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36화 (3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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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대비

“아이고. 김 사장님. 잘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요즘 장사 잘 되세요?”

“불황이라 난리지요. 여기도 마찬가지고요. 잘 아시면서 물으시네. 하하하. 바로 이분이시구나. 젊은 분이 대단하십니다.”

50대 후반이나 60대 정도로 보이는 금은방 주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김 사장님께 말씀은 미리 다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들끼리 얘기도 끝났고요.”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았다.

여기 오기 전 나름대로 충분히 알아봤다.

골드바도 하나의 상품이라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제일 중요한 건 누가 만드는지였다.

가장 확실한 건 한국조폐공사가 제조하고 인증한 골드바.

금 함량과 성분을 속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밖에도 개인 업체들이 만든 골드바가 있지만 나는 더 비싸더라도 조폐공사가 제조한 금으로 요구했었다.

말하자면 조폐공사가 제조해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골드바를 내가 중고로 사는 것이다.

이곳 사장이 며칠 기다려달라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개인이 한 번에 이만한 물량을 구매하는 건 드문 일이었나 보네. 더구나 카드 결제로.

띠리리릭.

카드 긁는 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무려 12억 원이었다.

이걸 받아주는 금은방도 대단하다. 물론 챙기는 이득이 있으니 하는 거겠지만.

드르르르르.

금은방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캐리어 하나를 끌고 오신다.

“10킬로 훨씬 넘는 무게라서 따로 캐리어를 준비했습니다.”

가방을 열어서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다.

모두 조폐공사 골드바가 확실했다.

금이라는 놈은 이렇게나 무겁구나.

별로 크지 않은 조그만 캐리어가 마치 바윗덩어리 같았다.

“혼자서 옮기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원하시면 저희 직원이 원하시는 곳까지 함께 가드릴 수도 있고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실은 따로 사람을 한 명 불렀습니다.”

12억 원어치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혼자서 내가 원하는 장소까지 들고 가는 건 위험하지. 아무리 우리나라 치안이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잖아.

위이잉. 위이잉.

“네. 저는 말씀드린 금은방입니다. 이리로 오시면 됩니다. 장소는 제가 미리 말씀드렸죠. 네. 네. 바로 앞이시라고요?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3분도 안 돼서 누군가 금은방 안으로 들어온다.

“여깁니다.”

우동 가게 사장님과 이곳 금은방 사장님 둘 다 꽤 놀란 눈치다.

은행 청원 경찰복을 입은 남자였다.

“도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차까지는 제가 들죠. 차에 싣는 것만 좀 도와주세요. 꽤 무겁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 달에 ‘이수홍’ 우동 종로 1호점 오픈하시면 꼭 들르겠습니다. 우동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실 겁니다. 화환은 따로 보내드릴게요. 번창하세요.”

“젊은 분이 참 세심하시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힘든 거래까지 성사시켜 주셨는데 그 정도야 당연하죠.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그러세요. 조심히 들어가시고. 딱 보니 조심 안 해도 충분하겠지만. 솔직히 은행 청원 경찰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핫하하.”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 달에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드르르르르.

목적지는 종로 금은방에서 별로 멀지 않은 어느 은행이었다.

이번 거래를 준비하면서 대여금고 서비스를 알아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곳을 골랐다. 이렇게 청원 경찰까지 따로 보내준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보증금과 수수료를 합해서 90만 원이나 된다.

우선 기간은 한 달로 정해뒀다. 나중에 상황을 봐서 더 연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걸 다음 달에 다시 현금으로 바꿔서 한국카드 예치금을 마련해야 한다.

“어서 오십시오. 서지오 선생님이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첩보 영화에서나 보던 스위스 은행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나 혼자 은행 금고로 들여보내 준다.

꽁꽁 밀봉한 골드바를 개인 금고에 차곡차곡 보관했다.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네. 캐리어는 나중에 다시 가지고 와야겠어.

“볼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저희 은행 대여금고 서비스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운이 정말 좋았다.

대여금고 빈자리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던데, 대한민국에 돈푼깨나 만지는 부자들이 그렇게 많은지는 몰랐네. 은행 몇 군데 전화를 걸었는데 모두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긴 마침 내가 전화를 거는 당일 한 자리가 빠져서 가능했다. 예약자가 없던 것도 천만다행이었고.

월차를 쓴 김에 오늘 김지영 변호사도 만나기로 했다.

김지영의 로펌에 도착하니 작은 회의실로 따로 안내를 받았다.

잠시 후 김지영이 방에 들어온다.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와야죠.”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모신 건 다름이 아니라 대질신문 때 어떻게 대응할지 말씀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검사 대질신문.

보통 보면 언성이 높아지는 건 기본이고 삿대질까지 주고받던데. 이혼까지 앞둔 마당에 이지영 측과는 얼마나 거친 고성이 오갈지 모르겠구나.

“보통 영화에서 보면 고소인과 피고소인 측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설전을 벌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요. 사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요?”

“검사 앞에 나란히 앉아서 검사가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게 고작입니다.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싸우면 나가서 싸우시라고 쫓겨나죠. 실제로 검사실 방 복도나 휴게실에 보면 민원인들끼리 언성 높이다 제지당하거나 직원들이 출동하기도 합니다.”

“아 네. 그렇군요.”

“사람들이 검사 앞에서는 대부분 고분고분해지기 때문에 조사받는 과정에서 소리 지르고 그런 경우는 생각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검사는 주로 이지영 측이 주장하는 사건 당일 선생님께서 어디서 무얼 하셨는지 집중적으로 물어볼 겁니다.”

“그날 저는 집으로 돌아갔다가 그대로 나왔을 뿐입니다. 갔더니 그 김정민 변호사가 수건으로 아랫도리만 가리고 저를 맞이했을 뿐이었죠. 제가 말씀드린 대로 김정민과 이지영 몰래 녹음은 모두 했었고요. 아무 충돌 없이 저는 짐을 챙겨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검사가 아마 이렇게 물을 겁니다. 그날 그 후로 다시 집을 방문하지는 않았느냐고요.”

“동탄의 아는 지인과 만나서 술을 먹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서 같이 근처 어느 국밥집에 갔었죠. 상당히 특이한 곳이었는데 종업원한테 일본말로 주문하더라고요. 퓨전 국밥집이라면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짐을 싸 들고 갈 수는 없었다. 남궁형에게 연락을 취해 우선 며칠 신세를 지기로 했었지. 그 형한테는 항상 참 고맙네.

“잠시만요. 택시는 무얼로 결제하셨습니까?”

“제 카드로 했죠.”

“그럼 그 국밥집은요?”

“그것도 카드입니다.”

택시는 한국카드로 결제했다. 퓨전 국밥집에서도 남궁형이 사겠다는 걸 내가 말렸지. 신세 지는 것도 미안한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내 카드로 계산했었고.

“그래요? 잠시만요. 흐으음~. 선생님 카드사 앱에 들어가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카드사 앱에 로그인했다.

“네. 기록이 있네요.”

당일 결제 내역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선생님. 제가 잠시 카드사에 전화를 해보겠습니다.”

김지영 변호사가 한참 동안 카드사 상담센터 직원과 대화를 나눈다.

“공공기관 제출용으로 선생님의 카드 결제 내역을 서류로 보내줄 수 있다고 하네요. 본인 동의를 거치면요.”

“잘됐네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지영 측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제가 이지영 측 인물이라고 상상하고 대답해보시죠. 기왕이면 제가 리얼하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김지영 변호사가 음 음 거리면서 목을 가다듬는다.

“서지오 씨. 그렇지만 지인과 술을 마시고 다시 저희 고소인께서 계신 곳으로 되돌아왔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몇 시간 전 김정민 변호사를 보고 눈이 뒤집혀서 말입니다.”

김지영이 나를 노려보면서 질문을 던진다. 진지한 건 좋지만 약간 웃기네. 김지영은 상황에 몰입을 잘하는 타입인가.

“지인과 술을 마시고 지인의 집으로 함께 돌아갔습니다. 다시 아파트를 찾아가진 않았습니다.”

“술까지 마셨다면 더 홧김에 원한을 품고 찾아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안 찾아갔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절대 안 갔습니다.”

김지영 변호사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킨다.

“검사님. 저 남자는 항상 저렇게 입만 열면 거짓말만 늘어놔요. 분명 현관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더니 짐승처럼 제 얼굴을 때렸습니다.”

흐흐흐. 아니 변호사님. 너무 리얼한 거 아닙니까.

톤에 분노가 잔뜩 실리셨는데요. 눈빛에서는 살기가 감돌 정도라고요. 무슨 재연 전문배우라도 되신 줄 알았네.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를 보시면 되겠네요. 제가 갔는지 안 갔는지 나올 거 아닙니까?”

김지영 변호사가 다시 자신으로 돌아왔다.

악녀에서 정의의 변호사로. 연기 변신이 아주 파격적이네. 방금까지만 해도 눈을 부라리다가 새침한 척하는 게 웃긴다.

“선생님. 현재로서는 그게 문젭니다. 선생님이 계신 아파트 관리실에 제가 문의를 해 봤는데요. 그 날짜의 CCTV 자료는 오래돼서 남아있는 게 없답니다.”

“그렇군요. 어떻게 하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역삼역 호텔에서 확보해둔 엘리베이터 CCTV 화면이 있습니다. 그걸로 상대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고 오락가락한다는 걸 검사에게 보여주면 됩니다.”

역시 변호사를 잘 골랐어.

대비가 아주 철저하다.

엉뚱한 구석이 있는 게 귀엽기도 하네. 인간적이기도 하고.

굳이 이지영으로 빙의해서 날 몰아붙이는 연기는 일품이었다. 여자들 화내는 톤은 항상 들어도 질린단 말이야. 특히 이지영의 목소리는 다시 안 듣고 싶다. 이번 재판만 끝나면 영원히 들을 일이 없겠지.

김지영 변호사와 2시간 넘게 대질신문 준비를 마치고 귀가했다.

**

신입 사원들은 항상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영업 3팀 팀원들도 마찬가지. 차지영이나 김호창이 그랬고 나도 실수한 적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이기수 부장도 그랬을 테고.

임하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업 3팀 내 모든 컴퓨터 파일은 보기 편하도록 파일 이름 뒤에 날짜와 몇 번째 수정 버전인지 숫자가 붙는다.

‘수입 선정 기획안_230501_1’ 이런 식으로.

그리고 최종은 뒤에 최종이라고 붙인다.

‘수입 선정 기획안_230501_최종’.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꼭 실수가 따라다닌다.

주로 복사 붙여넣기 과정에서 벌어지는데 최종 버전에 예전 내용이 어쩌다가 뒤섞이는 것이다.

그걸 찾아내는 게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거 하나 씨가 작성했지? 좀 이상해서 체크해보니까 숫자가 달라.”

“네? 과장님 잠시만요. 지금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그래요.”

조그만 사무실이다 보니 사내 메신저가 필요 없었다. 다른 팀과 협업이 필요한 작업도 거의 없고. 그냥 다이렉트로 묻고 답한다. 100대 기업 미주그룹이지만 이렇게 보면 그냥 경기도 변두리 어느 중소 하청 업체 사무실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붙여넣기 하다가 그만 예전 걸 또 복사해서 붙여넣었나 봐요.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완벽하네.

자기가 저지른 실수가 어딘지 곧바로 찾아냈고 재발 방지와 사과까지.

“네. 조심해줘요. 더 집중하고.”

김호창과 차지영이 지금 같은 실수를 처음 저질렀을 때랑 똑같이 대했다. 말하는 톤도 똑같이. 아마 대사까지 똑같았을걸.

임태수 회장 큰딸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취급하지는 않는다.

“서 과장. 별일도 아닌데 뭘 그런 걸 가지고 신입 사원 기를 죽이고 그래요. 하나 씨가 들으면 얼마나 서운하겠어.”

이기수 부장은 여전히 임하나를 특별취급한다.

날 핀잔주는 이 부장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가령 이렇게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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