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24화 (2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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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보는 관상

“회장님께서 직접 그분이랑 만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사람도 재물도 저마다 운명이 있습니다. 정해진 길을 바꾸는 일이니 당연히 제가 직접 그분을 만나 봬야죠.”

“그러시면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먼저 가계약 하셨던 분에게 전화를 드려보겠습니다.”

“그게 좋겠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그럼 여기서 천천히 구경하고 계십시오. 저는 잠시 사무실에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임태수 회장을 차 곁에 남겨두고 매니저가 자리를 비운다.

임태수 회장은 홀로 창고에 남아 600마력짜리 백마와 마주했다.

대한민국 도로 위에서 제로백은 의미가 없지만 3초도 안 걸릴 녀석이다.

한시라도 빨리 시동을 걸어서 엔진음을 듣고 싶어진다. 승차감이 좋을 리 없는 스포츠카를 굳이 타는 이유라면 밟을 때마다 귀를 자극하는 배기음 때문이 아닐까.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타는 나이는 지났다.

순백의 바디를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검은색이었다면 ‘기사’의 중후함이었겠지만 흰색이라서 오히려 ‘황녀’의 고귀함이 느껴졌다.

임태수 회장은 벌써부터 카오디오를 어떻게 구성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미디엄 템포의 시티팝을 들으며 노을 지는 서해안을 달린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있을까.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계약자분이 회장님을 만나보시겠답니다.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아직 정확히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

“잘됐네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많이 신경 써주셔서.”

“아니 무슨 말씀을요. 회장님 같은 최우수 VVIP 고객님은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제가 따로 약속을 잡아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고. 제가 직접 전화를 드려야죠. 그게 예의입니다. 가계약 하셨다는 선생님 존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서지오 씨 되십니다. 저희 대리점과는 한 번도 거래하신 적이 없습니다. 실은 킹카라는 동호회 쪽에서 구매를 주선했습니다.”

“킹카요?”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자동차 동호회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그러셨군요. 요즘은 자동차 동호회를 거쳐서 많이들 구매하십니다. 저희한테 별로 좋지는 않지요. 그만큼 저희 마진이 줄어드는 셈이니까요. 하하하.”

“그러시겠군요. 그럼 연락해보고 다시 들리겠습니다.”

“네. 회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매니저에게 받은 번호로 곧장 전화를 걸어봤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임태수라고 합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서지오입니다.]

[차 대리점에서 선생님 연락처를 저한테 주더군요. 불쾌하시지는 않으신지요.]

[전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 회사라 2분 후에 다시 전화 드려도 될까요?]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하는 사람일까?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이가 생각보다 어리다.

기껏해야 30대 정도. 많아도 마흔은 크게 넘기지 않을 음성이다.

저 나이에 거의 5억 원에 달하는 차를 구매한다니.

‘회사’라는 단어만으로는 직업을 추측하기가 힘들다.

잘 나가는 전문직일 수도 있고 중견기업의 오너일 수도 있다.

아니면 꽤 큰 회사의 2세나 3세일지도 모른다.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사이라면 오히려 차를 양보받는 게 더 수월하지 않을까.

위이잉. 위이잉.

정확히 2분 후에 다시 걸려온다.

임태수 회장은 서지오라는 사람의 첫인상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음’이나 ‘이따가’가 아닌 2분 후라고 콕 찍어 말한 데다 그 2분을 정확히 지켰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업무 보시는 데 오히려 제가 방해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상사에게 개인적인 통화가 길어질지도 몰라서 따로 나가서 받겠다고 했으니 전혀 문제없습니다.]

상사라?

통화를 허락받아서 할 정도니 한 사무실에 근무한다는 뜻일 테고.

어떤 조직이길래 일개 부하 직원이 5억 원짜리 차를 사는 곳일까.

[그러셨군요. 다시 한번 제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임태수라는 사람이고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가계약하신 차를 우연히 보고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선생님도 아마 저랑 같은 생각으로 고르셨겠지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차를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네?]

[흰색의 스포츠카라는 것만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타려고 산 게 아니라 곧장 되팔 계획입니다.]

임태수 회장은 전혀 뜻밖이었다.

처음에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차주들 간의 즐거운 대화가 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차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장사치를 만났다.

갑자기 기분이 씁쓸해졌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저마다 차를 사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서지오라는 사람과 자신은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다.

서지오는 팔고 싶고 자신은 사고 싶고.

이렇게 되면 결국 남은 건 돈 문제뿐이다.

[오히려 잘 됐군요. 그러면 저한테 파시지요. 가격은 섭섭지 않게 쳐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일이 너무 쉽게 술술 풀려서 오히려 기쁠 지경이다.

5억 원짜리 스포츠카를 살 정도면 돈이 궁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자존심도 상당할 테니 단순히 좀 더 얹어준다고 해서 팔 리가 없다.

유치하게 두 배 10억 원을 부르면 오히려 상대 기분만 상하게 만들어서 흥정이 끝날까 걱정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만나 뵙고 가격을 정해서 곧바로 제가 인수하고 싶습니다.]

[오늘 반차나 월차를 쓰기는 좀 애매한 시간대네요. 전화상으로 말씀 나누기는 저도 좀 죄송하고. 따로 날짜를 정하는 건 어떨까요?]

이런 일은 뒤로 미루면 안 된다.

지금은 흔쾌히 팔겠다고 하지만 사람 마음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것.

임태수 회장은 가급적 오늘 밀어붙여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지 않습니까. 혹시 선생님 계신 곳이 어디 신지요?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회사 밖으로 멀리 나오실 필요 없이 딱 30분만 내 주십시오. 회사 건물에 로비나 옥상이 있으면 제가 그리로 가지요.]

[그러시면 상사에게 한번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억지를 부려서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전화를 끊고 회사 주소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상사에게 말씀드린 후에 곧바로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선생님 회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잠시 후 서지오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제가 있는 곳은 서울 강남구 ··· 미주그룹입니다.-

임태수 회장은 도로명 주소 맨 뒤에 적힌 ‘미주그룹’이라는 글자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우리 회사 직원이었단 말인가?

상사에게 허락을 구한다는 말투로 미루어 부장은 아니다.

그럼 차장이나 과장 이하라는 소리인데.

심지어 더 직급이 낮을 수도 있다.

서지오?

비서실에 따로 전화를 걸려다가 말았다.

인터넷에 ‘미주그룹 서지오’를 검색해봤다.

곧바로 뜬다.

영업 3팀 과장 서지오.

영업팀 과장 중의 하나였구나.

뜻밖의 곳에서 엉뚱한 인연으로 부하직원을 만나게 되니 참 인생이란 알 수가 없다.

마침 서지오의 사진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다.

관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부모운이 없다시피 하고 오히려 여복이 많다면 많을 법한 얼굴이다.

재물운은 분명 있긴 한데 어찌 된 건지 꽉 막혀 있었다.

분명 임태수 자신을 알아볼 것이다.

부하직원과 스포츠카 거래라니 어찌 보면 웃기는 짓이다. 괜히 쓸데없는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으면 싶은데.

위이잉. 위이잉.

[1시간 정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잘됐네요. 마침 저도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주소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그러시면 저희 회사 1층 로비에 자그마한 카페가 있습니다. 거기서 뵐까요?]

[네. 그러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여느 때처럼 1층 로비에 당도하자마자 경비들이 고개를 숙인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아요.”

“어? 안 들어가시나요?”

“나중에 내가 따로 알아서 들어가지요. 그만 일 보세요.”

“알겠습니다.”

1층 로비에 카페가 있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은 없다.

앉아 있다가 직원들이라도 마주치면 곤란한데.

“어서 오세요. 뭘 주문하시겠습니까?”

스물을 갓 넘긴듯한 어린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조금 있다 일행이 오는데 그때 같이 주문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공짜 자리 인심이 후하다. 재계약할 때 계속 입점하라고 지시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친절했다.

자기 건물 자기 회사에 있는데도 이리 불편할 줄이야. 빈 테이블에 음료수도 없이 앉아 있으려니 어린 아르바이트생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남의 영업장에 들어왔으니 일단 뭐라도 주문하기로 했다.

제일 무난한 커피를 골랐다.

“아메리카노 뜨거운 걸로 2잔 주세요.”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삐익.

등 뒤 멀리서 사원증을 출입구에 읽히는 소리가 들린다.

임태수 회장이 아메리카노 2잔을 양손에 들고 뒤를 돌아봤다.

응?

저 사람이 서지오 과장?

분명 얼굴은 맞다.

한데.

이럴 수가 있나?

과연 가능한 일인가?

관상 자체가 달라졌다.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뿌리 끝부터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게 정확하겠네.

수없이 많은 재계 인물과 부자들을 만나본 임태수 회장이었지만,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서 역대 최고의 재물운이었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임태수?

설마 우리 회장인가?

미주그룹 임태수 회장의 얼굴이야 당연히 알지만 목소리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재벌 총수들처럼 언론에 자주 인터뷰가 나오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음성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직원들에게 단체 영상 메시지를 보낸 적도 없었고.

태수라는 이름은 그 나잇대 어른들에게 흔한 이름이다. 임 씨도 아주 드문 성은 아니고.

만나보면 알겠지.

회장이든 아니든 차만 제 가격에 팔면 그뿐이다.

설마 회장에게 팔았다고 회사에서 잘리기야 하겠나.

삐익.

사원증을 찍고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누가 양손에 커피를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자세히 보니 임태수 회장이 맞았다.

아 이거 어쩌지. 뭘 어째.

일단 어색하게 웃어야겠지.

“안녕하십니까. 회장님이셨네요. 성함이 같아서 설마 했었습니다. 제 얼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영업 3팀 서지오 과장입니다.”

“반가워요. 우리 따로 만난 적은 없죠?”

“네. 그렇습니다. 앉으시죠.”

“그럴까요? 아~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위로 올라갈까요?”

“네 그러시죠.”

“3팀 부장이면 이기수 씨였던가.”

“네 그렇습니다.”

“내가 말해둘 테니 시간은 부담 갖지 말아요.”

“감사합니다.”

회장과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니 정말 어색하네.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지?

“차에 관심이 많나 봐요?”

“아닙니다. 우연히 아는 분께서 소개를 해주셔서 사게 됐습니다.”

“그 자동차 동호회 말이구나.”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봐요. 얼마에 팔고 싶어?”

근데.

살짝 기분이 나쁘네.

아까는 극존칭까지 써가면서 간이라도 빼줄 듯 친절하더니.

상대방이 자기 부하직원이란 걸 알자마자 묘하게 만만히 보려는 건가.

임 회장님.

내가 안 팔겠다고 하면 어쩌실 건데.

당연히 팔 거라는 전제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어찌 좀 그렇네요.

“회장님 배포가 얼마나 크신지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저 표정. 벌써 두 번째다.

부전자전이라더니.

아들인 임누리 상무 앞에서 무죄가 나오면 회사 계속 다녀도 되냐고 되물었을 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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