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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70화 (270/272)

제270화 괜찮고말고 (2)

흑의 추기경과 사제들은 당황한 듯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니까, 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이놈의 할아버지라면…….’

‘청의 추기경이 아닌가!’

사실이라면 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다.

임기 중인 추기경의 죽음은 거의 국상에 가까울 정도로 큰일이었다.

자연사라고 하기엔 일라이 에슈아의 나이는 고작 예순. 은퇴할 나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물며 고위 사제쯤 되면 강한 성력 덕분에 노화도 느렸다.

실제 일라이 에슈아만 해도, 현역 성기사들보다 체력과 힘이 몇 배는 넘치는 인간이 아니었던가.

‘병사(病死)라는 단어랑 그렇게 안 어울리는 인간은 못 봤지.’

‘그럼 순직, 사고사 중 하나라는 의미인데.’

어느 쪽이든 큰일 아닌가?

‘만약 마족이나,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기라도 한 거라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물론 자신들에게는 중대 ‘사건’이긴 하지만, 청에게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슬픈 비보였다.

그런데 그 손자라는 놈의 표정이…….

“앗, 실수. 여기선 울어야 하는데.”

이미 봤거든?

늦었거든???

웃고 있는 거 다 봤거든???!

그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정작 아이작은 어두워진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제 아버지나 다름없는 조부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말 못 할 충격을 받아서.”

진짜 충격받은 거 맞아?

“현실이 안 믿겨서 표정 관리도 안 되네요.”

가주가 죽어서 좋은 건 아니고???

“사실 이것도 또 할아버지의 장난인 것 같아서요.”

청의 추기경, 그런 인간이었어????

결국 흑의 사제들은 자기들끼리 슬쩍 속닥거렸다.

“…사실일까요?”

“글세…. 아무리 저놈이라도 조부의 죽음으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은데…….”

부하들의 속삭임에 흑의 추기경이 냉정한 얼굴로 나섰다.

“침입자가 하는 개소리에 휘둘리지 마라. 사실이라면 바로 공문이 왔겠지. 흑에게 확인 요청이 올 터.”

“!”

보통 수많은 성직자들의 사인을 확인, 사망선고를 내리는 게 흑가다. 성직자의 시신이 허튼 데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특히 고위 사제쯤 되면, 육신 자체가 제국의 비전이었다.

그런 만큼 마도제국 등 외부에서 시신을 빼돌리려 하기 때문에, 장례 전에 철저하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부검을 하는 것도 이들이다. 그랬기에 흑의 추기경은 같잖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뭐, 자신이 아는 아이작이라면, 침입죄를 무마하기 위해 제 할아버지를 팔아먹고도 남을 녀석이니…….

그런데 그때였다.

번쩍!

‘!’

흑의 구역 중심에 놓인 동상의 눈이 번쩍였다. 흑의 신앙을 상징하는 까마귀였다.

곧 동상이 움직이며, 흑의 구역 전체에 소식을 전했다.

-청으로부터 사인 확인 요청.

-사인 확인 대상. 에슈아의 97대 가주, 일라이 에슈아.

그 외침에, 흑의 구역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라고?”

“뭐?”

“누구?!”

교황청의 흑의 사제들은 자신들이 지금 뭘 들은 거냐는 듯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함께 들은 흑의 추기경과 부하들도 충격을 받았다. 저게 울린다는 건, 정말 일라이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뜻이니까.

흑의 사제들은 충격을 받은 듯 흑의 추기경을 보았다.

“…각하.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아이작에게 불법 침입에 대한 책임을 물려고 온 것이었다. 하물며 이곳은 1급 금지 구역이라, 사안이 보통 일이 아니다. 원래라면 보자마자 즉각 현장 체포인데…….

“흑.”

“헉.”

아이작이 몹시 슬퍼하듯 눈가를 짚었다.

“할아버지는 정말 돌아가신 거군요. 흑흑.”

허억……!!

아이작이 고개를 숙이며 흐느끼는 척을 하자, 흑의 사제들은 흠칫흠칫 놀랐다.

솔직히 저 새끼가 슬퍼할 줄은 몰랐는데… 아니지! 슬퍼할 일이지! 인간이면 슬픈 게 맞지!

침입 건 때문에 화나 있던 그들은 도리어 어버버, 당황스러워했다.

흑의 추기경도 침입 건으로 잡아갈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 교황 후보직 사퇴니, 뭐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은가.

추기경이자 가주의 죽음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사이코패스 같은 적의 신앙도 아니고.

결국 그는 욕을 삼키며 미간을 짚었다. 폐부에서부터 끓어올라 오는 빡침과 깊은 한숨은 덤이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

“각하!”

“지금은 넘어가겠다. 하지만 이 일이 끝나면 곧바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장례가 끝나면 교황 후보직 사퇴를 각오…….”

그러자 아이작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실은 우리 할아버지, 각하의 따님을 살리려다가 돌아가신 것 같아요.”

“…….”

순간의 정적.

…뭐?

이건 또 무슨 말이야??

하지만 아이작의 여우 같은 눈이 추기경을 향했다.

“얼마 전, 할아버지와 각하께서 언쟁을 벌이시던 거 기억나시죠?”

언쟁이라면 그거다.

흑의 추기경이 아이작의 발언을 듣고서 정체를 의심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들이닥쳤던 일.

-네놈도 교황 후보라면서? 교황이 되면 딸도 살릴 수 있지 않나? 그럼 아이작에게 신경 쓰고 있을 여유는 없을 텐데.

-청이 그 말을 하는 건 긁어 부스럼 같은데. 싸우자는 건가.

아이작이 흑흑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리셨나 봐요. 불운한 사고였지만 어쨌거나 청의 책임이라고, 부하들의 잘못이니 가주로서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요. 그래서 공녀님을 살려보겠다고 나가셨는데…….”

흑의 추기경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잠깐만.

이걸 이렇게 나온다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공녀님을 깨울 방법을 얻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자신을 막으려는 놈들이 있다고. 그래서 빨리 제게 흑가를 찾아가라고…….”

흑의 사제들은 놀란 듯 아이작을 보았다.

“그, 그럼…….”

“예. 맞습니다. 제가 왜 경우도 없이 이리 불쑥 찾아왔겠어여.”

아니, 넌 원래 경우가 없었고.

“저도 그리 예의가 없진 않습니다.”

넌 원래 없었어.

“아무튼 저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받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쫓기고 계신다고 한 이후로 연락이 끊기시더니 결국…….”

아이작이 뒤돌아서서 코를 팽 풀며 훌쩍이자, 흑의 사제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 아니… 그러니까, 뭐?

청의 가주가 흑의 공녀를 살리고 싶어 했고, 그 방법을 쫓았다?

그런데 방해꾼이 있었다고?

“그, 그럼 청의 추기경께서 돌아가신 건…….”

“넹. 우리 할부지는 흑의 공녀님을 살리려다가 돌아가신 거죠. 흑흑흑.”

“…….”

흑가는 단체로 멘붕에 빠진 듯했다.

위스퍼는 감탄했다.

[와씨, 이걸 이리 조작을?]

동시에 흑의 사제들은 혼란스러운 듯 흑의 추기경을 보았다. 다들 어쩌냐는 눈빛이다.

흑의 추기경도 드물게 어버버 하며 당혹스러워하는 얼굴.

저놈이 하는 말이라 믿기는 힘들지만, 그 일라이라면 누구랑 달리 책임감이 무척 강했다. 그래서 또 그럴 수도 있을 인간이라 뭐라 말을 못 하겠다.

그걸로 최근에 일라이와 언성 높여 싸운 것도 맞고, 대뜸 이놈이 공녀를 살려주겠다고 찾아온 것도 그렇고…….

…응, 그래. 앞뒤는 맞는데…….

흑의 추기경은 벌레 보듯 아이작을 보았다.

이거, 맞는 거냐?

어?

이거 수 쓰는 거 아냐??

하지만 아이작은 흑흑거렸다.

“아무튼 즈는 할아버지 장례에 가야 할 것 같아서 이만.”

그는 드물게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손도 공손하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 모습을 보니 흑의 사제들은 또 마음이 짠해졌다.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런가 싶었지만-

“참, 할아버지가 뭐 하다가 돌아가셨는지는 여기서만 말할게요. 그게 각하를 위한 길 같으니까요. 괜히 소문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을 낼 수도 있잖아요?”

“아니…….”

흑의 추기경은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아이작은 딱 끊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나중에 뵐게요. 할아버지가 조사했다던 배후와 조사 내용은 장례가 끝나면 다시 말씀드릴게여.”

“…….”

“참, 할부지는 공녀님을 위하다가 돌아가셨으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각하!께서는 할부지를 위로해주실 거라 믿을게여!”

“아니, 잠깐만.”

흑의 추기경은 이마를 짚었다.

“할아버지의 유지를 위해 나중에 공녀님도 다시 꼬옥! 보여주실 거라 믿고요.”

뭐가 어째??

흑의 추기경이 뭐라고 하려 하자, 아이작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추기경을 보았다.

“믿어도 되죠?”

“!”

“믿어도 되는 거죠?”

“……!!”

“믿어도 되는 거 맞죠?”

“………!!!”

“하긴, 할아버지는 공녀님을 위하다가 돌아가셨는걸요. 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작이 총총 뒤돌아 사라졌다.

아이작이 저 할 말만 하고 사라지자, 흑의 추기경은 멘붕이 온 듯 비틀거렸다.

“각하!!!”

부하들이 그를 부축했지만, 흑의 추기경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 시발.

* * *

“하, 이리 일이 쉽게 풀리다니.”

숲을 빠져나가는 카인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솔직히 그는 허탈했다. 그로서는 일라이가 그렇게 바보 같은 자충수를 둘 줄은 몰랐다.

‘벼랑으로 뛰어들면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 협곡은 절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신의 가호도, 햇볕도 닿지 않는 지대라 성력을 쓸 수 없다.

그런데도 그런 험지로 뛰어내린다?

아무리 성녀 핏줄이라 육신이 튼튼해도 소용없다.

아니지. 그나마 육신이 튼튼해서 시신이 이리저리 찢겨 흩어지진 않았네.

그의 시신을 확인했던 카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손상되긴 했지만 시신이 비교적 온전하긴 했으니, 그걸 노린 거라면 잘하긴 한 거네. 자신은 아예 목을 베어버리려고 했으니 말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다니. 끝까지 내 말은 안 들어 처먹는 놈.’

마지막 순간은 그래도 친구로서 자신이 보내주려고 했건만.

‘끝까지 반항인가?’

하여간 청가 놈들은 전부 다 그렇다. 성녀도, 친구도,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거부한다.

‘뭐, 어쨌거나 일라이를 죽였으니 지금은 됐다.’

자신의 힘을 조이던 서약신의 힘도 멈췄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완전히 무효 처리는 안 되나 보군.’

안 그래도 그다지 쓸 수도 없었던 힘. 거의 90프로가 묶여버렸다. 빙의술은 솔직히 쓸 수 있을지 없을지 감도 안 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약신의 힘이 중간에 멈춰서, 신과의 교류가 끊긴 건 아니란 것이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끊겼지만, 이거면 시간을 들여서 금의 신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위험했던 일라이도 처리했으니, 이제 정리하고 돌아가면 된다. 돌아가서, 금의 기강을 다시 세운 뒤 빌어먹을 해골왕을 처리한다.

하여간, 제 친구였지만 일라이도 불쌍한 인생이 아닌가.

평생을 덕을 쌓아오면 무얼 하나. 죽음의 순간 처도, 자식도 손주도,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는데.

‘뭐, 내가 술법을 건 탓도 있지만.’

비밀리에 일라이를 처리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웃겼다.

일라이, 구조 신호도 안 보내다니. 제 딴엔 해골왕이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

‘그놈은 그런 놈이 아니지.’

이네스 때도 결국 그녀를 구해주지 못하고, 모든 게 끝난 뒤 뒤늦게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래. 이걸로 됐다.

일라이는 실종 처리.

자신은 서둘러 다음 빙의를 준비해봐야 했다.

‘일단 키나부터 찾아야겠군.’

전부 자신이 힘을 되찾기 위해 만들어낸 특별한 후손이 아닌가.

징글맞은 해골왕은 그 뒤다.

그런데 그때였다.

‘!’

숲을 빠져나오려 하는 카인의 앞을 가로막는 무리가 있었다.

“일라이 에슈아의 살해범으로 널 체포한다!”

…하,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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