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네가 왜 여기에 있어? (4)
황실 연회장이 소란스러웠다.
오늘은 정식 사제들이 탄생하는 사제품 수여의 날. 아이작 역시 약 7년 전, 젖먹이에서 확 자란 모습으로 나타나 모두를 까무러치게 했던 바로 그 식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의미로 사람들을 까무러치게 했다.
“정말 해골왕이 퇴마되었습니까?”
사제품 수여식인 만큼 다양한 품계의 사제들이 두루 모였지만, 식의 무게감은 평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실제로 올라오는 화제 자체가 달랐다.
“청이 해골왕을 처리했다고?”
“정확히는 아이작 에슈아가 퇴마를 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사람들은 충격적인 소식에 제 귀를 의심했다.
해골왕.
놈이 어떤 존재인지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신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아득하면서도,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재앙에 가까운 놈.
설령 퇴마한 것이 해골왕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악한 힘은 나라를 전복시킬 힘이었소.”
“맞습니다. 영락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역시 교황 후보……!”
모두가 수도에 갑자기 나타났던 힘의 크기를 인지한 상황이었다. 그간 그들이 상대하던 마족과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었다. 마족, 아니 세상의 종말을 불러일으킬 만한 힘이었다.
오죽하면 해골왕이 나타났었다는 말에 모두가 크게 술렁였고, 그걸 무사히 처리한 것만으로 아이작을 영웅으로 생각했을까.
“그런데, 정말로 해골왕이 퇴치되긴 한 것이랍니까?”
“예. 흑이 확인했다고 합니다. 아이작 에슈아가 퇴마했다고.”
그 말에 사제들은 뭔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흑이라니?
“흑은 아이작 에슈아의 자작극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작 에슈아 만세!”
“해골왕이 퇴마되었다!!!!”
연회장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아이작에 대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광경에 백의 추기경 세라핀은 후후 웃었다.
“본의 아니게 아이작 사제가 해골왕을 처리했다고 증언해준 셈이 되었군요, 이안.”
그녀의 말에 흑의 추기경은 부들부들 치를 떨었다.
그는 아이작이 해골왕을 소환하고, 자작극을 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철저하게 조사했다.
하지만 나오는 게 전혀 없었다. 조사할 때마다 드러나는 건, 아이작이 해골왕을 처리했다는 확증뿐.
오히려 자신이 아이작의 업적을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흑의 추기경으로서는 미칠 수밖에.
‘뭐지?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자신들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흑은 사건 현장 조사에 더 능숙하다.
‘차라리 적(赤)이 집중 심문에 들어가면 좀 나오는 게 있을 테지.’
그들은 대인(對人)을 상대로 이단을 가려내는 것에 있어 최강자들이니까.
‘그러니 신성제국 최고 수사관들인 녀석들만 움직이면.’
그래. 그래서 그들의 우두머리인 적의 추기경한테 요청을 했는데…….
“역시 떡잎이 다르다니까요. 교황은 누가 뭐래도 아이작 군이죠. 하하하.”
저 미친 새끼가 자신의 요청은 쌩까고서, 아이작을 칭찬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사실 연회장의 분위기가 이리 물이 오른 것도 저놈의 지분이 크다. 만약 저놈이 흑의 요청대로 집중 심문을 하기만 했다면, 아니 의혹 한 점만 거론했다면,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지도 않았을 텐데.
“애초에 나는 7년 전부터 아이작 군이 해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누구는 되지도 않는 자작극 이야기를 꺼내다가, 우스운 꼴이나 당하고.”
저 여우 놈팽이, 목 졸라 못 죽이나?
결국 보다 못한 흑의 추기경이 적의 추기경에게 다가갔다. 흑의 추기경이 살벌한 얼굴로 다가오자, 근처에 있던 귀족들이 헉 하고 놀라며 흩어졌다.
흑의 추기경은 동기이자 교황 선발의 최종결정권을 가진 추기경인 그에게 충고했다.
“제정신이야? 아이작 에슈아, 그런 놈을 교황으로 추천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라니까?”
“엥? 상관없는데?”
“리온 세페트!”
흑의 추기경은 자신이 보낸 문서를 못 봤느냐고 일갈했지만, 적의 추기경은 후후 웃을 뿐이었다.
“왜. 아이작 군 덕분에 우리 가문에 얼마나 큰 경사가 났는 줄 아나?”
“!”
선조들을 구해준 일로 적의 추기경은 몹시 좋아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사라진 역사, 아니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게 해줄 사람을 데려와주다니.
“아, 역시 우리집 아이여야 했는데, 큭큭. 지금이라도 달라고 할까? 얼마를 주면 사올 수 있을까?”
흑의 추기경은 기가 찬 듯 그를 보았다.
뭐? 우리집 아이? 사와?
“이 미친 새끼야. 걘 마족의 첩자일지도 모른다니까?”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인간이라며?”
“……!”
실눈으로 웃던 적의 추기경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제국에서 제일 뛰어나신 학자님의 결과가 그러하시다면, 이쪽이라고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리 없다. 저건 애초에 아이작을 심문할 생각조차 없단 의미다. 그러니 헛수고 말고 꺼지라는 뜻.
흑의 추기경으로서는 기가 찰 뿐이었다.
“정말 아무런 의심도 안 드는 건가?”
그러나 적의 추기경은 대답 대신 프흡 웃었다.
“자네, 그거 아나? 신앙마다 마를 다루는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 적의 신앙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변질자를 찾는 게 더 중요하거든.”
“그러니까……!”
“마를 이용해 진짜 변질자를 찾을 수도 있단 이야기지.”
“……!”
“너희도 마의 시체를 이용하잖아? 그럼 이해할 텐데?”
“그거랑 이걸 같은 취급 마라. 걘 일개 사제가 아냐. 교황 후보라고!”
“글쎄? 우리는 마족보다 같은 인간이 더 해충이라고 보는 입장이라. 누가 봐도 적군인 놈들보단, 아군인 척하면서 동료를 배신하는 놈들이 최악이지. 마족 처리는 어차피 다른 신앙의 몫이잖아?”
그 말에 흑의 추기경은 그를 경계하듯 보았다. 그러고 보면 적의 신앙은 함정수사나 사법거래(司法去來) 같은 수법도 유연하게 쓰는 놈들이 아닌가.
‘필요악이라는 건가.’
이 자식, 설마 일부러 아이작을 두고 보며 이용할 셈…….
“아아, 역시 그 꼬마를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짜릿해, 더 해줬음 좋겠네. 일개 사제일 땐 교황을 물어다 줬는데, 교황이 되면 도대체 뭘 물어다 주려나. 아, 이런 자극 좋아. 최고야……!”
…이 미친 또라이 새끼. 그냥 지 사리사욕 때문이잖아.
‘나랏일보다 가문 일이 더 소중하단 거냐.’
그 표정에 적의 추기경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설령 자네 말대로 첩자라고 치지. 근데, 그게 뭐?”
“!”
“고지식한 자네는 그 총명한 머리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 스파이는 찾아내는 게 중요한 거지. 누구인지만 알면 끝이야. 그 사람만 집중 감시 하면 그만이니까.”
“!”
아이작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는 적의 추기경은 후후 웃었다.
아이작이 마족의 첩자?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래, 솔직히 해골왕만 아니면 된다. 그만 아니면 처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컨트롤만 할 수 있는 범위라면 전혀 문제없다.
나라가 전복되지만 않으면 된다.
“물론 문제가 있다면, 구해낸 선조들이 아이작을 따르려고 해서 족보가 좀 꼬일 것 같다는 것 정도인데…….”
하지만 그것도 뭐.
“아이작이 교황이 되면 족보가 안 꼬이겠지? 교황을 섬기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니까.”
“야!!!”
“그럼 교황이 된 아이작은 내가 이용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이작이 뭐냐! 네 이놈!”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적의 추기경이 드물게 당황했다. 과연 공작에게 ‘네 이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마치 하룻강아지를 부르듯, 이내 적발의 젊은 남녀가 씩씩대며 나타났다.
“어찌 그분의 이름을 막 불러! 네놈은 은인에게 그리하라고, 아비한테 교육을 그따위로 받았느냐?!”
“아, 아니 할아버님.”
아이작이 구한 160년 전의 선조들이었다.
물론 외모는 어렸다. 고모 쪽은 몰라도, 남자 쪽은 20대였다.
하지만 적의 추기경은 고작 자식뻘로밖에 안 보이는 남자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내 형님이나, 네 할아비, 아비는 널 그리 가르치던? 증증손자라는 것이 영 예절 교육이 안 됐어.”
“아, 아니…….”
조부모와 부친까지 끌고 오는 건 좀 가불기 아닌가?
하지만 가문의 중요한 열쇠를 쥔 사람이니 뭐라 하지도 못하고.
그런 모습에 흑의 추기경은 큭 비웃었다.
“봐라. 족보 꼬였다니까.”
좋아할 때가 아니라니…….
“네놈도 그렇다! 흑가의 코흘리개 놈아!”
“?!”
나는 또 왜?!
“네 증조할아버지 놈이 얼마나 예의가 바른 놈이었는지 아냐? 걔, 내 후임이었어! 나한테 얼마나 깍듯했는 줄 알아? 그림자도 못 밟았다고! 그런데 그 후손이란 놈이 어디서!”
“…….”
뭐라 말 못 할 모멸감을 느낀 흑의 추기경은 미간을 짚었다.
…하, 아이작 에슈아 하나 때문에 이게 뭔지.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푸흐흐. 역시 선조 약빨이 먹히고 있군.”
아이작이었다.
서품식장에 숨어든 아이작은 상황을 보며 좋아하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청, 백, 적까지 셋을 꼬셔서 과반수로 교황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
흑과 금은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
‘뭐, 백은 괜찮고. 할아버지가 좀 문제지만…….’
바로 그때였다.
펄럭!
“아이작!!”
“?!”
아이작이 숨어 있던 연회장 테이블의 천 자락이 들렸다. 그리고 개를 찾듯 아이작을 찾아낸 일라이가 눈을 부릅떴다.
“이놈의 자식, 드디어 찾았구나!”
아이작은 내심 당황한 듯 자신의 다리를 낚아채려는 일라이를 보았다.
“아씨,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그보다 어떻게…….”
“멜리사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하더구나!”
아이작은 뒷목을 잡았다.
아씨, 망할 성녀들!
청의 여신의 힘으로 기척을 숨겼는데, 어떻게 자꾸 찾아내는 거야??
“확인할 게 있으니 나와라. 멜리사도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싫거든? 걔하고는 할 말 없거든?!
아이작이 본인과 연관도 없는 사제품 수여식장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원래는 올 이유가 없는 장소지만…….’
그때, 연회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작의 고개가 기다렸다는 듯 돌아갔다.
* * *
그 무렵.
아카데미를 졸업한 견습사제들이 흥분하며 연회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들었어? 아이작 사제님에 대한 이야기?”
“들었지! 고작 열 살에 사제가 되신 것도 대단한데, 이번엔 해골왕까지!”
“이번에 정말 교황이 되시는 거 아냐?”
“나 팬이잖아! 그간 활약하신 것도 다 정리해놨다?”
7년간 아이작의 활약을 듣고 보고 자란 아이들이었다. 모두가 아이작을 우상으로 여겼지만, 단 한 명만큼은 달랐다.
바로 카인 베리트.
실베스테르다.
‘내가 만든 해골왕의 기척이 완전히 끊겼다.’
솔직히 그로서는 충격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들과 황실, 사제들을 공포에 몰아넣으려고 보낸 걸 처리를 해버리다니?
사실 올해로 16살. 견습사제인 그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제일 중요한 성법을 전혀 쓸 수 없었다. 원래는 쓸 수 있어야 하나, 빙의의 부작용인 듯했다.
그는 금기를 쓴 것에 대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수없이 많은 빙의를 거쳐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마치 누군가의 저주처럼.’
일단 지금은 성법을 쓸 수 있게 조치하고 있지만, 예상대로라면 풀리는 데 5년은 더 있어야 했다.
즉, 지금은 제힘을 다 못 찾은 약한 상태란 의미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노출을 피했다. 이번에 서품을 받게 된 것도 일종의 서류 위조로 가능한 일이었다.
성직자가 성법을 못 쓴다는 걸 알게 되면, 매우 골치가 아파진다.
‘안정적으로 힘을 찾기 위해선, 키나를 교황으로 올려야 한다.’
그래서 해골왕 보내서 다른 가문들을 주눅 들게 하고, 특히 청, 라이벌 자체를 없애려 했던 것이었는데.
‘그 해골왕이 처리됐다고?’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처리할 수 있는 건 해골왕 본인밖에 없다.
그러니 실베스테르로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마…….’
유일하게 자신을 방해할 수 있는 놈, 설마 그놈의 짓인가?
그러나 곧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럴 리 없었다.
애초에 말이 되나?
‘놈은 지금 신계에 봉인되어 있다.’
그것도 절대 나올 수 없는 벌레 안에.
절대 자신을 방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지금 자신의 앞에 나타나도 곤란했다.
그래…. 분명 그러할 텐데.
“어? 저기 저분, 아이작 사제님 아니야?”
“뭐?! 정말?”
“꺄악! 왜 서품식에 오셨지?”
‘!’
주변의 환호에 실베스테르는 흠칫 놀랐다.
연회장으로 들어간 그는 군중들 사이에서 똑똑히 보았다. 아이작 에슈아를!
그런 실베스테르와 눈이 마주친 아이작은 싱긋 웃었다.
주변의 견습사제들이 아이작을 향해 너도나도 다가가 인사했다.
아이작은 팬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실베스테르를 보았다.
“안녕. 네가 카인이구나.”
그러자 실베스테르는 가짜 가면을 쓰며 방긋 웃었다.
“아이작 사제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그러자 아이작은 어째서인지 같잖다는 듯 실소를 짓는 것이었다.
“처음?”
“!”
아이작은 딱 걸렸다는 듯이 실베스테르를 보았다.
“이상하다? 우리 처음보는 거 아닐 텐데.”
“……!”
그 살벌한 웃음에 카인은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