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40화 (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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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 나눠 들겠습니다

내가 회장댁에서 저녁 먹을 기회가 또 언제 있겠나.

오늘 한 번이다.

저녁 식사 자리에 가족이 아닌 외부인이 동석하면 얼마나 불편할까. 안 그래도 서먹서먹할 자리에 나까지 쭈뼛거리면 식탁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

이럴 때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어그로를 끌어야지.

어쨌든 임태수 회장이 고맙게도 초대해줬다.

식탁으로 부하직원을 데리고 왔다는 부담감을 내가 덜어드려야지 않겠어.

“여기 소갈비 아주 잘 하는 맛집이야. 어서 앉아. 계산은 내가 이미 했어.”

“훗.” “하하핫. 서 과장도 참. 이 친구 재미있는 사람이었네.” “지오 씨는 능청 떠는 게 여자들한테 인기가 아주 많으시겠다.”

“아닙니다.”

그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깐 미리 얘기 못 해서 미안해. 그땐 상황이 적절치가 않아서 그랬어.”

“네. 잘하셨어요.”

임하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회사에서 ‘좀 이따가 너희 집 가니까 그때 보자.’ 이렇게 예고하는 건 너무 말도 안 되지.

오늘 저녁 식사는 임하나와 나만 알고 있으면 족하다. 혹시라도 김호창의 귀에 들어가면 온 회사에 퍼지는 건 시간문제다.

“저 꽃도 그럼 과장님이 사가지고 오신 거예요?”

“응. 회사 근처에 ‘펠릭수야’라고 유명한 플로리스트 오프라인 샵이 있었어. 사실은 ‘우경우’랑 ‘펠릭수야’ 둘 중 어딜 할까 고민했었는데 좀 더 회사에 가까운 쪽으로 골랐지.”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요즘 결혼식 꽃으로 거기 많이 선택한다고 그러던데요.”

“하나 시집보낼 때 거기서 주문하면 되겠구나.”

“아빠. 아직 한참 많이 남았으니 기다려요.”

“사람 팔자는 모르는 거야. 혹시 아니? 당장 올해 시집가게 될지.”

“남자 없다니깐 아빠는.”

“내가 전에 얘기했지. 주변에서 고르라고. 멀리서 찾을 필요 없어.”

“그래. 그건 아빠 말씀이 맞아. 인연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거다.”

임하나 정도면 재벌가에서도 탐내지 않을까.

미스코리아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정도로 인물 뛰어나겠다. 미주그룹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알짜 기업이겠다. 재벌가 며느리로 꿀릴 게 전혀 없지.

재벌가들은 자식들을 서로 어릴 때부터 친하게 교류를 시킨다던데. 임태수 회장은 미리 준비를 안 해뒀나.

“언니 만나던 남자랑 재작년에 깨지고 당분간은 남자 안 만난다고 선언했잖아. 이번에는 엄청 오래가네.”

“야.”

“언니가 일방적으로 찼잖아. 남자가 언니 몰래 바람피웠다면서.”

“입 좀 다물고 갈비나 뜯어.”

“입을 다물고 갈비를 어떻게 뜯냐? 그 후로는 바람피울 것 같은 남자는 절대 안 만난다고 그랬잖아.”

오늘 별의별 얘기를 다 주워듣네.

임하나를 놔두고 바람을 피울 정도면 도대체 어떤 놈인지. 배가 아주 불렀구만.

“지오 씨는 결혼했어요?”

그 얘기 물어볼 것 같더라.

“네. 저는 이미 결혼했다가 지금은 이혼소송 중입니다.”

“그랬구나. 괜히 물어봤네.”

“아닙니다.”

“그건 서 과장 잘못으로 이혼하는 게 아니야. 내가 얘기하기에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서 과장에 대해서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 건데. 어때? 내가 말해도 되겠나?”

임태수 회장이 나에 대해서 꽤 소상하게 알고 있네.

회사에서 도대체 어느 선까지 퍼졌는지 궁금했었는데 임 회장이 알 정도면 이제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봐야겠지.

“제가 말씀하게 해주십시오.”

“그게 좋겠구만.”

“전처가 바람을 피워서 다른 남자의 딸을 둘이나 낳았습니다.”

“대박.” “진짜예요?” “···.”

임하나는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보네. 분명 김호창이나 차지영이 말해줬을 거야.

“네. 맞습니다. 실은 제 얘기가 종편에서 방송으로도 나왔습니다. ‘이것이 이혼이다.’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나 그거 본 것 같아. 제목이 뭐였더라. ‘동탄의 그녀’였었나.”

“네. 맞습니다. 그편에서 나왔던 여자가 제 전처입니다.”

“하아~. 그랬군요.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네.”

괜히 나 때문에 분위기 처질 필요 있나.

즐거운 식사 자리다. 이렇게 맛있는 저녁을 또 언제 먹어보겠어.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뭐가 좋을까?

일단 칭찬부터 시작하고 다음 대화거리를 찾아보자.

“사모님. 아니네요. 사모님이라고 제가 말씀드리니까 혹시 불편하지는 않으신지요? 너무 어려 보이셔서 사모님이란 호칭이 사실 전혀 어울리지 않으십니다. 세 분이 같이 모여 있으면 원래 4자매인데 큰언니분은 따로 계시고 한 둘째 언니 정도? 그 정도 연배로밖에는 안 보이시는데요.”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무리수였나?

싶었지만 야~ 이게 먹히네.

“오호호호홋. 으흐흐흐. 크크크큭. 언니라니요. 지오 씨도 참 짓궂어.”

오늘 들어 노미숙이 가장 기뻐하며 박장대소한다.

“제가 몇 살 정도로 보이는데요?”

“글쎄요. 피부 나이가 워낙 어리셔서요. 도저히 가늠이 안 됩니다. 30대 후반 정도? 많아야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이세요.”

야~ 이건.

설마 이것까지 통하겠어?

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이 틀렸다.

“아이 뭐야. 호호호홋. 농담이라도 들으니까 기분이 좋네. 지오 씨 밥 더 먹어야지. 아주머니 여기. 아니지 내가 퍼줄게. 밥그릇 이리 줘봐.”

임우주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회사에서 아부만 가르쳐요?”

“아닌데요.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기서 아부가 맞다고 물러서면 이기수 부장의 아부 레벨이랑 내가 다를 게 뭔가.

구라에도 혼이 담겨 있으면 그건 구라가 아니다.

“이 집 여성분들이 마시는 물을 따로 조사해봐야겠습니다. 우주 씨도 교복 입으면 여고생으로 보이실 정도니까요. 물에 뭐 타셨어요?”

“훗.”

“하하핫. 과장님. 회사에서 뵐 때랑 전혀 다른 분 같아요.”

당연하지. 이기수 부장 앞이랑 임태수 회장 앞이 같을 수는 없잖아.

“회장님. 오늘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맛있게 정말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며칠 굶어도 될 정도로요.”

“잘 먹으니 자넬 부른 내 기분까지 좋아져.”

“둘째 언니 분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하핫. 그만 하라니깐. 지오 씨는 정말. 호호홋. 후식으로 뭐 들겠어요? 티라미수 케익이 아주 좋은 게 있는데. 한 번 맛봐요.”

“좋죠. 티라미수 아주 좋아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최애 간식 중 하나다.

이 집안 자체가 나랑 입맛이 비슷하네.

그동안 헛살았구나. 완전히 헛살았어.

지난 내 삼십여 년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마스카포네 치즈라는 건 사실 별거 없다.

그냥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크림치즈를 그렇게 부를 뿐인데.

기가 막힌 풍미였다.

치즈의 구린내는 조금도 나지 않으면서 달콤함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티라미수에 들어간 커피도 예술이었다.

회장실에서 얻어먹었던 그 커피 향이 은은히 난다.

와아~ 정말이지. 이 티라미수를 못 먹고 죽었더라면 정말 억울한 인생일 뻔했다. 그건 인생이 아니라 그냥 산 송장, 걸어 다니는 ‘시체’나 다름없지.

눈이 저절로 감긴다.

“과장님. 티라미수 좋아하시나 봐요?”

“하나 씨. 하나 씨는 이런 걸 매일 먹어?”

“과장님은 저랑 식성이 진짜 비슷하시네요. 식혜도 그렇고. 제가 이 티라미수 너무 많이 먹는다고 엄마한테 매일 야단맞거든요. 살찐다고.”

“맞아요. 그래서 내가 먹는 양까지 정해줬어. 안 그럼 냉장고에 있는 케익을 모조리 먹어버리니까. 살이 안 찌는 걸 보면 참 신기해. 부럽다니까.”

“언니가 날씬하긴 하지. 몸매는 내가 더 예쁘지만. 요즘은 나 같은 건강한 몸매가 더 유행인 거 몰라?”

“입 닫고 케익이나 먹어.”

“아까부터 계속 입 닫으래. 과장님.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전 먼저 나가볼게요.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담에 접속하시면 1:1 대결 한 번 해요. 발라드릴게요.”

허~. 이런 도발은 내가 또 못 참지.

“아까 얘기하는 거 보니까 아직 신 난이도도 클리어 못 한 것 같던데. 그런 대사는 너무 이른 거 아닐까요? 한 수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지 도전하세요. 제자를 키울 의향은 있으니까.”

“과장님. 저한테 이기시면 오늘 이 티라미수 케익 또 사드릴게요.”

그래? 다시는 까불지 못하도록. 아니지. 그러면 더는 덤비지 않을 테니 너희 집에 티라미수 케익이 동날 때까지만 간신히 꾸역꾸역 이겨주마.

“이따가 밤 열두 시에 온라인 멀티 채팅방에 들어오세요.”

“훗. 전화번호 줘보세요.”

임우주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너무 배불리 잘 먹었다.

“정말 잘 얻어먹고 이만 물러갑니다.”

“지오 씨. 다음에 또 와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러겠습니다.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담에 또 들러요.”

“김 기사가 데려다줄 거야.”

“아닙니다. 집까지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회장님 차는 제가 타기엔 너무 과분합니다. 제 마음 편하도록 혼자서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알았어. 편한 대로 해. 오늘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네.”

“저야말로 감사하죠. 집밥을 먹어본 게 너무 오랜만이었습니다.”

“또 초대하지.”

“다음에 또 제가 차를 팔 일이 생기면 그때 불러주십시오.”

“하하핫. 알았어. 조심히 들어가게.”

오늘 회장댁에 온 건 정말 잘했다.

회장 사모 노미숙이 따로 티라미수 케익 한 판을 통째로 싸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회장이 맛있다던 소갈비를 배 터지도록 먹어서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난 결혼하고 나서 이렇게 집에서 누가 차려주는 밥을 웃으며 먹어본 적이 없었다.

늘 집에 오면 이지영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서 벌써 무언가를 시켜먹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 입맛에만 맞는 것으로만.

그놈의 닭발, 곱창, 떡볶이. 질리지도 않나.

아니 도대체 왜 굳이 라면까지 배달시켜 먹는 건데.

밥솥에는 밥조차 없었다.

밥도 안 해 놓는데 냉장고에 반찬이 더더욱 있을 리가 없지.

밥은 내가 며칠에 한 번씩 해두고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었다.

그걸로 저녁을 혼자 차려 먹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나도 밖에서 아예 먹고 들어오거나.

결혼하고 나서 신혼 몇 달을 그러기에 잠시 저래도 결국에는 살림을 하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결혼 첫날부터 이혼하겠다는 말을 꺼낸 그 날까지 계속 똑같은 패턴이었다.

언제부턴가 속았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위해서 결혼한 건가.

이혼을 결심하고 나니 오히려 해방감부터 들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그 꼴을 더 이상 안 봐도 되니 얼마나 좋던지.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은행 대여금고에는 12억 원을 주고 산 골드바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벌어서 이지영한테 뜯기지 않고 내가 다 쓰고.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산다. 왜 진작 이렇게 안 살았지?

오늘 그 꽃바구니처럼 내 인생은 활짝 피어올랐다.

**

“서 과장 말이야. 오늘 보니까 사람이 어때 보여?”

“마음에 들던데. 사람이 진국이야. 물론 처음 만나는 자리니까 좋게 보이려고 일부러 애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 괜찮아.”

“그렇지? 관상이 아주 좋아. 재물 운이 그렇게 좋은 관상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얼굴은 훤하더라. 관상은 몰라도 인물도 괜찮고. 근데 진짜 이혼했어?”

“응. 지금 이혼소송 중일 거야. 서 과장이 말한 대로 그 전처가 바람을 피워서 다른 남자 자식을 둘 낳은 것도 사실이고.”

“기가 막히네. 요즘은 남자고 여자고 할 거 없이 바람을 워낙 많이 피우니까.”

임태수 회장은 노미숙에게 슬쩍 말을 꺼내보고 싶었다.

“하나랑 잘 어울리지 않아?”

“뭐? 하나랑? 당신 그럼 혹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당신 의견을 물어보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이혼남은 좀 그렇지.”

“요즘 이혼이 어디 흠인가. 텔레비전에서 그러더라. 셋 중 한 쌍은 이혼한다잖아. 그리고 서 과장이 바람피운 것도 아니고. 그 전처라는 여자가 잘못해서 이혼하는 거잖아.”

“그렇긴 해. 그래도 이혼남은 좀. 나이 차이도 꽤 나고.”

“당사자들만 좋다면 상관없지.”

“왜? 하나는 서 과장이 마음에 든대? 그런 눈치는 아니던걸.”

“아직은 아니지.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당신 혹시 일부러 하나를 영업 3팀에 배치한 거 아니야? 말해봐. 서 과장 때문이지?”

“아니야. 영업 3팀이 인원이 제일 적어. 4명뿐이라 안 그래도 충원이 필요해서 하나를 그리로 보낸 거야.”

“그래?”

노미숙에게는 적당히 둘러댔다.

첫 단추는 아주 잘 채웠다.

이제 하나가 서 과장과 친분만 쌓게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다.

임태수 회장은 어떻게 하면 장녀 임하나가 서 과장과 친해질지 그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과장님. 접속 안 해요?]

[이따가 하려고요.]

[말 놓으시라니까요. 그럼 저 먼저 한 게임 하고 있을게요.]

[알았어. 접속하면 톡 할게.]

[내일 2:2 팀플 어때요? 2:2가 제일 재밌던데.]

[그럴까?]

[기왕이면 피시방에서 만나서 동시에 접속하죠. 피시방에서 간식 먹으면서 게임하고 싶은데.]

[그럼 강남역 쪽에서 봐.]

[네. 일단 빨리 접속하세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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