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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변화
“내부 함부로 찍으시면 안 되세요.”
“여기가 고준호 치과 아닙니까?”
“맞는데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원장님께 빨리 말씀드려.” “네.”
“저희는 이것이 이혼이다 라는 방송 프로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메인 피디입니다. 얼마 전 방송에 나간 동탄의 그녀 편에 출연했던 분과 여기 원장님이 불륜관계라는 소문이 있던데요. 사실인지 확인해 보려고 나왔습니다. 물론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요.”
고준호 치과 라운지에서 대기 중이던 환자들이 깜짝 놀란다.
“어?” “나 저 프로 자주 보는데.” “거기 나왔던 여자랑 여기 원장이 그렇고 그런 사이란 말이야?” “뭐야? 여기 불륜 치과였네.”
고준호 원장이 서둘러 뛰어나왔다.
“댁들 뭡니까? 카메라 당장 꺼요. 경찰 부르기 전에.”
“몇 가지 문의드리러 왔습니다. 저희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나가라니까. 실장님. 당장 112 신고부터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카메라부터 끄라니까. 여기 환자분들 계시는데 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불륜 의혹이 있는 여성의 남편분과 대학 동창 사이라던데요. 맞나요?”
고준호 원장을 제외한 모두가 화들짝 놀란다.
“응?” “남편 친구였어?”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엮이냐.”
고준호가 메인 피디의 멱살을 움켜쥔다.
“너 뭐야? 어디서 그딴 헛소리 주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처맞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이거 엄연히 영업 방해야.”
“지금 댁이 나한테 하는 건 폭행, 협박 같은데. 아닌가? 우리 회사 법무팀 소속 변호사한테 문의해봐야겠네. 카메라 감독님. 이거 다 찍고 있죠?”
“예. 그럼요. 앵글이 아~주 좋다.”
고준호가 일단 멱살부터 푼다.
“나가주세요. 경찰에는 이미 신고했습니다.”
“몇 가지 질문에만 답해 주시면 원만하게 촬영하고 조용히 나갔을 텐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니까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가.”
건질 건 충분히 다 담았다.
고준호 원장이 네네 하면서 대답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경찰이 들이닥치면 괜히 더 문제만 복잡해질 것이다.
뒷감당은 나중으로 미루고 이것이 이혼이다 제작진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하지만 곧바로 주변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여기 근방에서 시민 인터뷰 땁시다. 뒤 배경으로 치과 간판 나오게 하는 거 잊지 말고.”
고준호의 치과를 이용했을 법한 인근 주민을 골랐다.
“여사님. 잠깐만요. 아이고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것이 이혼이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왔는데요. 혹시 저기 고준호 치과를 방문하신 적이 있으세요?”
“어? 이거 저 인터뷰 하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원하시면 방송에는 모자이크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무슨 소리. 얼굴 나와야지. 방송 타는 게 어디 쉽나. 좀 예쁘게 찍어주세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 편집팀이 그런 건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한 20년은 젊어 보이게 해 드릴게요.”
“정말이야?”
“고준호 치과 평판은 어떻습니까?”
“원장님이 아주 친절하시고. 그 뭐더라. 연예인 누구지. 그 가수 누구야. 기억이 안 나네. 그 가수도 저기 단골이라면서.”
“혹시 최근에 소문 들으셨습니까? 고준호 원장이 저희 프로에 출연했던 여성과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요.”
“응? 정말?”
“불륜 여성 남편과 대학 동창이라던데요.”
“아이고. 남사스럽네. 그러니까 대학 동창 부인이랑 바람이 났다는 소리 아니에요?”
“그렇습니다.”
“애들 들을까 봐 무섭네. 우리 부녀회에서 이거 진지하게 얘기해봐야겠어. 제가 요 근처 1단지 부녀회장이거든.”
“아 네. 그러셨군요.”
“이런 몰상식한 치과가 버젓이 영업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지.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 이건 절대 안 돼. 사실이면 우리 아파트 단지 집값 떨어지겠어. 안 그래도 요새 하도 떨어져서 미치겠는데 말이야.”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시민들의 인터뷰도 계속 더 받아냈다.
“피디님. 담에는 잠실의 그 조아람이라는 사람 병원으로 갈까요?”
“아니야. 강남역 근처에 마침 온 김에 싸움 났다던 그 강남역 술집으로 가자. 지금 오전이니까 손님도 없을 거야. 전세 내서 잠깐 찍고 바로 잠실로 이동해. 재연 전문배우는 섭외해뒀지?”
“네. 차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의사 가운도 준비해놨습니다. 근데 진짜로 의사 가운 입히고 찍으실 거예요? 술집에서 그걸 입고 술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야. 그러니까 그림이 되지. 어처구니가 없는 쪽으로 밀어붙여. 원래 시청자들이란 저게 말이 되냐고 욕하면서 보는 거야. 난투극 동영상은 확보했어?”
“인터넷에 검색하니까 여러 개 있던데요.”
“연락해서 자료 화면으로 써도 되냐고 허락받아놔라.”
“알겠습니다.”
“가자 강남역으로.”
강남역 술집에서 촬영도 순조로웠다.
“컷. 아니지. 아니야. 좀 더 거칠게. 바로 눈앞에 자기 여자랑 바람난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뭔가 리얼한 도구가 있으면 좋겠는데.”
“피디 님 이건 어떨까요?”
조연출이 포크를 내민다.
“오. 좋아. 이걸로 가자. 고준호 역할 배우님은 포크. 조아람 역할 배우님은 젓가락. 아니지 가늘어서 잘 안 보이겠다. 안주 써는 나이프로 가요. 서로 목 조르는 것도 잊지 말고. 몇 번 치고받다가 바닥에 누워서 엎치락뒤치락 잊지 말고. 갑시다. 레디. 액셔언.”
“저분들 되게 잘하시는데요.”
“무술 스턴트 출신으로 골랐어.”
“어쩐지.”
잠실의 조아람 병원에서도 고준호 치과와 비슷했다.
찍네 마네 실랑이를 벌이면서 필요한 화면을 담고 인근 시민 인터뷰까지 모두 마치고 촬영 일정을 마무리했다.
“모두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만에 다 될까 했는데 다행히 끝냈네. 이제 편집만 잘 하면 이거 물건 하나 나올 것 같아.”
“모자이크랑 삐 처리 할 게 너무 많은데요.”
“그거야 조연출이 고생해야지. 메인 피디인 내가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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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 저 오늘 오후에 반차를 쓰겠습니다.”
“응. 그렇게 해요. 잘 다녀오고. 회삿일은 걱정하지 말아요.”
‘부서 이동’이란 카드를 꺼내든 후에 이 부장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다.
당장 어디 가서 나 같은 일꾼을 데리고 오겠냐.
모든 걸 맡기고 자기는 담배나 피우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지금 현 상황. 이 부장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회사 생활일 것이다. 그 파라다이스를 깨고 싶을 리가 없다.
차지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확실히 내 눈치를 본다. 적어도 눈치를 보는 척은 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차지영이 평소처럼 9시를 넘겨서 출근했다.
이 부장이 날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차지영에게 안 하던 따끔한 잔소리를 건넸다.
‘차지영 씨. 계속 이러면 안 되지. 저번 주에도 늦더니. 이번 주에 또 이러면 어떡해.’
‘부장님. 죄송합니다. 차가 너무 막혀서요.’
‘그럼 버스 말고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면 되잖아. 앞으로 주의해요. 차지영 씨는 날 좀 봐요. 오늘은 야단 좀 맞읍시다.’
차지영을 따로 데리고 나간다.
물론.
실제로 야단칠 일은 없을 것이다.
눈치와 쇼에는 일가견이 있는 양반이다.
분명 어디 데리고 가서 음료수라도 사 먹이며 좋게좋게 타이르겠지.
지금은 서 과장이 이혼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우니 차지영 씨가 좀 참고 서 과장이랑도 눈치껏 잘 지내.
뭐 이런 식으로 다독이지 않았을까.
한번 들이받고 나니 이 부장과 차 지영이 내 눈치를 살핀다.
역시 우리나라는 가만히 있는 놈만 바보 취급당하는 세상이라니까.
점심시간이 지나서 약속 장소로 갔다.
중고차 넘기는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인터넷으로 해도 되지만 독고재 회장은 직접 만나서 모든 걸 확실히 마무리 짓자고 했고 나도 그게 좋을 듯싶었다.
차 상태는 완전히 신차와 다름없었다.
이 차종을 풀옵션에 이 가격이라니. 독고 회장이 정말 저렴하게 알아봐 준 게 맞았다.
구매자분이 직접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를 하고 사겠다고 결정했다.
차량 구매 목적으로 카드 한도 일시 상향 신청을 하고, 구매자에게 받은 돈을 계좌로 입금하자 곧바로 2,400만 원이 결제되어 빠져나간다. 일반적인 카드 결제랑은 약간 다르게 진행됐다.
내 평생에 이런 거액을 카드로 긁어보기는 처음이다.
무려 2,400만 원.
만약 다음 달 14일 비트코인으로 캐시백이 들어온다면 5,280만 원이다.
독고재 회장이 최대한 싸게 알아준 덕분에 세금을 제외하고 이것저것 모든 걸 계산하면 내 손해는 대략 30만 원.
이 정도면 선방했다. 5,280만 원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새 차나 다름없는 차를 곧바로 중고차로 넘기면서 이 정도 손해도 안 보고 일을 처리할 순 없다.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해주신 덕분에 좋은 거래 했습니다.”
“아닙니다. 구매자분도 새 차나 다름없는 차를 아주 싸게 샀다면서 좋아하시니 제 마음도 흡족하네요. 이런 거래는 모두가 결국 이득이지요. 서지오 씨는 카드 실적 때문이라고 하셨죠?”
“네. 사정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거기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을 듯하고.”
“또 알아봐 주십시오.”
“또요? 또 이런 식으로 신차를 카드로 사서 곧바로 중고차로 팔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대신 다음 달 카드 결제일 14일 이후에 양도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구매자는 지금부터 알아봐 주시면 됩니다. 이번 2,400만 원 보다 더 비싸면 좋겠습니다.”
“음. 왜 그러실까. 이상한 일에 얽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회장님이나 차를 사시겠다는 분께도 전혀 피해는 없습니다.”
“그건 그래요. 어떤 카드길래 그렇게까지 많은 실적을 올리시려고 그러는지. 거 참 궁금하긴 하네요. 하여튼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독고 회장과 헤어지자마자 김지영 변호사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선생님. 오늘 저녁 이것이 이혼이다를 꼭 시청하십시오. 제가 인터넷으로 예고편을 미리 봤는데요. 절대 예고는 미리 보지 마십시오. 본방송으로 감상하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예고를 보지 말라니까 더 보고 싶잖아.
그래도 김지영 변호사가 하는 말이니 듣는 게 좋겠지.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궁금해서 못 참겠네. 예고가 어떻길래. 꾹 참고 본방송 시간대를 기다렸다.
고시원 휴게실에 티비를 켜 두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남편이 나인 줄도 모르고 이지영 몸매를 칭찬하던 저번 그 두 녀석도 오늘 함께였다. ‘이것이 이혼이다’ 프로의 애청자들이었나.
첫 도입부터 아주 강렬했다.
의사 가운을 입은 두 사내가 어두운 술집 안에서 서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난투극을 벌인다.
‘미영이는 내 여자야.’
‘미영이는 날 사랑한다고 했어.’
‘아닐걸. 둘 다 내 딸이야.’
‘웃기지 마라. 넌 그저 미영이에게 스쳐 지나가는 잠깐의 바람이었어. 미영이는 나랑 결혼해.’
‘더러운 X자식.’
‘X발놈아. 죽어.’
옆에서 구경 중이던 두 친구가 토론을 시작했다.
“시발. 술집에서 무슨 의사 가운을 입고 싸워. 형 말도 안 되지 않나요?”
“저러니 종편이 욕먹지. 그래도 재미는 있네.”
화면이 바뀌고 인터뷰를 거절하며 제작진을 내쫓는 고준호와 조아람의 얼굴이 나왔다.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를 했지만 둘을 아는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실루엣이었다.
아는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이런 기분이구나.
근처 시민들의 인터뷰도 등장한다.
‘아주 X같은 XX들이네.’
‘어디 만날 사람이 없어서 바람을 피워도 하필 남편 동창이랑 XX먹어.’
‘저런 X은 실명을 확 까발려서 소문을 내버려야지.’
저렇게 대놓고 나오면 병원 망하는 건 시간 문제겠네.
어느 병원인지 모를 수가 없도록 아주 친절하게 화면 곳곳에 힌트를 뿌려놨다.
“형. 아무리 그래도 남편 동창이랑 더구나 둘씩이랑 바람피우는 건 좀 그렇네요.”
“대신 그만큼 몸매가 죽이잖아. 동창들조차 눈이 뒤집힐 정도로. 친구와의 우정이냐 눈앞의 섹시 글래머냐. 너 같으면 뭘 택하겠냐?”
“전 그래도 우정이죠. 어떻게 사람이 그럽니까.”
“난 아닌데. 저런 몸매면 잠깐이라도 좋으니 저 여자랑 만나겠다.”
“형. 실망이네요. 남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의리 없이.”
“의리가 밥 먹여주는 세상이냐?”
“아무리 그래도.”
잠시 후에 고준호와 조아람이 실제로 싸우는 인터넷 동영상이 나왔다.
“저거 피 아냐?”
“맞는데요. 그래도 의사 가운은 안 입고 있네요.”
“그거야 제작진 놈들이 웃기려고 했던 거고.”
“와~. 살벌하게 싸우네요.”
“그러게. 저거 보니까 너무 추하다. 아까 했던 말 취소해야겠어. 나도 여자보다 의리.”
“에이. 형은 그래도 저 여자 실제로 보면 아닐 것 같은데.”
방송이 끝난 후 즐겨 방문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여러 군데 둘러봤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지영 편이 방송된 직후만 하더라도 ‘남자가 얼마나 잘못했으면 여자가 바람을 피웠겠냐’였다.
특히 여자들의 입장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대동단결하여 이지영을 쳐죽일 년으로 씹어 재낀다.
여론은 극적으로 반전을 시작한다.
온 세상이 이지영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