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9화 (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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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잘 걸렸다

잠이 순식간에 확 달아났다.

정말 들어오다니.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심 1퍼센트도 안 해봤다.

김호창과 차지영의 대화에서 주워들은 비트업 회원가입 이벤트 2만 원이 차라리 도움 됐지.

무한 캐시백이라. 믿는 놈이 바보 아닌가 싶었는데.

정말로 받고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인터넷에 ‘한국카드 무한 캐시백’을 검색해봤다.

‘한국카드’나 ‘캐시백’에 관한 검색어만 잔뜩 나오고 내가 찾는 건 없다.

아직 백 퍼센트 믿을 수는 없다.

11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보이스피싱으로 수천만 원 해먹으려는 놈들에게는 충분히 던질 수 있는 미끼다.

11만 원을 빌미로 내게 이것저것 요구해온다면 그때부터는 진짜 의심해야지.

만약 그런 일이 닥치면 이미 내 수중에 들어온 11만 원만 먹고 튀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뭐 어쩌겠어.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

검은돈일 확률도 희박하다.

고작 11만 원으로 무슨 비자금이니 마약 대금이니 그런 상상 하는 것도 웃기고.

하여튼 난 캐시백 준다기에 받았고 그걸로 끝이다.

당장 비트코인을 팔아치웠다.

매매 수수료는 0.05 퍼센트였다. 주식보다도 몇 배나 비싸다. 거기에 팔아치운 현금을 찾는데 또 출금 수수료 1천 원이 들었다. 내 돈 내가 찾아 쓰는데도 따로 돈을 내야 한다니.

결국 은행 계좌로 들어온 돈은 최종 ‘108,940원’.

5만 원을 쓰고 11만 원을 벌어들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실제로 희한한 사건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어떤 미친놈 머리에서 나온 마케팅 기획안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땡큐다.

인터넷에 검색도 안 되는데 광고 효과가 있을 리 없지.

조만간 당사 내부 사정으로 인해 이벤트는 종료된다고 문자가 올 거야.

기획했던 담당자는 최소한 시말서 각이다.

덕분에 잘 얻어먹고 갑니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만약이지만,

다음 달에도 또 캐시백이 오면 어떻게 될까?

‘실수로 내건 이벤트였고 겨우 11만 원이니까 그냥 이번에만 주고 끝내자’가 사실은 아니었던 거지.

정말로 다음 달에도 또 와버린다면?

어떻게 되나 보게 미친 척하고 한 백만 원 긁어볼까. 아니지. 그건 지금 내 형편에 너무 위험하다.

이 상황에서 쓸데없는 물건을 억지로 백만 원 주고 산다? 미친 거지. 사두면 결국 쓸 게 뭐 없을까.

이자는 카드로 안 받으니까 해당 안 되고.

큰 액수로 결제하면서 위험부담은 적은 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결국 220퍼센트 캐시백이 밤잠을 훔쳐가 버렸다.

거의 새벽이나 되어서 잠들었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과장님 얼굴이 핼쑥하시네요.”

“좋은 아침. 잠을 좀 설쳐서.”

“요즘 걱정이 많으시긴 하겠네요.”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김호창 대리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전혀 아닌데. 괜히 넘겨짚지 좀 마라. 항상 빗나가면서.

“부장님은 웬일로 벌써 출근하셨나 봐?”

점퍼가 의자에 걸려 있었다.

“네. 담배 피우러 나가셨어요.”

세본 건 아니지만 이기수 부장은 하루에 거의 2갑은 피우는 듯싶었다. 회사에서 피우는 것만 그 정도다.

그런데 희한하게 피부는 또 엄청 좋다. 피부는 타고나는 거란 걸 보여주는 산 증인.

이 부장이 차지영과 함께 들어온다.

“하하하하. 맞아.”

“호호호. 아이 참 부장님도. 근데 부장님은 피부가 어쩜 그렇게 좋으세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 거죠? 선크림 뭐 쓰세요?”

“선크림? 난 로션도 잘 안 발라.”

“진짜요? 대박.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시면서 어쩜 피부가 아기 피부 같으세요.”

“하하하. 그런 얘기 많이 듣긴 해. 얼굴도 동안이지?”

“···.헤헤헤. 네. 그럼요.”

차지영이 미묘하게 살짝 멈칫하다가 웃는다.

너도 먹고살려고 고생이 많다.

웬일로 영업 3팀 원들 모두 출근 시간보다 한참 여유 있게 나타났다.

이런 일은 석 달에 한 번 있기도 힘든데.

“아직 9시 되려면 좀 남았네. 난 바람 쐬고 올 테니까 다들 뭐 커피나 한잔하고 있어.”

지독하다. 아침부터 2연빵. 피우고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다시 또 담배 생각이 나다니.

회사에 담배 피우러 출근하나.

집 안에서는 마누라 등쌀에 못 피우니 차라리 일찍 나와서 피우겠다는 생각인 건지.

컵라면이나 먹으러 갈까.

“호창 씨는 안 출출해? 라면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든지.”

“그럴까요. 같이 가시죠. 시간도 넉넉하네요. 지영 씨는?”

“전 다이어트요.”

“맨날 다이어트래. 여자들은 무슨 1년 365일이 다이어트야. 지영 씨 여자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모닝 컵라면이 얼마나 죽이는데.”

“괜히 사람 의욕 떨어뜨리는 말씀 하지 마시고 두 분이서 다녀오세요.”

차지영이 텀블러에서 커피를 꺼내 홀짝거린다.

탕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과장님.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상테크요.”

“응.”

“그때 관심 있어 하셨잖아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카드 하나 만드시겠어요? 혜택이 엄청 좋은 건데. 저를 추천인으로 해서 발급하시면 저랑 과장님 둘 다 1만 포인트를 받거든요.”

곤란한 부탁이네. 평소라면 그냥 흔쾌히 들어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사정이 좀 안 좋다.

카드 단기간에 너무 많이 만들면 신용등급에도 안 좋다던데. 이자 못 갚으면 신용점수가 바닥에 처박힐 지경이다.

게다가 나는 한국카드를 어떻게 쓸지 지금 한창 고민 중이고.

“정말 미안해. 내가 요새 좀 복잡해서 상테크에 신경 쓸 시간이 없겠더라고.”

“알겠습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차지영 씨한테 말해봐야겠어요.”

“그게 좋겠어. 미안해. 부탁 못 들어줘서.”

“아이. 괜찮습니다. 관심 있으시길래 혹시나 하고 드려본 말씀이었어요.”

상테크 자세히 알아보긴 했는데 그걸로 돈 벌기는 힘들었다. 물론 시간만 넉넉히 있고 타이밍만 잘 맞추면 쏠쏠한 용돈 벌이는 충분해 보였다.

“호창 씨는 상테크로 얼마씩 벌어? 복잡하기도 하고 해서 난 못 하겠더라고.”

“저도 많이는 못 벌고요. 차지영 씨는 보니까 업무시간에도 꾸준히 사이트 돌아다니면서 상품권 싸게 파는 거 찾아다니던데요. 알림 설정까지 막 해두고요.”

차지영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긴 하다.

“저번에 보니까 한 번에 20장씩도 막 결제하더라고요. 20장이면 거의 백만 원인데.”

본격적으로 하면 상테크는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거구나.

“그런데 20장이면 그건 언제 다 일일이 현금으로 바꿔? 귀찮겠다.”

“사실 그게 제일 문제죠. 막상 해보면 엄청 귀찮아요. 내가 지금 겨우 요거 벌려고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저는 큰 욕심 안 부리고 적당히 하려고요.”

“그렇구나.”

“어서 드세요. 식겠어요.”

“호창 씨도 들어.”

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털어 넣었다.

우물거리다가 문득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가만.

왜 이 생각을 진작 못 했을까.

바로 상품권을 사는 것이다.

캐시백이 설령 안 들어오더라도 손해는 미미하다.

백만 원어치 상품권을 산다고 쳐도 많아야 몇천 원 손해에 불과하다.

만약 캐시백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들인 돈의 두 배가 넘는 2백 2십만 원이다.

이거야말로 안정빵이지.

라면을 먹고 돌아오면서 상테크족들이 자주 방문한다는 사이트를 뒤져봤다.

오늘 상품권 시세는 대강 이 정도구나. 좀 더 싼 가격의 세일 찬스가 뜨면 알려달라고 푸시 진동을 설정해뒀다.

오전 내내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더니 엉뚱한 곳에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응?”

팀원들끼리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차지영의 휴대폰과 내 휴대폰이 동시에 ‘위이이잉’ 진동을 시작했다.

차지영이 다급하게 손가락을 놀린다.

싸게 파는 상품권은 금방 품절 되기 때문에 타이밍이 생명이었다.

나도 재빨리 최대 구매 한도를 꽉 채워서 한꺼번에 한국카드로 일시불 결제를 마쳤다.

핸드폰 진동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상품권 핀번호가 내 핸드폰으로 하나씩 전송될 때마다 핸드폰이 몸살을 앓는다.

“서 과장.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차지영이 날 보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희미하게 웃는다.

차지영 핸드폰은 조용한 걸 보니 벌써 무음으로 해 놨나 보네.

초보가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음부터는 나도 잊지 말아야겠어.

제일 마지막 문자는 한국카드에서 온 것이었다.

[상품권 일시불 결제 922,000원]

와라.

다음 달 14일.

만약 이번에도 입금된다면 2,028,400원어치의 비트코인.

“다 먹었지? 그럼 들어갑시다.”

“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괜히 기분이 들뜬다.

이래서 사람들이 로또를 못 끊는구나.

2백만 원이 통장으로 들어올 상상을 하니까 미소가 저절로 피어오른다. 최악의 경우라도 겨우 몇천 원 손해 봤다고 치지 뭐.

어젯밤 캐시백 문자 이후로 따로 전화나 문자가 오지도 않았다. 분위기를 봐서는 다음 달에도 캐시백 쏴 줄 것 같기도 하고.

두근두근하네.

사무실로 돌아와서 상쾌하게 오후 업무를 준비했다.

띠링.

[안녕하십니까. 화성동탄 경찰서의 김명우입니다. 선생님 현재 거주지를 파악할 수가 없어 핸드폰으로 이렇게 직접 연락을 드립니다. 잠시 후에 통화 가능하시면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아래 연락처로 오늘 중에 한 번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시.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와장창 일그러진다.

이 보이스피싱새끼들.

11만 원 쏴주더니 이제 슬슬 작업이 들어오는구나.

문자에 적힌 번호를 곧바로 검색해봤다.

실제 화성동탄 경찰서의 내선 번호는 맞았다.

하지만 핸드폰 문자에 적힌 숫자를 곧장 눌러 통화 연결하면 실제 경찰서가 아닌 보이스피싱놈들이 있는 곳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렇게 문자를 만들어서 보냈겠지.

이런 건 바로 확인하는 게 좋다.

문자를 통하지 않고 따로 통화 창에서 숫자를 일일이 눌러 전화를 걸어봤다.

뚜우우 뚜우우.

[네. 화성동탄 경찰서 수사과 김명우입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다름 아니라 제 핸드폰으로 보이스피싱 의심 문자가 와서요.]

[아 그러셨군요. 보이스 피싱 신고 담당은 저희가 아니라서 담당 부서를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보이스피싱 내용이 김명우 경관님께서 저한테 용건이 있으니 문자를 보냈다고 해서요. 잠시 후에 통화를 하든지 아니면 이 번호로 연락을 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요? 잠시만요. 성함이랑 연락처가 어떻게 되십니까?]

[서지오입니다. 연락처는 지금 이 번호고요.]

[아~. 서지오 씨셨군요.]

어? 이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제가 문자 보낸 게 맞습니다.]

[저한테요? 왜요?]

무한 캐시백이 무슨 범죄 연관된 건가?

[다름 아니라 이지영 씨 아시죠?]

[네. 와이프였습니다만 지금 이혼소송 진행 중입니다.]

[그분이 서지오 씨를 고소하셨습니다.]

[저를요?]

[주거침입, 협박, 상해죄 혐의로요. 상해진단서도 증거로 첨부하셨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절대 아니에요.]

[상세한 건 오셔서 한 번 조사를 받아보시죠. 시간 언제가 편하십니까?]

이지영 이게 완전히 눈까리가 뒤집혔구나.

[제 변호사와 일단 얘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그러시죠.]

[도대체 언제 제가 그 여자를 때렸다는 말입니까?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십시오.]

경찰관이 서류를 뒤적거리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다.

[어차피 조사 과정에서 알려 드리지만 원하신다면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번 달 3월 28일입니다.]

가만 3월 28일 내가 어디서 뭐 했더라.

음~.

그래.

그날이 3월 28일이었잖아.

김지영 변호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게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지 선생님은 아마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흐흐흐흐.

기분이 갑자기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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