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자리를 넘기시죠 (1)
거 얼굴 표정 꼬라지 좀 보라지.
‘어지간히도 당황한 모양이지?’
아이작은 카인을 보며 큭큭 속으로 웃었다.
그는 애초에 이 상황을 노리고 온 것이었다. 그래. 슈리를 통해 카인이 실베스테르라는 걸 짐작하고, 청의 여신으로부터 놈이 성법을 못 쓴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부터.
‘성법을 못 쓰는 이유는 대충 짐작 간다.’
물론 청의 여신에게 들었을 땐 몰랐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보니 많은 걸 알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놈의 몸 주변으로 묘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저주인 걸까요?]
그 말에 아이작은 웃었다.
‘아니. 저주처럼 보이지만 저주는 아니고… 아니지.’
교황이 성법을 못 쓰니, 본인에게는 영겁의 저주인 셈인가? 마치 죽지 못했던, 불사자인 자신처럼 말이다.
‘뭐, 왜 저렇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자업자득이지.’
금기에 손을 대 순리를 벗어나면서 말이다.
짐작컨대 자신이 봐온 교황들 중 몇 명 눈에 띄던 놈들은 전부 저놈이었을 것이다. 즉, 살아온 나이만 보면 해골왕과 거의 비슷한 셈이다.
‘뭐, 어둠의 힘에 손을 댔을 줄은 몰랐다만.’
[초월계위는 성과 마를 동시에 다룰 수 있어야 하죠?]
그래, 지금까지 얻은 정보로는 아마도?
‘저놈도 초월 계위를 위해 어둠의 힘에 손을 댄 모양이다만…….’
그깟 인간의 몸으로 어둠을 다루는 게 쉬운 줄 알아?
‘훌륭하신 이 몸하고는 게임이 안 되지. 흙냄새나 풀풀 풍기는 놈이.’
실제로 저놈을 봐라. 흑의 추기경이 다가오니까 눈을 부릅뜨고서 날 노려보고 있잖아? 참 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네.
하지만 피할 수 없단다.
아니나 다를까, 흑의 추기경이 카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좀만 참아라. 네게도 나쁜 건 아닐 거다. 청이 네게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베리트에게도 큰 이득일 테니.”
“!”
사실 흑의 추기경은 아이작을 교황 후보에서 사퇴시킬 생각이었다.
이거라면 아이작이 교황의 자리를 위해 억지를 부렸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아이작에겐 충분한 이미지 손실이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사퇴 사유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흑의 추기경은 더 큰 대의를 위해 이번엔 베리트를 도우려는 것이었지만, 정작 장본인은 곤란해하고 있었다.
‘이 도움 안 되는 놈. 그게 아니라고.’
흑의 추기경쯤 되는 놈이 분석을 하면 이 몸에 대해서 드러난다. 물론 빙의까지는 결코 모르겠지만, 어둠의 힘을 쓰는 걸 감지할 순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분석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추기경들 모두 눈을 번득이며 카인만 보고 있었다.
아니, 비단 그들뿐인가? 모든 사제들, 심지어 뒤늦게 들어온 황가들도 보인다.
심지어 황제와 황태자는 본인들이 들어온 걸 알리지 말라고 하고 있다. 본인들에게 시선이 분산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뭐, 그들로서도 흥미로운 화두겠지. 그 화두가 교황가가 내몰리는 내용이라면 더더욱.
‘가증스러운 황가 놈들.’
아니지? 지금은 오히려 잘됐지?
실베스테르는 고요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자신이 큰소리로 황가를 아는 척하면, 모두가 어전 예법에 따라 그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이 거지 같은 상황도 자연스럽게 물을 흐릴 수 있을 터.
그걸 잘 아는 실베스테르는 일부러 황가를 발견한 척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빨리 해보죠? ‘황제 폐하’께서도 결과를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
어딜 도망치냐는 듯 아이작이 얄밉게 선수를 쳤다.
황제란 말에 사제들과 추기경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고개를 숙였지만, 아이작은 웃었다.
‘같잖게 어딜 빠져나가시려고?’
그는 실베스테르의 속셈을 읽은 듯했다. 그 증거로 아이작이 황제를 보았다.
“그쵸, 폐하께서도 이 상황을 기다리시는 것 맞죠?”
“……!!”
아이작의 외침에 추기경들은 기절할 뻔했다.
‘이 미친놈아!’
‘황제가 니 친구냐! 말 좀……!!’
추기경들은 티를 내진 않았지만 어쩔 줄 몰라 했다.
특히 일라이는 눈을 지긋히 감고 있었다. 도대체 이 금쪽이를 어쩌면 좋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황제는 그들에게 다가오며 웃었다.
“중요한 일인 듯하여 보고 있었소. 하던 일을 계속하시오.”
그 반응에 당황한 신하들이 황제를 보았다.
계속하라니?
그 반응에 가신들이 급히 황태자에게 속삭였다.
“전하…! 아이작 에슈아가 베리트에게 무릎을 꿇게 되면 황실로서는 좋을 것이 없습니다! 대놓고 망신인데요. 말리셔야 합니다!”
하지만 황태자는 오히려 방석을 깔아놓고서 구경하고 싶어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작이 저런다?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흑의 추기경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카인에게 내밀었다.
“여기에 성력을 불어넣어 봐라.”
성력을 채집하는 물건이었다. 그거면 카인으로선 빼도 박도 못 하고 정체가 들통난다. 흑의 추기경도 작정을 했단 것이다.
아니, 사실 카인에게 의혹이 있을 리 없단 생각에 제일 확실한 걸 내민 듯하지만.
그 광경에 위스퍼는 걱정이 된다는 듯 속닥거렸다.
[이 정도나 판이 깔리면 저놈이 가만히 있을 리 없는데요. 저놈도 바보가 아닌 이상, 최후의 발악을 하겠죠.]
하물며 그냥 교황도 아니다. 교황들 중 최강자 중 하나고, 빙의를 통해 수백 년을 살아왔다.
[성법을 쓰면 주인님의 입지가 위험해지시는…….]
‘아니. 안 써.’
[예?]
‘최후의 발악을 해도 성법만큼은 안 쓸 거야.’
그 단답에 위스퍼는 도리어 놀란 듯했다.
[왜 그렇게나 확신을?]
아이작은 대답 대신 힐끗 일라이를 보았다.
‘청의 여신의 정보에 의하면, 저놈은 할아버지 앞에서는 절대 성법을 못 쓴다고 했잖아.’
[그랬죠.]
‘그 말이 뭔 말이냐면, 성법을 쓰면 할아버지한테 ‘뭔가’를 들킨다는 말이야.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만.’
[오! 그럼 저 새끼도 성법은 못 쓰겠네요! 이걸로 주인님은 안전한…….]
‘아니, 사실 저 새끼가 성법을 써도 아무런 상관도 없단다.’
[예???!!]
그게 뭔 말이냐는 질문에 아이작은 큭큭 웃기만 했다.
사실 성법을 쓰든 말든, 그건 이미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냐고?
‘성법을 못 쓰면 못 쓰는 대로 지 목을 조를 것이고, 쓰면 쓰는 대로 할부지한테 뭔가 털리겠지.’
어느 쪽이든 저놈은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었다. 즉, 아이작으로서는 저놈에게 이중 함정을 건 셈인 것이다.
그리고 그깟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게 뭐가 어려운데?
‘내 무릎은 그렇게 안 무겁거든?’
고작 그거 하나로 저놈이 그리 숨기려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지?
그때 흑의 추기경이 카인을 재촉했다.
“자. 어서 성력을 불어넣어라.”
“…….”
실베스테르는 미간을 좁히며 추기경이 내민 성물에 손을 얹었다.
[오, 저 새끼. 결국 마족이 아닌 쪽을 택하나?!]
차라리 일라이의 의심을 받겠다는 걸 택한 걸까.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우웅.
‘어?’
흑의 추기경이 움찔하는 그 순간, 성물이 폭발했다.
쾅!!!
쨍그랑!
“꺄아악!”
“아악!”
연회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사들이 급히 황제의 앞을 막아섰고, 사제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폭발은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놀란 심장을 부여잡았다.
“무슨 일이야!”
“흑가의 측정기가 터졌어!”
그러나 카인은 오히려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힘을 불어넣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물건이 터져서……!”
그는 오히려 뻔뻔하게 흑의 추기경을 보았다.
“혹시 ‘물건’에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닐까요?”
“!”
그 반문에 흑의 추기경은 카인을 노려보았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술렁거렸다.
“흑의 추기경이 베리트가 차남을 살해하려고 한 거 아냐?!”
“그러고 보니 흑이 어쩐 일로 금의 편을 들어주나 했는데!”
사람들의 술렁거림에 카인이 순진한 척 한마디 보탰다.
“타이밍도 그렇고, 하마터면 ‘폐하’께서 위험하실 뻔했어요.”
“……!”
그 말에 황제의 가신들이 흑의 추기경을 노려보았다.
“폐하를 노린 건 아닌가?”
“설마 그럴 리가…….”
카인은 한마디 더 보탰다.
“그러고 보면 흑의 추기경께서는 이상하게 적극적이셨죠. 서품식도 뒷전으로 하시고. 이유가 있으셨나요?”
사람들도 놀란 듯 외쳤다.
“정말입니까? 공작?”
흑의 추기경은 기가 찬 듯, 카인을 보았다.
아니, 이 새끼가 이걸 이렇게 한다고?
동시에 그는 이상한 눈으로 카인을 볼 수밖에 없었다. 물건이 터지기 직전, 그는 분명 카인의 손에서 기이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물건을 터트린 게 다름 아닌 카인이란 의미인데.
그 매서운 눈빛에 카인은 눈을 부릅떴다.
‘그래. 흑의 추기경은 이상하게 여기겠지.’
하지만 그는 살점을 내어주는 것 대신, 다른 걸 내준 것이다.
‘원래는 흑을 아이작 에슈아를 내치는 데 쓰려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손해를 봤지만 괜찮았다. 자신의 비밀만 밝혀지지 않는다면 뭐든 할 수 있다.
그 증거로 카인이 방긋 웃었다.
“저 때문에 괜히 다른 동료들께 민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빠져서 바로 흑이나 적으로 출두할 테니, 서품식을 계속 진행하시죠.”
그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일라이 에슈아한테서만 벗어나면 성법은 쓸 수 있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는데…….
히죽.
아이작이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동시에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 흑의 추기경께서 이리 능력이 없으실 줄 몰랐네요.”
뭐, 인마???
흑의 추기경은 기가 찬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정작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에효효. 괜히 제가 소중한 후배님들의 서품식을 방해하고 말았네요. 추기경들께서는 이제 서품식을 진행하셔야 하니, 대리인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추기경을 대신할 수 있기만 하면 되죠?”
흑의 추기경은 불쾌해진 듯 그를 노려보았다.
“추기경을 누가 대신 한다ㄱ…….”
“신성드래곤이요.”
놀란 건 실베스테르였다.
…지금, 뭐라고?
그러나 아이작은 푸흡 웃었다.
“신성드래곤 정도면 흑의 추기경보단 낫겠죠.”
“……!!!”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던 아이작은 당황하는 실베스테르를 보았다.
‘신성드래곤이면 뭐, 끝났지. 일부러 가짜 교황을 부추겨서 내쫓았을 정도인데.’
신성드래곤을 일대일로 붙이면 확실하게 실베스테르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치명적인 약점조차도.
‘게다가 금의 신들하고도 연결된 눈치니, 신들 쪽도 뭔가를 역으로 캐낼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확실해도 베리트 사람에게 신성드래곤을 그냥 붙일 순 없잖아?
신성드래곤은 황실의 패. 상대가 교황가인 만큼, 자칫 정치적인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고 말이다.
뭐, 막무가내로 조사를 시키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러면 화살은 청으로 돌아올 터.
하지만 지금은?
‘저 흑의 추기경도 지금쯤 이상함을 눈치챘겠지.’
아이작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큭큭큭 악랄하게 웃었다.
‘심지어 저 공작은 고작 이 나라를 멸망시키겠다는 말 하나에 이단인지 아닌지 물고 늘어지는, 개치졸하고 옹졸한 성격이다.’
[저기요, 고작은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런 의심 많은 성격에 무려 신성드래곤을 붙여준다는데, 동의 안 할 이유도 없지.]
[저기, 결혼 업보는 괜찮으시고요?]
아이작은 무시하며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자, 그럼 이제 서품식을 진행하시죠! 저도 얌전히 객석에서 축복하겠습니다! 어디, 꽃가루라도 흩날려드리면 되나?”
실베스테르는 돌아서는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판을 벌인 아이작은 모든 게 계략이라는 듯, 그를 보며 얄밉게 웃었다.
‘그러게 누가 빙의 같은 음침한 술법을 쓰래?’
나 봐. 가만히 있어도 신이 성자의 몸으로 환생시켜 주잖어. 그러니까 나처럼 착하게 살았어야지. 어엉?
‘신이 내 선행에 감명해서 이런 축복받은 몸을 주셨잖아. 누구와는 다르게. 푸흐흐흐흐.’
[…주인님, 양심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