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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스팸 문자
“남궁형 미안해.”
“사나이끼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
“형이랑 스테이션 게임 타이틀 중고 거래하다가 처음 만난 게 재작년인가?”
“아닐걸. 작년 아니었나?”
“형. 나 늙었나 봐. 기억이 가물가물해.”
“민방위도 아직 안 끝난 놈이 지랄한다.”
“딱 처음 보고 생각했지. 와아아. 이 양반 답 없네. 저 나이 먹고 아직까지 게임이나 하고 있으니.”
“씨발아. 원래 나이 먹고 할 일 없어서 게임하는 거야. 젊고 돈 많으면 쌔끈한 여자 만나지 뭐하러 미소녀나 육성하고 있겠냐.”
“쌔끈이란 단어도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내가 쏠게. 가자. 좋은 곳 발견했어.”
좋은 곳이라길래 어딘가 했더니 웬 국밥집이었다.
“어이. 점소이. 여기 주문 구다사이. 히레 국밥 둘.”
“하잇.”
놀랍게도 여직원은 상당히 대담한 치파오를 입고 있다.
이래서 이 형이 여기 오자고 그랬구나.
우리나라 국밥인데 이름은 히레국밥이고 주문은 일본어에 직원은 중국 전통의상이라.
한중일 외교 관계처럼 복잡하게 얽힌 식당이었다.
“여기 왜 이래?”
“퓨전 국밥집이야.”
“그냥 이것저것 짬뽕인데.”
“국밥집이라고 해서 우중충하게 할배들끼리 소주나 까는 그런 곳 아니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한술 뜨자마자 깨달았다. 이래서 손님이 바글바글하구나.
“어때? 완전 예상외로 맛있지?”
“그러게.”
“그나저나 앞으로 어쩔 거냐?”
“몰라.”
“내일 출근할 거지?”
“당연하지. 짤리기 전까지는 열심히 다닐 거야. 근데 아주 좃같은 일이 생겼어.”
“옵션으로 쫄딱 망하고 와이프는 남의 남자 애를 둘씩이나 싸질렀는데 더이상 뭘 더 어떻게 좃같아지냐?”
소주를 들이붓지 않고서는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파트가 내 명의가 아니래.”
“무슨 소리야? 벌써 가압류 들어왔냐?”
“아니. 이지영이 벌써 자기 이름으로 빼돌려놨더라고.”
“좃도.”
“좃도는 이지영이 태어난 섬 이름이 좃도고.”
“그게 말이 되나?”
“몰라. 변호사가 그러더라고.”
“변호사랑은 또 언제 상담했어?”
“그게 아니고. 하아아. 여하튼 복잡해. 변호사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정말 등기까지 옮겨놨겠지.”
“우리나라 등기가 그렇게 허술한가? 이럴 게 아니다. 내가 아는 변호사한테 당장 전화 좀 해봐야겠다.”
“변호사도 알아?”
“나 이혼할 때 맡겼던. 기다려봐.”
이 형 참 고맙네.
이런 맛집도 알려주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내가 인복이 아주 없지는 않구나.
“방금 통화하고 왔는데 자기는 이혼 전문이라 자세한 건 상담을 해 봐야겠대.”
“기왕이면 여자 변호사로 소개해줘.”
“왜?”
“남자는 이지영이랑 붙어먹을까 봐.”
“흐흐흑. 어지간히 데였구나. 그런 걱정까지 하고.”
이 형이 내 집에서 수건만 가린 남자 변호사를 직접 봤어야 했는데.
“알았어. 내일 다시 전화해볼게.”
많이 늦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까 이만 파합시다.”
“이건 마저 비워야지. 딸꾹.”
“취했어?”
“아니. 멀쩡한데. 갑자기 애들 보고 싶다.”
남궁형이 핸드폰을 집어 든다.
“하지 마. 너무 늦었잖아.”
“열심히 일해서 양육비 보내주는 데 통화 정도도 못하냐?”
“내일 맨정신에 해.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
“놔봐. 아이 씨. 한 잔 더 해야겠어. 너 먼저 들어가서 씻고 자라.”
“에헤이. 이 형 주사 정말 심하다니까. 이러니 이혼당하지.”
“내가 얘기를 안 해서 그런데. 임마 술 많이 먹는다고 갈라선 거 아니야.”
“그럼?”
“됐고. 알았어. 오늘은 시마이한다. 오케이?”
“오케이. 들어갑시다. 벌써 12시다.”
술 냄새 풍기는 남궁형을 부축하고 밤거리를 걸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내 신세 때문일까. 취기가 확 올라오네.
“우워어 베이비.”
어디서 또 걸그룹 노래는 배워가지고.
같이 다니기 되게 쪽팔리네.
띠링.
[(광고) 축하합니다. 한국카드 특수 광고대행업체에서 제공하는 스페셜 캐시백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곧 이벤트 행사가 마감되오니 서둘러 주십시오. 자세한 사항은 음성 안내를 참고하시기 ···. (더 보기)]
“뭐냐? 어? 민정이니? 아빠다.”
“형 핸드폰 아니야.”
“영원히 사랑 우워어어. 베이비.”
도대체 몇 번째냐.
이 개 잡 보이스피싱 놈들아. 작작 좀 하자.
낯짝은 못 봐도 목소리는 한 번 들어봐야겠다.
열 자리가 넘는 스팸 번호로 통화 버튼을 눌러봤다.
망한 판국에 국제 전화면 어떠하랴. 이미 내 주민등록번호와 핸드폰 번호는 온 세상이 알고 있을 텐데.
신호가 안 가거나 바로 끊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몇 번 울리고 나서 음성 안내로 이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서지오 고객님.]
다짜고짜 내 이름을 안다고?
인적사항 본인 확인도 없이? 분명히 조금 있다 검찰청 어쩌고 하면서 어디로 입금하라고 그러겠지.
[축하드립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스페셜 캐시백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본 행사는 저희 광고대행업체에서만 제공하는 특별 이벤트로 당첨되신 서지오 고객님께만 따로 캐시백을 제공해드릴 예정입니다.]
[이미 통지해드린 바와 같이 한국시간으로 밤 12시 곧 행사가 종료됩니다. 그러니 반드시 그 전에 진행을 완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빠빠라빰빰.]
경쾌한 음악이 잠시 이어진다.
여기까지는 무난한데.
담당자를 연결한다면서 이것저것 개인정보를 캐묻는 단계는 아직 아닌가 보다.
[서지오 고객님. 많이 기다리셨죠? 지금부터 주의사항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잘 들어주십시오.]
[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 한국카드 결제건 중에서 최고액 1건에 대해서만 캐시백으로 다음 달 결제일에 지급됩니다.]
아주 간단했다.
매달 결제하는 금액 중에서 최고액수 1건만 다음 달 카드 결제일에 지급.
만약 정말로 지급된다면 나는 14일이 결제일이니까 14일에 캐시백이 들어오겠네.
[캐시백은 3가지 중에서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1. 현금. 최고 결제액의 55퍼센트. 결제 계좌로 입급.]
[2. 상품권. 최고 결제액의 92퍼센트. 고객님의 카드 명세서 수령지로 발송.]
[3. 비트코인. 최고 결제액의 220퍼센트. 고객님의 비트코인 계정 주소로 입금. 비트코인 계정이 없으시면 새로 생성해 주십시오.]
[한국시간으로 오늘 밤 자정까지 문자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셔서 캐시백 수령 방법을 선택 완료하여 주십시오. 선택 완료하시면 캐시백을 앞으로 무기한 그리고 액수 무제한 수령 가능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띠-띠-띠-띠-.
음성 안내는 이게 끝이었다.
끝까지 사람이랑 연결되지는 않는다.
조만간 따로 전화가 걸려오려나.
문자 더 보기를 눌러서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 봤다.
[https://url.kr/Tjwldh]
인터넷 링크 주소가 하나 있었다.
이 링크를 누르면 핸드폰에 악성 바이러스가 깔리는 건가?
알몸사진이 찍혀서 톡 채팅방에 쫙 퍼진다거나 뭐 그런 거 아니겠어.
역시 스팸 수법은 뻔하네.
그런데.
혹하기는 한다.
선택지가 하나같이 통상적인 캐시백과는 거리가 멀다.
보통 캐시백이라고 해봤자 기껏 영점 몇퍼센트 정도일 텐데. 이건 현금이 55퍼센트에 비트코인은 무려 220퍼센트. 두 배가 넘게 준다는 거잖아.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앞으로 무기한 계속, 그리고 액수 무제한이라는 점.
시간을 봤다.
11시 49분.
괜히 입술이 바짝 타네.
역시 개인정보 빼가려는 스팸 문자일 뿐이겠지?
괜히 링크 주소 클릭했다가 휴대폰만 공장 초기화해야 하고. 이것저것 다시 깔고 금융인증서도 새로 발급하고.
생각만 해도 귀찮네.
이래서 사람들이 뻔히 알고도 당하는구나.
스팸인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저 빌어먹을 링크 주소를 클릭하고 싶다.
혹시 아나? 누가 공짜로 매달 나한테 캐시백을 안겨 줄지?
에라 이 자식아.
선물 옵션으로 그렇게 크게 당하고도 정신 못 차렸구나.
지우자. 지워. 당장.
환장하겠네.
왜 ‘삭제’는 눌러놓고 ‘확인’까지 못 누르니?
그냥 눌러. 콱.
“너 뭐하냐?”
“응?”
대답하면서 얼떨결에 ’확인‘을 눌러버렸다.
시원섭섭하네.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스팸이 와서 지웠어.”
“대출해준대?”
“아니. 반대야. 캐시백을 준대.”
“요즘은 그렇게 사기 치는구나. 사기꾼놈들 수법은 따라잡을 수가 없어. 뛰는 경찰 위에 나는 보이스피싱이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어서 들어가자.”
어느덧 남궁 형의 다세대 주택 앞에 도착했다.
자기 입으로 월세라던데.
오래 얹혀살지는 못하겠다. 염치가 있지.
3층 다세대라 엘리베이터도 없다.
“형. 정신 차려. 들어가자.”
“그래. 오늘은 그래도 니가 있어서 혼자는 아니구나.”
남궁 형이 먼저 들어가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섰다.
“뭐하냐? 안 들어오고.”
“잠시만.”
사람은 그럴 때가 있다.
무언가를 떠나 보낸 후에 느끼는 허탈감.
내지는 후회. 또는 그리움.
그런데 아까부터 등 뒤로 치밀어 오르는 이 찝찝함은 도대체 뭐지?
마누라가 바람을 피워서 다른 남자 자식을 둘이나 만들어 놓은 거?
아님 투자하겠답시고 깝치다가 수억 날린 거?
악착같이 마련한 아파트가 다름 아닌 그것에게 넘어간 거?
아닌데. 그게 아니야.
난 방금 왠지 인생에서 3번 온다는 기회 중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
세 번 중의 한 번 정도가 아니라 다시는 오지 않을 일생일대의 거대한 찬스.
멍청한 자식.
그까짓 핸드폰 초기화. 하면 되지.
후회를 남기지 말자.
혹시 모를 일말의 허황된 꿈이라도 좋다.
핸드폰. 제발.
11시 59분이었다.
문자함을 뒤졌다.
분명 다 지웠지만 스팸차단함에는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몰라.
있었다.
더 보기를 눌러 아래로 내렸다.
손이 떨려온다.
[https://url.kr/Tjwldh]
아까와 똑같은 링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클릭.
[1. 현금 2. 상품권 3. 비트코인]
[숫자를 입력하여 주십시오.]
누르자마자 핸드폰 시계가 11:59에서 12:00으로 변했다.
설마 늦은 건 아니겠지?
띠링.
[안녕하세요. 서지오 고객님. 한국시간으로 자정까지 특별 캐시백 수령 방법을 선택 완료하셨습니다. 혜택은 다음 달부터 곧바로 적용됩니다. 감사합니다.]
내 인생 이미 좃된 김에 아주 약간 더 좃될 뿐이다.
보이스피싱이건 뭐건 속이 다 시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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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신 다음 날 출근길은 참 지랄 맞다.
동탄에서 서울까지 자차가 없으니 이리도 불편할 줄이야. 어쩌겠나. 익숙해져야지.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그런데 서 과장님.”
“왜요?”
“아침부터 저기 말씀드리기는 정말 죄송하지만.”
“죄송하면 하지 맙시다. 전날 술을 좀 먹었더니 피곤해서요.”
김 대리 이 새끼가 어쩐 일로 아침부터 먼저 말을 걸지?
항상 뚱해 있다가 시키는 일에 대답도 건성건성 하는 놈이.
“출근하셨습니까.”
“부장님 오셨어요.”
“좋은 아침. 아 근데. 서 과장. 잠시 나 좀 봅시다.”
이상하네. 오늘따라 왜 이리 아침부터 전부 나를 찾아? 뭐 빵꾸난 것도 없는데.
이 부장은 너무 너무 지독한 골초다.
출근하면 온 회사가 전부 알아차릴 정도로 찌든 담배 냄새로 악명 높은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깔끔하고 중후한 미중년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얼굴 마주 보고 대화하면 거의 화생방 온 수준인데 미치겠네.
역시나 밖으로 부르더니 한 대 꺼내 든다.
“지오 씨도 피워.”
“끊으려고요.”
“끊는 게 어딨어. 억지로 참는 거지. 어차피 인생 잠깐이잖아.”
왜 불렀어요? 빨리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깊숙이 한 모금 빨더니 눈이 게슴츠레해진다.
니코틴이 좀 돌고 나니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말이지. 소문이 사실이야? 지오 씨 출장 가 있는 동안에 회사에 안 좋은 소문이 돌더라고.”
내 돈 말아먹었지 회삿돈 말아먹은 것도 아닌데 당당해지자. 투자야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됐습니다.”
“세상에. 정말이구만. 쯧쯧쯧. 어쩌다가 둘씩이나.”
갑자기 연초가 확 땡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