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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타쌍피보다 좋은 0타쌍피
누군지 전혀 알 리가 없는 ‘이 팀장’인데.
왜?
왜 번호가 아주 낯익을까.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굳이 그 번호로 다시 걸어서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핸드폰 주인 고준호가 지하로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이지영 애 아빠가 너였구나.”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지하 술집의 공기가 묵직해졌다.
여전히 하하호호 즐거이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 쟁반을 들고 여기저기를 서빙하는 직원.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어느 시티 팝까지.
한순간 모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딴 차원의 일상으로 변했다. 그건 우리 테이블에 있던 모두와 다가오던 고준호, 조아람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다. 민수가 그나마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고준호. 지오 말이 사실이냐?”
“이지영이 먼저···.”
민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이미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뻑.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시발.”
“···? 왜 이래?”
조아람이 고준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니가 나 몰래 지영이랑 했다고? 이 더러운 개새끼야.”
퍽. 퍼억.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에 고준호는 방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계속 맞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는지 본격적으로 서로 주먹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래. 그랬구나.
싸움을 말리려는 동창들을 막아섰다.
“쟤들 가만 놔둬. 그리고 너희들한테 한가지 확인할 게 있어. 여기서 이지영이랑 붙어먹은 놈 또 있냐? 지금 사실대로 털어놔.”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내가 준호랑 같은 놈인 줄 아냐.”
나민수는 아예 자기의 핸드폰을 넘겨준다.
“통화목록이나 톡방 전부 확인해봐.”
“알았어. 그럼 저 두 명뿐인 거 확실하지?”
“너 괜찮냐?”
“이지영은 나랑 이미 끝난 인연이야. 저 두 새끼도 방금 끝났고. 나까지 굳이 저 개판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어.”
술집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황급히 우리를 찾는다.
“일행분 아니세요? 어서 말리셔야죠. 뭐하십니까?”
“잠시 전까지는 일행 맞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저기 바닥에 뒹구는 한 놈은 치과의사고 그 위에 올라탄 또 한 녀석은 의사니까 가게 수리비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나중에 넉넉하게 받아내십시오.”
“그렇지만 다른 손님들도 계신데.”
“다른 손님들 피해 보신 것도 전부 저 두 놈에게 청구하세요. 저것들 연락처는 여기 있습니다.”
고준호와 조아람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줬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기왕이면 112 신고는 좀 천천히 해 주십시오.”
“네?”
“다른 손님들도 싸움 구경을 즐기시는 것 같은데. 최대한 재미있게 보시라고 놔두세요. 원래 좃밥 싸움이 제일 흥겨운 법입니다.”
가게 주인은 핸드폰 번호를 받아들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사라진다. 물론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걸 봐서 내 부탁은 거절하나 보네.
싸움은 의외로 막상막하 치열했다.
고준호가 체격은 더 크지만 선빵을 많이 맞아서 기가 꺾인 데다 조아람의 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개새끼야. 지영이는 내 파트너야.”
“파트너? 지랄 마. 난 이혼하고 지영이랑 진심으로 결혼할 생각이다. 애들 둘 다 내 핏줄이라고 그랬어.”
“병신아. 내 딸이랬어.”
저렇게 자기 입으로 광고하면 주변 사람들이 무슨 사연인지 다 알 텐데.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좋은가.
“개새끼야. 도대체 언제부터야?”
“너부터 말해라.”
“언제냐고 시발놈아.”
퍽. 퍽.
둘 다 얼굴이 피칠갑됐다.
“치과 앞에서 유부녀 건드렸다고 소문 다 내줄 테니까 넌 끝장인 줄 알아라.”
“나보다 돈도 못 버는 병신 새끼가. 겨우 간호조무사 하나 데리고 굴리는 구멍가게 주제에. 대출도 아직 다 못 갚은···. 으아아악.”
다른 건 참아도 자기 병원 욕은 못 참나 보네.
조아람이 고준호의 손등을 물어뜯었다.
얼마나 살벌하게 싸우는지 주변 손님들도 감히 다가갈 엄두를 못 내고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한다.
굳이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인간말종 두 명끼리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니 이거야말로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구나.
참 재미있는 세상이야.
어떤 놈들은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기 바쁘다. 환호하며 응원까지 더한다. 잠시 후면 실시간 강남 난투극이라면서 인터넷에 올라오겠네.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알게 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쟤들 누구 하나 죽겠는데.”
“그 전에 경찰이 오겠지.”
“안 말려서 큰 사건 터지면 우리까지 같이 엮이는 거 아닐까.”
잔이 아직 가득 차 있다.
“잔은 모두 비우는 게 도리잖아.”
단숨에 털어 넣었다.
“넌 어쩜 그렇게 냉정하니? 나 같으면 돌아버릴 것 같은데.”
“남의 일이잖아. 이지영도 저것들도 모두 남인데 뭘. 남의 일에 열 내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
14도라고 했나.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밋밋하지 않았다.
아주 지독하게 씁쓸했다.
“먼저 갈게.”
“아니다. 우리도 같이 나가자.”
“지오야. 다음에 또 연락해라. 힘내고.”
물론 계산은 남은 두 새끼들이 하도록 놔뒀다.
“아니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우리 테이블 계산은 쟤들이 할 겁니다. 아까 번호 받은 거 가지고 있으시죠? 말씀드렸다시피 이제는 일행이 아니라서요. 그만 가겠습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솔직히 저는 잘못한 게 없거든요. 사과도 역시 저 새끼들이 할 겁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진흙탕 개싸움을 뒤로 하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동창들과 헤어졌다.
마침 경찰차가 도착한다.
경찰관들이 서둘러 지하로 내려가는 것까지는 봤다.
어차피 내 알 바 아니고.
미친년 하나와 그 주변을 맴도는 발정 난 개자식 둘. 수건으로 아랫도리만 가린 채 나를 맞이하던 그 변호사까지 포함하면 셋이네.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
참 주도면밀하단 말이야.
더없이 화려했던 20대는 지나갔고 벌써 2명이나 출산한 몸.
그렇지만 환승 전략을 세우고 30대 여자로서의 매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운명의 베팅을 날렸다.
셋 중 하나만 제대로 낚으면 나머지 인생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살아보고 또 다른 남자로 갈아탈 수도 있을 테지.
지금도 남자는 아마 더 있을 것이다. 최소 사자 돌림의 전문직이거나 아니면 그만큼은 버는 놈이겠지.
저 두 명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인물일지 누가 알겠어.
두 번호는 핸드폰에서 지우고 차단했다.
혹시 연락 올 일도 없지만, 주소록에 남겨둘 이유는 전혀 없다.
상쾌하네.
비움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쓰레기는 깨끗이 비우고 저절로 닿는 인연만 만나면서 살기도 부족한 인생이다.
문득 부모님께 모든 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그나마 이해해주시려나.
[여보세요.]
[그래. 웬일이고?]
[저 이혼합니다.]
[···. 야가 결국. 아이고. 참. 도저히 안 되겠드나?]
[네.]
[안 그래도 지영이가 내 전화를 계속 안 받드라고. 애들은 어떻게 ···.]
[둘 다 제 자식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고?]
[유전자 검사까지 했어요. 제 핏줄이 아닙니다. 둘 다요.]
[···. 잠깐 있어봐라. 전화 끊고 이따가 얘기하자.]
목소리가 너무 많이 떨리신다.
도저히 만나서 얘기는 못 드리겠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그래서?]
[변호사 구했어요. 소송할 겁니다.]
[확실한 거 맞나? 니 자식 아닌 거.]
[유전자 검사는 속일 수가 없어요. 드라마 같은 데 보면 많이 나오잖아요.]
[그건 드라마고.]
버럭 소릴 지르신다.
[하여튼 이혼합니다. 아버지한테는 제가 따로 말씀드릴게요.]
[알았다. 일단 끊어봐라.]
[혹시 말씀드리는데 사돈집에는 연락하지 마세요. 괜히 싸움만 나요. 그 집구석 자체가 글러 먹은 집이에요. 장모라고 하는 짓이 딸보다 더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얘기를 안 드려서 그렇지. 하여튼 절대 연락하지 마세요.]
[내가 왜 전화하는데. 전화 안 한다.]
[무조건 이혼합니다. 끝났어요. 저는 새 출발 할 겁니다. 그렇게 아십시오.]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진작 얘기할걸.
말 난 김에 아버지한테도 바로 전화를 드렸다.
[이혼합니다.]
[그래?]
마치 이미 짐작이라도 하셨다는 듯 태연한 음성.
[잘했어. 갈라서. 아니다 싶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헤어지는 게 낫지. 가만있자. 재산 분할이야 뭐 법원에서 알아서 해 줄 테고. 애들은? 누가 키우기로 했어? 양육권은 절대 양보하면 안 돼.]
[애들 둘 다 제 자식이 아닙니다. 유전자 검사했어요.]
[후흐흐흐. 참. 아주 잘 돌아간다. 그럼 양육권 때문에 싸울 일도 없고 재판도 금방 끝나겠네. 깔끔하게 빨리 마무리 짓고 끝내버려.]
[알겠습니다.]
[너희 엄마는 뭐라 그러시냐? 분명히 나보다 먼저 알렸겠지.]
[별말씀 없던 데요. 놀라긴 하시지만.]
[그럼 됐고. 알았으니까 그만 끊어.]
아버지는 예상외로 담담하시다.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혼이 이런 거구나.
내 핏줄의 아이가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담담하다. 본인도 주변 가족도 모두.
잠잠하지만 평온하지는 않은 일상이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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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치워. 어허이. 안 치워? 사나이끼리 돈 주고받고 이러는 거 아니다.”
“진짜 안 받을 거지?”
“날 오체분시해봐라. 그럼 뭐가 남는 줄 아냐? 오직 사나이 의리. 내 무덤 비석에 의리 두 글자만 새겨놔.”
“사극 좀 그만 봐. 국토도 좁은데 무조건 화장이지. 비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얹혀산 지 한 2주는 됐나.
“따라와. 한잔 살게. 회사 근처에 고시원 알아봤어. 방세 더럽게 비싸더라. 몇 평 되지도 않으면서.”
“우리 집에 방도 남는데 뭐하러 쓸데없이 돈을 쓰냐.”
“내가 그게 편해.”
“내 눈치 보느라 이사하는 건 아니지?”
“아니라니까.”
나야 몇십만 원 아끼면 좋지만, 공짜를 좋아하다가는 남궁형처럼 머리가 벗겨진다.
“선물이야. 오다가 주웠어.”
“뭔데?”
“탈모에 좋은 샴푸라더라. 관에 들어갈 때 빗질할 머리는 남아 있어야지.”
“뭘 이런걸. 히히히.”
엄청 좋아하네.
삼겹살에 소주 1병만 시켰다. 내일 출근해야 하기에 반씩 나눠 먹고 일찍 자기로 했다.
술을 어설프게 마셔서 그런가. 누워 있는데 잠이 안 오네.
남궁형 집에 얹혀서 산 지도 어언 2주.
그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당장 법원에서 뭐가 날라오지도 않았고, 이지영 측에서 어떤 액션도 없었다.
고준호와 조아람은 민식이가 그러던데 서로 쌍방폭행으로 경찰 조사 중이라던가.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데 괜히 민식이가 자기 일처럼 수소문하더니 알려줬다.
가만 보면 걔도 참 오지랖이 넓어.
투잡으로 대리기사 알바라도 알아봐야겠어.
열심히 하면 몸은 고단하겠지만 하루에도 십만 원은 벌 수 있다던데. 대리기사로 차곡차곡 돈 모아서 빚 갚은 사람 얘기도 들어봤다. 무슨 인간 극장이나 휴먼스토리 같은데 보면 나오는 단골 소재잖아.
그러고 보니 내일이 14일, 카드 결제일이다.
이번 달은 어찌어찌 구멍 안 나게 버틸 수 있을 법한데. 다음 달부터는 진짜 골치 아프게 생겼다.
빚 갚을 걱정에 밤은 더 깊어지고 정신은 말똥말똥해진다.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것저것 돈 벌 방법을 검색해봤다.
역시 쓸만한 건 없다. 회사를 착실히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 대리기사를 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대응책.
한국카드사 어플을 열어 지난달 사용 내역을 죽 훑어봤다.
내가 카드를 되찾기 전까지 이지영이 그걸 가지고 신나게 써재꼈네.
도대체 가정주부라는 여자가 매일 배달을 시켜 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
사람들한테 말하면 절대 안 믿는다.
‘에이 어떻게 매일 사 먹어요?’ ‘농담이시죠?’ ‘질려서 그렇게 못하겠네.’
놀랍게도 정말 매일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서 먹었다.
쇼핑에 미친 여자 같았다.
택배가 하루에도 몇 개씩 쉬지 않고 집으로 날아온다.
캐시백 정말 줄까?
분명히 저번 달 사용액 중 최고액 1건에 대해서 이번 달 카드 결제일에 준다고 했었다.
저번 달은 5만 원짜리가 최고액이었다.
220퍼센트 캐시백이 만약 들어온다면 11만 원 상당의 비트코인.
괜히 두근거린다. 정말 들어오면 어쩌지?
비트업 거래소 가입 이벤트로 주는 2만 원은 이미 빼서 썼다.
현재 내 거래소 잔액은 0원.
마침 12시가 지났다.
혹시 하는 마음에 비트업 거래소에 로그인해봤다.
역시.
여전히 0원이었다.
띠링.
[캐시백 전송을 시작했습니다.]
또 그 열 몇 자리가 넘는 이상한 전화번호의 문자.
다시 거래소 어플로 들어가 봤다.
0원이었다.
새로고침을 누르며 계속 확인했지만 0원.
아무 변화도 없었다.
역시 보이스 피싱 사기였나?
잠이나 자야겠다.
이자를 어떻게 갚을지 한참 고민하다가 언제 잠이 들었나 싶을 무렵.
띠링.
[캐시백 전송을 완료했습니다.]
또 속으면 내가 병신이지 하면서도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어플을 열어봤다.
0.002972 (BTC).
현재 시세로 약 11만 원어치의 비트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