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25화 (2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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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면접을 본 셈

“핫. 하하하. 배포라. 맞는 말이네요. 그래요.”

“말씀 낮추십시오.”

“그럴까. 그게 서 과장한테도 편하겠구만. 나이 먹고 나서 느낀 건데 진짜 예절은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거지, 나 혼자 존댓말 하면서 잘난 척하는 건 오히려 아니더라고.”

임태수 회장과 단둘이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소문으로 떠도는 평판은 한마디로 무난하다였다.

최근에는 큰아들인 임누리를 상무이사 자리에 앉히고 뒷전으로 물러났는데 경영에 큰 흥미를 못 느낀다고 들었다.

사실 미주그룹이야 현 상태로는 더 발전 가능성은 없다.

말이 좋아 종합 상사지 본질은 보따리상. 조금 히트한다 싶은 제품이 생기면 곧바로 누군가가 더 싸게 치고 들어온다. 수익률이 높기 힘든 판때기다.

대신 안정적으로 돈은 꾸준히 벌린다. 위험부담도 별로 없고. 미주그룹 주식은 그래서 안전빵을 노리는 투자자들한테 의외로 인기가 많다. 특별한 급락도 없고 작전 세력들이 들러붙지도 못하면서 배당도 꼬박꼬박 잘 나오고.

“보니까 임시번호판이더라고. 매니저 얘기로는 인수거부차량이라던데. 내가 꼼꼼히 살펴봤지만 차에 하자는 전혀 없었어.”

“저한테 그 차를 소개해주신 킹카 동호회 회장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나저나 말이야. 자네라고 불러도 되나?”

“물론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임태수 회장 본인이 1층 카페에서 사 들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곧바로 인상을 찌푸린다.

“내 입맛에는 별로 안 맞네. 잠깐만 기다려. 응. 난데. 여기 손님 드리게 ‘더취커피’ 2잔 좀 내려서 갖다 줘. 응 그래. 시간 걸려도 상관없어. 커피 좋아하나?”

“가끔 마시는 편이긴 합니다.”

“그런데. ···.”

임태수 회장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참 관상이 좋아. 오는 길에 인터넷으로 자네 예전 사진을 본 적이 있어. 이상하단 말이야. 그때 관상이랑 지금이 완전히 달라. 다른 정도가 아니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니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고 싶다고 좋아지면 그건 관상이 아니지. 예전에는 얼굴에 화기(火氣)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싸아악 사라져버렸어. 최근에 혹시 개종했나?”

뜬금없이 개종이라니.

“저는 원래 무교입니다.”

“그래? 아주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긴 하거든. 물로 세례받는 종교를 믿고 세례를 받는 거지. 화기가 씻겨서 없어지는 경우야.”

물?

갑자기 등덜미가 서늘해진다.

그래. 맞다.

난 마포대교에서 한강으로 뛰어내려 죽을뻔했었지.

이걸 회장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굳이 자살할 뻔했다고 털어놓는 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관두자.

“돈 나무가 아주 거대하게 활짝 자랄 관상이야. 뿌리인 입이 크고 입술은 도톰해. 줄기인 코도 높고 반듯하지. 눈은 꽃이 활짝 피었어. 이마는 넓고 반듯하니 열매가 그 안에 수북이 열릴 거야.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크게 자랄 관상은 처음이네.”

“너무 과찬이십니다.”

“예전 사진에서는 화기가 너무 가득 차서 나무가 자랄 수가 없는 형국이었어. 지금은 뿌리인 입에서 무얼 먹든 먹는 족족 쑥쑥 자랄 거야. 몇 배씩 불어날걸.”

비트코인 캐시백 때문일까.

회장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요즘 내 형편은 정말로 그렇다.

똑똑.

비서가 커피를 들고 들어온다.

“마셔봐.”

“향이 아주 좋네요. 커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정말 좋습니다.”

“요즘 루왁커피니 뭐니 그러는데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아무도 몰라. 그냥 다 거기서 거기지. 커피는 그저 좋은 콩으로 잘 볶아서 잘 내리면 그게 최고야.”

“그렇군요.”

“회사 생활은 어때?”

임원 이상만 되면 필수적으로 저 질문 던지라고 어디서 가르치나.

왜 다들 부하직원 회사 생활이 궁금한 겁니까?

평소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답도 정해져 있다.

“회장님 덕분에 아주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지. 남의 돈 버는 게 어디 쉽나.”

임태수 회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는다.

“깔끔하게 5억이면 어떨까?”

상식적이면서도 너그러운 제안이다.

킹카 독고재 회장이 나한테 4억 5천까지 협상해줬다고 들었다. 임태수 회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과욕을 부리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 더 부른다고 회장이 들어줄지도 미지수고.

한 번쯤 가격을 올려 볼 여지는 있겠지만 난 220% 캐시백이 기다리고 있다.

굳이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디면 앞으로 행운의 여신이 날 미워할지도 모른다.

“좋습니다.”

회장이 빙긋 웃는다. 얼마나 예쁜 차길래 저렇게까지 아이처럼 웃을까.

“정말 고마워. 그리고 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제안할 게 있어. 그건 나중에 따로 얘기하지.”

제안이라니?

미주그룹 회장이 일개 과장한테 제안할 게 뭐가 있나.

스포츠카만 아니었으면 나랑 일대일로 대화할 일이 아예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말 난 김에 오늘 바로 양도받으러 갈까? 자네는 시간 어때? 이기수 부장한테는 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 나가면서 얘기할 거야.”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졸지에 임태수 회장의 차를 얻어탔다.

대리점에 가서 실물을 보니 과연 누구라도 반할 만했다.

흰색 스포츠카라고 해서 부담스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상큼한 기분까지 든다.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그날 오후 곧바로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회사로 돌아오니 이 부장이 황급히 나를 맞이한다.

“서 과장. 어떻게 된 거야?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었어. 회장님 개인 업무 수행 중이었다던데.”

“네. 어쩌다 그렇게 됐습니다.”

“우와아아. 과장님. 사람이 달라 보이는 데요. 회장님이랑 친분 있으셨어요?”

“그런 거 아니야.”

김호창 대리뿐만 아니라 차지영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차지영도 물어보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말없이 모니터만 응시 중이다.

귀는 우리 대화 쪽으로 활짝 열린 게 분명했다.

저번에 지각했다고 야단친 이후로 업무상 꼭 필요한 대화 빼고는 사적으로 말을 주고받진 않는다.

“그런 거면 진작 얘기하지. 난 그것도 모르고 괜히 빨리 들어오라고 닦달했었잖아. 정말 미안해.”

“아닙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회장님이 우리 영업 3팀에 대해서 뭐라고 그러시던가?”

이기수 부장은 자기 안위에 관련된 무슨 일이 생길 때만 저렇게 열심이다.

“아니요. 회장님 개인 용무에 제가 잠시 필요해서 도와드린 것뿐입니다.”

이 부장은 그게 도대체 뭐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이쯤 합시다.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

이번에는 무려 4억 5천이라는 거액을 카드로 긁는데도 전혀 안 떨린다.

회장이 미리 5억을 쏴줘서일까. 오히려 나머지 5천만 원이라는 든든한 목돈까지 생겼다.

평소라면 이걸로 뭘 할까 고민하는 즐거운 시간이었겠지. 하지만 얄짤없이 곧바로 대출 원금을 일부지만 갚는데 보탰다.

다음 달에 캐시백 9억 9천만 원이 들어오면 지긋지긋한 빚도 이제는 안녕.

휴우우우. 숨통이 확 트이네.

이 부장은 여전히 내 주위를 서성거린다.

“서지오 씨. 우리 나가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울까?”

“전 담배 끊었습니다.”

“그럼 음료수라도 한잔해요.”

오늘따라 엄청 귀찮게 들러붙네.

“괜찮습니다. 아까 커피를 마셨더니 별로 생각이 없네요.”

이 부장이 그제야 혼자 사무실을 나간다.

내가 무슨 자기 담배 피울 때 옆에서 안 심심할까 봐 놀아주는 도우미도 아니고.

속이 다 시원하네.

**

임태수 회장은 서지오 과장에 대해서 따로 좀 알아봤다.

사내 평판도 좋고 능력이 출중했다.

영업팀 중에서 서지오가 속한 3팀이 실적은 단연 탑이었다.

이기수 부장은 그럴 위인이 못 되니 사실상 서지오의 공이라고 봐야겠지.

5억을 제시했을 때도 내심 서지오가 그 이상을 요구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곧바로 흔쾌히 수락했다.

자신이 회장이라고 겁먹거나 잘 보이려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감각이 있는 놈이다.

무엇보다 관상이 너무나도 좋다.

서지오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 엉뚱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최근 회사에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다는 보고는 전에 받았다.

어떤 외부인이 회사 내부로 침입해서 행패를 부렸다는 내용이었다.

큰 사건으로 번지지는 않아서 그때는 무시하고 넘겼지만 알고 보니 그 외부인이 서지오 과장의 장모였다.

서지오가 전처를 폭행해서 장모가 찾아왔다는 것인데 웬일인지 서지오가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난동을 부렸던 서지오 과장의 장모도 딸과 함께 회사로 찾아왔었다고 한다.

아들인 임누리 상무와 면담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잘못을 빌면서 합의해달라고 오지 않았을까.

그게 하필이면 자신이 서지오 과장과 스포츠카 거래를 마친 날이다.

임태수 회장은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봤다.

회사로 복귀하다가 날씨가 쾌청해 근처에 차를 세우고 산책 겸 걸어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장실로 올라가서 잠시 머물다가 차를 구경하러 갔고.

거기서 마음에 꼭 드는 흰색 스포츠카를 발견하고 곧장 가계약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부하직원인 서지오 과장.

그래.

회장실로 올라가려던 중 1층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그 모녀.

정황상 서지오 과장의 전처와 장모가 분명하다.

[여보세요. 난데. 퇴근하고 늦은 시간에 미안해. 지금 얘기 안 하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말이야. 내일 출근하면 확인할 게 하나 있어.]

[말씀하십시오.]

[내가 흰색 스포츠카 구입한 날인데. 오후 두세 시쯤일 거야. 우리 회사 방문객 명단 중에서 두 사람을 찾아줘. 영업 3팀 서지오 과장의 전처와 장모인데. 이름은 모르겠어. 임누리 상무랑 면담했다고 나와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탄 엘리베이터 화면을 출력해서 보여줘.]

[동영상 말씀이십니까?]

[그래. 동영상이든 사진이든 상관없어. 최대한 정면으로 잘 나온 걸 골라줘.]

[알겠습니다.]

그 두 모녀 중 한 명.

분명히 어디서 봤다.

그때도 도무지 기억이 안 나서 결국 포기했다.

자세히 보면 생각이 나겠지.

게다가 서지오 과장과도 관련이 있다.

침실 방문을 열고 아내 노미숙이 들어왔다.

“무슨 전화를 하다가 내가 오니까 끊어.”

“아니야. 마침 딱 끊을 때 당신이 들어온 거지. 업무 지시할 게 있어서 잠깐 통화한 것뿐이야.”

“집에서 회사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잖아. 당신은 꼭 바깥일을 집안까지 가지고 들어오더라.”

“한창 예전에야 그랬지. 요즘은 누리한테 다 맡겼잖아.”

임태수 회장은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노미숙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서 지켜봤다.

나이를 먹었지만 노미숙의 미모는 여전했다.

괜히 공채 탤런트 출신이 아니었다.

자신과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탑스타가 됐을지도 모른다.

노미숙의 결혼은 30여 년 전 그 당시에도 꽤 화제였었다.

미주그룹은 그때 별로 큰 회사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중소기업에 불과해서 세간에서는 굳이 왜 노미숙이 임태수 회장과 결혼했는지 의아해했다.

“하나랑 우주 말이야. 요즘 만나는 남자 있어? 당신 보기에는 어때?”

“없는 것 같던데. 하나는 원래 티를 안 내고 우주는 아직 철이 없잖아. 진득하니 남자 사귈 나이가 아니지.”

“우리도 슬슬 사위를 봐야지.”

“왜? 누가 관심 있대? 어느 회사야?”

“그런 건 아니고.”

“난 고리타분한 정략결혼은 영 별로더라. 요즘 누가 그렇게 결혼해? 자연스럽게 알아가야지.”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암 자연스러운 게 최고지. 하나 요즘 뭐해?”

“하나 걔는 보면 참 엉뚱해. 대학원 마치더니 갑자기 취직하겠다잖아. 내가 관두라 그랬지.”

“취직?”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러더라고. 우주는 맨날 놀러만 다니고. 며칠 뒤엔 유럽 여행 간다던데. 쌍둥이면서 둘이 참 너무 달라.”

임태수 회장은 뜻한 바를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하나 취직 말인데. 그건 오히려 민폐야. 다른 곳에서 미주그룹 큰딸인 거 알면 좋아하겠어? 곧 다니다 말겠거니 생각하겠지. 취미로 회사 다닌다고 욕할 게 분명해.”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왜 말려.”

“기왕에 회사 생활 경험해 보고 싶으면 아버지 회사로 출근해야지. 영업 팀 중에서 팀원이 4명뿐인 작은 팀이 하나 있어. 일 배우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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