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18화 (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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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을 붙여라

모자이크를 했지만 도저히 몰라볼 수가 없는 실루엣이었다.

갈라서더니 봉인해제라도 한 건가.

원래도 꽁꽁 싸매고 다니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아예 다 벗고 나오지 그랬냐.

같은 고시원의 두 녀석은 텔레비전 속 인물의 남편이 바로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감상하고 있었다.

“흐흐흐흐. 저런 여자랑 결혼한 놈은 도대체 어떤 녀석일까?”

“돈 많은 부자 아니었을까요?”

“그건 알 수 없어. 의외로 저런 여자들이 평범한 남자랑 결혼하기도 한다니까.”

“그럼 저도 희망이 있는 겁니까?”

“넌 아닐걸.”

“아~ 부럽다. 나도 저런 여자랑 살아 봤으면.”

그건 그래.

나도 이지영과 처음 만날 때는 이런 미인이 왜 굳이 나 같은 평범한 남자랑 사귀는지 궁금했었다.

언제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넌 나랑 왜 만나냐?’

‘그냥.’

‘지금도 너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들 많잖아. 나랑 같이 있으면서도 톡이랑 문자가 계속 오는데.’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연락하는 거야. 오빤 날 못 믿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마지막 탈출 기회였었다.

왜 그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나.

어딜 가도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은 똑같았다.

이지영의 외모에 놀라면서 당연히 같이 다니는 내가 굉장한 부자라고 믿었다.

그저 그런 100대 기업 미주그룹에 다니는 대리라고 하면 깜짝 놀란다.

우리 아버지가 지방 유지거나 아니면 어디 알부자 건물주냐고 물어봤었다.

아니라고 해도 겸손하시다면서 오히려 자기들끼리 부잣집 아들이라고 짐작하곤 했다.

하여튼 종편 프로그램은 오로지 시청률만 생각한다니까.

제목부터 ‘이것이 이혼이다’라니.

이혼을 방금 했거나 앞두고 있는 남녀를 불러 이런저런 스토리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이지영의 일방적인 주장만 퍼 나르고 있었다.

[그런 남자랑 사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말도 마세요. 제가 ···. 흑.]

우는 척하지 마라.

저건 불리해지면 항상 울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더라.

[시부모라는 분들은 또 절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장모는 매주 쳐들어와서 용돈 내놓으라고 나를 닦달했다.

그에 비해 우리 부모님은 결혼하고 나서 우리 집에 오신 게 3번도 안 된다.

그때도 식사를 대접하기는커녕 자기는 요리를 못한다고 배달을 시켜서 시부모를 먹인 여자다.

아들이 눈치 보일까 봐 며느리에게 연락하는 것 자체를 자제하셨다.

[남편은 저를 외롭게 방치 했어요.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참고 또 참는 수밖에 없었죠.]

누가 들으면 내가 바람이라도 피우면서 밖으로 나돌아다닌 줄 알겠네.

[두 분 사이에 자녀가 두 명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하지만 모두 그 사람의 아이가 아닙니다.]

[어?] [어머어머.] [아이고. 저런.] [우와아아.]

방청객들이 화들짝 놀랐다.

[정말이십니까?]

사회자마저 놀라서 되묻는다. 어차피 대본에 있을 거면서 놀라는 척하기는. 다 짜고 치는 거 아닌가.

[네.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저에게 잠시나마 사랑을 알게 해 줬던 분의 소중한 생명이니까요. 남편과 저의 관계가 사실상 이미 끝난 후에 낳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절대 아니다.

그날 내가 진실을 의심하기 시작한 당일에도 이지영은 여전히 내 카드로 배달을 시켜 먹고 쇼핑을 즐겼다.

명목상이지만 우리의 부부 관계는 평화로웠다.

혼자 큰아이를 데리고 소아과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 자녀분 혈액형이 O형 맞으세요?’

‘네. 제가 알기로는 그런데요. 아닌가요?’

‘으흠~. 다시 한번 검사해보겠습니다.’

잠시 후에도 결과는 같았다.

‘역시 O형이 아닙니다. B형이세요.’

‘B형이라고요? 저랑 제 처 둘 다 O형인데 자녀가 B형이 가능합니까?’

‘혈액형 검사라는 게 100 퍼센트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주 드물게 그런 경우도 일어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상한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오해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을 혼자 고민하다가 결국 아내 몰래 유전자 검사를 해 봤다.

누가 갑자기 내 가슴팍을 벽돌로 내려치는 기분이었다.

이 가증스러운 것은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자기 자식 혈액형까지 거짓말로 둘러댄 것이다.

그때부터는 지금까지 모든 하루하루가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럼 이혼 후에는 그분과 새 출발을 하실 계획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은 저에게 너무 고통만 안겨줬어요. 또 결혼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쓸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남자들에게만 너무 유리하잖아요?]

사회자도 여자였다.

[맞습니다. 제가 여자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니까요.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성분이 무심한 어느 남편의 희생양이 되어 청춘을 낭비하다니. 참 너무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시발 아주 가관이네.

방송이 이렇게 무섭구나.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이지영은 교묘하게 자신이 불리한 것들은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다.

당장 나 몰래 서류를 위조해서 아파트 등기를 자기 앞으로 돌려놓은 것부터 시작해서. 착수금도 안 주고 선임한 변호사와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결정적으로 내 대학 동창들과 그것도 둘씩이나 붙어먹은 사실까지.

저기 앉아 있는 방청객들이 들으면 뒤로 나자빠질 행적들이다.

[용기를 내 오늘 출연을 결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요. 그나저나 아주 대단한 미모시네요. 이 방송이 나가면 여러 군데서 섭외 전화가 많이 걸려오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당분간은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인생에 대해 고민하려고요.]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나도 맞대응을 해야 한다. 요즘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꾸어다 놓은 가마니 취급당한다는 말이 있다.

김지영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퇴근하셨을 시간이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 드렸습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오늘 종편에서 ‘이것이 이혼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봤는데요. 거기 이지영이 출연했습니다.]

[안 봐도 어떤 내용일지 뻔하네요.]

[저에 대해서 불리한 얘기들로만 가득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프로그램들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최대한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률 올리기만 급급하죠.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청구해도 아마 소용이 없을 겁니다. 법에 안 걸릴 만큼 교묘하게 선을 지켰을 테니까요. 따로 손해를 배상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기껏 해봐야 방송 시작 전에 정정 화면 하나 잠깐 내보내는 게 전부일 겁니다.]

[그렇군요.]

역시 방법이 없나?

[하지만 선생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전에 말씀드렸죠? 더 많이 미치는 쪽이 이긴다고요. 상대가 저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방법은 있습니다.]

설마?

[저보고 방송에 출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현실적으로 이지영 측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렇기는 하다.

다만 지금도 탑3 임누리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힌 상태다.

다행히 1심 판결까지 시간은 벌어뒀다. 무죄가 나오면 오히려 차장으로 승진까지 시켜준다고 했고. 하지만 방송에 나가면 분명 또 임누리의 눈에 띈다.

현 시점에서 굳이 내 자신을 더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뭔가 더 좋은 수가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굳이 나서지 않으면서 이지영의 치부를 드러낼 그런 방법 말이다.

문득 어떤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꼭 제가 직접 방송에 나오는 것 보다요. 이건 어떨까요?]

[어떤 방법 말씀이십니까?]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이지영은 제 동창들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종편 방송사에 그 동창들에 대해서 제보하는 겁니다. 두 명 다 마침 강남역과 잠실 쪽에서 치과와 개인 병원을 운영 중입니다. 아주 자극적인 소재가 될 것 같은데요.]

[그거 괜찮네요. 저도 사실 선생님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시는 건 좀 위험부담이 크다고 봤습니다.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아무래도 방송이라는 건 양날의 검이니까요.]

[방송을 탈 수 있을까요?]

[그 종편 프로그램이라면 기꺼이 받아줄 겁니다. 얼마나 자극적일까요. 그 프로그램 PD가 아주 두 팔 벌려 대환영할 것 같은데요. 알아서 치과랑 병원까지 찾아가서 인터뷰를 시도할 겁니다. 물론 인터뷰를 거절하면 주변 시민들 반응을 내보내겠죠.]

그래. 이걸로 가자.

[선생님은 추잡한 싸움에서 발을 빼시고 이지영과 그 두 동창들끼리 신나게 싸우는 걸 구경하시는 겁니다. 그 동창들 병원 이름과 위치를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방송국에 제보하겠습니다. ]

[변호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나 제게 큰 힘이 되는지 말도 못 하겠습니다.]

[변호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그럼 쉬시죠.]

언제 통화해도 정말 시원시원한 여자다.

뉘 집 따님인지 참 반듯하게 잘 자랐네.

김지영 변호사에게 곧장 고준호의 치과와 조아람의 병원에 대한 정보를 문자로 보냈다.

분명 종편 방송국에서도 군침을 흘릴만한 재료 거리다.

한 여자를 둘러싸고 남편의 두 동창이 강남역 한복판 술집에서 자기 아이라고 주먹다짐을 벌인다.

이 얼마나 짜릿한 진흙탕 개싸움인가.

**

“좋은 아침. 일찍 출근했네.”

“과장님 오셨어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웬일로 김호창 대리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를 맞이한다.

아침에는 항상 썩은 표정으로 다 죽어가던 녀석이 어쩐 일인지.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주위를 서성거린다.

“왜? 무슨 일 있어?”

“실은 어제 텔레비전을 보다가요. 우연히 ‘이것이 이혼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봤거든요. 혹시 거기 나온 분이 과장님 사모님 아니세요?”

어쩐지.

아니라고 잡아떼기도 뭐하다.

“곧 이혼하니까 사모님이란 소리는 빼.”

“맞구나. 제가 막 입사하고 결혼식 때도 뵀었는데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왠지 사모님. 아 죄송합니다. 그분 같더라고요.”

“호창 씨만 본 게 아닐 테니 오늘 중으로 회사 사람들 전부 다 알겠네.”

“저는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남의 가정사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면 안 되죠.”

아이고~ 어지간히도 그러겠다.

분명히 차지영이 출근하면 둘이서 신나게 씹어 재낄 거면서. 이기수 부장도 출근하면 한마디 거들겠지.

다른 팀원들도 오다가다 물어볼 테고.

어차피 예상한 일이다.

우우웅. 우우웅.

자동차 동호회 킹카의 독고재 회장 번호였다.

[서지오 씨. 접니다. 딱 알맞은 신차를 찾았습니다. 서지오 씨가 카드 일시불로 구매하시면 곧바로 중고차로 양도받겠다는 분도 마침 계시네요.]

[잘됐네요. 회장님 감사합니다. 차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국산 차종 중에서 제일 무난하면서도 잘 팔리는 녀석입니다. 선출고 차량이라 지금 당장이라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풀옵션이고 제가 최대한 저렴하게 협상해서 2400만 원까지 깎았습니다.]

2400만 원 카드 일시불 결제.

만약 세 번째 비트코인 캐시백이 14일 정확히 들어온다면 5280만 원이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좋습니다. 당장 진행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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