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58화 (258/272)

제258화. 네가 왜 여기에 있어? (3)

슈리는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 뭐지?

자신을 전서구 취급하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지옥이라니!’

놀란 슈리는 아이작을 붙잡았다.

“너 똑바로 말 안 해? 어떻게 지옥으로 보냈다는 거야? 왜 여신님을 지옥에 보내는데?!”

흥분하는 슈리의 모습에 아이작은 볼을 긁적거렸다.

‘음. 이야기하려면 너무 긴데.’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려 버리기엔 청의 여신은 이놈들의 주신이 아닌가. 대충 넘어가면 계속 물고 늘어질 테고.

“그러니까, 해골왕과 싸웠는데-”

“싸웠는데!”

“그 사악한 놈이 청의 여신님을 데리고 있던 거야. 에슈아가 그간 힘을 못 쓴 이유도 그 탓이고.”

“뭐라고?!”

슈리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에슈아는 그간 너무 고통을 받아왔다. 오히려 이유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

“그럼 설마 에슈아가 저주를 받은 것도… 네가 해골왕의 뼈를 처먹은 것도?”

그 표정에 아이작은 이거라는 듯 큭 웃었다.

“다 여신님의 가호가 사라져서 그런 거지. 그리고 네 꿈에 계속 나타나서 구조 요청을 했다고 하셨지? 그것도 이걸 말한 거야.”

[아니, 꿈에 나타났던 건 주인님을 조심하란 거 아니었나요?]

“해골왕에게 납치되어 있으니, 해골왕을 무찔러 자신을 구해달라고.”

“!”

“너한테 그러셨다며? 적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바로 신성제국 안에 들어와 우리 에슈아 저택을 습격할 거라는 예언이셨던 거지!”

“그런 거였어?!”

[와, 이걸 이렇게 사기를 치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작은 슈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쨌거나 슈리야. 청의 여신께서는 마지막 힘을 내서 내게 힘을 주셨어. 사악한 해골왕을 처리하라고.”

“!”

“그래서 해골왕은 날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지옥을 열었어. 살아있는 인간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잖아? 거기서 생각했지. 아아, 여기서 내가 막지 못하면 우리 에슈아와 제국은 끝이겠구나.”

[주인님 손에 멸망하는 게 아니고요?]

“난 에슈아와 제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버텼고, 혼신의 힘을 다해 놈을 지옥으로 던져넣었지.”

[어디 더 해보라면서, 즐겁게 던져 넣으셨던 것 같은데…….]

“내 목숨이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해골왕 만큼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게 에슈아로서의 사명이니까!”

[그런 분이 여신을 지옥에 내던지십니까…….]

“여신님은 내가 지옥에 끌려가는 걸 막기 위해 힘을 써주셨지. 그렇지 않고서야 나 혼자서 어떻게 해골왕을 상대로 버텼겠어? 나는 이번에 얻은 초월 단계의 힘으로 여신님을 구하려 했지만, 내 힘이 아직 부족해 그러지 못했어. 이건 내 명백한 실수야.”

[와, 실수를 그렇게 포장하시다니…….]

그러나 그냥 순순히 넘어갈 슈리도 아니었다.

“…그럼… 깜빡했단 건 뭔데?”

“아 그거? 여신님께 힘을 돌려드리는 걸 잊었다고.”

“!”

아이작은 몹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여신님이 사악한 해골왕에게 잡혀계신 동안 약해지신 걸 몰랐어. 탈출하시려면 지옥에 빨려들어 가시기 전에 내게 주신 힘을 돌려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거기까지 미처 생각 못 한 내 실수야.”

[…돌려줄 생각 없으셨잖아요?]

“신들과 비교하면 나는 하찮은 인간이잖아. 그 무서운 해골왕을 앞에 두고서, 성법을 완벽하게 조절해서 쓰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다고. 그 짧은 시간에 힘을 못 돌려드린 건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

“…으음…. 뭐.”

“너도 그렇지 않냐?”

슈리는 진지하게 자신이 마주했던 해골왕을 떠올렸다. 솔직히 그놈을 마주하고도 이렇게 살아있는 아이작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긴. 나도 신께 힘을 돌려드린다는 생각까진 못했을 거 같다.”

“그치이?”

[주인님, 표정 관리 좀…….]

저도 모르게 초승달 눈으로 웃던 아이작은, 곧바로 슬픈 표정으로 바꿨다.

“아무튼, 이게 왜 내가 여신님의 힘을 가지고 있고, 왜 여신님을 지옥으로 보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뒷사정. 이제 이해했지?”

“…어… 그…….”

“해골왕이 지옥으로 가는 문만 안 열었어도, 이런 일은 안 벌어졌을 텐데.”

[하긴. 그놈이 지옥문을 먼저 연 건 사실이긴 하죠.]

그치? 나 거짓말 안 했다?

그러나 슈리는 미묘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신의 예언 내용을 떠올리다가 조금 안 맞는 부분을 찾는 듯하다.

아이작은 슈리가 이상하게 여기기 전에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원래는 낌슈리. 계약자인 너한테 가야 하는 힘인데, 너 뻗어있었잖아.”

“…윽!”

[헐, 이걸 이렇게 책임 전가?]

“네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 해준 거야.”

[심지어 부채감까지 얹어?]

아니나 다를까, 슈리는 다른 걸 생각할 여력이 사라졌는지 머리를 움켜쥐었다. 해골왕 앞에서 무력했던 자신이 떠오른 탓이다.

자신이 기절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안 벌어졌을지도 모르는데…….

‘끄응, 확실히 주신과의 계약은 나한테 과분한 건지도.’

부작용으로 인해 애가 시무룩해졌다. 그런 슈리를, 아이작이 사기꾼처럼 달콤하게 토닥였다.

“아냐아냐, 난 최고신과 계약했잖아. 에슈아에서 나 다음가는 사람은 너란 거지. 네 잠재력을 믿어. 여신님의 선택을 믿으라고.”

“끄응…….”

“자, 그럼 이제 의문 풀렸지? 그럼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여신님을 구출해내자고.”

슈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작은 용의주도한 미소를 지었다.

“참, 할아버지한텐 비밀이야. 우리 둘 다 잘못이 있으니, 실망하실 것 아냐.”

슈리는 알겠다면서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우리 둘이 가능해? 여신님을 구하면 청에게도 좋은 일이니, 질책을 받더라도 에슈아 전원이 힘을 합치는 게…….”

“그럼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고서 내가 보고할게.”

슈리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벽에 걸린 양초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바닥에 성수를 뿌리더니, 양초를 얹었다. 전에 기도실에서 했던 것처럼, 계약한 청의 여신을 소환하려는 것이다.

눈을 감은 그는 두 손을 모으면서 다짐했다.

‘이번엔 반드시 기절하지 말아야지. 기절하지 말아야지.’

비록 수년 전에는 볼썽사납게 기절해서 여신님을 뵐 수 없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자신도 그만큼 성장하지 않았는가!

‘이번엔 아이작한테 민폐 안 끼치겠어. 이번엔 반드시!’

곧 강력한 성력이 치솟았다. 초의 심지 위로 푸른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청의 여신을 소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모습에 슈리는 환하게 웃었다.

‘좋았어! 이번엔 기절 안 했어!!’

하지만 연결되자마자, 아이작이 등 뒤에서 주먹을 쥐었다.

‘응, 수고.’

동시에 슈리의 등 뒤에서 아주 쬐금, 지옥문이 열렸다. 이어서 문틈으로 뿜어져 나온 독기에 슈리는-

“꽥!”

속절없이 기절해버렸다.

아이작은 언제 지옥문을 열었냐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지옥문을 닫았다.

‘뭐, 할아버지나 멜리사도 아니고. 이깟 새파랗게 어린 사제쯤이야.’

흔적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쬐금만 열어도 기절시킬 수 있다.

‘뭐, 좀 미안해도 어쩌겠어. 억울하면 성장하라고.’

아이작은 푸른 불꽃을 보며 씨익 웃었다.

마침 촛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자야. 나를 무사히 불러냈구나. 다행이다. 해골이를 두고도 무사해서 다행…….]

“안녕, 살아있네?”

그 목소리에 비명을 지르던 빛의 여신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졸도할 듯이 말했다.

[너… 또 내 종자를… 아니, 해골이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나를 그 생지옥에……!]

아이작은 큭큭 웃었다.

“미안미안. 본의는 아니었어. 그래서 이제 꺼내주려고 하잖아. 어때, 몸은 괜찮냐?”

빛의 여신은 해탈한 듯 한숨 쉬었다.

[후…. 마음은 고마운데, 이미 한발 늦었어.]

아이작의 얼굴이 드물게 굳어버렸다.

“한발 늦다니? 너 설마, 벌써 죽었냐?”

“아니. 이미 지옥에서 빠져나왔거든.”

…엉?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나 여신은 뜻밖의 말을 했다.

[제일 먼저 해골왕의 육신이 지옥불에 녹았고… 마지막으로 녹은 게 내가 있는 마력핵이었어.]

그 마력핵이 지옥불에 녹을 당시, 여신은 자신도 이제 영락없이 끝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마력핵이 일부 녹을 때, 갑자기 어디론가 역소환된 거야.]

“역소환이라면… 설마.”

[그래, 가짜 해골왕을 만든 사람.]

아이작은 입꼬리를 올렸다.

아. 실베스테르구나?

[해골왕을 만든 증거 겸, 여신을 회수한 거군요?]

아이작은 외려 잘 됐다는 듯했다.

“꿀이네. 지옥까지 어찌 가나 했더니, 오히려 더 쉽게 데려올 수 있겠어. 그 새끼가 나 대신 건져냈구나.”

이 몸으로 지옥에 가야 한다면, 온갖 골치 아픈 일이 있었겠지.

하지만 마력핵이 신성제국 안으로 돌아왔다면, 거기서부터는 수고로운 과정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다.

아니, 절반도 아니지. 키나를 이용하면 바로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네가 있는 곳이 교황청이냐, 베리트가냐… 아님 다른 별개의 장소이냐가 관건인데…….”

그런데 여신은 더더욱 뜻밖의 말을 해왔다.

[주변의 소리를 듣자 하니, 여긴 카인이란 아이의 방이야.]

“!”

아이작은 드물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목소리? 뭐야. 너 봉인당한 거 아냐? 주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지옥에서야 가짜 해골왕이 죽은 시점에서 자신의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치자. 하지만 역소환당한 후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실베스테르, 그놈이 마력핵을 그대로 둘 리 없는데?’

[물론 그 꼬마가 다시 마력핵을 봉인했지…. 그런데…….]

“그런데?”

[네가…….]

“내가?”

그러나 청의 여신은 말하기 굉장히 싫다는 듯 으으, 괴로워했다.

‘이 사실을 알려주면, 해골이가 더 날뛸 텐데…….’

실은 신들은 종자의 활약으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봉인이 되어 있어도 원래는 미약하게나마 힘이 들어와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게 막힌 상태였다.

필시 에슈아에 내려진 저주와 연관이 있겠지.

‘에슈아 사람이 활약해도 힘이 못 들어오게끔, 술법이 걸려 있던 게 틀림없어.’

하지만 아이작은?

‘마왕이니까. 에슈아 사람이 아니니까 영향을 안 받은 거야.’

그래서 아이작의 활약은 통한 것이다. 아이작이 활약하면서 청의 여신에게도 힘이 조금씩 생긴 거고.

심지어 그 힘은 상당히 강해서, 실베스테르의 봉인도 무시하고서 바깥 상황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걸 말해주면… 으으.’

고민하던 청의 여신이 말했다.

[네, 네가 슈리를 키워주면서… 내게 힘이 생겼다. 그래서 밖의 상황쯤은 알 수 있어.]

목소리만으로 그녀의 거짓말을 읽은 것일까. 아이작이 어째서인지 음흉하게 웃었다.

“그래에?”

[그, 그래.]

“그럼 내가 청을 키워주긴 한 거네?”

[!]

“너, 나한테 빚이 생긴 거네?”

[………!!]

“내가 여기서 태어나길 잘한 거네에? 주고받았으니, 안 미안해해도 되겠네?”

[……………?!]

아니, 씨. 이게 아닌 거 같은데??

곧 아이작이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뭐, 그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잘됐어.”

[잘됐다고……?]

“넌 봉인당해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 카인이라는 놈이 바로 실베스테르거든. 너도 알지? 제국에 부흥기를 가져왔던 교황.”

[!!]

“아무튼 그래서 일부러 그 자식이 꼬리를 보이게끔 나도 힘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새끼가 안 넘어오네? 그래서, 그놈에 대해 뭐 들은 건 있고?”

[있어. 그 애, 성법을 전혀 못 쓰는 것 같더라.]

“!!”

뭐? 금의 추기경이 될 자인데, 성법을 못 쓴다고?

[특히 일라이 앞에서는 모습도, 힘도 드러내면 안 된다고 했어.]

“엥?”

왜 하필 할부지야? 멜리사도 아니고……?

그러나 곧 아이작은 뭔가 눈치챈 듯 씨익 웃었다.

‘아. 그래. 그런 거구나?’

이거, 생각보다 큰 건을 알아버렸다.

여신이 말했다.

[물론 나로서 더 신경 쓰이는 건… 그 아이가 금의 신들이랑 지나치게 가까워 보인다는 거였어. 아무리 전직 교황이더라도 인간이 그리 신과 가까울 수 없는데 말이야. 널 봉인한 거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

내 봉인이라고?

아이작은 흥미로워했다.

“그럼 구하러 갈 때까지 좀 더 엿듣고 좀 있어 봐. 안 그래도 그놈에 대해서는 캐내야 할 게 많았거든. 연대하자.”

청의 여신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언제 날 구하러 오려고? 나한테 힘이 생겼다 해도 듣는 능력만 생긴 거지, 혼자 나갈 정도의 힘은 아냐. 네가 도와줘야 해.]

“응 그래. 알았어. 푸흐흐흐.”

[언제 올 거냐니까? 이왕이면 콘클라베 전이면 좋겠는데…….]

“후후후.”

그 웃음에 불길해진 여신이 물었다.

[…저기? 구하러 올 거지?]

“푸흐흐흐흐흐흐.”

[…해골아, 올 거지?]

“푸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저기, 진짜 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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