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11화 (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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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팔찌를 차봐야 얌전해진다

회사 복도에는 CCTV가 달려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건 1주일 치만 녹화된다.

오래된 분량은 자동 삭제된다고 하던데.

오늘 바로 백업을 해둬야겠어.

“겨우 이따위 조그만 회사나 다니는 걸 사위랍시고 받아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우리 지영이 좋다고 쫓아다니던 의사, 판검사들이 줄을 섰었어. 분수도 모르고 감히 우리 지영이를 넘본 주제에.”

“아주머니. 나가시라니까요. 경찰 부릅니다.”

경비분들이 고생이 많네.

“호창 씨.”

“예. 과장님.”

“112에 신고부터 해요. 업무방해하는 잡상인이 들어왔다고.”

“알겠습니다.”

“뭐? 잡상인? 너 이 새끼. 잡상인한테 한 번 뒤져봐라.”

장모가 복도에 전시된 화분을 집어 들었다.

“어?” “어어~” “아줌마. 그거 놔요.” “뭐 하는 짓이야.”

길쭉한 줄기를 두 손으로 붙든다.

그걸 마치 원반던지기라도 하듯 한 바퀴 돌리면서 날 향해 냅다 던졌다.

“아이고.” “피해요.” “이 아줌마가 돌았나.” “과장님. 피하세요.”

피하긴 왜 피하냐.

저 화분은 덩치만 컸지 가벼운 플라스틱이다.

깨지는 재질도 아니다.

퍼억.

손으로 적당히 막으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그래도 연기는 필요하겠어.

“으윽.”

화분에 남아 있던 흙이며 이물질이 와이셔츠 위로 쏟아져 내린다.

“과장님.” “세상에.” “괜찮으세요?” “저 여자 붙잡아.”

“놔. 이거. 어딜 만져. 너희들 전부 고소할 거야.”

장모는 양손이 경비들에게 제지당했지만,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저 개새끼를 쳐 죽여야 하는데. 이거 안 놔? 너희들 전부 한 편이라 이거지? 오 그래. 시발놈들 전부 두고 보자.”

사무실마다 모조리 나와서 구경 중이다.

나른한 오후의 졸음이 확 달아날 구경거리긴 하겠네.

“서지오 씨. 괜찮아?” “다친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다른 팀 사람들도 궁금해한다.

“호창 씨 신고했어?”

“네. 했습니다. 저 아줌마 어떻게 할까요?”

“경찰 오면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그때까지 다른 분들께 더 피해 안 끼치도록 붙잡고 있는 게 최선이야.”

경비들이 사고 못 치도록 완전히 둘러싸서 막고 있었다.

“서지오 개새끼. 저 시발놈이 우리 딸을 두드려 팼다고. 애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어. 이거 어떻게 보상할 거야? 동탄 촌구석 거기 콧구멍만도 못한 꼴랑 아파트 그거 팔아치워서 전부 우리한테 갖다 바쳐도 부족해.”

“아줌마 입 좀 다물어.”

“경비나 봐서 먹고 사는 주제에 뭘 안다고 나서.”

“뭐야? 이 아줌마가 안 되겠네.”

“여기 회장 나오라고 해. 이 회사는 깡패나 양아치만 다니는 곳이냐? 응? 쓰레기들만 모아 놓은 곳이냐고.”

장모가 전방위로 쌍욕을 해대는 사이,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저희 회사에 어떻게 잠입했는지 갑자기 들어와서는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저기 저분 보이시죠? 옷에 흙 묻은 분. 저분한테 화분까지 집어 던졌어요.”

“여사님. 직원분 말씀이 사실입니까?”

“저 새끼가 우리 딸한테 한 짓을 내가 설명해 드릴게요. 글쎄. 저 개새끼가 우리.”

“여사님. 당사자들 간의 내부 사정은 저희가 지금 알 필요가 없고요. 미주그룹에 들어오실 때 따로 방문증을 받거나 허락을 맡고 들어온 건 아니시죠?”

“그야. 여기가 무슨 비밀기지도 아니고. 아무나 들락거리는 일반 빌딩 아니에요? 내가 왜? 못 올 데 왔어요?”

“화분 던진 것도 인정하십니까?”

“그거야. 저 새끼가 처맞아 뒤질 짓을 했으니까 딸 가진 엄마 입장에서 당연히 가만 참고 있을 수가 없지. 댁은 키우는 딸 없어요? 부모 심정을 이해 못 해?”

“여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름은 왜요?”

경찰에게 내가 이름을 알려줬다.

“하숙향이라는 사람입니다.”

“어디서 건방지게 어른 존함을 함부로.”

“하숙향 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경찰관들이 하숙향을 둘러쌌다.

“하숙향 씨를 재물손괴, 특수폭행, 주거침입,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겠습니다. 자세한 절차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체포라니. 날 왜? 무슨 죄로? 내가 무슨 사람이라도 죽였어? 이거 놔.”

경찰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대사를 읊고 있었다.

“··· 변호사를 선임하실 수 있습니다. ···.”

“그래 변호사 불러. 국선 변호사 쓸 거야. 그 전에.”

하숙향이 갑자기 날 향해 달려들려 했다.

“저 새끼 때문에 내가.”

경찰이 곧바로 팔을 낚아챈다.

“놔봐. 저놈한테 할 말이 있다고.”

“여사님. 계속 이러시면 공무집행방해죄도 추가됩니다. 얌전히 체포에 응하세요.”

“우리 남편이 누군지 알아? 날 이렇게 함부로 대하면 큰일 나.”

“이분 안 되겠네.”

경찰관이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낸다.

수갑을 보고서야 하숙향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사모님. 정신 차리세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네요. 국회의원이나 재벌 회장도 잡혀가는 세상이에요. 조용히 따라오십시오. 도주 우려가 있어 계구를 사용하겠습니다.”

“하지만 저게···.”

결국 은팔찌를 차게 됐다.

“가시죠.”

장모는 얌전히 경찰을 따라 나갔다.

이기수 부장이 멀리서 허둥지둥 뛰어온다.

담배 피우러 도대체 어디까지 멀리 나가 있었던 거냐?

“아니. 이게 무슨 소란이야. 서지오 씨 어떻게 된 겁니까?”

“장모가 회사로 들이닥쳤습니다.”

“참나. 공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서지오 씨 실망이야. 이렇게 되면 회사에 피해가 아주 크지. 안 그래요?”

“죄송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변명하는 건 적절치 않다.

지금은 쏟아붓는 소나기를 맞으며 버틸 때다.

“내 입장을 한 번 생각해봐요. 부하 직원들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상사로 다들 날 여기지 않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확실히 내 편은 없다.

김 대리나 차지영도 남의 일인 마냥 외면할 뿐이다.

내가 장모를 초빙한 것도 아니고, 이혼소송 중인 사위의 회사로 몰래 숨어들어와서 이런 행패까지 부릴 줄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모든 게 결국은 내 불찰로 여겨질 것이다.

잘못된 선택.

외모만 보고 배우자를 고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는 것뿐이다.

“경위서를 작성해서 제출하세요.”

“알겠습니다.”

경위서 샘플을 찾아봐야겠네.

“서지오 씨 일은 이쯤에서 끝내고 다들 자리로 돌아가세요.”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미뤄서는 안 된다.

“서지오 씨는 어디 갑니까?”

“빌딩 관리실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경위서는 오늘 안으로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회사 CCTV는 빌딩 관리실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있었다.

“CCTV 녹화 사본이요?”

“네. 부탁드립니다.”

“아~. 혹시 오늘 미주그룹 사건 때문에 그러시는 거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제가 화분에 맞은 사람입니다.”

“아이구 저런.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다행히 별로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큰일 날뻔하셨네요. 알겠습니다. 원래 이거 저희가 함부로 외부로 유출시키지는 않는데 사건 당사자시니까 복사해서 드릴게요. 어디 다른 곳에 쓰시려는 건 아니시죠?”

“네. 물론입니다. 증거로 보관했다가 나중에 경찰서나 검찰에 제출하려고요. 여기 1주일 치만 보관하는 거 맞습니까?”

“명목상은 그런데요.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3일만 보관해요.”

한가하게 뒤로 미뤘으면 큰일 날 뻔했네.

무슨 사건이든 터지면 무조건 CCTV, 블랙박스부터 챙겨야지.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다.

0시가 지나자마자 캐시백 11만원 어치를 보낸다는 문자로 시작한 카드대금 결제일 14일.

경찰서에서 고소당했다고 문자가 날라오질 않나.

김지영 변호사와 통화하고 회사로 돌아오니 장모가 쳐들어와서 화분을 던져대질 않나.

참 다이내믹하네.

빌딩 관리실을 나오면서 김지영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또 일이 생겼습니다.]

[또요?]

아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무슨 혐의로 고소했는지 알아맞혔던 김지영 변호사도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할 것이다.

[장모 되는 사람이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정중하게 면담을 요청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몰래 회사로 들어와서 저한테 화분을 집어 던졌습니다.]

[···.]

거봐. 역시 이건 예상 못 했겠지.

[지금 화분이라고 하셨나요? 혹시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네. 플라스틱 화분이라 적당히 맞아줬습니다.]

[일부러 맞으셨다는 말씀인가요?]

[네.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목표는 돈이라고. 그래서 저도 합의금 최대한 챙기는 쪽으로 머리를 굴려봤습니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맞았습니다. 더 많이 받아낼 수 있겠죠?]

[서지오 씨. 참 뭐랄까. 하나를 설명해드리면 항상 미리 준비한 두 개를 꺼내 드시네요. 그래도 안 다치는 게 최우선이세요. 덕분에 배우자 말고 장모 쪽에게도 합의금 받아내실 수 있게 됐습니다. 경찰도 출동했겠네요?]

[네. 무슨 무슨 죄 어쩌고 하면서 현행범 체포당했어요.]

[그랬겠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혼 사건을 많이 다뤄본 건 아니지만 참 특이한 모녀네요.]

겪은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참 차분한 여자다.

변호사는 원래 다 이런 건지 싶기도 하다.

통화할 때도 항상 톤이 일정하고.

그래서 더 신뢰가 가는 변호사였다.

CCTV 얘기도 지금 말해두는 게 좋겠어.

[회사 복도에 CCTV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다 찍혔더군요. 제가 관리실에 말해서 복사본을 받아뒀습니다.]

[그건 정말 잘하셨습니다. 선생님이랑은 손발이 잘 맞네요. 의뢰인분들이 다 선생님 같으면 제가 참 일하기 편할 텐데요.]

[CCTV에는 녹음 없이 화면만 있더라고요. 녹음은 제가 핸드폰으로 해뒀습니다.]

[잘하셨네요. 분명 사람들 많이 듣는 곳에서 선생님에 대한 험담이나 욕을 했겠죠?]

[네. 제가 이지영을 때렸다고 알고 있더군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도 합의금이 적지 않습니다. 화분으로 던진 행위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맨손 폭행이랑 화분 던진 건 천지 차이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지금은 한참 많이 남은 먼 미래 같지만 언젠가는 모든 재판이 다 끝납니다. 그때까지 묵묵히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방법뿐이세요. 저희 로펌이 항상 선생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영업 멘트가 없었더라면 더 감동이 배가됐을 텐데.

아직은 고객 관리에 좀 서투시네.

[가사, 민사, 형사 모두 한꺼번에 진행해서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재판이 시작되면 출근 못 하실 날이 생길 수도 있으니 회사에도 미리 말해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역시 회사에서 찍히는 건 피할 수 없겠구나.

이혼한다고 하루 이틀 빠지는 걸 따뜻하게 응원해줄 회사 분위기는 아니다.

게다가 나는 영업 3팀에서 아군이 없다.

이기수 부장은 이번 장모 일로 자신이 피해 봤다고 여길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지영을 팼다는 소문이 회사에 퍼질 거라는 거다.

이건 최대한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이지영을 때렸다는 누명은 최대한 빨리 벗고 싶습니다. 회사에서 치명적입니다.]

[그러시겠죠. 그 부분은 저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아까 통화 중에 어떤 인물이 현장에 있었다고 하셨었죠?]

[네. 말씀드린 대로 그 변호사였습니다.]

[유리한 증거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 변호사가 만약 이지영에게 등을 돌렸다면 우리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요?]

[제가 3월 28일 녹음 파일을 훑어봤습니다. 변호사도 자기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더군요.]

맞다. 기억이 난다.

‘힘으로 싸우면 제가 질지도 모르니 만약을 대비해서 찍어야죠. 전 여기서 빠질 테니 나머지는 두 분이 알아서 하세요.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교차 검증이 됩니다. 우리가 내세울 녹음에 더해서 거기에 그 변호사의 증언이 있다면요. 그 변호사가 찍은 동영상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면 금상첨화겠네요.]

그자는 자기 입으로 동탄에서 일하는 총각 변호사라고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날 지켜줘야지. 동탄에서 매장당하고 싶어? 고객을 유혹해놓고 이제 와서.’

‘유혹이라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 사적으로 잠시 친분을 쌓은 것뿐입니다. 공사는 구별하자고요. 그리고 유혹은 사모님이 먼저 했잖아요. 그것도 총각인 저를.’

[동탄에서 일하는 미혼일 겁니다.]

[범위가 많이 좁혀지겠네요. 저도 따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변호사 업계는 워낙 좁아서 사실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아는 사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감사합니다.]

[최대한 이지영 측을 압박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누명을 제가 풀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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