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13화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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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가 봐도 너무 심했다

“그 이지영이라는 여자는 사고방식 자체가 정상적인 보통 사람과는 다릅니다. 선생님은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버티고 같이 사셨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대인배이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용건만 간단히 하자.

너랑 오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요?”

김정민 변호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말고도 남자가 많더군요.”

그건 이미 알고 있다.

남편 아닌 딴 남자의 핏줄을 둘씩이나 낳은 여자다. 너만 바라보고 살 거라는 착각은 너무 멍청한 거 아니냐? 하긴 사람 마음이 어디 제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인가. 이지영에게 잘못 얽혀든 니 팔자겠지.

“솔직히 알고 나서 저도 울컥 치밀어오르더군요. 한 대 쥐어패고 싶었습니다. 제 순정을 짓밟고 이용한 거 아닙니까? 안 믿으시겠지만 저는 결혼까지 생각했다고요. 애 둘 딸린 이혼녀랑 말입니다. 부모님한테도 얘기했었습니다. 만나고 있다고.”

그걸 굳이 내 앞에서 털어놓는 게 더 웃기네.

“선생님 저는요. 착수금도 안 받고 일 시작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예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저한테 접근한 여자예요. 공짜로 해먹을 변호사를 물색했던 겁니다.”

“어떻게 이용당했는지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어떤 짓을 꾸몄다는 겁니까?”

“이혼소송에서 위자료를 받아낼 증거 때문에 지금 저한테 오신 거잖아요? 그런데.”

“이지영은 저희 의뢰인을 상해죄로 고소했습니다. 상해 진단서까지 첨부해서요. 그 밖에도 주거침입죄와 협박죄도 포함해서요.”

김지영 변호사가 김정민의 말을 끊었다.

김정민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진다.

“결국 그 여자가 일을 저지르네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절대 동의하거나 부추긴 적 없습니다.”

김정민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실상은 이렇습니다. 얼마 전에 눈 주위가 약간 부었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었죠. 처음에는 그냥 넘어졌다고 얼버무리다가 제가 계속 추궁하니까 사실대로 털어놨습니다. 그것도 사실인지 이제는 못 믿겠습니다만.”

“뭐라고요?”

“맞았답니다. 자기를 쫓아다니는 사이코패스 스토커한테요. 느낌이 싸하더군요. 더 추궁하니까 결국 관계를 맺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저도 눈이 뒤집혔죠. 물론 맹세코 이지영에게는 손끝도 안 댔습니다.”

남자가 한둘이 아닌 여자라 누군지 정확히 짐작은 안 간다.

김정민 변호사가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신다.

“하아아. 어쨌든 그 여자가 저한테 묻는 겁니다. 맞은 걸로 합의금 얼마나 받아낼 수 있겠냐면서요. 상처는 사실 별거 없었습니다. 자세히 봐야 살짝 부은 정도였어요. 얼마 못 받을 거라고 대답해줬죠. 그러더니 자기한테 생각이 있다더군요.”

설마 이지영 미친 것이.

“남편이 한 짓으로 꾸미면 어떻겠냐면서. 그때부터 확실히 느꼈죠. 와아. 이년이랑 더 깊이 엮이면 진짜 좃되겠구나.”

김지영이 놀라서 되묻는다.

“그러니까 어떤 스토커에게 맞은 걸 제 의뢰인께 뒤집어씌운 거란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한술 더 떠서 자기가 아는 의사 있는데 거기 가면 최소 전치 3주 진단서는 끊어줄 거라고 하더군요. 허위진단서 소리 들을까 봐 단순 폭행으로는 어지간하면 절대 전치 3주 발급 안 해줍니다. 그때 또 느낌이 왔죠. 아~. 나 말고 또 어떤 의사 호구 하나를 물어놨구나.”

의사라.

누군지 짐작이 간다.

잠실 근처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 중인 대학 동창 조아람. 그놈이 분명할 것이다.

“제가요. 오만 정이 다 떨어져서 그 여자 때문에 안 마시던 술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그 스토커는 누구였을까?

누구한테 맞았는지 알 수 있다면 내 누명을 더 확실하게 풀 수 있을 것이다.

“스토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십니까?”

“저 그게. ···.”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에이. 여기까지 말씀드렸는데 다 털어놓겠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해주십시오.”

김정민이 자기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클릭했다.

“실은 이지영 몰래 그 여자 핸드폰에 고성능 위치추적 어플을 심어놨었습니다. 다른 남자 만날까 봐 너무 불안해서요.”

“뭐라고요?”

김지영 변호사가 깜짝 놀란다.

“당연히 그건.”

“네. 불법이죠. 하지만 다른 놈을 만나고 돌아다닐까 봐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라도 감시하고 싶었어요. 오래는 못가더군요. 알아차렸는지 얼마 못 가서 작동이 안 됐습니다. 스토커에게 맞았다는 날을 체크 해보니 동탄에서 강남역으로 갔다가 밤늦게 돌아왔었습니다.”

강남역?

여자들이 자주 가는 장소긴 하지만 고준호의 치과가 근처에 있다.

하필 스토커에게 맞았다는 날에 강남역이라.

너무 공교로운데.

“정확히 강남역 어디쯤인가요?”

“강남대로에서 논현동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어느 빌딩까지 가더군요. 거기서 잠시 머물다가 역삼역 인근의 어느 호텔로 들어갔었습니다. 그 스토커랑 같이 갔었겠죠. 더러운 ···. 하아아.”

김정민이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논현동 쪽으로 올라가다가 어느 골목에서 우회전하고 들어갔다.

그래.

어딘지 알겠네.

바로 고준호의 병원이 있는 곳이었다.

그 스토커는 고준호가 분명해.

필요할지 몰라 역삼역의 호텔도 위치를 기억해뒀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날 아파트에서 찍었던 동영상은 여기 있습니다.”

자기 책상의 PC를 켜더니 USB 케이블을 꺼내 핸드폰과 연결해서 파일을 전송해줬다.

“제발 꼭 부탁드립니다. 제 얘기를 경기지방변호사회에 먼저 알리지만 말아주십시오. 만약에 변호사회에서 어찌 알게 되더라도 아까 말씀하신 탄원서를 부디 좀. ···. 면목 없습니다.”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도움을 받았으니 제가 먼저 알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지영 그건 꼭 천벌을 받을 겁니다.”

“변호사님.”

“네?”

김정민은 아직 애증이 남아 있다.

나처럼 완전히 이지영을 털어 내버리지 못한 게 눈에 선하다.

“제가 누굴 충고할 입장은 못 되지만 이지영에게 더 집착하면 변호사님 인생이 완전히 망가집니다. 그런 미인을 한 번 겪어봤으니 어지간한 여자는 눈에 안 들어오겠죠.”

“휴우우.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미치겠습니다.”

김정민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건 모두 받아 챙겼다.

물론 김정민과의 대화도 처음부터 모두 녹음해뒀다.

이건 최대한 늦게까지 알리지 않는 게 좋겠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건 본인이 결정하십시오.”

김지영 변호사와 함께 김정민의 사무실을 떠났다.

김지영의 차를 얻어타고 곧장 경찰서로 향했다.

약속시간에는 좀 이르지만 늦는 것보다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게 낫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아까 그 스토커 아무래도 제 대학 동창 중 한 명 같습니다.”

“네?”

“고준호라는 놈인데 강남역 근처에서 치과를 합니다. 아까 이지영이 갔다는 그 장소. 거기 고준호의 치과가 있는 곳입니다.”

“그럼 이지영은 고준호라는 선생님의 동창과도 불륜관계를 맺었다는 말씀이신 거죠?”

“네.”

“그건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김지영 변호사가 혹시 의심할지도 모른다.

내가 따로 흥신소라도 고용해서 이지영에게 사람을 붙였다고 착각하면 곤란하지.

“동창회에서 아주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고준호가 자리를 비웠을 때 전화가 걸려왔는데 보니까 이지영 번호더라고요.”

“세상에. 참. 어이가 없네요.”

“제 얘기를 마저 들으면 더 놀라실 텐데요.”

“또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듣고 있던 또 한 놈이 갑자기 고준호에게 주먹을 날리더군요. 다들 의아해했죠. 알고 보니 그놈도 이지영과 붙어먹었던 겁니다. 조아람이라고 잠실에서 병원을 합니다. 제 생각에 상해 진단서도 아마 거기에서 발급받았을 겁니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역대급이네요. 이런 경우는 판사가 술자리에서 풀어놓는 썰 중에서도 최고급입니다.”

“판사들이 그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털어놓습니까?”

“판검사들도 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술자리에서 술안주 삼아 자기가 맡았던 재미있는 사건 많이 얘기해줍니다. 실명만 거론 안 하면 상관없어요.”

내 이혼 얘기도 그럼 누군가의 술안주로 맛있게 씹히겠구나.

“물론 저는 의뢰인들 사연을 밖에 얘기하지 않습니다.”

김지영 변호사는 왠지 그럴 것 같다.

“오늘 조사가 길어질까요?”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겁니다. 선생님께서 3월 28일 당일 무얼 하고 있었는지 주로 물어볼 겁니다. 특별히 대답하실 게 없습니다. 그 녹음 파일 하나로 끝이니까요.”

“그렇겠네요.”

“오늘 경찰 조사를 마치는 대로 늦어도 내일까지는 관할 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겠습니다. 이지영을 무고죄로 고소해서 맞불을 놔야죠. 담당 형사에게도 최대한 빨리 수사를 진행해달라고 압박하겠습니다. 형사도 상식적으로 이 사건을 조사한다면 선생님이 무죄라고 판단해서 불송치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혀 염려하지 마십시오.”

참 일 잘한다.

역시 시원시원하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라뇨. 당연히 제가 할 일입니다.”

무심히 먼 곳을 바라보며 내뱉는 대사에서 상남자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한 손으로 핸들을 크게 꺾는 모습이 터프하기 그지없다.

경찰서 주차장에서도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한 번에 후진 주차를 깔끔하게 성공시킨다.

이게 걸크러시지.

경찰 조사는 김지영 변호사의 말대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몇 가지 묻고 곧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참고인으로 불렀는지 피의자로 불렀는지 김지영이 경찰관에게 묻자 피의자라면서 이것저것 자세하게 캐물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말하고 필요한 증거도 일부 제출했다.

김지영은 전략상 지금 모두 털어놓는 것보다 나중 검찰 과정에서 집중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어차피 본 게임은 검찰로 송치된 이후부터이니 지금은 최대한 빨리 수사를 진행 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조사받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 의뢰인의 사건은 언제쯤 검찰 송치될까요?”

“글쎄요. 워낙 사건이 많이 밀려 있어서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 의뢰인의 무혐의는 워낙 명백합니다.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서둘러 진행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서지오 씨.”

“네.”

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수사관으로서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같은 남자로서 참 고생이 많으십니다.”

악수를 권하면서 내 손을 꼭 잡아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생면부지 형사가 건넨 한마디였다.

이렇게 위안이 될 줄이야.

갑자기 눈물이 핑 돌뻔했다.

“감사합니다.”

“추가 수사는 필요 없어 보이네요. 또 오시라는 말씀은 안 드릴 테니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김지영의 차를 얻어타고 동탄을 빠져나왔다.

처음 이곳에 아파트를 얻을 때만 해도 참 여기가 마음에 들었다. 내 터전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이제는 지긋지긋하단 감정뿐이다.

아파트 등기를 되찾으면 미련 없이 팔아치워 버릴까 싶기도 하고. 마침 가격도 엄청 올랐으니. 세금으로 많이 떼이겠지만.

웃기네. 이 와중에도 부동산 시세를 알아볼 생각을 하고 앉았다. 저절로 웃음이 난다.

“왜 갑자기 웃으세요?”

“아니요. 그냥요. 아파트를 되찾으면 팔 생각입니다. 팔면 얼마나 남을지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네요.”

“서지오 씨는 참 긍정적인 분이시네요.”

그러게. 지금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마포대교 난간에는 도대체 왜 올라갔을까.

정말 멍청한 짓이었지.

“선생님. 지금 당장 역삼역으로 가시죠.”

“그 호텔 말씀이십니까? 꽤 늦은 시간인데요.”

사실 나도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김지영에게 먼저 말을 꺼내기가 너무 미안했다.

오히려 먼저 제안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한시라도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호텔 CCTV를 확인해야 합니다.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 CCTV를 찾아보면 증거가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변호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섹시한 미녀가 나직이 내뱉는 멘트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드라마에서나 늘 듣던 이 평범한 멘트 자체가 원래 섹시한 거였나.

로스쿨에서는 아주 훌륭한 걸 가르치나 보네.

동탄을 어느새 저 멀리 뒤로 하고 서울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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