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30화 (3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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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금과 뒷금

“내 친척 중 한 명이 지방에서 금은방 하시거든. 요즘 장사가 안돼서 죽겠다고 맨날 하소연이야. 서울도 사정은 비슷하겠지.”

“돌 반지 할 일 있으면 부장님께 말씀드리면 되겠네요.”

“김 대리. 원래 아는 사람한테 소개받아서 가면 더 뒤집어쓰는 법이야. 친한 친척도 아니고.”

“현금영수증 안 떼고 현금으로 사면 더 싸다고 하던데요. 뒷금이라면서. 저번에 유투브에서 봤습니다.”

“김 대리 잘 아네. 김 대리 가만히 보면 경제 전문가야. 비트코인도 아주 빠삭하고.”

“헤헤헤. 제가 관심사가 이것저것 많아서요.”

“그럼 뭘 하냐. 여자친구가 없는데.”

“흐흐흐.” “훗.”

차지영과 임하나가 동시에 웃는다.

김호창은 또 얼굴이 시뻘게졌다.

“장가를 가야 아이가 생겨서 돌 반지든 뭐든 만들지. 안 그래요? 혹시 우리 몰래 숨겨둔 자식이라도 있는 거 아냐?”

“아이 부장님은 총각한테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현금으로 금반지를 사면 더 싸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근데 난 9억 9천만 원을 한꺼번에 카드로 긁어야 하는데. 금반지 9억 9천만 원어치를 사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데. 좀 자연스러운 방법이 없을까?

“호창 씨. 금반지 말고 골드바는 어때? 투자처로 말이야. 경제 전문가로서 의견이 듣고 싶은데.”

“과장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골드바도 괜찮죠. 근데 골드바도 부가세 때문에 최소 10년은 묵혀야 겨우 본전이래요.”

난 상관없다. 투자 대상으로 금을 사려는 건 아니니까. 오로지 카드 실적만 올리면 된다.

“대신 부자들이 그걸로 상속세 안 내려고 많이 산대요.”

김호창이 말을 하고서는 임하나를 쳐다볼 듯하다가 멈칫했다. 여기서 부자라면 임하나 말고 누가 있을까. 괜히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

“그렇겠네. 골드바 금고에 넣어뒀다가 자식한테 물려주면 누가 알겠어.”

“우리나라에 지하로 유통되는 금이 장난 아니래요. 우리나라가 금 수출도 엄청 많이 하거든요. 금광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도 말이죠.”

“어차피 우리랑 상관없는 얘기긴 하지. 근데 호창 씨 소개팅할래?”

“부장님께서 어쩐 일로 절 그렇게 신경 써주십니까? 저야 좋죠. 예쁜가요?”

“예쁘지. 직장도 튼튼하고.”

“몇 살인가요?”

“호창 씨보다 4살 어릴걸.”

“딱 좋네요.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 아닙니까. 이번 주말로 정할까요?”

“그러지 뭐. 아 참 차지영 씨.”

“네. 부장님.”

“이번 주말 시간 비워둬요. 소개팅 잡혔으니까. 음흐흐. 크크큭.”

썰렁하긴. 아이고 이 부장님. 그렇게 노골적으로 밀어주면 될 일도 안 되겠다. 사내연애는 사실 영 별로지.

안 들키고 아무렇지 않은 사이처럼 연기하는 짜릿함 때문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비밀은 없다. 언젠가 반드시 들킨다.

주로 경비들에게.

“부장님. 농담 제발 그만하세요.”

“차지영 씨는 화 안 내는데.”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는 거죠.”

“다들 그거 알지? 영업 4팀에 이 대리랑 비서실 수현 씨랑 사귀는 거.”

“그럼요. 이 대리님 키도 크고 엄청 잘생겼잖아요. 남자가 아깝다고 얼마나 말이 많았는데요. 그에 비해서 비서실 걔는 아무리 봐도 영 별로던데요. 여우같이 생겨 가지고. 남자들은 왜 그런 여자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차지영이 저렇게 열변을 토하는 걸 봐서 속으로 영업 4팀의 이 대리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네.

“둘이 어떻게 들켰는지 알아? 이 친구들이 겁도 없이 퇴근 안 하고 저녁때 아 글쎄. 다들 알지? 전에 내가 얘기했었나.”

“안 쫓겨난 게 어딥니까.”

“저도 들었어요.”

“괜히 회사 내에서 엉뚱한 짓 하다가 걸리면 경위서 작성하고 재수 없으면 감봉까지도 가니까 다들 조심해. 개망신인 건 둘째치고.”

임하나는 어느 정도 선이었을까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김호창이 굳이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하나 씨 들어오기 전이었구나. 둘이서 비품 창고에서 할뻔했대.”

“했다구요? 창고에서요?”

“한 건 아니고 할 뻔한 거지. 계속 놔뒀으면 했을걸. 그랬더라면 짤렸겠지만. 하여튼 창고니까 그나마 봐 주신 거지. 만약 장소가 비서실이었으면 바로 잘렸을걸.”

“어떻게 걸린 거예요?”

“CCTV는 어디에나 있잖아. 경비가 수상히 여기고 가 봤대. 사실 내 생각인데. 수상히 여긴 게 아니라 그냥 현장을 들이닥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어. 그냥 놔두시지. 참 경비분들도 융통성이 없으시다니까.”

“김 대리는 엄청 부러운 가 봐. 자 다들 일합시다.”

“네. 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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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맞이해서 금은방이 많이 모여 있는 종로로 향했다.

가기 전에 미리 이것저것 상세히 알아봤지만 역시 직접 부딪히는 게 좋겠지.

종로는 참 특이한 곳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모든 세대가 고작 몇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함께 어우러지는 곳.

새로운 카페가 많이 생겨나서 거길 놀러 오는 젊은 커플, 장년층이 자주 오신다는 대표적인 탑골공원,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오래된 식당들도 인근에 많다.

귀금속점이 많이 모인 곳이 그 나라의 진정한 경제 중심지라던데.

저기 멀리 보이는 조그맣고 허름한 4층 건물의 금은방 하나가 무려 과태료만 100억을 내는 곳이기도 하다.

분위기를 살필 겸 어느 한 곳을 들어가 봤다.

“안녕하세요.”

대꾸도 없이 날 한번 아래위로 살핀다.

“거래 안 합니다. 그만 가세요.”

“네?”

무슨 장사꾼이 손님을 이렇게 문전박대하나 싶었지만. 미리 알아보고 오길 잘했네.

이 바닥은 원래 이런 곳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네.

“뒷금 사려고 온 거 아닙니다.”

“그래요?”

“뭐 좀 문의드리려고요.”

“뭘 말입니까? 말씀해보세요.”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 발행 안 하고 현금박치기로 금 거래하는 걸 신고하면 신고자가 20% 포상금을 받는다고 한다. ‘금파라치’라고 부르던데.

금파라치가 꼬일까 봐 낯선 사람은 아예 상대도 안 한다고 들었다. 금은방끼리 거래 아니면 오래돼서 믿을만한 단골만 받는단다.

“카드로 골드바를 살 수 있습니까?”

“카드요?”

카드라는 말에 안 그래도 띠꺼운 표정이 더욱 퉁명스러워진다. 카드로 결제하면 카드수수료까지 부담하니 더욱 그렇겠지.

금은 이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판매 상품이 아니라 삶의 밑천이다. 금은 가지고 있으면 결국 이득이라는 신념까지 더해져서 호락호락 아무에게나 금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에게 팔아버리면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셈이니 더더욱 시큰둥해진다.

“안 팝니다. 그냥 가세요.”

9억 9천만 원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쫓겨났다.

들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역시 쉽지 않겠네.

몇 군데를 더 돌아봤다. 결과는 비슷비슷했다.

어떤 곳은 아예 말도 꺼내기 전에 쫓겨났고 어떤 곳은 9억 9천만 원어치를 사겠다니까 질겁한다.

팔려면 팔 수는 있지만 크게 남는 건 없는데 괜히 거래 실적만 잡혀서 세금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돌아다니니까 배가 고파지네. 허탕을 쳐서 그런지 더 허기진다.

종로 어느 뒷골목의 자그마한 간이매점 같은 곳이 보였다. 저런 데가 의외로 맛집이지.

좁은 가게에는 테이블이 2개뿐이었다. 의자도 플라스틱 간이 의자. 빈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이 아주 단출하네.

“우동 하나 주세요.”

“예.”

몇 분 안 돼서 금방 음식이 나왔다.

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한데.

“음. 음. 으음?”

시발 더럽게 맛없네.

내가 끓여도 이보다는 맛있겠다.

아니지. 아예 마트에서 파는 인스턴트 우동을 집에서 끓여 먹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하필 연로하신 사장님이 내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맛이 어때요?”

도저히 맛있다는 말이 안 나올 국물이었다.

면조차 밀가루 냄새가 확 올라온다.

“맛있네요.”

“하하하. 정말? 다행이네.”

다행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음식에 도대체 뭘 넣었길래 다행이라는 겁니까? 먹고 안 죽어서 다행이라는 뜻은 아니겠죠?

“실은 내가 여기 장사를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됐어요.”

“아 네.”

그럼 내가 베타테스터 겸 실험쥐라는 의미잖아.

“하하하. 하여튼 죽을 때까지 이 동네는 못 벗어난다니까. 원래는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해 볼까도 싶었는데 아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으니까 여기서 가게를 열라고 하시더라고.”

“그러셨군요.”

오는 손님이 없어서 심심하셨는지 말을 많이 거시네.

아삭.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건 단무지였다.

“원래 내가 여기서 금은방을 했어요. 은퇴한 지는 얼마 안 됐지요. 취미 삼아 소일거리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자 싶어 조그맣게 가게를 차렸습니다.”

“훌륭하시네요. 은퇴 후 인생 2막 아닙니까?”

“그렇지요. 후흐흐흐. 국물 더 드릴까?”

“아닙니다. 거의 다 먹었습니다.”

“이 동네 들르신 걸 보니까 큰 아이 돌반지 맞추러 오셨구나.”

“아닙니다. 골드바 사려고요.”

“골드바? 으으음~.”

왜 그러시지?

“골드바면 은행에서 사시지. 아니면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구매 가능한데. 굳이 뭘 여기 종로까지 와서.”

“카드로 살 수 있다고 해서요.”

“카드? 카드면 이 동네 사람들이 더 안 좋아할 텐데.”

“그렇더군요. 안 그래도 몇 군데 둘러보다가 오는 길입니다.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파서요.”

“하하하. 안 봐도 비디오네.”

안 봐도 비디오라.

예전 분들이 많이 쓰시는 유행어였다. 요즘은 거의 안 쓰지.

아버지가 자주 그러셨다.

‘안 봐도 비디오’, ‘잘났어 정말’, ‘니 팔뚝 굵다’.

뭐 그런 것들.

갑자기 국물이 맛있게 느껴진다.

“아이고. 잘 드시네. 더 드려야겠어.”

“아닙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계산은 현금으로 하죠.”

“하하하. 현금이 최고죠. 금보다 유일하게 좋은 게 있다면 그건 현금이지. 국세청 사람들도 자기들이 금 살 때는 현금으로 계산하려고 할걸.”

국물을 바닥까지 모두 깨끗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는 또 그러셨지.

밥을 맛있게 잘 먹으면 복이 온다고.

“저기. 근데.”

“네?”

“아까 골드바 사신다고 하셨었잖아.”

“네. 맞습니다.”

“나도 종로 바닥에서 수십 년을 있다 보니까 사람 보는 눈이 생긴 건지는 몰라도. 손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어디 직장 다니시는 분 같은데. 손이 아주 크실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드네요.”

나도 모르게 괜히 내 손을 바라봤다.

내가 손이 컸나? 물론 우동 가게 사장님은 다른 의미로 말씀하셨겠지만.

“어이구? 손금이 엄청 좋으시네. 내가 알부자들을 몇 명 아는데 하나같이 손에 별이 있어요. 젊은 분은 별이 아주 크게 떴네. 지금이든 나중이든 돈을 제대로 긁어모으실 거야.”

“감사합니다.”

“덕담이야 돈이 안 드니 실컷 하는 거지요. 후흐흐흣.”

“하하핫. 그렇습니까?”

사장님이 말빨이 좋으시네.

“골드바는 얼마나 사시려고?”

사실대로 말할까.

정직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하질 않던가.

혹시 모르지. 무슨 길이 생길지도.

“9억 9천만 원어치를 신용카드 일시불로 결제할 생각입니다. 다음 달 14일 이후에요. 그리고 구입한 금을 다시 팔아서 현금화도 해야 합니다. 현금화는 그렇게 급한 건 아니고요.”

“그래요? 흐으음.”

우동 가게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거리시더니 돌아서서 설거지를 시작하신다.

“다음 달 14일 이후라. 그러시면 그때 여기로 다시 한번 와 보시겠어요?”

무슨 방법이 있으신 건가?

“아는 금은방을 알아봐 주실 수 있으신 겁니까?”

“일단 그때 가서 얘기합시다. 다음 달까지 이 우동집이 안 망하면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지.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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