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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한도를 뛰어넘을 방법
“남궁형. 방금 차테크라고 그러지 않았어?”
“아니. 가는 건 순서가 없다고 했다. 왔다가 가는 세상 워우어어어.”
“차테크라는 게 그거 말하는 거지? 차 싸게 사서 몇만 원이라도 남기고 되파는 거.”
“요즘은 그거 힘들어. 거의 새 차 같은 인기 차종이면 또 모를까. 출고 너무 길어져서 못 기다리고 덥석 사는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하여튼 차테크는 어렵다고 봐야지.”
“그렇겠네.”
“카드 실적은 왜 채우려고? 카드 설계사랑 눈 맞았냐? 야 임마. 이혼부터 하고 여자 만나라. 방부터 빼고 새 입주자를 구해야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돈 많은 이혼남이면 모를까. 알거지면서 여자부터 찾기는. 새장가는 나부터 좀 가자.”
“남궁형. 새장가는 나이순이 아니야.”
“이거이거. 만나는 여자 있구만.”
“없다니까.”
신차 구매는 카드 한도가 없다고 들었다.
일시적으로 카드 한도를 신차 가격만큼 상향시켜 준다고 알고 있다.
현재 내 카드 한도 1천만 원을 뛰어넘어 2천, 3천만 원짜리 차를 카드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신차 일시불 구매는 어때? 카드사에서 오토캐시백 준다던데.”
“고시원 사는 놈이 무슨 새 차를 사. 카푸어 되고 싶냐? 신차 카드 일시불로 사면 캐시백 주긴 주지. 한 1프로 되나. 함 찾아봐야겠다.”
남궁형이 핸드폰을 들더니 한참 검색한다.
나도 술잔을 내려놓고 ‘오토캐시백’을 찾아봤다.
카드사마다 다르지만 거의 1퍼센트쯤 됐다.
근데 이게 생각해보니 큰 의미는 없네.
내가 1퍼센트 캐시백 받아서 신차 사봤자 그거 그대로 중고차로 팔아도 어차피 최소 몇십만 원은 무조건 손해다. 살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물론 220퍼센트 비트코인 캐시백이 입금되기만 한다면 몇십만 원 손해는 아무것도 아니다.
첫 번째 11만 원에 이어 두 번째 200만 원까지 실제로 들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들어오는 건 거의 틀림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자동차 동호회 끼고 하면 추가로 캐시백 더 주네. 난 예전에 그냥 할부로 사서 몰랐는데. 진작 알아볼걸.”
신기하다.
중간에 자동차 동호회 한 단계를 더 거치는 데 오히려 저렴해지다니.
“그러게. 잠깐만. 어? 킹카? 어디서 많이 들어봤나 했더니. 여기 내가 아는 분이 회장인 곳이다. 그 양반 자동차 동호회 한다고 하더니 꽤 규모가 컸구나. 난 그냥 회원 몇 명 데리고 술이나 마시는 줄 알았는데.”
자동차 동호회도 여러 군데였다.
그중 남궁형이 말하는 ‘킹카’라는 이름의 동호회도 있었다.
카드사가 주는 기본 캐시백 1퍼센트에 추가로 거의 1퍼센트에 가까운 캐시백을 준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그럼 신차를 카드 일시불로 구매하면 캐시백을 2퍼센트나 받는다는 거잖아.
3천만 원이면 캐시백으로만 60만 원이다.
어차피 나는 카드 일시불로 산 뒤에 중고차로 누군가에게 넘겨야 한다. 중고차로 파는 만큼 손해는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일단 최대한 오토캐시백은 많이 받을 수 있는 쪽으로 알아봐야지.
“남궁형. 나 그 회장님 소개해줘.”
“맨입으로?”
“오늘 내가 살게.”
“벼룩의 간을 빼 먹지. 돈도 없는 놈한테 어떻게 얻어먹냐. 사나이끼리는 술값 누가 계산하네 마네 그런 거 따지는 거 아니야.”
“저번에 얻어먹을 때는 되게 좋아했으면서.”
“그때는 임마. 하여튼. 그 양반한테 얘기해 놓을 테니까 주말에 한 번 찾아가 봐.”
“고마워. 오늘 갑자기 돈 들어온 곳이 생겼으니 오늘은 내가 쏠게.”
“히히히히.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소개비라고 생각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
“그렇지? 그럼 안주 좀 더 시키자.”
다음날 남궁형이 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안녕하세요. 남궁형님이 말씀해주셔 전화 드렸습니다. 서지오라고 합니다. 회장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독고재입니다.]
남궁형에게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실제로 들으니 더 웃기네.
[어쩐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지금 큰아이 밥 먹이는 중이라 제가 좀 바쁩니다만.]
[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 드릴까요?]
[네. 고급유로요. 만땅 채워 주세요. 아닙니다. 통화 가능하니 말씀하십시오.]
아이 밥 준다는 게 설마 기름 넣고 있다는 뜻인가?
[제가 신차를 카드 일시불로 구매하려고 하는데요.]
[아 그러셨구나. 위치가 어디세요?]
[강남 쪽입니다.]
[그래요? 가깝네. 그럼 내가 애 데리고 바람이나 쐴 겸 놀러 가지요. 주소 문자로 보내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30분도 안 돼서 차 한 대가 슬금슬금 도착하더니 정차한다.
깨끗한 수준 정도가 아니라 방금 출고되어서 나온듯한 외관이었다. 새 차는 분명 아닌데 저렇게 관리를 할 정도면 차에 도대체 얼마나 시간을 많이 들이는 건지.
조수석 창문이 열린다.
“서지오 씨?”
“네.”
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창문이 다시 올라간다.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닫는다.
“아까 통화했던 독고재라고 합니다. 신차를 알아보신다고요.”
“네. 카드 일시불로 결제를 하려고요. 캐시백에 관해서 문의를.”
“잠시만요. 지금 차 뭘 몰고 계세요?”
“제가 사정이 있어서 차는 최근에 팔았습니다.”
“그럼 그 차는 오토였습니까?”
“네.”
“흐으음.”
표정이 안 좋아진다.
“제가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딱 3종류 있습니다. 손 세차 안 하는 사람. 차량 정비 카센터에 그냥 떠맡기는 사람. 그리고 남잔데 오토 타는 사람.”
아니 요즘 스틱 모는 사람이 어디 있어.
“차는요. 온몸으로 느끼는 거예요. 엔진이 헐떡거리면서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려고 할 때 똬아악 클러치를 막 ···. 머신을 한계까지 끌어올려서 머신과 내가 하나가 되는 그 경지. 신차합일의 오르가즘을 느끼려면 수동이 아니고서는 그 맛을 알 수가 없지.”
“아 네.”
자기 주관이 아주 뚜렷하신 분이네.
“이놈 별명이 횡운골입니다. 횡운골이라는 이름 들어봤어요?”
자기 차를 어루만지면서 내게 물었다.
“못 들어봤습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여덟 마리 준마 중 하나예요. 구름을 가르는 송골매란 뜻이지요. 멋지지 않습니까? 제가 손수 하나하나 전부 튜닝했습니다.”
“혹시 그럼 차가 8대 있으시단 말씀이십니까?”
“네.”
얼마나 부자길래.
그보다도 차를 8대나 뽑을 때까지 이분 와이프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
“유지비가 아주 많이 드시겠네요.”
“예전 집사람이 그러더군요. 오빠. 차야 나야? 둘 중 하나만 선택해.”
역시.
“그래서 저는 이 녀석들을 선택했습니다.”
“차 때문에 설마 이혼하셨다는 말씀이세요?”
“여자는 또 만나면 돼요.”
보통은 반대로 말하지 않나?
남궁형 주변에는 왜 이렇게 이혼한 남자들이 많은 건지. 남궁형이 풍기는 이혼 아우라 때문인가.
“제가 차는 비록 오토를 탔지만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남궁형이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 양반 좀 별나. 이것저것 까다롭게 많이 따지더라고. 근데 운전병이었다고 말해. 그러면 대강 넘어가 줄 거야.’
남궁형이 내게 건넨 비단 주머니는 ‘운전병’이었다.
“군대에서 운전병이었습니다.”
물론 구라다.
차를 싸게 살 수만 있다면 이 정도 구라쯤이야.
“그래요? 정말입니까?”
“네.”
“그러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운전병으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지 암 그럼.”
날 바라보는 눈빛이 아주 따뜻하게 변했다.
“탑시다. 한 바퀴 돌면서 얘기해요.”
이제야 차에 태워주네. 아무나 태우는 건 아닌 게 분명했다.
“실내화 신는 거 잊지 마시고. 신발은 거기 봉투에 담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 내부도 엄청 깔끔했다.
담배 냄새는 당연히 전혀 없고 은은한 모과향이 풍긴다. 방향제를 쓰지 굳이 이런 자연 모과향까지.
“어릴 때 차 뒤에 있던 모과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일부러 아주 어렵게 좋은 모과를 구했지요. 어때요?”
“향기가 아주 좋습니다.”
“그래. 무슨 모델을 사시려고요?”
차종은 어차피 상관이 없다. 내가 타려고 사는 것도 아니니 무조건 잘 팔리고 현금화가 쉬운 게 좋지.
“딱히 차종을 정해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선호하는 차종은 있을 거 아닙니까? 나잇대를 보아하니 SUV나 뭐. 세컨차면 해치백도 요즘 많이들 타시고.”
결정적인 건 숨기되 최대한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겠지.
“실은 제가 카드 실적을 채워야 합니다. 신차 구매로요.”
“무슨 카드길래 카드 실적을 그렇게나 많이 채웁니까?”
“사정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하고요. 카드 일시불로 신차를 구매하되 곧바로 중고차로 팔 생각입니다.”
“그래요? 당연히 손해를 보실 텐데. 카드사 혜택이 얼마나 좋으시길래 그러는지는 몰라도.”
“손해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종도 상관없고. 아예 차 상태도 별로 상관없으시겠네?”
“네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전시차라는 게 있어요. 이름 그대로 대리점에 전시만 되어 있는 거지요. 대신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재고차라는 것도 있고.”
“재고차는 정확히 뭔가요?”
“미리 생산해 놨는데 안 팔리고 남은 거죠. 요것도 연식에 따라서 한 몇십만 원 더 싸게 가능합니다. 인수거부차는 좀 찝찝하실 테고.”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중고차로 사시려는 분이 아무래도 꺼림칙 하시겠죠.”
“그러면 선출고 차량은 어때요?”
선출고? 그건 뭐지?
“지점이나 딜러 애들이 실적 채우려고 미리 뽑아두는 거죠. 걔들이 물량 떠안고 있다가 신차 출고 못 기다리고 빨리 인도받으려는 사람들한테 파는 겁니다. 좀 싸게 팔지요. 차 상태는 새 차나 다름없어요. 비닐도 그대로 붙어 있고.”
문제는 구매자다.
살 사람이 있어야지. 살 사람도 없는데 덥석 내가 샀다가 몇 달이고 안 팔리면 얼마나 손해냐.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내가 카드로 결제할 신차를 100퍼센트 현금으로 구매해줄 사람.
“회장님의 킹카를 거쳐서 신차를 구매하면 카드사에서 주는 기본 캐시백 말고 거의 1퍼센트 정도의 추가 캐시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린 아주 투명하고 깔끔하게 운영해요. 어차피 수수료 누가 얼마 먹는지는 이제 영업비밀도 아니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요즘은 오히려 차 사는 사람들이 더 빠삭해. 딜러끼리 경쟁 붙여서 서비스 더 많이 뜯어낸다니까.”
“제가 카드로 신차를 구매하고 산 가격에서 약간 손해 보고 즉시 중고차로 팔겠습니다. 사는 분은 신차나 마찬가지인데 대신 이득 보고 싸게 사는 거죠. 그렇게 구매하실 분을 알아봐 주십시오.”
오늘 독고 회장을 만나기 전 미리 킹카 자동차 동호회에 대해서 상세히 알아봤다.
실제 거래 후기나 업계평판이 아주 좋았다.
사고 차량을 떠넘기거나 주행거리를 속이는 짓을 하는 곳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서지오 씨 입장은 그러니까 중고차로 넘길 때 손해를 최소화하고 싶다는 뜻이겠군요.”
“맞습니다. 제 카드 결제액은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그래요? 그럼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지겠네.”
나는 카드 일시불로 결제만 하면 된다.
나머지 수수료를 둘러싸고 딜러랑 킹카 동호회가 어떻게 나눠 먹는지는 관여할 바가 아니다.
오히려 해먹을 게 있어야 사람은 열심히 자기 일처럼 뛰어다니는 법이지.
현실적으로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좋습니다. 제가 상태 좋은 놈으로 알아봐 드리죠. 구매자도 당연히 물색해드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서로 윈윈합시다.”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여긴 방에서 밥을 못 해 먹는 대신 공용 휴게실이 있었다.
전자레인지가 있어서 간단한 레토르트 음식은 해 먹을 수가 있다.
출출해서 3분 요리를 하나 돌리고 휴게실 의자에 앉았다.
다 비슷한 처지의 취업준비생이나 직장인들이었다.
좁은 방에 있으려니 답답한지 나처럼 뭘 먹으면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와아아. 이 여자 장난 아닌데요.”
“어디? 오~. 몸매 대박.”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저렇게 서로 친분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휴대폰을 함께 보며 킬킬거린다.
“모자이크했는데도 미모가 모자이크를 뚫고 나오네.”
“얼굴보다 몸매가 쩌는데요. 탈 동북아스러운 핫글래머 아닙니까?”
“남편이 바보네. 이런 여자를 놔두고 이혼하다니.”
“이 정도 몸매면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무조건 용서해줘야죠.”
TV고 어디고 전부 그놈의 이혼 타령이다. 아주 지긋지긋하네.
“큰 화면으로 보죠.”
“그러자. 휴게실 티비 틀어봐.”
아니 시발.
작정하고 풀어헤친 이지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