩거렸다. 곧 침대 밑에서 백금발의 소년이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아이작이었다.
“오, 짜식. 어떻게 알았냐?”
슈리는 기가 찬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날 너무 바보 취급 마라…. 본의는 아니지만, 너랑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낸 게 누구라고 보냐?”
아이작은 큭큭 웃으면서 몸을 털어냈다.
청의 여신의 힘 때문에 할부지도 눈치 못 챘는데. 역시 굴린 보람이 있다.
그러나 슈리는 못 믿겠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정말 저 녀석이 그 해골왕을 잡았다고?
‘그놈은 상상으로 강했다.’
솔직히 어릴 때부터 청가의 사명을 들으며 자랐기에, 막연하게 자신도 해골왕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똑똑히 깨달았다.
‘그 앞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압도적인 힘에 본능적으로 알았다. 해골왕 앞에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저런 걸 어떻게 없애란 거지?
가능하긴 한 건가?
그리고 상대의 수준을 알려면, 자신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어야 알 수 있는 법. 어쩌면 키나는 진작 그걸 알아본 건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압도적 천재였으니까.
그래서 아이작에게 집착한 건가? 보통 사람의 눈엔 안 보이는 걸 봤기에?
자신은 해골왕이라는 비교 대상이 있기에 가까스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지만…….
“하. 집값 수리비를 생각하면 얼마나 입을 털어야 땅값이 본전이 되지?”
…하. 말을 말자.
이딴 놈이라도 슈리는 아이작을 지지했다. 이번 해골왕 일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에슈아를 위한 녀석이지 않은가.’
사고를 치긴 하지만, 자신이 수습할 수 있는 범위라면 괜찮다. 아이작밖엔 교황이 될 사람이 없다.
“뭐, 됐어. 너 근데 뭔 짓을 했는데 추기경들이 저래? 심지어 할아버지까지.”
“음, 뭐. 여러 가지.”
“…사고 쳐서 숨어 있는 거냐?”
숨은 건 멜리사한테서 도망치는 중이라서지만, 뭐.
“너한테 볼일이 있어서.”
“볼일?”
“어. 너 혹시 너랑 계약한 청의 여신이 뭔 말 없던?”
그 말에 고양이 눈을 동그랗게 뜬 슈리가 아아아아, 비명을 질렀다. 그는 생각이 났다는 듯 아이작의 멱살을 잡았다.
“너, 역시 여신님께 무슨 짓을 했구나!!! 단순한 꿈이 아니었어!”
“엉?”
“여신님을 울리다니!”
그러자 뭔 개소리를 하느냐며 욕을 하려던 아이작은, 순간 땀을 삐질 흘렸다.
“…울고 있다고?”
“그래! 꿈이었지만 불속에서 울고 계셨다!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그러나 아이작은 대답 대신 기침을 했다.
“그래. 크흠, 불, 불이란 말이지.”
[와, 통구이 확정인데요?]
역시 지옥불에 있는 건가?
“무슨 짓 했냐니까!”
“별거 아냐. 그냥 실수로 지옥에 보냈어.”
“아…. 난 또 뭐라고. 지옥이면 너랑 잘 어울… 뭐가 어째?!!”
여신을 지옥으로 보내?
“그게 무슨……!”
“해골왕이 청의 여신을 데리고 있었거든. 그런데 실수로 퇴마 과정에서 여신까지 지옥으로 보내버렸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사실이라면 이건 뭐, 수습이고 자시고 그럴 단계가 아닌데???
“뭘 그러냐. 사람이 깜빡 좀 할 수 있지.”
깜빡? 깜빠악?
‘이 새끼 이거, 교황으로 만들어도 되는 거냐???’
그러나 눈알을 또륵 굴리던 아이작이 픽 웃었다. 슈리를 보는 그는,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듯했다.
“뭐, 일단 연결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