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14화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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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 각도

김정민이 알려줬던 그 역삼역 호텔로 가기 위해서 테헤란로에 접어들었다.

한창 바쁜 퇴근 시간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가는데 내 인생은 아직도 회사와 좁은 고시원만을 오가는구나.

이혼소송이 끝나면 달라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어찌 될지는.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

“운전 오래 하시느라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아니요. 운전 좋아해요. 역삼역에는 곧 도착하겠어요.”

말과는 달리 차가 엄청 막힌다. 평소에도 막히는 곳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심하다.

교통사고라도 난 건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아 이런. 테헤란로에서 3중 추돌 사고가 생겼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막히네요.”

“어쩐지 평소보다 심하다 했는데. 그랬군요.”

김지영 변호사가 핸들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린다.

걸어가면 30분 만에 갈 거리지만 최소한 몇 시간 걸리게 생겼다.

멀리 보이는 저 끝까지 모두 빨간색 후미등 행렬로 꽉 차 있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서울은 참 크단 말이야.

“안 되겠네요. 선생님. 내리시죠. 걸어서 가는 게 빠르겠습니다. 차는 어디 골목에 대놓을게요. 이런 날은 렉카도 막혀서 못 오긴 할 겁니다.”

이분 렉카를 너무 물로 보시네.

몇만 원에 목숨을 거는 분들이다.

빙글빙글 돌다가 최대한 골목 구석진 곳에 겨우 주차할 만한 한 자리를 발견했다.

“잠시만요.”

편의점에 들어가서 펑퍼짐한 바나나 우유를 2개 사 왔다. 힘들고 지칠 때 한국인에게 바나나 우유만 한 게 없지.

“걸으면서 드세요.”

“감사합니다.”

마침 목이 엄청 말랐다. 달콤함이 빨대를 타고 올라왔다. 캬아아. 역시 이맛이지.

김지영 변호사도 목이 말랐나 보네. 꿀꺽거리며 잘도 마신다.

집게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김지영 변호사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은근히 의사소통이 잘 된단 말이야.

2연속 바나나는 좀 그랬다.

이번에는 근처 편의점에서 또 다른 한국인의 피로 회복 음료인 커피 우유를 집어 들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마시던 추억이 떠오르네.

얼굴은 뻘게지고 손발은 퉁퉁 불어 터지던 곳.

투명한 플라스틱 포장에 든 커피 음료를 가위로 잘라 마셨던 기억이 난다.

바나나와 커피, 추억의 맛 두 가지를 음미하고 나서야 역삼역에 도착했다.

“저기네요.”

꽤 늦은 시간이었다.

여자랑 이 시간에 호텔에 와본 지도 엄청 오래됐네.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안 난다.

프런트에는 사무적인 표정의 직원이 우릴 반겼다.

“쉬었다 가실 거죠?”

“아니요. 그게 아니라 다른 용건 때문에 왔습니다.”

나와 김지영 변호사 얼굴을 번갈아 살핀다.

분명 남녀 2명인데 이 시간 호텔에 다른 용건이라니? 너희들 뭐냐?

그렇게 되묻는 표정이었다.

“이 호텔에서 묵었던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CCTV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 네.”

직원이 오히려 안심한다. 진상이라도 피울까 걱정했나 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자주 접하는 모양이었다.

“언제 오신 누구를 찾으시나요? 너무 오래전이면 못 도와드려요.”

김정민의 위치 추적앱에 기록된 날짜와 시간을 알려줬다.

“음~~”

왜 그러지? 설마 벌써 지웠나?

“저희는 원래 그렇게 오래 저장을 안 해두는데요. 모르겠습니다. 한 번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런 종류의 CCTV는 보통 저장 용량이 가득 차면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 저장한다.

덮어씌워 버리면 못 찾을 텐데.

아니면 따로 하드 복구 업체에 맡겨야 하나.

“저는 여기 일한 지 얼마 안 된 알바라서 사장님께 전화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네. 사장님. 전데요. 어떤 손님들이 오셔서 CCTV 보자고 하시는데요. 예. 예. 밑에서 두 번째 서랍이요? 알겠습니다. 찾아볼게요.”

전화를 끊더니 데스크 아래를 한참 뒤적거렸다.

“사장님이 그러시는데 CCTV 저장 하드를 몇 달 전에 대용량으로 교체하셨다네요. 달 별로 따로 보관하신답니다. 이거 같은데요. 찾았습니다. 여기서 보시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 현명한 사장님이시네.

요즘 하드디스크 가격도 많이 내렸던데 이참에 용량 업그레이드 하셨구나.

정확한 시간대를 아니까 찾기는 쉬웠다.

이지영과 고준호가 나란히 호텔에 들어온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대신 엘리베이터에서는 달랐다.

고준호가 이지영을 더듬거리기 시작했고 이지영은 손길을 뿌리친다. 영 보기가 추잡하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불편하시면 넘길까요?”

“아닙니다. 혹시 모르니 잘 봐둬야죠.”

이지영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김정민은 눈 주위가 부었다고 했었다.

만약 고준호에게 맞았다면 눈 주위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얼굴은 멀쩡하네요.”

“그러게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빨리 감기를 해봤다.

한 시간 반 정도 후에 고준호와 이지영이 다시 엘리베이터에 탄다.

이지영이 엘리베이터 옆면의 거울을 마주 보고 섰다.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마침 CCTV에 아주 가까이 잡히는 각도였다.

“어?”

“흐흐흐흐. 야아~ 이지영 씨. 이를 어쩌나.”

이지영의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호텔 엘리베이터 CCTV가 이렇게 선명할 줄이야.

너무 고마워서 돈만 많으면 그 업체 주식을 몽땅 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한 시간 반 전과 비교하면 눈 주위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 완벽합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찾을 수가 없겠네요.”

“후후흐흐.”

자꾸 웃음이 난다.

어디서 듣기로는 간통 현장을 덮치는 게 그렇게 짜릿하다던데.

이건 그것보다 수십 배는 더 지리는구나.

고준호한테 얻어 터져놓고서는 그걸 나한테 덮어씌울 발칙한 음모를 꾸미다니.

어디서 들은 건 있었겠지. 뭐였더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습니다.’

‘피해 여성이 흘리는 저 눈물이 바로 증거입니다.’

넌 내가 아주 탈탈 털어주마.

눈물이든 뭐든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한 자료를 모두 복사해서 챙겨왔다.

“두 분은 쉬었다 가시지는 않으세요? 리모델링 오픈 이벤트 행사 기간이라 대실 2시간 추가되는데요. 특별 사은품도 드리고요.”

직원이 눈치 없이 묻는다.

한 팀당 수당이라도 받기로 했나. 굉장히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네.

“그런 거 아닙니다. 저희는 CCTV만 보러 온 거예요.”

괜히 김지영 변호사한테 죄송하네.

“특별 사은품은 뭘 주나요?”

응?

“네. 추첨 쿠폰을 드리는데요. 1등은 제주도 항공 왕복 티켓 2장을 드립니다. 지금 대실하시면 팝콘과 샌드위치도 드실 수 있습니다.”

“그래요? 아 네. 행사는 언제까지 하나요?”

“다음 달까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가시죠.”

“네.”

변호사면 돈도 많이 벌 텐데 고작 팝콘과 샌드위치에 혹하다니.

애인이 따로 있나 보네. 하긴 없을 수가 없는 외모다.

김지영 변호사가 나오면서 호텔 외관을 유심히 관찰한다.

“선생님. 오늘 성과가 아주 많았습니다.”

“다 변호사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차분히 기다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조만간 선생님 근무하시는 회사로 이지영 측이 보내는 소장부본이 송달될지도 모릅니다. 당황하지 마시고요. 받으시면 저한테 바로 연락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검찰에 송치되면 제가 바로 연락드리죠. 검사가 판단해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선생님을 소환할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제가 변호사 복이 정말 많은가 봅니다.”

“살면서 변호사를 안 만나는 게 제일 좋죠.”

“하하하. 그렇네요. 차 있는 곳까지만 같이 가시죠. 저는 거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많이 늦었는데 들어가십시오. 이제 정체도 풀린듯하니 저는 택시 타도 되고 아니면 걸어서 가도 금방입니다. 선생님이 먼저 들어가시는 게 제 마음이 편합니다.”

아주 좋은 분이시네.

성실한 남자 만나서 백년해로하십시오.

이혼은 남들 소송으로만 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잘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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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변호사가 예측한 대로 회사로 법원에서 서류가 날아왔다.

어차피 내가 읽어봐도 잘 모르는 말이라 김지영에게 곧바로 전달해줬다. 걱정하지 말라며 평소대로 생활하시라는 대답뿐이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어차피 다 예상했던 바라서 그런가.

“근데 호창 씨. 비트코인이란 게 원래 그렇게 늦게 전송돼요?”

11만 원어치의 비트코인이 들어왔을 때 궁금한 게 있었다.

분명 12시가 지나고 카드 결제일 14일이 되자마자 캐시백 전송이 시작됐다는 그 문자가 왔었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야 비트코인이 실제로 들어왔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문득 생각난 김에 김호창 대리에게 물어봤다.

자기 말로는 비트코인 투자도 한다고 했었으니까 잘 알겠지.

“과장님. 요즘 비트코인 알아보시나 봐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하하하. 비트코인 투자 다들 그렇게 시작하시는 겁니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은행처럼 0.1초 만에 보내지는 게 아니고, 자기들끼리 무슨 네트워크를 운영해서 보내는 방식이라 오래 걸린대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

“그렇구나.”

“김 대리님은 비트코인 전문가시네요.”

“훗. 전문가는 무슨. 그냥 주워들은 거죠. 전에 내가 말했지. 지영 씨는 비트코인 아예 쳐다보지도 마. 지금 들어가면 무조건 물려.”

그럼 이번에도 12시 넘어서 만약 문자가 온다면 좀 뒤에 비트코인 캐시백이 들어온다는 뜻이겠네.

들어오기만 한다면야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 한 시간쯤 걸렸던 것 같다.

상품권을 거의 100만 원어치나 한꺼번에 카드로 샀다. 산 금액보다 약간 손해 보고 곧바로 현금화했고.

남은 건 14일에 200만 원이 넘는 비트코인이 들어오는 걸 기다리는 것뿐.

다음 주면 판가름 나겠네.

두 번째 캐시백이 과연 들어올지.

첫 번째는 거의 안 믿었지만 이번에는 왠지 확신이 간다. 이러다가 안 주면 실망도 더 크겠지만 희망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

장모가 회사로 쳐들어와서 행패를 부린 게 걱정이었는데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화장실이나 탕비실에서 내 뒷담화가 오가는 건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다들 직접 장모가 난동 피우는 걸 봤기 때문에 뒷말이 오히려 안 생겼다.

철저히 남의 일에 무관심한 게 우리 회사였다.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더 컸다.

회사에 어떤 소문이 돌고 있었다.

“과장님. 들으셨어요? 하반기에 대규모 감원이 있을 거라던데요.”

“누가 그래요?”

“사내 게시판에 익명으로 누가 올린 거 못 보셨어요?”

사내 게시판에 누가 진지한 글 올리냐.

마음만 먹으면 어떤 놈이 작성했는지 금방 찾아내는데.

‘이사님 너무 멋지세요’ 등등의 아부성 발언이 훨씬 더 많다.

혹시 모르지. 아주 윗선의 누가 일부러 정보를 흘린 걸지도.

게시판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은 있지만, 해고나 감원은 일 년 내내 떠도는 괴담이다.

우리 회사는 회장 일가의 코드네임이 있다.

회장은 탑1. 부인은 탑2. 큰아들은 탑3. 나머지 식구들도 비슷하다. 줄여서 그냥 1번 2번 3번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다른 회사들은 이니셜이나 ABCD로 정했다던데.

재계 서열 100위권에 간신히 들락거리는 주제에 이런 건 또 재벌들을 따라 한다.

“무려 탑3가 직접 언급했다던데요. 평소 게시판에 자주 출몰하는 아이디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탑3로 추정되는 인물이래요.”

김호창 말이 사실일까. 잔머리는 많이 굴리지만 의외로 회사 돌아가는 소식에는 빠삭한 녀석이다.

만약 진짜 3번 큰아들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인물이다.

그런데 하필 이런 시기에 이혼소송에 휘말리다니.

참 타이밍이 안 좋다.

거기에 장모까지 회사로 쳐들어와 설쳐댔으니 3번이 알게 되면 골치 아프겠는데.

이혼을 최대한 서둘러 마무리 지어야겠다.

정말로 이대로 캐시백이 계속 들어온다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회사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 들었다.

어떻게든 계속 월급을 받아먹어야지.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나가긴 어딜 나가.

“헛소문이겠지. 김대리는 그런 사내 루머에 관심이 되게 많더라.”

“인스타 사진을 올린 적이 있는데 배경이나 각도가 탑3 개인 인스타 사진이랑 똑같았대요.”

“어머. 그럼 탑3가 맞는 거잖아요.”

괜히 후달리네. 칼바람이 몰아칠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항상 섬뜩하다. 설마 별일 있겠어.

일단 비트코인 캐시백부터 받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자.

나도 취미로 회사 좀 다녀봤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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