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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64화 (264/272)

제264화. 자리를 넘기시죠 (4)

실베스테르는 기가 찼다.

‘도대체 왜 안 믿는 거지?’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한 구석은 많았다.

아이작의 신을 경시하는 태도만 봐도 성직자라곤 할 수 없지 않은가. 그 외에도 해골왕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될 부분이 많다.

‘현실 부정인가?’

아니면 가문에 해가 될까 봐, 짐작 가는 구석은 있어도 무시하는 건…….

“푸하화하핳!! 해골왕이래. 그 자식이 어떻게 해야 해골왕이 되지? 와, 이름 높은 교황의 수준이 이 정도였나?”

“?!”

그 웃음에 실베스테르는 당황한 듯 슈리를 보았지만, 슈리는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해골왕에 미친 건 사실 청이 아니라 금이었네. 하지만 헛다리를 짚어도 그 정도로 잘못 짚다니, 병신인가?”

미친 듯이 비웃는 후손을 향해 실베스테르는 말 못 할 수치심이 몰려왔다.

‘빌어먹을. 내가 이런 상황만 아니었어도 이런 놈 따위…….’

아니, 애초에 해골왕이 성자의 몸에 들어갔다는 거지 같은 상황만 아니었어도.

“후손아. 믿기 어려운 건 알겠지만 믿어야 한다. 세상에 어느 성직자가 그딴 신앙심이 있겠느…….”

“하! 뭐래! 그 자식 9계위 성법을 쓰는 거 모르냐? 해골왕이 어떻게 성법을 쓰는데? 교황이셨으면 제일 잘 아실 것 아냐? 성법은 신에게 사랑받아야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마왕이 어떻게 신의 사랑을 받는데??”

…나도 그게 궁금하다, 젠장.

실베스테르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하지만 짐작 가는 구석은 있었다.

“그건 그놈의 육신 때문이다.”

“…육신?”

“놈의 육신은 신의 축복을 가득 받은 몸이다. 신이 정성 들여 만든 성자의 육신이지. 그 몸을 갈취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갈취라니,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날 보면 이해가 빠를 텐데?”

“!”

두려워하는 슈리의 시선에 실베스테르는 미소를 지었다.

“너 역시 지금 네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지 않느냐. 몸을 갈취하는 건 가능하다. 놈도 빙의를 했단 거지. 원래 몸 주인이 다져놓은 기반 덕분에 성법을 쓰는 것도 가능했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놈도 성격이 바뀌었을 거다. 아마 그때가 빙의한 기점…….”

슈리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뭐? 어느 순간?”

슈리는 도저히 못 듣겠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뭐라는 거야, 그 새끼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 모양이었거든?!!”

…뭐?

슈리는 아직도 5살 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시발, 니가 봤어야 해. 젖먹이 새끼가 딸랑이에 성력을 담아 휘두르며 개지랄을… 아니, 아니다. 내 얼굴에 침 뱉기니까 그만하련다…….”

그 말에 실베스테르는 어이가 없었다.

젖먹이라니.

‘그럼, 그놈은 처음부터 성력을 쓸 수 있었다고?’

그게 가능한가?

뭔 상황이지?

설마 정말 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그만한 놈이라는 걸 인정하라고?

실베스테르는 혼란스러워했지만, 슈리는 그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게, 아이작이랑은 볼꼴 못 볼 꼴 다 봐온 사이였지만, 그래도 그놈이 어디 가서 맞고 오면 눈이 돌아갈,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하필 베리트 놈이 청의 사람인 아이작을 향해 해골왕이라고 하는 꼬락서니라니? 목적이 뭔지 빤히 보인다.

‘고작 그런 이간질에 넘어갈 거라고 본 건가? 얼마나 얕잡혀 보인 거야?’

상대할 가치도 없다.

“아무튼 아이작은 최고신하고도 계약했어. 솔직히 오해할 정도로 성격이 지랄ㅁ… 나쁜 건 맞지만, 자꾸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면…….”

실베스테르는 욕을 삼키며 미간을 짚었다.

아니, 이 새끼는 왜 진실을 말해줘도 믿지를 않냐.

“후손아, 감정적으로 나올 일이 아니다. 배신감도 들고 믿기 힘든 건 알겠지만, 해골왕의 뼈를 먹고 살아있는 놈이 진짜 있을 거라고 보나? 청도 끙끙대던 해골왕의 부하, 진마의 목을 쉽게 따온다고? 해골왕의 저주에서 혼자만 멀쩡하고?”

“……!”

슈리의 눈이 일순 흔들렸다.

실베스테르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넌 이미 이상한 걸 많이 봤을 거다. 전부 본인이라서 그런 거지.”

“…….”

슈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실베스테르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자, 그러면…….”

“모르겠는데?”

“!”

“오히려 네가 말하는 것들은 아이작이 성자라는 증거이기도 하잖아? 해골왕의 저주를 압도할 정도라는 의미지.”

…뭐라고???

실베스테르는 기가 찼다.

“후손아, 내가 참고 있는 걸 잊지 말아라. 넌 내 말을 믿어야 한다. 현실을 부정해봐야…….”

“꺼져. 선조 교황이었다고, 전부 네 뜻대로 고분고분할 거라 생각하냐? 아, 차라리 네 정체를 까발려서 베리트를 지워버려도 좋겠군. 아니, 키나 놈이 이미 베리트를 버렸으니 답도 없나?”

실베스테르는 머리가 아파 왔다. 그래, 성녀도 그렇고 청가 놈들은 하나같이 이런 놈들이었지.

하지만 제 핏줄에게까지 협박당할 줄은 몰랐던 그는 이를 갈았다.

‘성법만 제대로 쓸 수 있었어도. 젠장……!’

* * *

[주인님. 실비 놈을 냅둬도 됩니까?]

위스퍼의 의문에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냅두는 거 아냐, 쫄려서 수면 위로 스스로 올라오게끔 그물을 치는 중이지.’

[그냥 죽이는 건 안 되나요?]

‘그냥 죽여봤자 다시 빙의할 놈이야. 아예 소멸을 시켜야 하지. 하지만 그 전에 에슈아의 저주부터 풀어야 해.’

위스퍼는 깜짝 놀랐다.

[저주요? 짝퉁 놈을 죽이고서 저주가 풀린 거 아니었나요? 셋째 놈은 건강도 좀 좋아졌잖아요.]

‘그건 맞지.’

가짜 해골왕의 마력핵이 녹으면서, 일부 사람들의 저주가 풀렸다.

그리고 저주가 풀려?!

그 말이 무슨 말인 줄 아나??

머저리 성직자들에겐 땅값이 대폭 올라갈 만한 이야기란 거다! 즉, 이제부터 얼마나 바가지를 씌울 수 있냐…가 아니라.

‘문제는 할아버지야.’

[가주요?]

아이작은 큭 웃었다.

‘이상하지 않았냐? 할아버지 정도면 상당한 천재야. 솔직히 해골왕으로서 평가해도 손에 꼽힐 정도의 인재지.’

하지만 그게 에슈아에서는 오히려 독이다.

‘가짜 해골왕의 저주는 능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저주를 받을 확률이 커. 그만한 녀석이 저주를 피하다니, 말이 될 것 같냐?’

[본인 말처럼 운이 좋았던 거 아닐까요?]

‘아니. 애초에 해골왕의 저주란 건 실비 놈이 건 저주야. 그놈이 만든 가짜 해골왕은 매개체에 불과하고. 아무튼 그게 이상해서 할아버지 조사를 좀 했는데…….’

[아… 그럼 샤브나크한테 가주 놈 머리털 좀 뽑아오라고 한 게…….]

‘그래, 그걸로 분석해보니까 할아버지도 저주에 걸려있어. 그런데 다른 놈들처럼 해골왕을 매개로 한 게 아니라 실베스테르한테 직접 걸린 거였다.’

[!]

‘즉 실베스테르 본인이 직접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벼른 저주인 거지.’

[아, 카인 베리트한테 백 프로 살해당한다는 게 그런 의미였군요?]

그래, 그런 거다.

‘그러니 일단 계획을 위해서 멜리사를 만나야겠군.’

그러자 미리 주변을 탐지한 위스퍼가 뜻밖의 말을 했다.

[아, 멜리사 성녀라면 신성드래곤과 함께 있네요. 신성드래곤을 만나러 간 것 같으니, 거기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작의 동공이 흔들렸다.

뭐…? 멜리사하고 사피엔이 왜?

아이작은 묘하게 불안해졌다.

뭐야, 뭔데.

둘이 뭔 이야기를 하려고????

* * *

슈리는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개소리라며 카인을 뿌리치고 나왔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바보는 아니었다.

실베스테르의 말에 오히려 그간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아이작이 해골왕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납득이 갈 만한 일들이 많다.’

일단 아이작은 지나치게 똑똑했다. 티만 안 낼 뿐이지, 방대한 지식은 말로 할 것도 없고, 지식과 힘을 다룰 때는 수백 년 전의 현자를 보는 것 같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인가?

마족의 생태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잘 알고, 종종 인간이 아닌 것 같이 섬뜩할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의심하지 않았던 건, 가끔 보이는 아이작의 모습 때문이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차가운 눈을 하다가도, 또 누구보다 인간적인 눈을 한다. 그런 게 해골왕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해골왕이 그딴 속물에 경박한 놈이라고?!!’

슈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작이 해골왕이라니읽!

아니 시발, 그딴 또라이 새끼가 마왕의 우두머리면 뭐냐!

‘청, 아니 신성제국은 그동안 그런 놈을 못 잡아서 수백 년간 그 지랄한 거냐???’

마족 새끼들은 도대체 뭘 우두머리로 모시고 있던 건데! 결국 그런 놈한테 놀아났단 건데, 그건 그거대로 수치스럽고 슬프지 않나?

바로 그때였다.

“슈리, 거기서 혼자 뭐 하고 있냐.”

“!”

슈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고개를 드니, 심각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아무래도 황궁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지르다가 땅을 파고, 또 혼자 절규하며 머리를 뜯는 게 미친놈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카인 베리트를 만나러 간 게 아니었느냐?”

“그… 그게요. 할아버지.”

“뭐냐.”

“그… 카인 베리트를 만났는데, 그놈이 아이작에 대해서 지껄였습니다. 그런데…….”

아이작이란 말에 일라이는 드물게 크게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게, 카인 베리트.

‘신성드래곤이 망자라고 했던 그놈인가.’

만약 사실이라면 무서운 놈이다. 신성제국을 호령하던 전성기 시절의 교황이란 의미니.

즉, 아이작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리고 슈리의 이 표정과 반응…….

‘아이작의 정체를 슈리한테 말했구나.’

일라이의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그 개놈이…….’

제 후손을 이용해 청을 뒤흔들어놓을 셈이었나.

뭐, 정말 슈리를 이용하려 했다면 그건 청을 대단히 우습게 본 것이지만.

“그게요…. 가주님. 그놈이… 아니, 아닙니다.”

슈리가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을 하자, 일라이는 한숨을 쉬었다.

저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슈리도 알게 해서 심기를 다잡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일라이가 말했다.

“그래. 너도 알았구나.”

“!”

“괜찮다. 나 역시 이미 아이작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으니.”

“……!!”

그래서 일라이 역시 아이작을 좋게 볼 수 없었다.

‘무슨 목적으로 우리 가문에 왔는지 속내조차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야 예쁜 손자인 척하지만, 본질조차 알 수 없는 놈.

뭐, 멜리사가 옹호하는 게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아이작도 그놈과 만나면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그랬기에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교황은 안 된다.”

슈리는 안도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할아버지도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뭐, 솔직히 아이작이 해골왕이란 말은 믿지도 않지만…….

“그렇군요. 알고 계셨군요.”

“그래. 나도 놀랐다.”

“하긴, 저라도 놀랄 것 같아요.”

둘은 서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동시에 끄덕였다.

“설마 아이작이 ‘해골왕’이라니…….”

“손주 놈이 해골왕의 ‘부하’라니…….”

“…….”

…응?

……응?

“예?”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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