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34화 (3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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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녹차의 공통점

손이 부르르 떨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비트업 거래소는 빨간색이 +, 파란색이 –다.

온 세상이 시뻘겋게 변했다.

남들은 한 달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몇백인데,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내 비트업 거래소 잔고는 11억을 찍었다.

지금도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몇백만 원은 우습게 아래위로 출렁거린다.

일단 바로 팔아서 현금화부터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 정도로 거대한 장대 양봉이 떴는데 곧바로 다시 비트코인 가격이 추락할까?

세상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잖아.

잘 될 때는 뭘 해도 일이 술술 풀린다.

반면 안 될 때는 하다못해 서류 종이를 넘기다가도 손이 베인다.

지금은 분명 밀물이 들어오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왜 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몇 달 사이 차트를 전부 훑어봐도 이렇게 우람한 장대 양봉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분명히 더 오른다.

그리고 아주 일부는 그렇게 생각할 거야.

좋았어. 이럴 때 팔아치우고 빠져야지.

하지만 그렇게 팔아치운 사람은 보통 후회한다.

어! 어? 어어어~~?

도대체 왜 계속 오르는 거야?

지금이라도 따라가야 하나?

아니지 추격매수는 패가망신의 지름길.

참자. 참아. 도저히 못 참겠으면 어플을 아예 지우자.

참다 참다 못 견디고 결국 구매.

그러면 놀랍게도 그때부터 쭉쭉 떨어진다.

그게 인생살이 아닐까.

지금은 흐름을 타자.

오늘이 14일이니 이번 달 말까지만 현금화해서 카드를 긁으면 된다.

흐흐흐흐. 흐흐히힛. 훗후흐흐흐.

미친놈처럼 웃음이 끝도 없이 나온다.

새로고침 할 때마다 한 달 치 월급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9억 9천만 원이 되었어야 할 내 비트업 잔고는 현재 11억 4천만 원까지 불어났다.

몇 시간 만에 1억 5천만 원을 벌었다.

역시 돈을 벌려면 판돈이 커야 해.

99만 원이었어 봐라. 15만 원 벌었겠지.

와아아. 참 상상만 해도 힘이 빠지네.

역시 인생은 한 방인가?

차트를 보고 또 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

.

.

손이 뜨끈뜨끈했다.

밤새도록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더니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

하마터면 꺼져서 기상 알람도 못 들을 뻔했네.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비트업 어플에 로그인했다.

자는 동안 보안을 위해서 강제 로그아웃되어 있었다.

[1,192,421,000원]

일십백천만십만백만 ···.

11억하고도 9천만 원.

자고 일어난 사이 또 5천만 원이 불어났다.

9억 9천만 원으로 시작한 내 비트코인은 하룻밤 만에 2억을 벌어들인 것이다.

주식으로 치면 상한가를 때린 셈인데.

가만 생각해보니 무시무시한 점이 하나 있었다.

비트코인은 상한가 하한가라는 게 없다.

거래는 1년 365일 24시간 풀로 돌아가고.

변동성이 어마어마하네.

이러니 사람들이 코인에 미쳐 버리지.

한 번 빠져버리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겠구나.

이런 날은 쉬면서 하루 온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출근하기로 했다.

“좋은 아침~.”

“과장님. 웬일이세요? 거의 9시 다 돼서 딱 맞게 도착하시고.”

“으응~. 어딜 좀 들르느라고.”

김호창 씨. 나 천국에 잠시 갔다 왔어.

홍콩이랑은 비교도 안 되더라.

“아침부터 고생이 많으시네요.”

“고생은 무슨. 전혀. 부장님은 출근하셨나?”

“네. 담배 피우러 가셨어요. 지영 씨랑 하나 씨는 아마 탕비실에 커피 마시러 갔을걸요.”

“으응~.”

“그런데. 과장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시네요. 무슨 좋은 일 있으셨어요?”

“내가? 그런가. 후흐흐흐.”

나?

하룻밤에 거의 12억 원이 생겨버린 남자 말이지?

생각해보니 1/2 로또에 당첨된 셈이네.

“아~. 알겠다. 이혼소송이 잘 풀리고 계시나 봐요. 오전에 변호사 만나고 오시는 거죠?”

그래. 그렇게 알아둬.

“글쎄다.”

미주그룹도 다른 회사들처럼 업무 시간은 9시부터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딱딱 기계 같을 수야 있나.

9시는 됐지만 여전히 이 부장은 자리에 없고 차지영과 임하나도 사무실로 복귀 전이다.

밖에서 여자들 수다떠는 소리가 들린다.

“하하하.” “호호호. 정말요?”

임하나는 차지영과는 꽤 친해졌나 보네.

차지영이야 회장 큰딸과 친해지면 나쁠 게 없고, 임하나도 사수인 차지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현명하겠지.

잠시 후에는 이기수 부장도 사무실로 들어왔다.

확실히 담배 냄새가 많이 줄었어. 진작 저렇게 신경을 쓸 것이지.

점심을 쏘려다가 괜히 오버하는 것 같아 가만히 있기로 했다. 오늘따라 밥맛도 좋네.

그럴 수밖에.

오전 내내 또 몇천만 원이 올랐거든.

지금은 12억을 돌파했다.

“과장님. 오늘 영 수상하신데요.”

“내가 뭘?”

“오전 내내 싱글벙글하시는 게.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야. 그냥. 여기 짬뽕 국물은 항상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얼큰하지 않아?”

“말 돌리시는 게 더 수상한데요.”

이기수 부장과 나 그리고 김호창 대리는 짬뽕.

차지영은 간짜장, 임하나는 짬뽕 국물을 추가해서 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여긴 국물도 짬뽕 국물인지 계란국인지 선택해서 먹을 수가 있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

볶음밥에는 짬뽕 국물이냐 계란국이냐의 논쟁이 뜬금없이 불붙었다.

“하나 씨는 매콤한 걸 좋아하나 봐? 저번에 부대찌개도 잘 먹더니.”

“네. 그런데 저는 중국집에서 먹을 기회가 되면 항상 볶음밥 먹어요.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그런가 봐요. 그런데 요즘은 볶음밥 맛있게 하는 집이 드물더라고요.”

“맞아. 여기만 해도 짬뽕은 잘하는데 볶음밥은 평범하더라고. 나도 먹어봐서 알지. 근데 볶음밥에는 뭐니 뭐니해도 계란국이 정통파지.”

“에이. 부장님. 아니에요. 볶음밥에는 당연히 짬뽕 국물이죠. 칼칼한 맛으로 먹는 거 아니겠습니까.”

“호창 씨가 아직 초딩 입맛이라서 그런가 본데. 뭘 모르네. 서 과장 생각은 어때?”

그게 참 신기하단 말이야.

나도 볶음밥에는 당연히 짬뽕 국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매콤한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근본은 계란국 같단 말이야.

나도 어렸을 때 볶음밥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계란국으로 먹어서 그런지 볶음밥에는 계란국이 더 클래식인 것 같다. 짬뽕 국물은 그냥 주방에 국물 남아있는 거 퍼주는 것에 불과하잖아. 국물 돌려막기인 셈이지.

“제가 만약 볶음밥을 혼자 시킨다면 짬뽕 국물을 먹겠지만 아무래도 계란국이 정통파 아닐까요?”

“거봐. 역시 서 과장이 뭘 제대로 아네.”

“과장님. 실망입니다. 사극에서 봤는데. 이럴 때는 그렇게 말하더군요.”

“뭐라고?”

“사문난적. 난신적자.”

“겨우 계란국 하나 가지고 무슨.”

“대리님은 사극 좋아하시나 봐요?”

“로맨틱 코미디는 오글거려서 도저히 못 보겠어. 사극은 재밌잖아. 도대체 로코 드라마 작가들은 머리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그렇게 오글거리는 대사를 쓰지?”

“그 맛에 보는 거죠. 사극은 수염 붙인 아저씨들만 잔뜩 나오는데 그딴 걸 제가 왜 보겠어요. 퓨전 사극이면 또 몰라도.”

직장인 점심식사 자리에서 대화 주제는 마치 비트코인 시세처럼 순식간에 급변하기도 한다.

“다들 그거 아세요? 오늘 새벽인가. 정확히는 자정 막 지나서 엄청난 사건 터졌었는데.”

“왜? 또 북한이 뭐 쐈어? 걔들은 맨날 도대체 왜 그러냐.”

“그게 아니고요. 부장님 앨런 머스크 아시죠?”

“알지. 그 친구가 왜?”

“자기 SNS에 글을 하나 올렸대요. Buy Bitcoin. 딱 2단어 올렸는데 반나절 만에 비트코인 시세가 20프로 넘게 폭등했대요.”

“20프로가 많은 거예요?”

“지영 씨가 이쪽 업계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린데. 비트코인은 전 세계가 똑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개잡주 한 종목 폭등하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생각해봐. 전 세계 금값이 반나절 만에 일제히 20프로 오르면 어떻겠어?”

“우리나라 주식도 상한가는 30프로잖아. 호창 씨 20프로 오른 게 엄청난 사건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단한 거야?”

“부장님. 앨런 머스크 정도의 인물이 사라고 했잖아요. 우리가 모르는 뭔가 대단한 일이 터진 거라고요. 그래서 지금 폭등하는 거예요.”

“머스크 그 친구는 그냥 관종이잖아.”

“하여튼 지금 머스크 때문에 비트코인 커뮤니티마다 난리입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미친 듯이 오르더라니.

가만 그럼 이거 실체가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거잖아. 왜 오르는지 이유도 없이 유명인이 사라고 했다고 오르다니. 왠지 불안한데.

“호창 씨. 그럼 비트코인 지금 오르는 이유가 단지 머스크가 사라고 해서라는 뜻이야?”

“과장님 요새 비트코인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혹시 벌써 사두신 거 아닙니까?”

이 녀석 쓸데없이 촉이 좋네.

“돈이 있어야 사지.”

돈 자랑은 하는 게 아니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그럼 조만간 떨어질 수도 있겠네.”

“그래도 한 며칠은 계속 오르지 않을까요?”

그렇구나.

알겠다. 타이밍 봐서 싹 팔고 현금화해야겠어.

김호창 고마워. 너도 가끔 도움이 되는구나.

“오후에 출출하실 텐데 간식으로 떡 드실래요? 이번에는 제가 쏘겠습니다.”

경사가 있으면 떡 돌린다고 하잖아. 나도 소소하게나마 성의 표시는 해야겠다. 돈 번 티를 안 내려면 이 정도가 딱 좋을 거야.

“오~. 역시 과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시다니까.”

“감사합니다.”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도 차지영은 형식적인 데 반해 임하나는 진심으로 좋아한다.

“하나 씨는 무슨 떡 좋아해?”

“사실 제가 떡 마니아거든요. 입맛이 할머니 같다는 소리 많이 들어요.”

“난 찰떡을 제일 좋아해. 쫄깃한 찰떡 위에 콩 대추 밤 같은 올려져 있는 떡.”

“저도 그거 정말 좋아해요.”

“그럼 그걸로 사줄게.”

“정말 감사합니다.”

“고작 떡 하나에 뭘 그렇게까지 감사할 건 아니고.”

점심을 먹고 근처 떡집에서 오후에 간식으로 먹을 떡을 사 들고 돌아왔다.

이 부장은 담배 피우느라 떡 같은 간식류는 별로 안 좋아하고 김호창 대리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수준. 차지영도 떡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임하나 얘는 은근히 나랑 입맛이 비슷하네.

나른한 오후 4시.

“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 테니까 아까 서 과장이 사가지고 온 떡 있잖아. 그거 먹고 있어. 한숨 돌리자고.”

“네.”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팀원들에게 떡을 나눠줬다.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제가 차 타서 올까요? 뭐 드실래요?”

“다른 사람들은 뭐 마실래?”

“저는 다이어트 중이라 제 커피 마실게요.”

차지영은 항상 자기 텀블러에서 커피 따라 마시니까 됐고. 다이어트 중이면 떡을 끊어야지. 떡이야말로 탄수화물 덩어리인데.

“하나 씨. 가는 김에 그럼 나는 믹스커피.”

김호창이야 항상 믹스커피. 쟤도 보면 설탕 중독이야.

“떡이랑 먹으려면 아무래도 무난한 녹차가 어떨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선배님은 커피 드시고. 대리 님은 믹스커피. 과장님이랑 저는 녹차.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고마워.” “부탁해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여직원에게 음료수 심부름을 시킨다? 어떤 사람들은 큰일 날 소리라면서 난리를 피울지도 모르겠지만 임하나는 자기가 솔선수범해서 먼저 하겠다고 나선다. 크게 힘든 일도 아니고. 임하나는 별로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녹차는 적당히 잘 우려져 있었다.

임하나가 티백도 미리 빼놨고.

달달한 찰떡에 곁들여 녹차를 마시니 오후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구나.

“하나 씨 녹차 아주 알맞게 우렸는데.”

“헤헤헤. 감사합니다.”

김호창한테 들었던 뉴스를 종합해보면 앨런 머스크의 ‘비트코인을 사라’는 한 마디에 촉발된 폭등. 그리고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는 상승 랠리. 왜 오르는지에 대한 실체는 여전히 밝혀진 바 없음.

뒷덜미가 서늘하다.

왜일까? 왜지?

녹차를 한 모금 천천히 음미했다.

임하나처럼 적당히 잘 우리면 아주 상큼하지만,

진한 맛을 내겠다고 티백 빼는 타이밍을 놓치면 과연 어떻게 될까?

고맙다 임하나.

덕분에 녹차 아주 잘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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