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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60화 (260/272)

제260화. 네가 왜 여기에 있어? (5)

성 실베스테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신성제국 교황 중에서도 제국을 최고 부흥기로 이끈 교황.

해골왕과 악연이 굉장히 깊은 교황.

결국 그는 해골왕에게 인간들을 바치려던 사악한 성녀를 잡아, 해골왕을 인간진영에서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 명망으로 황제 대신 국책 사업을 추진하며, 황제보다 교황의 이름이 드높은 시대를 이루었다. 역사상 황권이 가장 약한 시기이자, 교황청의 최고 전성기를 연 셈이다.

성 실베스테르는 사제들에겐 해골왕을 처리한 영웅으로서 기억되었고, 80세에 승하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

그렇지.

80살까지 잘 먹고 잘살다가 죽었으니까,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지금은 흙이 되어 있어야 할 놈이지.

그런데 그놈이 눈앞에 있네?

가증스럽게도 16살 꼬맹이로 회춘한 모습으로?

해골왕과 성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해골왕을 이용해 권력의 끝판왕까지 올라갔던 놈이?

아이작의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왜 그래. 우리, 처음 보는 사이 아니잖아.”

“……!”

카인은 움찔 몸을 떨었다. 그의 당황한 시선이 아이작을 훑었다.

뭐지?

이놈은 도대체 뭐야?

아이작의 말도 신경이 쓰이지만, 저놈의 눈빛이며 말투.

물론 생김새는 전혀 다르지만, 어째서 낯이 익은 걸까. 그래. 그 표정도, 생김새도 전혀 알 수 없던 하찮은 해골과 말이다.

그러니 카인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 솔직한 마음으로는 당혹을 떠나서, 불안이 확신으로 바뀔 때와 같은 떨림이다.

‘뭐지? 왜 그놈이 떠오르는 거지?’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계속해서 부정하던 그는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의 망나니 같은 눈빛과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 때문이다.

‘설마 정말로 그놈인가?’

그놈이기에 자신이 만든 해골왕을 처리할 수 있었던 건가?

그러나 실베스테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제다. 마왕이 사제라니…. 그딴, 세상에 말도 안 되는…….’

그러나 그 필사적인 부정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작이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표정이 왜 그래? 설마 내가 널 못 알아볼 줄 알았어?”

“……!!!”

순간 실베스테르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지금 그의 뇌리에 스치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설마, 진짜인가……!’

실제로 아이작은 꼬리를 잡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꼭 독 안에 든 쥐를 보다못해, 쥐새끼의 꼬리까지 밟고 있는 고양이 같기도 하다.

“나 되게 서운하다.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내가 널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다니.”

“……!”

아이작이 한걸음 다가오자, 실베스테르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그 모습에 일라이는 미간을 좁혔다.

“아이작?”

저 녀석이 왜 저러냐는 것이다. 마치 견습사제를 괴롭히는 듯한 모습이 아니던가.

하지만 아이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실베스테르에게 다가갔다.

“설마 그런 모습으로 이 장소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

그렇게 다가오는 아이작과의 거리는 불과 세 걸음 차이.

“그렇게 한참 어린 애들 사이에 숨어 있으니까 좋아?”

두 걸음.

“당당하게 모습을 보여 봐. 무려 제국을 호령하던 우두머리였잖아!”

그리고 마지막 한 걸음.

“응? 안 그래?”

마침내 아이작과 조우한 실베스테르의 눈이 드물게 흔들렸다.

‘…이 자식!’

실베스테르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거기엔 자신들에게 집중하고 있는 전 신앙의 추기경들과 견습사제들이 있었다.

아니, 단 한 명. 금의 추기경은 이럴 때 자리를 비웠구나.

실베스테르는 미간을 좁혔다.

그도 그럴 게, ‘빙의’는 금기였다. 환생이 아닌, 빙의는 기존의 몸 주인을 죽이는 살생 행위였기 때문이다. 영혼을 죽이고 그 몸을 차지하는 건데, 굳이 따지면 흑마법이지.

인명을 중시하는 사제가 할 만한 짓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 이딴 건 마족 첩자가 할 만한 짓이지.

‘아니, 사실 빙의는 ‘시작’에 불과해.’

자신이 실베스테르라는 게 알려지면 여러 가지 것들이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지금 정체가 발각되면 곤란하다.

빨리 이놈의 입을 막아야…….

“얼마 전에 건국제에서 네 형이랑 같이 봤잖아. 벌써 잊었어? 나 진짜 섭섭하다.”

아이작이 한숨 쉬며 카인의 어깨를 토닥이자, 실베스테르의 굳은 얼굴이 풀렸다.

…아.

동시에 그는 그런 것이었냐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곧 그는 언제 아이작을 경계했냐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아, 예. 그랬었죠. 죄송합니다. 아이작 사제님, 형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팬이라서요, 평소에도 뵙고 싶…….”

“그래 그래, 내가 너 잘 알잖아. 별명이 실비인 것도 알잖아.”

철렁.

실베스테르는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예, 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게, 실비는 해골왕이 저를 부를 때 쓰던 멸칭이었으니까.

당황한 그가 아이작을 보았다.

“저기…….”

“어? 키나가 그러던데. 6살 때였나? 실비아라는 여자아이를 너무 쫓아다녀서, 한동안 실비라고 불렸다고.”

실베스테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새끼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어! 그는 떨어진 심장을 다시 끌어올리며 웃었다.

“아…! 형님이 그런 말까지 하셨군요. 추억이네요.”

추억이고 자시고 알게 뭐냐? 빌어먹을. 6살이라면 이 몸의 진짜 주인이 저지른 짓이거늘.

“부끄럽습니다. 철없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

“예. 이제는 신께 봉사해야 할 사제가 되었으니까요.”

그 말에 아이작은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이제는 안 쫓아다니나 봐? ‘이네스’,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

순간 실베스테르의 얼굴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네스.

그 이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동시에 그 이름을 알자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단 한 명 밖엔.

왜냐하면, 교황의 명으로 죽은 사형수의 이름은 절대 아이에게 붙이지 않으니까.

행여라도 존재할 리 없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실베스테르가 사회적으로 말살한 이름이니.

물론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이라면, 조합되면 안 되는 철자로서 전파되거나 읽는 방식이 달라졌겠지.

그래. 그 이름을 알 사람은 없을 텐데…….

아이작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깜짝 놀랐지 뭐야. 그 베리트가니까, 키나 베리트처럼 서품식은 거를 줄 알았거든. 아무튼 네가 정식 사제가 되다니, 선배로서 굉장히 기쁘다. 선배로서 당연히 네 서품식을 챙겨주러 왔지.”

그 말에 주변에서 흥미롭다는 듯 속닥거렸다.

“뭐야, 무슨 얘기야?”

“킥킥. 청하고 금하고 사이가 안 좋다더니, 사실은 친한가 봐.”

“그러네, 그 아이작 님이 개인적으로 서품식을 보러 올 정도라니.”

그러나 추기경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작 에슈아하고 카인 베리트가 친했었나? 키나 베리트가 일방적으로 쫓아다닌 건 알겠는데 말이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백의 추기경이 일라이에게 속삭였다.

“아이작 사제가 차남과도 친했나요?”

일라이는 기가 찼다.

뭐…? 친해?

“저놈은 누구한테 시비를 걸고 다니면 다녔지, 누구하고도 안 친해.”

애초에 카인이라.

일라이는 이상하다는 듯 카인을 보았다.

‘형인 키나와 다르게 뭔가 두드러지는 부분은 없었는데.’

하지만 아이작이 보러 올 정도라니, 뭔가 있는…당연히 .

“그래서 우리 카인. 해골왕을 만드는 법은 어디서 배웠을까?”

그래. 역시 봐라. 뭔가 있었구… 뭐? 응?

“…뭐??”

“뭐???”

아이작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지금 뭐라고?!

일라이도 이게 뭔 소리냐는 듯 그를 보았다.

“해골왕이라니?!”

실베스테르는 가슴이 철렁거리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반문할 시간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추기경들과 사제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들을 보았다.

심지어 연회장 밖에 있던 사람들이며, 연회장으로 들어오던 황제 일가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 최고의 화제성을 가지는 인물에, 충격적인 화두였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무슨 소리야?”

“해골왕을 만들다니?”

카인은 대답 대신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

하지만 아이작은 몹시 여유로웠다.

“왜? 내가 모를 줄 알았나?”

“!”

“해골왕을 처리하면서 깜짝 놀랐지 뭐야. 해골왕의 뼈에서 네 기운이 느껴지다니.”

순간 연회장이 크게 술렁거렸다.

“무슨 소리야?”

“해골왕한테서 왜!”

아이작은 큭 웃었다.

“그거. 네놈이 만든 거지? 해골왕의 뼈를 주워서 조립한 거야.”

“뭐라고??”

충격적인 말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시에 실베스테르는 확신했다.

‘이 자식. 역시 그놈이다!’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 놈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명. 해골왕밖에는 없었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자기 몸에 대한 것이니, 모를 수가 없지!

다른 놈들은 해골왕의 구성 물질 따위 알지도 못하겠지만, 본인은 제 몸이니 알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해골왕만 없다면 누구도 알아내지 못할 내용이지만, 본인이 등판해버렸네? 자신의 것이 아닌 걸 조사하기만 하면 답은 나올 것이었다.

그랬기에 실베스테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야. 왜 해골왕이 왜 여기에 있어?

그것도 사제의 몸에??

‘아니 일개 사제의 몸도 아니지.’

저 육신은 신이 정성껏 만든 축복의 몸. 솔직히 신성제국 사제들 중에서 제일가는 성자의 몸으로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왜…….

‘마왕이!’

하물며 그 새끼가, 신들의 안방이라 할 수 있는 곳에?

혼란스러운 실베스테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구 짓이지?’

아니, 그전에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카인 베리트, 이게 무슨 소리냐.”

“!”

추기경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실베스테르는 눈을 부릅떴다.

동료 사제들은 슬금슬금 멀어졌고, 자신을 보며 무릎을 꿇고 있던 추기경들의 시선은 매서웠다. 자신의 손짓 하나에 사람을 잡아들이던 성기사들의 무기는 자신을 향할 것만 같다.

어디 비단 ‘실베스테르’와 ‘카인’뿐인가?

여러 교황들을 거쳐오며, 늘 권력의 최상위에서 있었던 실베스테르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눈빛이었다.

이가 갈렸다.

비웃음은 덤이었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아이작 사제님. 교황의 자리를 두고서 형님과 싸우고 있단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베리트 사람을 몰아가시다니, 실망…….”

“성법을 써봐라.”

“……!”

일라이의 말에 실베스테르는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한번도 네가 성법을 쓰는 걸 못 봤구나.”

“……!”

곧 흑의 추기경이 쯧 혀를 차며 사람들을 물렸다. 교황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아이작과 청의 수작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서품식을 진행하시죠.”

“아니. 그것만 확인하고 넘어가지.”

“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죠. 마족의 스파이인지 아닌지 가려보려고 그러시는 건 알겠지만, 마족은 이 서품식 연회장 입구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논할 가치도 없는 문제입니다. 다른 견습들에게 민폐니…….”

실베스테르는 재빨리 자리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작이 기다렸다는 듯 푸웃 얄밉게 웃었다.

“맞아요, 할아버지! 설마 사제가 성법 하나 못 쓰겠어요? 못 쓰면 인간도 아니지. 흑의 추기경께서 바보도 아니고, 그걸 눈치 못 챘을까?”

“…….”

도발당한 흑의 추기경이 아이작을 보았다.

그는 빡친 듯 손을 뻗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직접 확인을 해주지. 성법을 쓴다면, 교황 후보인 네놈은 베리트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실베스테르에게 향했다.

실베스테르는 이를 갈며 아이작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는 아이작은 눈웃음을 지었다.

어디 한번 변명해 봐.

그래봐야 소용 없을 거다.

네가 자랑하던 걸 다 부셔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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