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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동전
그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금 팔아 치울지 아니면 계속 보유할지.
어떤 선택이든 일단 고르고 나면 그 후로는 되돌릴 수 없다.
비트코인 초보자인 내가 지금 와서 차트를 공부하고 비트코인이 뭔지 파본다고 결과가 달라질까.
“하나 씨.”
“네. 과장님.”
“500원 있어?”
“네? 왜 그러세요? 자판기 이용하시게요?”
“과장님. 저한테 있는데 제가 드릴까요?”
“아니야. 오늘은 하나 씨가 운이 아주 좋은 것 같아. 녹차 티백 끄집어내는 타이밍이 기가 막혔잖아. 몇 년 동안 먹어본 녹차 중에서 최고였거든. 동전을 던질 일이 생겨서 그래. 500원 있어?”
임하나는 의외라는 표정이다.
“잠시만요. 여기 있네요.”
“고마워.”
500원 동전은 숫자 500과 ‘학’이 그려져 있다.
학은 장수의 상징이자 고고한 선비의 동물이다.
선비가 나오면 점잖게 계속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500이 나오면 곧바로 팔아치우자.
공중으로 500원짜리 동전을 던졌다.
잠깐이지만 김호창, 차지영, 임하나의 시선이 한 곳에 쏠린다.
탕. 탕. 데구르르르.
동전은 사무실 바닥을 돌돌돌 굴러가기 시작했다.
덜컥.
“응?” “어?” “부장님.”
“웬 동전이야? 500원이 굴러오네. 횡재했어. 나 오늘 운이 좋으려나 봐.”
동전은 하필 출입문 쪽으로 굴러가다 마침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던 이기수 부장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기수 부장이 냉큼 굴러가던 동전을 집어 든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지?
“부장님. 그거 건드리시면 어떻게 해요.”
“왜?”
“과장님이 앞인지 뒤인지 확인하려고 던지신 건데.”
“서 과장이? 왜?”
뭐라고 둘러대냐.
“떡을 하나 더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못 정하겠더라고요. 동전으로 결정하려고 했죠.”
“뭐야? 흐흐흐. 참나. 서 과장도 보면 가끔 엉뚱한 구석이 있어.”
“에이 과장님. 그냥 하나 더 드세요. 지영 씨처럼 다이어트 하실 것도 아니면서.”
이 부장이 임하나의 동전을 건드리고 말았다.
불길해.
팔아치워야겠어. 괜히 찝찝해졌다.
내가 사 온 찰떡을 하나 더 뜯었다.
우물거리면서 비트업 거래소 잔고를 확인했다.
원화로 환산한 현재 잔액은 1,239,588,000원.
12억이 넘는 거금의 비트코인이다.
그래. 미련 없이 팔자.
참. 그러고 보니.
김호창이 그렇게 말했다.
100억을 벌면 비트코인을 나눠서 여러 거래소로 보낸 후에 한꺼번에 팔아치우겠다고 했었지.
거래소는 하루에 기껏해야 몇천만 원 아니면 몇억 원까지만 현금으로 인출이 가능하다.
김호창 말대로 한다면 하루 만에도 100억 원을 현금으로 만들 수 있다.
비트코인은 은행 계좌이체처럼 0.1초 만에 보낼 수는 없다. 30분이나 혹은 1시간 길어지면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들었다.
만약 다른 거래소로 내 비트코인을 보내다가 가격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안 되지. 안전이 최우선이다.
지금 전부 팔고 비트업 거래소 하루 인출 한도액 2억씩 나눠서 7일 동안 통장으로 빼내면 되겠네. 오늘이 14일이니 20일까지는 전액 인출 가능하겠구나.
자 누르자. 매도 버튼. 미련 두지 말고.
클릭.
눈 녹듯이 비트코인이 팔려나간다.
수수료를 제외하고 최종 보유액은 1,238,968,000원.
매도 수수료만 60만 원이 넘는다. 12억짜리 거래라서 수수료도 엄청나네.
팔고 나니까 괜히 시원섭섭하네. 이런 게 사람 마음이지.
가지 않은 길을 궁금해봤자 뭐하겠나.
“어? 이런.”
김호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대리님. 왜 그러세요?”
“호창 씨 왜 그래?”
“설마 랜섬웨어 걸린 거 아니지? 전원부터 뽑아.”
“그게 아니라요. 아까 점심 먹을 때 얘기했던 그 사람.”
“누구?”
“앨런 머스크요. 방금 자기 SNS에 또 글을 올렸어요.”
“그 친구는 부자라서 좋겠다. 한가하게 SNS나 하고.”
“뭐라고 올렸는지 부장님은 안 궁금하세요?”
“전혀. 난 이번 대체 공휴일을 우리 회사가 쉴지 안 쉴지가 더 궁금한데. 다른 사람들은 어때?”
“저도 그렇습니다.”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회사들도 전부 쉰다던데요.”
“지금 대체 공휴일이 문제가 아니라고요. 게임 오버. 앨런 머스크가 자기 SNS에 ‘Game Over.’라고 딱 두 단어 올렸어요.”
“그 친구도 게임 중독잔가.”
“아이참 부장님도. 하하하.”
잠깐.
오늘 0시경 ‘Buy Bitcoin.’이라는 두 단어로 파멸적인 상승이 시작됐다.
‘Game Over.’라는 두 단어로 반대 상황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저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서 과장. 떡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냐? 하하하하. 어서 가봐.”
문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비트업 거래소에 로그인했다.
음~. 아직은 잠잠하네.
현재까지는 별 변화가 없···.
시발.
대략 17시간 전 봤던 그 거대한 장대 양봉.
정확히 그만큼의 크기.
다만 색깔이 정반대였다.
이번에는 온 세상이 새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거래량이 폭발한다.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집어 던지다 보니 아래를 받치는 지지선이고 뭐고 없었다.
매도 물량을 꿀꺽 받아먹겠다고 매수 예약을 걸어둔 사람들은 모조리 입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야 저게 바로 상투 잡힌 거구나.
순간 소름이 돋는다.
만약 내가 팔아치우지 않았더라면?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5프로가 하락했다.
심상치가 않았다. 폭락의 조짐이 보인다.
난 처음에 적어도 며칠은 이 상승 기류가 계속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기세가 수그러들 수도 있을 듯싶다.
어차피 지난 몇 년간의 추세로 보면 지금은 비트코인의 대하락 시기다.
이건 잠깐의 데드캣이 아니었을까?
상승 하강의 재료는 항상 만들기 나름이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이유는 뭐든지 가져다 붙이면 되고.
이번에는 그게 앨런 머스크의 SNS였을 뿐이지.
사무실로 돌아오니 김호창 대리가 여전히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머스크가 자기 SNS에 글을 또 올렸네요. ‘Crazy Ending.’ 지독한 관종이네요. 잠깐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돌아봤는데 분위기가 무서워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을 전부 팔아치우겠대요.”
“호창 씨는 가만 보면 도대체 커뮤니티를 몇 개나 돌아다니는 거야? 저번에는 부동산 카페도 가입했다고 그랬잖아. 걸그룹도 있지 않았어?”
부장의 걸그룹이란 말에 김호창 얼굴이 또 붉어진다.
“어머! 대리님. 걸그룹 좋아하는 덕후셨어요?”
“덕후까지는 아니고. 그냥 요즘 즐겨 들어. 걸그룹 노래가 워낙 세련됐잖아.”
변명 참 궁색하네.
좋으면 좋다고 왜 말을 못 하니.
김호창 대리 큰 형님뻘인 남궁형도 걸그룹이라면 환장하는데 김호창이 부끄러울 건 없지.
“대포 카메라 들고 걸그룹 쫓아다니는 그런 사람들이나 덕후지 저는 아니에요. 괜히 이상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여튼 삽시간에 비트코인 떡락하고 있어요.”
“오늘 오후에는 떡 얘기가 많네. 서 과장 속은 좀 어때?”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다. 아니지. 오히려 너무 좋다.
이 부장 덕분에 비트코인을 머리 꼭대기에서 팔아치웠다.
이 부장이 동전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만약 학이 나왔다면?
난 분명히 운명을 믿고 계속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팔아치우겠다고 결정한 이후에도 또 하늘이 도왔다.
여러 군데 거래소로 비트코인을 보냈더라면?
비트코인이 전송되는 시간 동안 가격이 떨어져서 역시 손해를 봤겠지.
12억에서 5프로만 빠져도 6천만 원 마이너스다.
하락세는 오후 내내 계속됐다.
6시를 넘어서자 내가 팔았던 최고점에서 20퍼센트나 추락한다. 아찔하네.
결국 14일 오전 0시에 ‘Buy Bitcoin.’으로 폭발을 시작됐던 랠리는 ‘Game Over.’로 망치를 얻어맞고 ‘Crazy Ending.’으로 어이없이 끝났다.
15일 0시 비트코인은 14일 0시 폭등을 시작하기 직전보다 오히려 10퍼센트나 가격이 하락해버렸다.
고작 하루 만에 여러 사람 죽어났겠네.
반면 나는 9억 9천만 원어치 비트코인에서 최종 12억3천8백여만 원 현금화 성공.
캐시백이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팔지 않고 기다렸더니 2억 5천이 불어난 것이다.
운 좋게 최고의 시점에 팔아 치웠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
하루 월차를 내고 종로로 향했다.
저번 달 현장 금 시세도 알아볼 겸 종로 귀금속 상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답사 차원에서 둘러보다 배가 고파서 들어간 어느 우동 가게.
지난번에 위치를 잘 기억해두지 않았더라면 못 찾을 뻔했다. 그만큼 조그맣고 구석진 곳에 있었다.
사장님이 농담으로 다음 달까지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게 생각나네.
다행히 영업 중이었다.
덜컥.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아이고 이게 누구야. 손금 엄청 좋은 그 손님이시네.”
“바로 알아보시네요.”
“오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핫하하하.”
그러게. 오늘도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이래서야 조만간 정말 사장님 농담대로 문 닫는 거 아닌가. 보니까 인테리어에는 별로 돈을 안 쓰신 것 같고. 정말 돈 벌어보겠다고 시작하신 게 아닌듯하다. 취미 삼아 하시는 게 아닐까.
“저번에 그랬었지요. 9억 9천만 원을 일시불로 결제해서 금을 사시겠다고.”
“네. 그런데 9억 9천만 원이 아니라 12억 원어치를 사려고 합니다.”
“허~. 그래요? 그새 돈을 더 버셨나? 훗.”
“가능할까요?”
“일단 앉아서 우동 한 그릇 드세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요.”
또 그 맛없는 우동을 먹어야 하나.
사절하고 싶지만 차마 사장님 면전에 대고 맛없다고 털어놓지는 못하겠다.
비주얼은 참 그럴듯하단 말이야.
후르륵.
음. 음. 음? 음!
도대체 이게 무슨 기적인가?
고작 한 달 만에 먹을만해 졌다. 아니지. 먹을만해 진 정도가 아니라 꽤 맛있어졌는데.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사장님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때요?”
“이번에는 진짜 맛있는데요.”
“저번에는 별로였어요?”
“네. 솔직히 그땐 제가 먹어본 우동 중에서 최악이었습니다.”
“후흐흐흐.”
“무슨 비결이 있으십니까?”
“해답은 프랜차이즈더군요. 가맹점 계약을 얼마 전에 체결했지요. 조만간 인테리어 공사 시작하면 여기도 ‘이수홍’ 우동 종로 1호점이 될 겁니다. 그때 또 놀러 오세요.”
“그러셨군요. 잘하셨네요.”
역시. 맛집 노하우는 프랜차이즈를 못 따라가지.
“사람들이 보통 오해하던데. 금깡이라고. 사실 이건 깡이 아니지요. 금을 실제로는 사지도 않으면서 카드계산서 발급해주는 게 깡이고.”
“저는 금을 샀다가 다시 팔 겁니다. 신용카드 실적을 올려야 해서요.”
“그 카드 참 궁금하네. 도대체 무슨 카드길래. 카드 한도가 10억이라는 소리잖아요?”
“네. 한국카드인데 제가 담당자랑 지난번에 상담도 끝마쳤습니다. 예치금을 넣어두는 한도만큼 결제 가능하도록 말입니다.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그럴 테니까 여기까지 오셨겠지. 나도 결제대행사에 문의를 따로 해 봤습니다. 거기서도 놀라면서 그러더군요. 개인카드 한도가 9억 9천만 원인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명 없을 텐데 도대체 누구냐면서. 어쨌든 결제는 가능하다고 답변을 받았습니다.”
“금깡으로 의심받지 않을까요?”
사장님이 빙긋 웃는다.
“이 바닥에서 금깡으로 걸리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이래요. 손님이 A 금은방에서 금을 삽니다. 그리고 곧바로 A에 팔면 누가 봐도 이상하지요. 하지만 시간을 두고 나중에 B 금은방에 팔면?”
“그러면 괜찮나요?”
“종로에서 그렇게 해서 금깡으로 잡혀들어간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법은 어디나 허점이 있다.
파고들면 공무원도 어쩔 수 없는 구석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
“그건 그냥 자기 금 손해 보고 판 거 아니겠수? 투자실패지. 손님 같은 경우는 카드 실적을 위해서 일부러 손해를 보는 거고. 아마도 카드 실적으로 다른 이득이 있을 테니 그러겠지만.”
“그렇습니다.”
“그게 뭔지까지는 내가 상관할 필요 없고.”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역시 장사꾼들 머리 굴리는 건 알아줘야겠어.
문제는 수수료다. 나중에 220퍼센트 캐시백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수수료는 최대한 줄여야지. 한 번 들어보자. 얼마나 중간에서 해 먹는지.
“수수료는 얼마인가요?”
“어떤 곳은 17프로 어떤 곳은 25프로 다양하게 떼는데. 손님의 경우는 세금을 제외하고 20퍼센트입니다.”
20프로 손해를 보고 현금화라~.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내 예상보다 저렴했다.
나한테는 수수료가 얼마인지 세금을 얼마 내야 하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금으로 현금화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핵심이지.
20퍼센트 마진을 두고 금은방끼리 서로 나눠 먹겠지. 이 우동집 사장님도 소개비 정도는 받으시지 않을까. 당연히 그래야 하고.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우동 한 그릇 더 하실래요?”
“좋죠. 아주 맛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