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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만에 벌어진 일
오랜만?
이게 무슨 소린가?
이우철 검사는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고개를 돌려서 누굴까 확인하지는 않았다.
검찰청 구내식당 밥을 허투루 먹은 건 아니다.
겨우 이 정도에 흔들릴 거라고 착각하면 곤란하지.
별별 범죄자를 다 만나봤다.
한두 다리 건너서 아는 인맥을 들이대는 경우는 흔했다. 무시하면 그만이다.
여전히 서류에 시선을 고정하면서 이우철 검사도 입을 열었다.
“성함이 이지영 씨 맞습니까?”
“네. 맞아요.”
“오늘 어떻게 진행될지는 들어오시면서 다 들으셨을 테고 제가 또 되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네.”
“최대한 일찍 귀가하시는 걸 원할 테니 곧바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변호사와 함께 오든 혼자 오든 피의자는 미리 어떤 질문을 받을까 상상하면서 이곳을 방문한다.
육하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보통 그런 사항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나름대로 방비책도 준비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우철은 피의자가 파놓은 단단한 참호를 정면에서 돌파할 생각이 없다.
곧바로 방비가 약한 뒤를 친다.
처음으로 피의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왜 이런 짓을 저지르셨죠?”
상상을 한 건 피의자만이 아니다.
이우철 검사도 나름대로 피의자가 어떤 인물일지 미리 그려봤다.
남편을 놔두고 남편의 대학 동아리 동창들과 바람이 나서 혼외자 딸 둘을 낳았다. 문서를 위조해서 자기 앞으로 아파트 명의도 옮겨놓고. 상해 진단서도 첨부해서 고소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첫인상은 이랬다.
예쁘긴 예쁘네.
보통 검찰청에 오면 화장을 최대한 수수하게 하고 옷도 무난하게 입는다.
그런데 이 여성은 풀메이크업에 여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하는 타이트한 라인의 의상을 입고 있다.
그래.
몸매가 자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실제로도 그렇고.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검사를 꼬시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왜냐니요?”
“남편 이외의 남자와 바람을 피운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명백한 증거도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말해주고 있지 않나요.”
“변호사님께서 그러시던데 간통죄는 없어졌다고 하던데요.”
“자기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부인에게 아파트를 넘겨준다? 과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될까요? 더구나 남편이 출장 가고 없는 사이에 등기를 경료한다는 건 더더욱 납득이 안 되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 건지 궁금하네요. 검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묻는 겁니다.”
“저에 대해서 궁금한 게 아주 많으시네요. 그때도 그러시더니.”
이우철 검사는 피의자 이지영이 말끝마다 자기를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불쾌했다.
보통이라면 일단 선생님이나 혹은 피의자분이라고 지칭해준다.
그런데 오늘따라 상대가 유난히 거슬린다.
“개인적으로 그쪽이 누군지 저는 모릅니다.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곤란해요.”
“저는 굉장히 협조적인데요.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마찬가지였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자꾸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날짜가 워낙 특이해서 저는 또렷이 기억하는데요.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죠. 하필 광복절 늦은 밤에 사케를 드시더군요. 그리고 안 믿으시겠지만 제 생일이 광복절입니다. 잘 기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광복절? 늦은 밤? 사케?
이우철은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키워드 3가지를 이리저리 조합해봤다.
작년 광복절에 뭘 했지? 아니면 재작년? 특별히 한 건 없었다. 3년 전 광복절도 마찬가지였다.
서류를 뒤지면서도 머릿속은 한 해씩 뒤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
설마 그때 그?
이우철 검사는 자신도 모르게 앞에 앉은 여성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맞구나.
“기억나시나 봐요?”
여기서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하고 계속 조사를 진행하는 게 훌륭한 대응일까?
절대 아니지. 이 여자는 진흙탕으로 자신을 끌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르는 척 잡아떼는 건?
당장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어떻게든 들통이 난다.
아마도 그것이 상대가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
그런데.
피의자 이지영 씨.
고작 쥐 잡는 덫으로 코끼리 발목을 묶어둘 수 있겠어?
이년아 나 검사야.
술이나 따르는 것 주제에 어디서 맞먹으려고.
좃만한 덫은 그냥 밟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여전히 현직 성매매 여성으로 활동 중이신 겁니까?”
“···.”
“요즘 불황이라서 성매매로 밥 먹고 살기 쉽지 않으실 텐데요. 그렇다면 범행동기는 생계 곤란인가요?”
“말씀이 굉장히 지나치시군요.”
“원래 검사라는 건 굉장히 지나친 말 하는 직업입니다. 저한테 덕담 들으러 오셨습니까?”
“검사님. 잠시만요. 휴식시간을 10분만 가져도 되겠습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변호사가 달아오르려고 하던 대화를 중단시킨다.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됐는데 무슨 휴식입니까. 계속 진행하죠.”
“저희 의뢰인께서는 현재 몸이 매우 좋지 않으십니다. 남편과의 오랜 불화로 심신이 쇠약해지신 상태에다 최근에는 불면증과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현재 정신과 치료를 병행 중이기도 하고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공황장애로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소립니까? 멀쩡해 보이시는데요. 피의자에게 직접 묻겠습니다. 지금 당장 용변이 급하세요?”
“여자한테 너무 무례하시네요.”
“싸고 싶으면 싸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그래야 보내드리지요.”
“검사님. 저희 의뢰인에게 이런 식으로 질문하시면 곤란합니다. 이건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합니다.”
“오줌이 마렵냐고 본인에게 묻잖아요. 화장실 보내달라면서요. 확인돼야 보내드리죠. 지금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여긴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들락거릴 수 있는 룸이 아닙니다.”
“선생님 일어나시죠. 대답하실 필요 없습니다.”
변호사가 피의자 이지영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운다.
이지영은 사실인지 연기인지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서는 두 명 등 뒤에 대고 이우철 검사가 나직이 경고한다.
“10분 내로 돌아오십시오. 오늘 조사가 굉장히 길어질 예정입니다.”
**
이우철 검사는 피의자 이지영에 대한 고강도 조사를 끝마쳤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계속되는 마라톤 레이스였다.
피의자를 귀가시킨 후 아직 퇴근하지 않고 남아 있던 상사에게 곧바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요. 어 그래. 이 검사. 문 닫고 여기 앉아.”
“감사합니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우리 둘뿐인데 편하게 얘기해. 퇴근 안 하고 뭐 하고 있었어? 가끔은 일찍 귀가해야 와이프도 좋아하지.”
“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마침 퇴근 안 하고 계시더라고요.”
“무슨 말? 왜? 요즘 무슨 일 있어? 설마 검사 때려치우고 개업하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제가 얼마나 검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요.”
“알지. 그러니 그 말은 정년퇴직할 때까지 아껴둬.”
“말씀을 드릴까 말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부장님께는 꼭 털어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말해봐.”
이우철은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부장검사 김수민 앞에서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양심상 도저히 감추고 싶지는 않았다.
“현재 맡은 사건 피의자랑 예전에 관계를 맺은 적이 있습니다. 접대부였습니다.”
“···.”
“오늘 조사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상대가 먼저 노골적으로 티를 내더군요. 제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건은 다른 검사에게 재배당해주십시오. 저는 이 사건을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 조직에 누만 끼칠 뿐입니다.”
김수민 부장검사는 소속지방검찰청 안팎으로 평판이 좋았다. 인품이 온화하고 조직관리도 빈틈이 없다는 평이었다.
혹시라도 현재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김수민에게 폐를 끼칠까 이우철은 그것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난 또 뭐라고. 그래서 피의자랑 했다는 얘기잖아.”
“네.”
“언제였나?”
“6년 전입니다.”
“꽤 예전 일이었는데 그 사건 기억하나? 한창 시끄러웠던 적 있었잖아. 검사 하나가 수사받던 여자랑 무려 조사실에서 그랬던 거. 밖에서도 따로 만나고.”
“네. 알고 있습니다.”
“자네 케이스는 그놈이랑은 완전히 달라. 공소시효도 지난 과거 성매매로 현재 조사 중인 사건을 관둔다고? 검사가 맡은 사건을 포기하다니. 이우철. 너 책임감이 그거밖에 안 돼?”
“실망시켜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한테 미안할 거 없어. 상대가 먼저 찌르기 전에 와이프한테 빌고 각서라도 써. 다음에 또 걸리면 각서 또 쓰고. 와이프한테 쓰는 각서라는 건 누가 보라고 기록하는 일기장 같은 거야. 마지막에는 꼭 그렇게 적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그럼 아무 문제 없을 거야.”
“경험담이십니까?”
“훗. 까불 정신은 있구나.”
김수민 부장검사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우리는 법이라는 칼 하나뿐이다. 닭을 잡든 소를 잡든 그걸로 전부 때려잡아야 해. 자네가 지켜보기에 이번 피의자는 닭이던가 아니면 소던가?”
“암탉에 불과한 잡범입니다.”
“이우철. 넌 우리 지청 유망주 소 잡는 칼이다. 암탉 한 마리에게는 과분하지. 감히 우리를 농락하려는 암탉은 짓뭉개서 치킨패티로 만들어 버려.”
“부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그만 퇴근해.”
“안녕히 계십시오.”
“잡음이 생기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어때? 사건이 되겠어?”
“충분합니다.”
“추가 조사는 필요 없겠나?”
“남편과 한 차례 대질신문은 필요해 보입니다.”
“열심히 해봐.”
**
처음에는 고작 11만 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몇백만 원, 몇천만 원으로 불어났다.
마음부터 진정시키자.
옵션 투자로 크게 한탕 벌어보겠다고 헛바람이 잔뜩 들어가서 대출을 있는 대로 알아보던 때가 기억난다.
빌어먹을.
왜 그때랑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아니다. 재수 없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세밀히.
모든 준비는 다 마쳤다.
대한민국 원화를 취급하는 비트코인 거래소란 거래소는 모조리 가입해서 계정을 만들어뒀다.
제일 큰 비트업 거래소부터 시작해서 자그마한 곳까지 생각보다 많았다.
너무 작은 곳은 피했다. 무슨 문제가 터졌을 때 제대로 돈이 지급된다는 보장이 없다.
1일 원화인출 한도는 몇천만 원부터 몇억 원까지 다양했다. 서너 군데만 가입해도 9억 9천만 원을 하루 만에 현금화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휴우우우~. 긴 한숨을 내뱉었다.
11:57.
3분 후면 운명이 결정되겠구나.
당연히 오겠지. 와야 한다.
11:59.
12:00.
띠링.
[캐시백 전송을 시작했습니다.]
하아아. 됐다.
비트업 거래소에 로그인부터 완료했다.
현재 내 잔액은 0원.
저번 달에 들어온 돈은 이미 모두 빼서 은행 계좌로 옮겨놨다.
비트코인이 들어오면 저 ‘0’이라는 숫자가 ‘990,000,000’으로 변신할 것이다.
새로고침을 나도 모르게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기다리면 올 텐데 조바심내기는.
내 인생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숫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빠르면 30분 안쪽. 길어도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다른데 눈을 돌리려고 해도 손은 여전히 새로고침 버튼만 누르고 있었다.
안 되겠네. 이러다가 사람 돌아버리겠어.
침착하게 숨을 몇 번 더 크게 쉬고 비트코인 현재 시세라도 점검하기로 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잠잠하다.
크게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은 보합세.
아 맞다. 월봉으로 봐서 그렇구나.
차트를 주봉으로 바꾸자 요란하게 변한다.
일봉으로 바꾸니 아예 지랄이 났네.
비트코인은 일봉으로 보면 그나마 어느 정도는 차트 같아 보이는데, 월봉으로 보면 영락없는 작전주다.
주식 생초보인 내가 봐도 지독하게 털어먹고 세력만 쏙 빠져나간 쓰레기 차튼데.
김호창 대리가 왜 지금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지금은 한창 설거지 중이었다. 계단식 하락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트를 보고 있으니 시간이 좀 흘러간다.
그래도 여전히 10분도 안 지났다.
응?
갑자기 왜 이래?
거대한 장대 양봉이 떴다.
내가 마지막으로 분봉 설정해 놨었나?
클릭해봤다.
아니었다. 무려 4시간 봉이었다. 최근 4시간 동안 이만큼이나 갑자기 치솟는다고? 이게 말이 되나?
벌써 몇 프로가 오른 거야?
띠링.
얼마나 올랐는지 암산할 틈도 없이 문자가 울린다.
[캐시백 전송을 완료했습니다.]
재빨리 새로고침을 클릭했다.
[1,108,854,000원]
30분도 지나지 않아 9억 9천만 원은 11억 원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