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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62화 (262/272)

제262화. 자리를 넘기시죠 (2)

“젠장!”

카인은 신경질을 내면서 의자를 걷어찼다.

“도대체 뭐 하는 자식이야, 빌어먹을.”

평소의 그답지 않게 흥분한 카인은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카인은 지금 황궁 한 편에 연금되어 있었다. 어쩌다가 이런 처지가 되었냐고?

-폐하께서 특별히 은총을 베풀어 황궁을 빌려주셨다.

-!

-역시 금의 직계가 흑가나 적가에 출두하는 건 남보기가 좀 그렇잖아? 범죄자도 아니고. 특별히 신성드래곤한테 말해서 직접 찾아가게 할 테니까, 그때까지 넌 방에서 편히 기다려. 후후후.

빌어먹을 해골왕!

뭐가 특별히 황궁을 빌려주셨다는 건가!

본인의 눈길이 닿는 곳에 나를 가두고 감시하려는 속셈을 모를 줄 알고? 하물며 황실이면 금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아이작의 얄미운 미소가 잊히지 않는 카인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방 안에 갇혀 있으면, 신성드래곤과 마주하게 된다.

‘신성드래곤 따위와 조우할 것 같으냐.’

그걸 어떻게 쫓아냈는데!

카인, 아니 실베스테르는 가짜 교황인 브루티오를 이용해서 드래곤을 쫓아냈었다.

아직 카인의 몸에 빙의하기 전이었다.

-신성드래곤이라면 너와 나에 대해 알아차릴 것이다.

-황가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골을 만들어 제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해라.

황제와 계약한 신성드래곤이 자신을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피엔의 삼촌에 해당하는 신성드래곤을 개죽음만도 못 하게, 처참하게 죽였다. 그걸 이용해 사피엔도 제국을 증오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놈들이 ‘내 나라’에 돌아온 것도 빡치는 판국에…….

‘그보다 신성드래곤이 아이작 에슈아의 말을 따르다니?’

그러고 보면 신성드래곤을 데려온 것도 그놈이 아닌가. 그 생각에 미친 실베스테르는 미간을 좁혔다.

‘설마 신성드래곤은 해골왕의 정체를 모르는 건가?’

그럼 그놈이 해골왕이라고 알려주면, 신성드래곤의 화살이 자신이 아닌 그놈에게 향하려나?

‘드래곤들은 해골왕을 싫어하니…….’

아니, 그뿐이 아니지.

차라리 아이작 에슈아의 정체를 밝힐까?

그놈이 해골왕이라고 말하면, 사제들의 화살이 전부 그쪽으로 꽂힐 것이다. 그럼 영구 추방도 가능할 터…….

그러나 실베스테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애초에 도박이다.’

교황이나 추기경들이 바보도 아니고. 무려 17년이나 그것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즉, 해골왕이라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자신조차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진, 놈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지 않았는가.

미치고 환장할 일이지만, 아이작은 누가 보더라도 신의 축복을 받은 사제였다.

그것도 보통 사제인가? 최고신과 형법의 신하고 계약하지 않았는가…는 설마, 형법의 신은 놈의 정체를 아는 건가??

그쯤 되자 실베스테르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미치겠군.’

그 둘이 마왕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채 간택을 했어도 문제고, 알면서 간택을 했어도 문제다.

‘어느 쪽이든 사제들의 신앙심이 떨어지게 될 일이다.’

즉, 놈의 정체를 밝히는 건 모 아니면 도였다.

실베스테르는 아이작 그놈의 섬뜩한 눈빛에서 눈치챘다.

-꼬우면 정체 밝히든가? 그럼 그냥 같이 죽는 거야.

본인 역시 실베스테르의 정체를 까발릴 것이라는 눈이었다. 한마디로 ‘나 죽고 너 죽자’라는 의미다.

아니, 말이 함께 죽자지, 실제론 증거가 나올 구석이 많은 자신이 더 불리했다. 그러니 세상에 해골왕이라는 걸 직접 밝히는 방법은 쓰면 안 된다.

‘다른 방법으로 아이작 에슈아를 신성제국에서 쫓아내야 한다.’

그놈이 교황이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신성제국을, 마왕 따위에게 먹히게 할까 보냐.’

하지만 그 전에 문제가 있었다. 신성드래곤이 올 때까지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카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지?’

그 새끼를 사고사로 죽여?

정 안 되면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있는 물건으로 청을 골로 보낼까? 이쪽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게끔?

뭐,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신성드래곤이 오기 전에 나가야 하는데.’

평소라면 이 몸의 아버지인 금의 추기경이 빼내주었겠지만, 그 개 같은 자식은 지금 제국 안에 없다.

그는 초조하게 창문을 보았다. 베리트가에 자신을 빼내줄 사람을 불렀는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건지.

‘가뜩이나 금의 추기경이 아니면, 절차도 복잡할 텐데.’

이러다가 신성드래곤이 먼저 오겠다!

그런데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렸고, 카인의 얼굴이 드물게 환해졌다.

“형님!”

카인을 찾아온 건 다름 아닌 키나였다.

“형님이 직접 데리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남부 영지에 가 계셨던 것이 아닙니까?”

“동생의 일인데, 직접 찾으러 와야지.”

“!”

카인은 안도했다.

키나는 베리트의 희망이었고, 동생을 몹시 아끼는 형이었다. 하물며 교황 후보인 키나는 금의 수장과 버금가는 입김이 있다. 그의 말 한마디면 여기서 바로 나갈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현재로서는 아이작 에슈아를 처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놈이지.’

아니, 어떤 의미론 성법만 보면 키나가 우위다. 마음만 먹으면 아이작을 암살할 수도 있었다.

곧 키나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뭔 짓을 했는데 이 꼴이냐? 네가 해골왕을 만들었고, 성력 검사를 받게 되었다는 건 뭐고?”

카인은 억울하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이작 님이 교황 자리가 탐나긴 하시나 봅니다.”

“뭐?”

“저를 마족의 스파이로 몰아, 사람들 앞에서 베리트를 모독했습니다. 심지어 제게 감시를 붙이겠다고 합니다. 대놓고 황실과 손을 잡고, 유력한 교황 후보인 베리트를 처분하려는 겁니다. 형님이 교황이 되면 제일 골치 아픈 게 황실일 테니까요.”

키나가 제일 싫어하는 건 황실이다.

어디 그뿐이랴.

“형님은 아이작 님과 청에게 호의를 보냈는데, 그들이 저희에게 돌려준 건 뭡니까. 청은 결코 금과 친해질 생각이 없는 겁니다.”

이것들이라면 먹힐 것이었다. 키나는 베리트에 긍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 여기서 저를 꺼내주…….”

그러나 그때였다.

“그래서 이런 독약을 품고 다니는 거냐?”

“!”

뭐라고?

그 순간, 카인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키나가 동생의 품에서 병을 빼앗아간 것이다.

“……!”

키나는 혐오스럽다는 듯 병을 살폈다.

“에슈아의 말이 맞는구나.”

뭐? 뭐가 맞아?

“여기 네가 연금되어 있다고, 나한테 연락한 게 아이작 에슈아다.”

뭐가 어째?

“심지어 동생이 수상한 독약까지 소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교황 후보들을 처리하려는 것 같다고.”

실베스테르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건 독약이 아니라 청의 여신을 봉인하고 있는 물품이다.

“녀석이 해골왕을 처리하면서 얻은 두개골을 보여줬다.”

뭐? 뭘 보여줘?

“거기서 네 힘이 느껴지더구나.”

느껴질 리가 없잖아! 자신의 흔적이 나올 만한 건 애초에 넣지도 않았으니까! 이건 놈이 조작이다!

동시에 실베스테르는 정황을 눈치챘다.

‘그 새끼, 가짜 교황한테 빼앗은 스티그마에서 내 힘을 추출했구나?’

영혼의 냄새는 달라지지 않는다. 즉, 실베스테르와 카인의 성력의 기운은 같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걸 해골왕의 두개골에 묻혀서, 가짜 물증을 만들어낸 거지.

물론 실베스테르는 수백 년 전의 교황이니, 냄새를 눈치챌 만한 건 그 시대의 인물밖에 없지만.

‘그 개놈이. 날 함정에 빠트리려고…….’

“해골왕을 에슈아가에 보내 라이벌을 처리하려고 했구나.”

아니야! 아니, 맞긴 한데 아니야!

“그 녀석은 가족이니까 한 번만 널 봐주라고 했지만, 너도 아버지랑 다를 게 없어.”

뭐라고? 아버지?

무슨 말이냐는 듯 바라보자, 키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야 처음에 아이작이 베리트를 습격했었을 땐 아이작에게 크게 실망했었지. 하지만 할아버지가 형을 죽인 가짜 교황이었다는 사실에 1차로 배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교황이 되어 금가의 치부를 씻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련님. 편지가 왔습니다.

키나는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담 에슈아와 성녀 부부를 죽인 건 금의 추기경, 히레이 베리트다.

아이작의 부모를 죽인 범인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그 서신은 다름 아닌 노엘이 죽기 전 교황청에 보낸 물건이었다.

물론 그걸 중간에 회수한 건 아이작. 그가 교황청 전에 서신을 보낸 곳은, 다름 아닌 키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본 키나는 베리트에 큰 회의감이 들었다. 이것이 그 긍지 높은 베리트가가 맞는 것인가? 정말로 긍지가 높은 건 청이 아닌가?

그래서 아이작을 교황으로 추천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너도 똑같구나. 아버지랑 다를 게 없어.”

실베스테르는 뒷목을 잡았다.

해골왕! 이 버러지 같은 해골이! 이딴 식으로 나오겠다는 건가?

그는 급히 키나를 붙잡았다.

“형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전부 아이작 에슈아의 함정입니다! 이럴수록 베리트의 사람으로서 청을 처벌해야죠!”

키나가 보통 인물인가?

“형님에게 베리트 모두의 기대가 걸려 있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그 말에 키나는 같잖다는 듯 동생을 뿌리쳤다.

“베리트의 기대?”

키나는 질린다는 듯 돌아섰다.

“그렇다면 오늘부로 베리트의 이름을 버리겠다.”

키나의 폭탄선언에 실베스테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가 어째?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너와 나는 관련이 없는 사이니, 여기서도 네가 알아서 빠져나와라.”

이 자식이??

* * *

“드디어 널 마주보는구나.”

“옙. 그러네요.”

아이작은 지금 일라이와 대면 중이었다.

그렇게 도망 다니다가 서품식에서 마주쳤으니, 그들은 그들대로 황궁 한 편에서 독대하게 된 것이다. 하필 해골왕의 침입 때 아이작의 마법을 느꼈으니 빠져나갈 구석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일라이는 매섭게 아이작을 보았다.

“네게 묻고 싶은 말은 너무 많으나, 이것부터 말해야겠다.”

“예.”

“나는 널 교황의 자리에 올릴 생각이 없다.”

“!”

할아버지의 말에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동시에 아이작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뭐, 예상은 했지.’

마법을 썼을 때 이미 각오는 했다. 하물며 일라이 에슈아는 성직자로서 신념이 확고한 인간이었다.

청렴하며, 나라와 제국민들을 위하는 본받을 만한 우직한 인간 말이다.

‘절대 추기경의 추천표를 안 주겠지.’

“매정하다 하지 마라, 네 종자도 네놈과 동족이라는 걸 안다.”

“!”

종자란 건 샤브나크를 말하는 것이리라.

일라이는 미간을 좁혔다.

“네놈의 속내를 모르는 이상, 신앙을 지키는 추기경으로서 사제들의 우두머리 자리는 절대 줄 수 없다. 멜리사나 다른 가족들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차갑게 말하던 일라이가 아이작을 보았다.

“물론 가문에서 추방하네, 어쩌네는 논하지 않으마. 내용물이 무엇이든 너도 어쨌거나 내 손가락이니. 하지만 내가 추기경이자 청의 가주인 이상, 교황만큼은 안 된다.”

그 말에 아이작은 인정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뭐, 이렇게 나오면 할 수 없지.’

[오, 교황은 포기하시나요?]

‘돌았냐?’

일라이가 이럴 것도 예상했고, 무엇보다 실베스테르와 조우한 지금은 확신이 생겼다.

“할아버지. 그럼 교황 추천은 되었으니 다른 걸 주십시오.”

“뭐냐.”

“일단 가주 자리를 내놓으셔야겠습니다.”

“…….”

…뭐라고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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