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27화 (2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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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으면 내가 만든다

“골목 백반집에 오늘따라 사람이 유난히 많네.”

“그래도 자리가 바로 생겨서 정말 다행입니다.”

“부장님. 근데 여긴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장사 정말 잘 되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경제가 워낙 어려운데 여긴 싸고 맛있잖아.”

“화장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저도요. 손 좀 씻고 올게요.”

“둘이서 왜 동시에 일어나? 둘이 사귀는 거 아니지? 하하하하.”

김호창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자 차지영도 같이 일어서려 한다.

이 부장도 참 눈치 없기는. 둘이 사귀긴 뭘 사귀어? 차지영한테는 아침에 그렇게 야단을 쳐 놓고 점심때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을 던지는 걸 봐서 이 부장도 약간 사이코패스과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김호창은 맨날 연예인 타령만 하면서 쓸데없이 눈이 높다. 소개팅은 가끔 하는 것 같던데 다음날 늘 표정이 안 좋다. 어딘가 먼 하늘만 응시하던데 결과는 안 봐도 뻔하지.

차지영은 겨우 미주그룹 대리 정도에 만족할 여자가 아니다. 예전 가끔 점심 먹으면서 대화할 때 보면 최소한 전문직이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강조하곤 했다.

그걸 따질 겨를이 전혀 없는 외모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차라리 내가 보기에 김호창과 차지영 정도면 잘 어울릴 한 쌍일 것 같은데.

오늘따라 유난히 붐비기는 하네.

골목 백반집은 메인메뉴는 정해져 있지만, 밑반찬이 매번 바뀐다. 후식도 커피나 아이스티 유자차 등 다양하게 나온다.

오늘은 스페셜하게 식혜가 나오는 날. 이런 날은 특히 더 붐빈다.

“자 그럼 주문할까? 하나 씨는 뭐 먹고 싶어요?”

오늘 첫출근한 탑4 임하나가 벽에 붙은 메뉴판을 응시한다.

“저는 다른 분 모두 시키신 다음에 주문할게요.”

어?

의외로 센스가 있네.

아주 사소하긴 하지만 이런 걸로도 상사들의 예쁨을 받는 득점 포인트긴 하다.

“그러지 말고 마음껏 골라요. 어차피 오늘은 내가 사비로 쏘는 날이니까. 하하하.”

부담돼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냐? 체하겠네.

“부장님. 그냥 평소 드시던 대로 된장찌개 드시죠. 저도 늘 먹던 부대찌개 먹겠습니다.”

“그럴까? 어디 보자. 하나 씨는 그거 들어요. 보쌈정식이 좋겠네. 제일 비싸기도 하고. 아주 푸짐하게 나와. 보쌈정식 특으로 주문할까요?”

우리랑 같이 밥 먹을 때는 항상 된장찌개와 비슷한 가격대만 사줬으면서 대놓고 차별하네.

“아닙니다. 저도 부대찌개 먹겠습니다. 평소에 매콤한 걸 좋아해서요.”

“그래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나도 부대찌개 먹지. 통일하는 게 낫잖아. 빨리 나오기도 하고. 오랜만에 얼큰하게 부대찌개 먹읍시다. 벌써 군침이 싹 도네.”

5명 중에서 3명이 부대찌개를 먹어버리면 나머지 2명이 애매해지잖아.

“좋습니다. 그럼 저도 부대찌개로 먹겠습니다.”

김호창도 눈치를 보더니 부대찌개 대열에 동참한다.

“···. 그럼. 저도 부대찌개로 할게요.”

차지영은 매운걸 잘 못 먹어서 김치찌개나 부대찌개류는 절대 안 시킨다. 오늘은 웬일이냐.

아침에 야단 크게 맞고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는 건가.

“하하하. 이런. 우리 영업 3팀이 하나로 단결했네. 좋아요. 오늘 부대찌개 한 번 제대로 먹어봅시다. 저기 사장님. 여기 부대찌개 5인분이요. 사리는 이따가 먹으면서 추가할게요.”

남녀가 같이 먹을 때는 식사 속도 차이가 제일 문제다.

김호창 대리가 제일 빠른 편이고 다음이 이 부장. 나는 중간 정도고 차지영은 여자치고도 좀 느린 편이었다. 오늘은 다 같이 먹는 날이니 완급 조절을 더 잘해야겠네.

“하나 씨 어때요? 맛있어요?”

“네. 정말 맛있습니다. 여기 맛집인가 봐요?”

“하하하. 아니 그건 아니고. 사장님 음식 솜씨가 아주 끝내주지. 서 과장 여기 텔레비전에도 나왔었지?”

“그럴걸요.”

“맞습니다. 저번에 나왔습니다. 제가 봤어요.”

남자들끼리 말없이 먹으면 너무 급하게 먹어서 점심때는 일부러 대화를 하는 편이었다.

“천천히 들어요. 점심시간은 한참 많이 남았으니까. 다 먹고 식혜도 한 번 맛보고.”

“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너무 기대돼요.”

“핫하하하. 그런가. 하하하.”

단순히 장단 맞추는 차지영의 대답에 이 부장이 저렇게 크게 기뻐하다니. 썰렁한 농담이라도 안 던지면 좋겠는데.

“하나 씨. 내가 퀴즈 하나 낼까?”

안돼. 제발.

“자가용의 반대말이 뭘까?”

“택시요?”

“땡. 다른 사람들은?”

“넌센스 퀴즈이실 테니까 전세용 아닙니까?”

아니야. 답을 알고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김 대리도 땡. 아무도 모르나? 이쯤에서 정답을 공개하지. 정답은 커용. 후흐흐흐흐.”

“핫하하하. 크크크큭.”

뭐야?

임 하나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단순한 접대용 미소가 아니라 배가 찢어지도록 웃는다.

“컥. 헙. 후흐흐흐흐. 죄송해요. 흐흐흐.”

연기라면 오스카상 급인데.

“부장님. 너무 웃겨요. 퀴즈 또 없으세요?”

얘 취향 되게 특이하네.

“그래? 많지. 기다려봐요.”

부장이 탄력받으면 곤란한데.

“누룽지가 영어로 뭔지 알아요?”

“에이 부장님. 설마?”

“하나 씨는 뭐일 것 같아?”

“전혀 모르겠어요.”

“바비 브라운.”

“흐흐흐크크크큭. 부장님. 너무 재미있어요. 또 해주세요.”

임 하나 얘 상당히 위험한 친구였네.

“슬슬 다 먹은 것 같으니까 제가 식혜 5잔 받아오겠습니다. 나갈 때 마시면 복잡하니까 여기서 마시고 나가죠.”

귀가 썩어버릴 것 같은 부장 개그를 더는 못 듣겠다.

쟁반에 식혜 5잔을 가득 받아왔다.

“캬하하하하. 정말이지. 먹을 때마다 감탄만 나오네요.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오지.”

“하나 씨 어때?”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식혜 중에 최고네요. 찜질방에서 먹었던 식혜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임하나가 식혜를 거의 원샷하듯 단숨에 들이킨다.

“하나 씨 잘 마시네. 나가면서 다들 한 잔씩 더 마십시다.”

임하나는 놀랍게도 식혜를 두 잔이나 더 마시고 골목 백반을 나왔다.

“하나 씨 보기랑 다르게 식성이 아주 좋아. 내가 커피도 쏘지. 갑시다.”

“와아아. 부장님. 오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하나 씨도 왔는데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임하나는 상당히 의외였다.

부대찌개에 사리까지 왕창 추가해서 점심을 그렇게 많이 먹고,

식혜도 큰 컵으로 3잔이나 마시고,

아메리카노는 제일 큰 벤티 사이즈로 주문했다.

너 푸드파이터니? 거 누구였지. 쯔 뭐였더라.

날씬한 여자애가 저렇게 많이 먹을 줄이야.

많이 먹는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해서 나까지 덩달아 과식한 것 같다.

이 부장이나 김 대리도 마찬가지였는지 오후에는 연신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차지영까지 평소보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걸 봐서 틀림없다.

모든 게 임하나의 덕분이었다.

위이잉. 위이잉.

킹카 동호회 독고재 회장이었다.

“잠시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응. 그래요.”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저번 스포츠카 거래 때 뵙고 간만에 연락 드리네요. 그때는 액수가 커서 덕분에 저도 제법 짭짤하게 재미를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알아봐 주시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제가 가계약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 회장님 덕분이지요.]

[하하하하. 그렇긴 해요. 그런데 이번에도 또 신차를 알아보실 생각이신 겁니까?]

[네. 그렇긴 한데요. 좀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무슨 말씀하려는 지 짐작이 가네요. 안 그래도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주의를 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액수가 너무 큰 데다 신차를 이렇게 자주 사버리면 국세청의 레이더망에 걸립니다.]

[네. 제가 평범한 직장인인데 5억짜리 차를 매달 사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겠죠?]

[물론이지요. 저야 매달 이렇게 거래를 성사시키면 금전적으로 좋지만 서지오 씨는 그러다 덜미가 잡혀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가격 괜찮은 신차는 최소한 몇 달 후에 다시 알아보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정말 신경 많이 써주시네요.]

[운전병으로 국가에 봉사하신 분인데 전우끼리 힘을 보태야죠.]

남궁형이 알려줘서 운전병이라고 구라를 친 게 괜히 미안해지네.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조만간 또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그때 다시 연락드리지요. 당분간은 몸을 사리세요. 국세청에 한 번 찍히면 굉장히 피곤해집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운전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내 꿈이 300킬로 밟다가 그대로 천국 가는 겁니다. 30년 무사고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이만.]

아주 화끈한 분이셨네.

지금 같은 방식으로 계속 신차를 사다가는 언젠가 브레이크가 걸릴 거라고 예상했던 바다.

어쩌면 좋지?

문제는 신용카드 한도다.

1천만 원이라는 족쇄.

이것만 풀 수 있다면 신차 말고도 얼마든지 방법은 생길 텐데.

신용카드 한도를 올리는 게 쉽지가 않다.

알아본 바로는 신차 구매 말고 결혼을 하거나 장례를 치르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큰돈이 들어갈 때 신용카드 일시 상향이 가능하단다.

그 밖에는 밀린 세금을 한꺼번에 내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특별한 상황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모두 해당이 안 되는 게 문제.

무슨 방법이 없을까?

다음 달 14일이면 무려 9억 9천이라는 거액의 비트코인 캐시백이 들어온다.

오늘은 5천2백만 원 넘게 들어왔었고.

한 번 큰돈을 맛보니까 1천만 원 결제해서 2200만 원 버는 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네.

일단 부딪혀 보자.

통화하러 나온 김에 한국카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행복한 오후. 즐거운 카드 생활. 한국카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가 개인 신용카드를 쓰고 있는데요. 한도 일시 상향에 대해서 문의드리려고요.]

[네. 고객님. 실례지만 어떤 용도로 결제하시려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라고 답해야 하나.

신차를 석 달 연속 구매하는 건 너무 무리고.

[제가 다음 달에 큰돈 쓸 일이 생기는데요. 용도는 지금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결혼을 앞두고 계시는지요? 보통 결혼 자금으로 한도 일시 상향을 많이 신청하시거든요.]

[그건 아닙니다.]

결혼이라니. 이혼부터 먼저 하고. 결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넌덜머리 난다.

[그러시면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하시려는지 말씀해주셔야 심사가 가능한데요.]

역시 전화상으로는 문의에 한계가 있다.

신용카드사의 주 수입은 카드 결제 수수료.

내가 내 돈 매달 십억씩 긁겠다는데 그 수수료를 마다할 카드사가 어디 있겠나.

다만 카드 긁어놓고 다음 달 돈 없다면서 빵꾸내는 고객 때문에 한도를 설정해놓은 거지.

핵심은 안정적으로 카드대금을 갚을 돈이 있느냐 바로 그것 아닐까.

문득 다음 달 들어오는 9억 9천의 캐시백이 떠올랐다.

14일에 들어올 예정인 내 인생 최대 목돈 9억 9천만 원.

무조건 일단 들어온다고 가정하고 생각하자.

그 첫걸음으로 한국카드 한도부터 올려야 해.

[상담사님. 상담을 하시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지시를 받으십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고객센터 말단 상담원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무슨 일을 하든 결정 권한이 있는 담당자를 상대해야 한다.

[보통 상담 코드에 없는 문의 내용이 들어오면 상위 매니저에게 물어보고 대답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만.]

미국 어떤 카드사에서 발급하는 신용카드.

카드 색깔이 검은색이라 일명 블랙 카드라고 불린다.

블랙카드가 유명한 이유는 전 세계 현존하는 카드 중에서 가장 한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카드사는 블랙카드가 없다.

그 미국 회사와 제휴 관계를 맺었거나 독점 계약을 체결한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없으면 자체적으로 만들면 될 게 아닌가.

처음에는 다음 달 14일 9억9천만 원이 들어오면 곧바로 옵션으로 생긴 빚부터 갚아버릴 작정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그랬겠지.

이지영에게 시달리고 비루한 일상에 찌든 평범한 30대 직장 남성.

하지만 난 달라졌다.

임태수 회장 말이 사실인지도 모르겠네.

내 관상은 뿌리로 뭐든지 빨아들이면 그 몇 배로 열매를 거둔다고 했다.

다음 달 14일 들어오는 9억 9천을 밑천으로 새로운 인생의 레이스를 시작해보자.

[신용카드 한도 일시 상향에 관해서 제가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임자를 연결해 주십시오.]

[책임자를 직접 만나시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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