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38화 (3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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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인사드릴까?

임누리는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이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성비가 뛰어날 수 있을까?

아니지.

가격 대비가 아니라 그냥 성능 자체가 월등하다.

공짜로 강남 한복판의 90평대 사무실을 쓰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로테이션으로 돌리는 주력 멤버들보다도 훨씬 훌륭했다. 로테이션 멤버들도 직접 추리고 추려서 엄선한 여자들이다.

화류계에 여전히 남아있었더라면 대한민국 음지에서 한 획을 그었을 명기다.

아깝다. 아까워.

이런 여자를 고작 하숙향의 1심 판결 전까지만 데리고 있어야 한다니 말이야.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약속을 하기는 했다. 하숙향의 1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고소를 취소해주기로.

하지만 약속이란 건 깨지라고 있는 거 아닐까.

임누리는 가급적이면 최소한의 유지비로 이지영을 계속 만나고 싶었다.

“우리 엄마 고소는 언제 취소해줄 거야?”

분명히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라고 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슬슬 말을 놓고 있다.

남자한테 기어오는 게 습관이 된 여자다. 아니면 아예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남자를 흔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형의 여자가 분명했다.

“그야.”

임누리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반말 툭툭 내뱉는 짓거리를 멈추고 고분고분해질 때지.”

“우리가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내 용건에 따라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존재가 바로 너야. 처지를 잊지 마.”

이지영은 화장대 거울에 비친 임누리를 노려봤다.

어머니 하숙향에 대한 고소만 아니었다면 상대할 가치조차 없을 남자였다. 자신의 약점을 쥐었다고 생각하고 비열하게도 그걸 최대한 우려먹고 있었다.

몇 번 만나보면 어떤 남자든 파악은 끝난다.

이 개새끼는 제일 버겁고 귀찮은 스타일이다.

사랑을 들먹거리며 컨트롤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혹에 넘어오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기 욕심만 차리는 짐승 같은 새끼였다.

돈으로 따지자면 한 번 만날 때마다 얼마나 손해인가.

이지영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만남은 지금까지 한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해봐. 우리 엄마 고소 취소 안 해줄 거지?”

“말했잖아. 전적으로 너 하기에 달려 있다고.”

“얼마든지 우린 친구가 될 수도 있어. 즐겁게 만나는 파트너 같은 관계로 지낼 수도 있고. 당신 하기 나름이잖아. 엄마 고소부터 취소해줘. 나도 슬슬 당신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단 말이야. 어차피 난 지금 만나는 남자도 따로 없고.”

“흥. 웃기고 있네. 차라리 아무 말을 안 했더라면 더 그럴듯했을 거야.”

“아닌데. 난 진심이야. 내가 왜 당신 같은 재벌 2세를 마다하겠어. 내가 그동안 만났던 그 누구보다도 조건이 좋잖아.”

“우선 정정하지. 미주그룹은 아직 재벌이 아니야. 내가 언젠가 그렇게 만들기 전까지는.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게 하나 있어.”

“뭔데?”

“그 건방진 태도. 어떤 남자든지 항상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그 시건방진 태도가 굉장히 거슬려.”

“하지만 그게 사실인걸. 훗후후흐.”

이지영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임누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평생을 저렇게 살아온 여자다.

그 자신감이 계속 통했으니까 저런 태도를 취하는 거겠지. 어차피 인간적으로 얽힐 필요 없는 사이다. 필요한 것만 최대한 뜯어내면 그뿐이다.

저런 여자에게 정이 든다?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분명히 말해두지. 고소를 취소해 줄 때까지 내 명령을 따라. 아니면 하숙향이라는 여자는 앞으로 대법원까지 계속 휠체어 타고 환자 흉내 내면서 재판을 받아야 할 거야.”

“그러니까 고소는 취소해줘. 그럼 니가 하라는 대로 할게. 지금도 난 충분히 그렇게 해주고 있잖아.”

이지영이 다가온다.

임누리의 목에 두 손을 휘감았다.

“벌써 갈 거야?”

“치워. 볼일은 끝났어.”

“난 아직 많이 남았는데.”

“오늘 용건은 여기까지야. 다음에 부를 때까지 대기해. 그럼 먼저 나갈 테니 핸드폰은 늘 놔두던 거기 놔두겠어.”

임누리는 이지영의 손을 뿌리치고 호텔방을 떠났다.

지독한 새끼다.

혹시라도 둘 간의 대화를 녹음할까 봐 만나자마자 핸드폰부터 뺏고 확인한다. 가지고 있다가 헤어질 때가 되면 그때서야 되돌려준다.

그래.

너 딴에는 지 잘난 맛에 살겠지.

모든 상황을 니가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여기면서 웃을지도 모르겠네.

한데 어쩌나?

임누리 니가 모르는 게 있단 말이야.

미주그룹에서 처음 만난 날도 지금처럼 핸드폰을 가져가서 녹음 어플의 데이터를 모두 지웠었지.

하지만 그때도 핸드백 안에 숨겨둔 초소형 녹음기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걸.

둘이서 나눴던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

변호사가 그러더라.

폭행만 강간이 아니라고. 이렇게 협박으로 하는 것도 강간이라고 설명해줬어. 엄마 고소 취소를 안 해주겠다면서 으름장을 놓는 것도 엄연히 협박이지.

이걸로도 부족하다.

도저히 아니라고 잡아뗄 수 없는 확실한 물적 증거.

그게 필요했다.

준비해 온 투명 비닐 봉투를 꺼내 들었다.

임누리가 가방을 수색할까 봐 따로 화장품 안에 숨겨왔다.

그리고 쓰레기통을 뒤적거렸다.

그 안에는 임누리가 사용하고 버려둔 피임기구가 휴지와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준비해 온 투명 비닐 봉투에 조심스럽게 옮겨 담는다.

임누리 이 개새끼.

감히 자신을 싸구려 접대부 취급하면서 함부로 굴었겠다.

엄마 고소 취소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다시는 기어 올라오지 못하도록 그 위에 시멘트를 들이부을 작정이었다.

**

[서지오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회장님께서 잠시 뵙기를 청하시는데요. 지금 시간 되실까요?]

[회장님께서 지금이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네. 그러시면 일단 비서실로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사무실의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 과장. 방금 회장님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저 잠시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어서 가봐요.”

이기수 부장이 안절부절못한다.

임 하나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너희 아빠가 날 왜 찾는지는 나도 몰라.

아마도 저번 그 스포츠카 때문 아닐까. 회장과 내가 만날 이유라면 오로지 그것뿐이다. 설마 회장이 구매를 취소하겠다느니 환불해달라느니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무슨 용건일까? 가보면 알겠지.

비서실에 도착하니 회장실로 안내해준다.

똑똑.

“서지오 과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들어가시죠.”

회장실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네.

방에 들어가자마자 향긋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한다.

오늘도 저번의 그 ‘더취커피’려나.

“안녕하십니까. 부르셨습니까.”

“응 그래. 거기 앉아. 커피는 미리 내려놨어. 식으면 맛이 없으니 지금 마셔봐.”

“감사합니다.”

여전히 향이 좋네.

두 번째 오니까 여유가 생긴다. 창밖 경치도 보이고.

이렇게 전망 좋은 곳에서 향기 좋은 고급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나저나 왜 부르셨어요?

“긴장하지 마. 야단치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핫하하하.”

“차는 잘 타고 계십니까?”

“언제 같이 한 번 드라이브라도 하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회장님과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타기에는 차가 너무 비쌉니다.”

“핫하하하. 그렇게 비싼 차를 나한테 판 건 자네잖아.”

그건 그렇네.

“오늘 저녁 시간 어때? 선약이라도 있나?”

가만 보니까 이분 나를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차에 관심이 많은 마니아라고 여기는 건가? 같이 대리점 끌고 다니면서 비서 노릇이라도 시키려는 거면 곤란하지. 회장님. 퇴근 후에는 오로지 제 개인 시간입니다. 퇴근 후 추가 수당이라도 넉넉히 주신다면 또 모르겠지만.

“없습니다. 집에 가서 쉬어야죠.”

회장 앞이라 최대한 정중히 거절했다.

“집은 어디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만. 그럼 밥은 어떻게 해? 사 먹겠네.”

왜 이리 부하직원 의식주에 관심이 많으신 거야.

“네. 고시원이라 해먹을 수가 없습니다. 사 먹는 게 더 편하고요.”

“아이고. 저런. 그 나이에 고시원 생활이라니. 고생이 많구만. 어서 새출발해서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말이야.”

“그래야죠.”

“마음에 꼭 드는 좋은 차도 자네 덕분에 샀으니 내가 대접이라도 해야 그게 사람 도리 아니겠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저야말로 좋은 가격에 사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도 그건 아니야. 혹시 약속만 없다면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이나 들지. 어떤가?”

참 곤란하네.

다니는 회사 오너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 밥이 넘어가겠어요?

진수성찬이면 뭐합니까. 마음이 불편한데요. 차라리 고시원 좁은 방에서 등이나 긁으며 컵라면 끓여 먹는 게 훨씬 낫죠.

한우 소갈비라도 한 상 푸짐하게 차려주시면 또 모를까. 점심때가 다 되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네. 소갈비 먹어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난다.

“집에 일하시는 분이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아. 어제 저녁으로 소갈비를 먹었는데 자네도 먹어보면 맛있어서 깜짝 놀랄 거야. 혼자 살면 가끔은 집밥도 챙겨 먹고 그래야 해. 오늘 저녁 약속은 없지?”

아니 세상에.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 소갈비가 먹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소갈비로 꼬시다니.

“네.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가도 실례가 안 될까요?”

“실례라니. 당치도 않아.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는 우수 사원에게 밥 한번 해 먹이는 게 뭐 대순가. 게다가 차도 거래했고. 부담 갖지 말고 같이 퇴근하지.”

흐으음~.

너무 여러 번 거절하는 것도 큰 결례다.

“알겠습니다. 식사 초대는 정말로 영광입니다. 배불리 잘 얻어먹고 가겠습니다.”

“응. 잘 생각했어. 나랑 같이 퇴근하자고. 번거롭게 집에 들렀다가 우리 집에 오는 건 무리야. 차도 막힐 시간이고.”

기왕 먹겠다고 했으니 같이 차를 타고 퇴근해도 상관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았어. 그럼 이따가 내가 연락하지. 그때 같이 퇴근하자고.”

돌아오니 이기수 부장이 또 꼬치꼬치 캐묻는다.

“회장님이 뭐라고 그러셨어? 혹시 영업 3팀 얘기는 안 하셨나?”

“별말 없으셨습니다.”

“그래? 그럼 왜 서 과장을 부르셨을까?”

“별 건 아니고요. 저번 회장님 개인 업무 수행 때 고마웠다고 인사하시더라고요.”

“그랬구만.”

“오~~. 과장님. 이제 회장님이랑 일대일로 면담도 하시는 그런 사인가요? 대단하신데요.”

“그런 거 아니야. 김 대리는 괜히 사내 게시판에 쓸데없는 글 올리고 그러지 마.”

임하나는 의외로 별로 관심이 없다.

임하나 입장에서 보면 아빠가 회사에서 누굴 만나든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법하긴 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저녁을 먹으면 혹시 임하나랑도 같이 먹게 되는 건가?

그건 좀 불편하겠는데.

회사에서 상사를 보고 집에서 그것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또 마주치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텐데.

미리 말해야 하나? 아니지. 그건 더 이상하다.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좋겠어. 임하나가 다른 약속이 있어서 밖에서 먹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빈손으로 가긴 좀 그렇다.

뭐가 좋을까?

보통은 두루마리 휴지가 제일 좋은데.

회장 댁에 휴지 보따리를 들고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다.

오후 내내 뭘 사 들고 갈지 고민했다.

회장 댁이 살림살이가 부족하지는 않을 테고.

괜히 간다고 했나? 할 수 없다.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위이잉. 위이잉.

6시 퇴근 시각보다 더 이른 타이밍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그리로 가겠습니다. 부장님.”

“응. 왜요?”

“죄송하지만 제가 일이 있어서 먼저 퇴근해봐야겠습니다.”

“뭔데요?”

적당히 둘러대야지.

“실은 회장님 개인 업무를 도와드리기로 해서요.”

“그래요? 진작 말하지. 어서 가요. 빨리빨리. 회장님 기다리시겠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인사할 시간에 서둘러요. 어서 가.”

회장이 차에 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출발하지.”

“회장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어디 좀 들렀다 가도 되겠습니까?”

“어딜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빈손은 좀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고른 방문 선물은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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