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7화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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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의 목적

한가한 시간에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앱테크와 상테크는 알아보니 시간 투자를 꽤 많이 해야 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퀴즈도 풀고 출석체크를 하면 광고 앱 하나당 하루 몇십 원이 전부였다. 그 짓을 하루 수십 번씩 정해진 시간마다 되풀이해야 한다니.

상테크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걸로는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겠다.

시간 여유가 많으면 푼돈 벌이로 해볼 수는 있겠지만 현재 내 상황에서는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2만 원을 준다던 비트업 회원가입은 불과 몇 분 만에 끝났다.

개인정보 입력하고 계정을 곧바로 생성했다.

비트코인이란 게 은행 계좌 만드는 거랑 비슷하네.

계좌가 아니라 ‘주소’라고 부르던데, 숫자와 알파벳이 뒤섞인 수십 자리의 긴 주소가 비트코인 계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비트업 사이트에서 주소 생성이란 버튼을 누르니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은행 계좌처럼 무슨 무슨 인증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누르고 몇 초도 안 돼 끝이었다.

2만 원을 현금으로 줬으면 싶었는데 그건 아니네.

얘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곧장 출금할 수 없는 자체 포인트로 줬다.

카지노에 입장하면 놀라고 주는 서비스 칩 같은 개념이었다.

며칠 지나면 현금으로 인출이 된다고 하니 그때 빼면 되겠지.

띠링.

문자만 오면 깜짝 놀란다.

아직 이자 내는 날도 아닌데 벌써 독촉이라도 들어오는 건 아닌지. 아니면 혹시 또 그 캐시백 이벤트 문자는 아닐까 하고.

[오늘 저녁에 보자.]

대학 동창 민수였다.

한참 전부터 잡혀있던 약속이긴 한데.

내 상황이 이러니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었다.

가 봤자 잘나가는 놈들 자랑질이나 들어야 하고.

그래도 대학 때는 다들 영화 동아리랍시고 느와르가 어떠니 미장센이 어떠니 썰을 풀어대곤 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아저씨가 되어서 만나면 할 얘기도 없다.

친구들 근황부터 시작해서 여자 연예인, 스포츠, 재테크, 시사, 정치까지 별별 주제를 술안주 삼아 퍼마시다가 대리를 불러 헤어진다.

늘 똑같은 레퍼토리지만 술 마실 핑계를 만들려고 가끔 모였었는데.

그래도 아직 이어지는 건 참 대견하다.

어쩌다가 한두 번은 좀 생산적으로 놀자면서 펜션을 빌려 부부동반으로 여행도 갔었는데.

한 놈이 이혼하더니 그 후로는 그것도 중단됐다.

나도 지금은 곧 이혼할 판국이고.

그래.

가서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평일 저녁 퇴근 시간대 강남역은 정말이지.

광역버스 늘어진 줄만 봐도 답답해진다.

어쩔 수 없지. 여기가 제일 무난한 약속 장소인 건 사실이고.

그래도 강남역에 나오니 북적거려서 좋네.

다들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니까 나도 파이팅해야지 라는 생각도 들고. 비슷한 처지의 직장인들을 보면 왠지 안심된다.

강남역 뒷골목의 어느 지하 술집이었다.

어지간히 찾기도 힘든 곳이네.

네비를 찍고 차로 왔으면 쉬웠을 텐데 전철역에서부터 걸어오려니 한참을 헤맸다.

지하로 내려가자 왁자지껄한 술집 분위기가 흥을 돋군다.

“지오야. 여기.”

“응.”

민수가 손을 흔든다.

총무 역할을 도맡아서 하는 책임감 강한 놈.

이 모임은 사실 민수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흐지부지됐을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냐?”

“처음 오잖아.”

“누군 처음 아니냐. 어서 앉아.”

내가 제일 늦었다. 자연스럽게 통로 쪽 끝에 착석했다.

구석에 있는 게 마음도 편하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잘나갈 때는 나도 가운데 앉아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그랬는데.

이 꼴이 되고 나니 그냥 조용히 있다가 헤어지고 싶었다. 사실 얘들 앞에서 그렇게 주눅 들 필요도 없는데 괜한 자격지심이지.

이래서 남자는 지갑이 두둑해야 배짱이 생기는 법이라고 그러는구나.

“일단 한 입 적셔.”

준호 저놈 저거는 하여튼 허세만 잔뜩 껴 가지고.

적시긴 뭘 적셔 임마.

“자 지오까지 다 왔으니 일단 건배하자.”

“짠.”

빈속에 소주가 식도를 타고 들어온다.

엥? 내가 술이 세졌나? 왜 이리 밋밋하지?

“이거 왜 이래?”

“14도란다. 시키고 보니 소주가 14도래.”

예전에는 20도 밑으로는 싱겁다고 안 먹던 때가 있었는데. 참 예전이었지만.

확실히 애들이 힘이 빠졌다.

시작하자마자 일단 두 바퀴는 돌고 출발했는데,

원샷도 아니고 절반쯤 마시더니 안주를 연거푸 주워 먹는다. 괜히 나만 원샷 때렸네.

“야. 첫 잔은 원샷이지.”

“너야 첫 잔이지.”

그러고 보니 다들 얼굴이 좀 벌겋다.

“알았어. 봐줄게.”

누군 돈을 벌었고 누군 잃었고 또 아는 누군 어디로 이사했고 누구는 아직도 결혼 못 했고 등등.

업데이트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근황이 쏟아졌다.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그 질문이 당도했다.

“넌 요새 뭐 하고 지내냐?”

사학과 다니다가 도저히 못 하겠다면서 때려치우고 몇 수 해서 치전 간 게 신의 한 수가 된 고준호.

지금은 제일 잘 나간다.

처음에는 월급쟁이로 시작했지만 여기 강남역에서도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대출받아서 병원을 차렸는데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

들으니까 치과는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터줏대감들 자리 잡은 곳에 머리 들이밀고 터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던데.

아는 인맥으로 여자 연예인 치아교정을 몇 건 해준 게 광고빨을 제대로 타면서 대박이 터졌다고 한다.

“나야 뭐. 그냥 그렇지.”

“야 임마. 우리끼린데 뭐 어때. 탁 털어놔. 어차피 소문 다 났어.”

“하지 마. 얘는 눈치도 없이.”

그래 눈치는 원래 없던 놈이지. 치과 잘나가서 돈 쓸어 담으니까 더 눈에 뵈는 게 없어졌을 뿐이고.

동탄의 어느 미시가 퍼트린 날갯짓이 강남역까지 휘몰아 닥칠 줄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 뭘 물어보냐. 너희들 알고 있는 그게 맞겠지.”

“아유 답답아. 나 같으면 반 죽여 놨겠다.”

“지오 신경 긁지 말고 술이나 마셔. 요즘 어떤 세상인데 여자를 건드리냐? 콩밥으로 안 끝나고 인터넷에서 공개처형 당해.”

“하긴.”

민수가 테이블 위에 놓인 고준호의 차 스마트키를 바라봤다.

“고 원장. 요새 잘나간다며? 차 바꿨나 봐.”

“응. 뭐 그냥. 좀 지겨워져서. 중고차 시세 괜찮게 쳐 주더라고. 처음 살 때 옵션을 많이 달아두길 잘 했어. 너희도 선루프 꼭 달아라.”

“왜? 난 그거 별로던데. 사고 나면 위험하기만 하고.”

“날씨 좋을 때 한두 번 여는 맛으로 다는 거지. 사실 별로긴 해. 근데 팔 때 되니까 선루프 있는 놈이랑 없는 놈 가격 차이가 확 나.”

“그래?”

다행히 대화 주제가 내 이혼에서 준호의 새 차로 옮겨갔다.

괜히 왔나?

이런 기분 느끼려고 온 게 아닌데.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아직 이혼을 완전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건지도 모르지.

술자리에서 괜히 우중충하게 술만 비우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다.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기로 했다.

“난 차 팔았어.”

“왜?”

“이혼만 소문나고 옵션 쪽박 터진 건 아직 못 들었구나.”

“응?”

“너 설마 옵션 건드렸다 실패한 거냐?”

“진짜야?”

“응. 있는 돈 다 밀어 넣었다가 쫄딱 망했어.”

“씨발. 와아아.”

“내가 아는 놈도. 참 걔는 선물 옵션 이런 건 아니고 코인인데. 코인으로 2억 날렸대.”

“어쩌다가?”

“숏포지션에 이빠이 걸었는데 오히려 비트코인 반등해서 깡통 된 거지 뭐.”

나랑 비슷한 놈이 세상에 참 많구나.

“지오 넌 얼마 잃었냐? 솔직히 얘기해봐.”

“몰라. 알려고 하지 마라.”

“오늘 술 아주 찐하게 마셔야겠다.”

어차피 언젠가는 다들 알게 될 일이다.

내 입으로 지금 미리 말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털어놓으니 좀 속이 시원하네.

“야 힘내. 해줄 말이 그거밖에 없다 야.”

“내가 돈은 못 빌려줘도 응원은 할게.”

고준호 저 새끼는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네.

아무리 거지가 돼도 너한테는 안 빌려. 내 성격상 친구들한테 돈 빌려달란 소리도 안 할 것이고.

사지 멀쩡하겠다 벌어서 갚다 보면 언젠가 다 끝나겠지.

“너네 와이프가 그래서 이혼하자고 그랬구나.”

“이 새끼는 지오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거 좀 심하잖아. 그 여자가 무슨 짓 저질렀는지 다 알면서 무슨 그따위 말을 지껄이냐.”

성질 같아서는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민수가 눈치껏 사전에 차단했다.

“그래. 그건 준호 니가 너무 심했어. 사과해.”

“됐어. 초등학생도 아니고 사과는 무슨. 이혼은 어차피 그 전부터 이야기됐던 거고. 돈 잃기 전부터 갈라설 생각이었어. 그 사실 알고 나서 곧장 결심했다.”

“잘했어. 전혀 미련 없지?”

“응.”

“잊어버리고 새 출발 해라.”

미련이 있을 리가 있겠냐. 애초부터 그런 것과 엮여서 결혼한 게 후회되는 판국인데.

“이혼도 안 한 놈한테 무슨 새 출발이야. 이혼 그거 겁나 피곤하다더라. 내 주변에도 이혼한 친구 있는데 결국 양쪽 변호사만 돈 벌고 당사자들은 너덜너덜해져서 지쳐 나가떨어진대.”

그럴 것 같다.

김지영 변호사 말로는 최소 1년이라는데. 만약 대법원까지 올라가면 몇 년이 걸릴지 또 변호사비는 얼마나 깨질지 도무지 짐작도 안 된다.

“변호사는 구했어?”

아람이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이 녀석은 항상 말없이 남의 얘기 듣기만 하는 놈인데. 고맙네 신경 써줘서.

얘는 대학 때부터 그냥 착실한 범생이였다.

의대생이라 자연스럽게 의사 국시치고 잠실 쪽에서 개인 의원으로 개업했다던데. 별로 티를 안 내서 잘나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의사 살림살이 걱정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뭐. 잘 먹고 잘 살겠지.

“아는 사람이 소개해줬어.”

“무조건 큰 데로 해. 가격은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 변호사 고를 수가 있으니 오히려 좋다더라.”

“그렇겠지. 안 그래도 꽤 큰 로펌이야.”

“처음 봤을 때는 괜찮은 여자 같았는데. 그런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어.”

여기 있는 녀석들은 모두 내 결혼식에도 왔던 놈들이다. 당연히 이지영도 봤었고. 부부동반으로 놀러간 적도 있으니 몇 번 만난 셈이지.

“역시 여자 외모만 보고 결혼하면 나처럼 아주 좃되는 거야.”

“못생긴 여자랑 죽을 때까지 시름시름 사는 것보다 예쁜 여자랑 굵고 짧게 살다가 이혼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지오 넌 어떻게 보면 행운이야.”

“흐흐흐.”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어릴 때야 철없이 여자 외모만 보는 거지.

“이지영 같은 여자면 짧게 한 3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지오 결혼식 때 하객들 전부 신부 외모 얘기만 했었으니까. 다들 기억나지?”

민수가 이번에도 선을 긋는다.

“이 새끼가 정말. 야 고준호. 분위기 파악 안 할래? 농담도 할 때가 있는 거야.”

“됐어. 놔둬. 난 별로 신경 안 써. 어차피 이제 남인데 뭘.”

“너무 쿨하다.”

“외모 보고 결혼한 건 사실이고 그 대가를 이제야 치르는 거니까. 준호 너는 내가 엄청 부러웠나 보다?”

“결혼 잘했다고 그때 우리끼리 모두 부러워했었지. 야 솔직히. 나만 그랬냐? 너희들도 다 그랬잖아.”

한심한 것들.

남의 예전 여편네 얼굴 이쁘면 뭐 어쩌라고.

너희도 결혼 전에 지금 와이프보다 더 예쁜 여자 능력껏 꼬시지 그랬냐.

“사실 지오보다 이지영이 아깝다고 다들 말이 많았었지.”

왜 내 주변 놈들은 친구건 회사 동료건 하나같이 1절에서 멈추지를 않을까.

“야아아. 그만 좀 해. 지오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준호 넌 가서 세수하고 와. 어서. 누가 같이 가주든가.”

“됐어. 너희들 보기에 내가 취한 것 같냐? 나 멀쩡해.”

“알았으니까 가서 바람 좀 쐬고 와.”

아람이가 준호를 일으켜서 데리고 나간다.

현명한 판단이다.

조금만 더 대화가 진행됐더라면 주먹다짐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준호 저놈 저건 왜 저러냐. 눈치가 원래 아무리 없어도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있는데. 하여튼 돈 벌고 배때지가 차오르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띠리리리. 띠리리리.

“눈치도 없는 놈이 매너도 없네. 진동으로 좀 해 놓지.”

고준호가 테이블 위에 놔두고 간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린다. 볼륨을 얼마나 높여 놓은 건지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였다.

“대신 받을까?”

“그냥 수신 거절 눌러버려.”

“내가 할게.”

제일 가까이 있던 내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인은 ‘이 팀장’이었다.

업무상 전화 같은데. 꼭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병원 끝난 시간인데 뭐 어때.

답답한 건 이 팀장 쪽이겠지.

수신 거부를 눌렀다.

응?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가 찡그려봤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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