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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65화 (265/272)

제265화. 자리를 넘기시죠 (5)

일라이와 슈리는 서로 다른 의미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지금 뭐라고???

‘아이작이… 해골왕?’

‘아이작이… 해골왕 부하??’

서로 뭔 말을 하느냐는 얼굴이다.

결국 슈리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아이작이… 해골왕의 부하였습니까……?”

일라이도 어처구니가 없긴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 카인 놈이 그리 말했다는 거냐? 아이작이 해골왕이라고?”

“…예에…….”

“…….”

“…….”

“…….”

시간이 지날수록 일라이가 고개를 숙인다. 몸까지 바들바들 떨리는 것 같다.

슈리는 겁에 질린 채 눈치를 살폈다.

“저… 가주님?”

일라이는 미간을 짚었다. 이내 대답 대신 뜻 모를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아………!”

물론 슈리의 입에서 개 같은 소리를 들어서가 아니었다. 이건 모든 걸 이해한 납득의 탄식이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는구나!’

젖먹이 시절 행각부터 최근의 행각까지. 해골왕이라는 전제하라면, 모든 게 앞뒤가 들어맞지 않은가!

그럼에도 일라이가 아이작을 해골왕 ‘부하’라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지란 게 있지…. 미친!’

어떻게 그딴… 아니아니, 그런 놈이… 마왕???

수백 년간 놈을 퇴마하기 위해 싸워온 청의 수장으로서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적어도 마왕이면… 그래…. 그러니까… 최소한의 그, 사악하고 근엄한 이미지라는 게 있지 않나?

실제로도 마왕들에겐 그런 게 진짜 있었고.

그런데 그 역대 마왕들 중에서도 최고 소리를 듣는… 해골왕은… 그러니까…….

-푸헤헤헤헿! 저주가 풀렸다고요?? 아싸, 땅값 오른다. 오예! 할부지, 제가 호구 놈들 물어올 테니까 땅값 쉐어 가능??

…망할. 말을 말자.

일라이는 머리가 아팠다.

동시에 그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해골왕의 천적 가문에서 해골왕이 태어나다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지?

솔직히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거기까진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그는 아이작을 ‘해골왕의 부활’을 노리는 진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샤브 역시 해골왕을 부활시키려는 동족일 거라고.

그래서 오히려 더 경계했다.

그런데, 뭐?

본인???

‘더 이해가 안 가는데??’

성녀 가문에 들어와서 본인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래서 더욱 해골왕의 부하라고 여겼다. 부하 놈이라면, 해골왕을 위해 첩자 짓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진마라면 청을 멸문시킬 정도의 힘은 아닐 테니, 몰래 숨어들어 정보를 마족에게 팔려는 것이라 봤다. 그것도 아니면, 해골왕이 신성제국에 쉽게 들이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골왕 본인이라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잖아. 약해진 자신들 따위, 그냥 단숨에 멸망시킬 힘이 있잖아.

행여 힘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쳐도 말이 안 된다.

‘원수 가문이 아닌가.’

어차피 저주받은 가문, 모르는 척 내버려 두면 알아서 망할 텐데. 가문을 살려놓는 수고를 감내하면서까지 청을 위할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어차피 해골왕이 마력을 회복한 시점이 되면, 이미 자신들은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신들을 구해줬지?

도대체 왜…….

그럴 때였다.

“할아버지……?”

슈리의 부름에 일라이는 아차 싶었다. 슈리는 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눈빛만 봐도 초조한 것이 느껴진다.

그 모습에 일라이는 크흠 기침을 했다.

“그…….”

“그……?”

“베리트 놈이 개소리한 거다. 믿을 것 없다.”

“!”

“아이작이 해골왕? 말도 안 되지.”

슈리는 슬쩍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아이작이 해골왕의 부하라고…….”

흠칫한 일라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아아아! 아이작? 해골왕의 부하지! 암.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놈이 어둠의 각성신을 길들이려고 마에 손을 댔었다.”

…예?

“그 과정에서 그놈이 해골왕에게 매력을 느끼고 심취해서.”

예????

“청의 신보다 해골왕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예에에에???

“하여간 아무리 좋아도 마력 공부도 적당히 좀 하지. 성직자란 놈이.”

…저기요???? 가주님????

“아아, 이건 가문의 이미지도 있으니 어디가서 말하지 말고.”

“……?????”

슈리는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표정은 밝아져 있었다.

“…어… 어쨌든 아이작은 인간이란 말씀이신 거죠? 하긴, 아무리 그래도 해골왕은 아니죠.”

일라이는 또 움찔했지만 애써 티 내지 않았다.

“…그, …그래. 그딴 놈이 해골왕이라니… 말도 안 되지 않느냐!”

그제야 슈리의 얼굴에서 고민이 완전히 사라졌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 슈리의 모습에 일라이는 많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만약 아이작이 정말 해골왕이라면…….’

그는 아이작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어째서인지 몹시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슈리.”

“예?”

일라이가 측은하게 보았다.

“아이작을 끝까지 잘 보필해주거라.”

“!”

그건 묘하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과 같았다. 하지만 그 의미를 잘 모르는 슈리는 한숨만 푹 쉬었다.

“당연하죠. 그놈이 교황이 안 된다면, 결국 청의 가주는 아이작이 될 텐데요?”

“어, 음…. 그렇지.”

“지금도 그 모양인데, 가주가 되면 얼마나 설치겠습니까. 그 꼴은 절대 못 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교황청으로 출가시키죠.”

…아니. 그런 거라면 가주보다 교황이 더 위험하지 않나? 피해자가 청이 아니라, 제국 전체가 되는 건데??

일개 한 가문과 비교하면 영향력에서 비교가 안 되는데?

어떤 의미로는 대륙 전체에 영향을 끼칠 텐데?

일라이는 걱정이 앞선다는 듯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사실 그딴 건 다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작이 해골왕이라니.

‘성녀들 취향… 진짜…….’

* * *

“그래서? 왜 교황 추천 투표장에 네놈이 있는 거지?”

흑의 추기경은 아이작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마침 콘클라베의 투표장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원래 이곳은 투표자들 외엔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 분명 그럴 텐데…….

“왜요, 있으면 안 됩니까?”

“…….”

후보란 새끼가 투표장에 뻔뻔하게 들어와 있다. 심지어 투표함 앞에서 자리깔고 앉아있다. 마치 한 명씩 들어오는 추기경들이 누구를 뽑나 투표 용지를 확인하려는 듯.

아니나 다를까.

“추기경들이 날 뽑나 안 뽑나, 확인하러 온 것 뿐인데요.”

흑의 추기경은 더욱 기가 막혔다.

“비밀선거 원칙도 모르나?”

“알아야 나중에 배반자들에게 피의 숙청을 하죠.”

이런 미친놈이??

교황 후보란 놈이 피의 숙청이란 말을 입에 담는다고??

흑의 추기경은 할 말이 많았지만, 저딴 말에 어울려주는 것이야말로 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추기경은 투표 용지를 접었다. 성기사들은 이딴 놈이 투표장엘 숨어 들어오게 하고, 도대체 뭐 하나 싶었지만.

“비켜라. 네놈 따위가 있을 곳이 아니다.”

“키나 베리트를 뽑을 거라면 어차피 안 돼요.”

“!”

흑의 추기경은 움찔했다.

실제로 그는 키나의 이름을 썼는지, 용지를 든 손가락이 그대로 멈춰있었다.

그 싸늘한 시선에 아이작은 푸흡 웃었다.

“걘 교황 후보에서 사퇴시킬 거거든요.”

“허, 후보로 뽑힌 직후면 몰라도, 이미 과제를 시작한 시점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는 마음대로 사퇴도 안 된다.”

“그럼 청의 추기경쯤 되면 정당한 사퇴 사유가 되려나?”

“오. 네놈이 청의 추기경이 되어 사퇴하겠다고?”

“아니, 그걸 하는 건 키나인데요.”

그러자 흑의 추기경은 개소리도 작작 좀 하라는 듯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장난하나? 금가 사람이 뭔 청의 추기경을… 아.”

그 반응에 아이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웃었다.

“역시 맞는구나?”

“…….”

흑의 추기경은 이를 갈며 아이작을 보았다.

아이작은 큭큭 웃었다.

“그놈이 괜히 백발이 아니죠. 어떻게 베리트에서 백발이 나왔겠어요? 그리고 호기심 많은 흑의 추기경께서 그 떡밥을 그냥 넘어갔을 리 없잖아요. 백 프로 조사하셨겠죠.”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그래, 즉 키나 베리트의 핏줄에 성녀의 피가 섞여있단 의미다.’

[어유. 성녀 유전자. 솔직히 이쯤 되면 무서울 정도인데요.]

‘무슨 의미냐.’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시끄러.’

결국 흑의 추기경은 투표 용지를 찢었다.

“어차피 다른 후보들은 많다. 너만 안 되면 그만이다.”

“아니, 어차피 교황은 접니다. 청, 백, 적. 셋은 날 추천할 거거든요.”

흑의 추기경은 실소를 흘렸다.

“다른 두 놈은 몰라도 청은 안 될 텐데?”

그는 일라이의 성격을 잘 알았다. 그는 대의 앞에서는 절대 팔을 안으로 못 굽히는 인간이었다.

“절대 네놈은 안 뽑아.”

“또 모르죠. 손자가 이쁘다고 뽑아줄지도요?”

아이작의 말에서 뭘 깨달은 걸까. 흑의 추기경은 기가 찬 듯 실소를 지었다. 아이작이 괜히 저리 당당할 리가 없었으니.

‘그사이에 설득된 건가, 청?’

이 지조 없는 새끼들…….

“아참참, 금까지 포섭했지, 참.”

금을 포섭했다고??

흑의 추기경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아이작을 보았다.

그러자 아이작이 푸흣 웃었다.

“금의 추기경은 현재 생사 불명에다가 행방불명이라서요. 그 대행권이 키나 베리트한테 있거든요.”

“……!”

그 말의 의미를 눈치챈 흑의 추기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설마, 키나 베리트가 아이작에게 투표한다는 건가?

하긴, 청의 추기경 이야기가 나온 시점이면 이미 본인들 사이에 이야기가 끝났을 수도 있다.

아니, 더 무서운 것은 그게 아니다.

‘젠장. 설마 히레이 베리트가 갑자기 콘클라베를 앞두고서 행방불명된 것도, 전부 이놈 짓인가?’

그러자 흑의 추기경은 어디 더 해보란 듯 돌아섰다.

“꿈 깨시지. 내가 추기경 자리를 걸고서라도 네놈은 떨어트릴 테니.”

“이제 혼자만 반대인 셈인데, 지조가 참 높으시네요.”

“내가 괜히 너한테 꼬장이나 부리자고 이러는 거 같나?”

“어, 쫌?”

“…….”

이 새끼가, 진짜.

흑의 추기경은 분노 대신 눈을 지긋이 감았다.

“전부 미래를 감안해서 한 말이다. 설령 콘클라베에서 성공해서 교황이 된다고 해도, 교황 즉위 직후에 넌 바로 끌어내려질걸?”

흑의 추기경은 헛웃음을 흘렸다.

“교황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은 아나? 교황은 5대 신앙 모두에게 충성을 받아야 하지. 실제로도 역대 교황들은 모든 신앙의 충성을 받았고. 하지만 넌 어떻지?”

5대 신앙의 충성은 단순한 상징성이 아니다.

“다섯 신앙의 충성을 받지 못하면 교황의 아티펙트인 스티그마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럼 허수아비 교황이지. 신과 교류를 못한다는 의미다.”

아이작은 웃었다. 뭐, 어차피 그깟 놈들과 교류할 생각은 1도 없지만.

곧 흑의 추기경이 헛웃음을 흘렸다.

“알았나? 어차피 며칠 만에 갈아치워질 교황, 그게 무슨 행정력 낭비냐는 거다.”

“그래. 그래서 내 편이 되라고 이렇게 꼬시러 왔잖아.”

…뭐라고?

…뭘 하러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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