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1화 (1/65)

오늘은 아님

마포대교 난간에 손을 올렸다.

참 구질구질한 인생이었지.

지금 와서 이렇게 개운할 수가 있을까.

눈을 감았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왼쪽으로 저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뭘 꼬라봐?”

앙칼진 어린 여자 음성?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맞다. 여긴 자살 핫플레이스였었지.

“내려와. 위험해.”

“어쩔? 그럼 수고.”

난 내일 죽어야겠다.

여중생이 뛰어내리려고 무릎을 굽히는 순간 달려들었다.

“놔 이거.”

“버둥거리지 마. 나까지 떨어지잖아.”

“놓으라고. 아아아악. 살려줘. 이 한남이 날 유괴하려고 해요. 누구 좀 도와주세요.”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괴력이 솟는다더니. 그 말이 맞네. 여중생이 엄청난 힘으로 날 냅다 떠밀었다.

내일 죽으려고 했는데.

시발. 가는 순간까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차갑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곧바로 정신이 희미해진다.

제발 다음 생에서는 거지 같은 인생 살지 말자.

.

.

.

“서지오 씨? 정신이 드십니까? 다들 이리로 와봐. 환자 의식이 돌아왔어.”

못 죽었구나.

취미로 가끔 보던 인터넷 소설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던데. 아니면 어려지든가.

그럴 수만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 힘껏 외치고 싶다.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결혼이고 투자고 나발이고 그냥 얌전히 회사만 다녀.

모든 게 그대로였다.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다.

“다행입니다. 마침 지나가던 시민들이 서지오 씨를 구하셨어요. 아직 한창 젊으신 분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다니요.”

“그게 아니라요.”

“지금은 일단 안정을 취하십시오.”

“저랑 같이 있던 여학생은 어디 있습니까?”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 병원에는 혼자 오셨습니다.”

“그러면 다른 자살 시도자는 없는 거죠?”

“네.”

그나마 다행이네.

잠시 누워 있으니 누군가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경찰입니다. 몸은 어떠십니까?”

“멀쩡합니다.”

“저희가 CCTV를 분석해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여학생을 구하시다가 그렇게 되셨더군요.”

“걔는요?”

“선생님께서 추락한 후에 곧바로 현장에서 도망쳤습니다. 누군지는 못 찾았고요. 선생님께서 어린 생명 하나 구하셨습니다.”

기뻐해야 하나.

“엉뚱한 마음 먹지 마세요. 제가 여기 관할이라 선생님 같은 분들 자주 봬요. 죽으면 뭐합니까.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요.”

“···.”

“몸조리 잘 하시고 기운 내세요.”

철천지원수가 있으면 재개발 주택조합이랑 해외 선물 옵션을 권하라더니.

난 왜 내 발로 지옥까지 걸어 들어간 걸까.

빚이 얼만지 알아보기도 싫다. 조만간 닥칠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는 건 더 싫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떠나버리면 싶었는데.

최소한 마포대교는 피해야겠다.

얼마나 민폐냐. 저 경찰관 보기가 부끄럽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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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스팸도 좀 분위기 봐 가면서 와야 하는 거 아니냐. 눈치는 지독하게 없는 놈들이네. 하긴 사람 형편 봐 가면서 스팸 날리는 건 아니지.

080이나 1588도 아니고 이젠 열 몇 자리가 넘는 번호다. 하다 하다 내 폰번호가 해외까지 넘어갔나 보네. 가만 이거. 카드사 놈들이 개인정보 팔아치운 거 아냐? 한국카드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스팸이라니.

몰라. 생각하기도 귀찮다.

이제 어쩌나.

“야아아아. 이 미친놈아.”

아는 형··· 이라기보다 그냥 뭐 어찌어찌.

“남궁 형이 여긴 웬일이에요?”

“후배가 병원에 실려 왔다는 소식을 듣고 열나 뛰어왔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뭐? 웬일? 새끼야. 겨우 꺾인 팔순도 안 된 놈이 자살이라니.”

“입 좀 다물어요. 다 듣잖아. 쪽팔리게.”

“쪽팔리면 뒤지질 말든가. 아니면 깔끔하게 뒤지든가. 항상 궁금했어. 죽으려면 얼마든지 방법 많잖아. 번개탄은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치자. 서울에 널린 게 고층빌딩인데. 왜 하필 마포대교냐? 뒤지는 것도 남들 유행 따라가니?”

“남궁 형이 아직 안 죽어봐서 뭘 모르시나 본데. 사람은 본능적으로 갈 때 되면 물이 흐르는 곳을 찾는 법이야.”

“인어공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가자. 내가 퇴원 수속은 다 밟아놨다.”

고맙다. 입 밖으로는 못 꺼냈지만 정말 고맙다.

“근데 제수씨 소식은 들었어.”

“제수는 무슨. 재수 더럽게 없는 년이지.”

“그래. 사실 듣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거 아주 개 썅···.”

남의 입에서 전 여친이자 현 와이프, 그리고 곧 전처 예정인 여자 욕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싸질러 재꼈으니. 와아아. 깡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지. 그래. 이 등신아. 니가 등신이지.”

“나랑 꼭 닮은 걸 어떡해.”

“열나 창피하겠다. 애 아빠가 누군지는 모르지?”

“왜? 궁금해? 내가 알아봐 줘? 누구랑 어디서 어떻게 붙어먹고 만든 애냐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하여튼. 요즘 여자들이란. 아우우. 극혐. 야 어디가?”

“집에 가야죠.”

“설마 제수 아니지. 그게 살고 있는 거기 말하는 건 아니지?”

“내 명의 내 집이니 나가야 할 것들은 그것들이지.”

“알았다. 내가 운전할게.”

또 고맙다는 말을 못 했네. 이번에는 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집값이 진짜 많이 올랐어. 대출 풀로 땡겨서 등기 칠 때는 다들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부러워하고 있다. 어차피 곧 빚쟁이들 손에 넘어가겠지만.

“형 고마워.”

“혼자 괜찮겠냐?”

“빨리 가. 구경하고 싶으면 따라오든지.”

“됐다. 너도 곧 돌싱 되니까 법원에서 돌싱 인증서 받아오면 그때 또 봐.”

“한국이란 나라는 인증서 없이는 뭘 할 수가 없지. 곧 발급될 테니 기다리십쇼.”

띠띠띠띠 삐리리리릭.

낯짝이 있으면 설마 집에 있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이야아아. 너는 진짜.

항상 내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그것도 아주 어마어마하게 아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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