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45화 (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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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질신문

[선생님. 대질신문 날짜가 잡혔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긴장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번에 저희가 함께 연습했던 대로만 하시면 충분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검사가 던지더라도 사실대로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런 질문이 있으면 제가 사인을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일단 진술을 거부하시고 저랑 의논하셔도 되고요.]

[알겠습니다.]

[이지영도 오는 건가요?]

[네. 피의자라서 당연히 참석할 겁니다. 당일 갑자기 건강을 핑계로 출석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게 있긴 하지만 이지영 측이 그런 전략은 쓰지 않으리라 봅니다.]

결국 이지영의 뻔뻔한 낯짝을 또 봐야 하겠구나.

최대한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는데.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 정당한 권리를 찾는 게 어디 그리 쉽나.

[저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우리 전략은 피의자인 이지영을 감옥에 집어넣는 게 아닙니다. 이지영에게는 갓 난 딸 2명이라는 강력한 방패가 있습니다.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더라도 판사가 인정해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러니 합의금을 최대한 받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동의하시죠?]

[물론입니다.]

[그럼 당일 제가 차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니요. 그러실 것 없습니다. 시간 늦지 않도록 제가 검찰청으로 가겠습니다. 거기서 뵙죠.]

김지영 변호사에게 운전기사 노릇까지 시킬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름대로 혼자서 상상을 해봤다.

검사가 어떤 질문을 던질까? 또 이지영 측은 뭐라고 헛소리를 늘어놓을지.

난 그저 김지영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실 그대로만 밝히면 된다.

이기수 부장에게는 검찰청에 참고인으로 출석해서 조사를 받는다고 하니까 군말 없이 잘 다녀오라고 격려까지 받았다.

단점도 많은 양반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대화는 되는 분이다.

물론 소문은 다 퍼지겠지. 부장과 일대일로 면담했지만, 조만간 영업 3팀 사무실에서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김호창 대리가 안다면 회사 내에서도 다 퍼지겠네.

대질신문 당일에는 눈이 일찍 떠졌다.

어차피 시간도 남는데 좀 일찍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최대한 복장을 단정히 하고 검찰청으로 향했다.

저게 검찰청이구나.

나한테 이런 곳에 올 일이 생길 줄이야.

도착해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몇 가지 간단히 인적사항을 기록한 후 방문증을 수령했다.

[5분 내로 도착합니다. 지금 어디 신지요?]

[저는 검찰청에 와 있습니다. 운전 조심해서 천천히 오세요.]

[알겠습니다.]

김지영 변호사도 오랜만에 보네.

로펌 사무실 밖이지만 검찰청에 출입하기 때문일까. 전에 동탄 김정민 변호사를 찾아갔을 때랑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마치 신입사원 면접 보는 복장이었다.

“벌써 방문증까지 받으셨네요?”

“네. 생각보다 일찍 왔습니다.”

“잠은 푹 주무셨나요?”

“네. 잘 잤습니다.”

“좋은 징조네요. 정신이 맑으면 일이 잘 풀리잖아요.”

어딜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남는 법이지.

“같이 들어가시죠.”

김지영 변호사는 따로 방문증을 발급받지 않았다. 변호사는 조사받으러 오는 사람이랑 약간 절차가 다른 듯 보였다.

김지영 변호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표정이 담담하다. 아침이라서 그런가. 오히려 약간 굳은 얼굴이었다. 나도 거울에 비춰보면 저런 표정이겠지.

띠링.

“이쪽으로 오시죠.”

“네.”

방 앞에는 검사 이우철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희 사건의 담당 검사 이름입니다. 제가 따로 알아봤는데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습니다. 검사라면 그게 오히려 장점이죠. 평판도 나쁘지 않고요. 여기 검찰청에서 근무하는 걸 보면 출셋길도 빠를 겁니다.”

김 변호사가 소상히도 알아봤구나.

“들어가시죠.”

평범한 여느 직장인 사무실 같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엄청난 양의 서류 뭉치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는 것.

“안녕하십니까. 오늘 조사받기로 한 서지오 씨 변호사 김지영입니다.”

“네. 어서 오세요.”

이 사람이 이우철 검사인가?

“검사님은 지금 다른 방에 계시고요. 잠깐만 여기 앉아 계시겠어요?”

검사는 아니었구나.

“이지영 측은 아직 안 왔습니까?”

“네. 그분들이 도착하면 함께 검사님을 뵙도록 하시죠.”

“알겠습니다.”

이우철 검사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우리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 업무에만 몰두한다.

그런데 예정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지영은 여전히 안 온다.

개가 똥을 끊지. 시간관념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는 여자다.

이지영은 남편이 출근하든 말든 365일 자고 싶을 때까지 자다가 일어났다. 그건 늦잠이 아니지. 늦잠이란 건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일어나는 거잖아.

애초에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마인드였다.

거의 30분가량 기다렸을 때쯤.

덜컥.

더럽게 빨리도 오네.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렸던 날 동탄아파트에서 보고 실제로 마주치기는 오늘이 처음이구나.

‘이것이 이혼이다’ 프로그램에서 하도 다뤄주니까 자기가 연예인이라고 착각하는 건가.

오전부터 선글라스를 끼고 왔다. 복장 꼬라지하고는. 여전하네.

변호사도 두 명이나 대동했다.

쪽수로 밀고 들어오겠다는 거냐 뭐냐.

이지영이 선글라스를 천천히 벗는다.

그리고는 내가 아니라 김지영을 지그시 바라본다.

훗. 후흐흐.

내가 이지영과 살면서 저 표정을 딱 두 번 본 적이 있는데.

한 번은 어떤 백화점 행사장에서 유명 걸그룹 비주얼 담당이 이지영 앞을 지나갈 때였고.

또 한 번은 동탄 아파트 근처 드라마 촬영 장소에서 연예인 밴이 마침 나와 이지영 앞에서 멈추고 거기서 어느 여자 탤런트가 내릴 때였다.

평소 이지영은 자기보다 못생긴 여자들을 볼 때마다 비웃는 표정으로 우월감을 만끽하곤 한다. 비교와 과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여자다.

그런데 오늘 강적을 만났다.

강적 정도가 아니지.

종합적으로 보면 김지영 변호사의 승리다.

일단 나이가 더 어리다. 거기에 변호사라는 직업.

자신보다 어린데 직업이 변호사?

몹시 거슬릴 만하지.

외모는 쉽사리 누가 우세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백중세.

하지만 여자는 나이가 깡패다.

눈꼬리가 있는 힘껏 치솟는다.

저건 이지영이 잔뜩 열 받았다는 증거다.

양쪽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아무 대화가 없다.

심지어 변호사끼리도 전혀 인사조차 없다.

“모두 도착하셨으니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검사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잠시만요. 대표 변호사 1명씩만 참석하도록 했으면 싶은데요.”

직원이 잠시 김지영 변호사를 쳐다봤다가 이지영 측 변호사에게 눈빛으로 동의를 구한다.

“그건 안 됩니다. 저를 보조해줄 이쪽 변호사님도 함께 조사실로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검사님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

1분도 안 돼서 다시 돌아왔다.

“대표 변호사 1분씩만 들어오시랍니다. 죄송합니다. 장소가 비좁아서요. 오늘은 특별히 검사님께서 직접 질문하시겠답니다.”

초장부터 흐름이 좋다.

상대방 기세부터 꺾어놔야지. 김지영 변호사가 굳이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2:3으로 싸울 뻔했잖아. 물론 양보다 질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히 거드는 입이 하나라도 늘면 피곤하다.

저 사람이 이우철 검사구나.

검사라는 선입견만 때면 미주그룹 어느 영업팀의 과장 정도쯤으로 보인다. 퇴근길 주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 같았다.

“오늘도 또 늦으셨군요.”

이지영 얘기인가 보네.

“일단 다들 거기 앉으시죠. 양측 진술이 몇 가지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확인 차원에서 오늘 오시라고 모셨습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들어오시기 전에 절차적으로 필요한 말은 모두 확인하셨을 겁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나와 이지영이 검사 앞에 앉고 김지영 변호사와 상대 변호사는 각각 그 옆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서지오 씨.”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늦지 않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한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사건 당일 아파트에는 몇 번 방문하셨습니까?”

“한 번뿐입니다.”

“언제였죠?”

마포대교에 뛰어내렸던 날이라 자세히 기억한다.

“아는 형님의 차를 얻어타고 동탄에 도착해서 늦은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아파트에 들렀다가 짐만 챙겨서 곧바로 나왔습니다. 그 형님이랑 같이 저녁 겸 술을 마시고 그 형님 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며칠 지냈습니다.”

“댁에는 얼마 동안 머무르셨습니까?”

“30분 정도였을 겁니다. 1시간은 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죠?”

“별일은 없었습니다. 낯선 남자와 같이 있더군요. 처음에는 당황하고 화도 났지만 이미 그때 저 여자와 저는 남남보다 못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굳이 제가 싸울 이유도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우철 검사가 이지영 쪽을 바라본다.

“이지영 씨. 처음에는 그때 맞았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셨죠?”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어요. 트라우마로 남아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서지오 씨 측에서 제출한 녹음 파일을 제가 들려드린 후에는 갑자기 트라우마가 사라져서 기억이 되살아났다는 겁니까?”

분위기라는 게 있다.

눈치를 보니 검사는 이지영을 전혀 못 믿고 있다.

“녹음 파일을 듣고 난 후에는 진술을 번복했지 않습니까. 남편분이 나중에 다시 와서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하셨죠? 지금도 바꾼 진술을 그대로 유지하실 겁니까?”

“말씀드렸다시피 그날은 저한테 악몽 같은 하루였어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큰 충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기억력이 약해질 수 있다면서요.”

이우철 검사가 희미하게 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는 건 분명했다.

이우철 검사가 의자를 뒤로 약간 빼고 양손 깍지를 낀다. 창문 밖을 한 번 내다보고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쳐다봤다.

“서지오 씨. 사건 당일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생각나시는 건 뭐든지 좋으니 이것저것 편안하게 말씀해보십시오.”

“그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많아서 기분이 우울했습니다.”

자살하러 마포대교까지 간 사람이 유쾌할 리가 있나. 그날따라 종일 기분이 별로였다. 검사 앞에서 굳이 그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았다.

“당시 휴가 중이셨다면서요?”

“네. 집에 갔더니 웬 놈이 수건으로 아랫도리만 가리고 저를 맞이하더군요. 황당했죠.”

“질투심이 생기시던가요?”

“그것보다는 아파트 명의가 저 여자에게 넘어갔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황당했습니다. 저한테는 힘들게 장만한 전 재산이거든요.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어떻게든 빨리 되찾아와야겠다 그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는 뭘 입고 계셨습니까?”

“평범하게 입고 있었습니다. 뭘 입었는지까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별걸 다 물어보네. 그래도 성실하게 대답해야지.

“우울하셨다고 했는데 날씨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요? 날씨가 흐렸다거나 뭐 그런 요인 때문에요.”

“아니요. 제 기억에 그날은 오히려 굉장히 맑았습니다. 미세먼지도 별로 없었고. 바람이 꽤 불었던 기억은 나네요.”

마포대교에서 바라본 하늘은 참으로 쾌청했다.

저렇게 맑은데 내 인생은 왜 이리 우중충한가 그런 생각을 했었지.

바람이 꽤 부는 날씨였다.

바람 부는 쪽을 돌아봤을 때 그 어린 여학생이 막 뛰어내리려던 참이었다. 결과적으로 어린 생명 하나 구했으니 그걸로 된 거지.

“알겠습니다. 이지영 씨. 그날 자정쯤에 남편이 도어락을 열고 들어와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하시는데요. 남편은 뭘 입고 있었습니까? 자세하게 설명해주십시오.”

“늘 입던 자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에게 기억나는 어떤 특이점은 없었나요?”

“술 냄새가 났어요.”

“냄새라. 그렇군요. 냄새 말고 다른 흔적은 없었습니까? 옷에 뭐가 묻었다거나. 음식물 자국이나 물 같은 그런 거요.”

“저 인간은 꼴에 유난히 깔끔 떨어서 옷은 깨끗하게 입고 다닙니다. 옷은 멀쩡했습니다.”

“그렇군요.”

이우철 검사가 서류에 눈을 고정하고 뒤적거린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서지오 씨 처럼 깔끔한 성격이라면 예를 들어서 비나 눈을 잔뜩 맞고 돌아다니지는 않겠군요.”

“그럼요. 저 인간은 비가 오면 바지가 젖을까 봐 한겨울이라도 아예 반바지를 입고 나갈 인간입니다.”

“그렇군요.”

이우철 검사가 종이 한 장을 찾아 아래위로 훑는다.

“이건 사건 당일 동탄 날씨에 관한 기상청 자료입니다.”

“네?”

종이를 뒤집어 이지영의 눈앞에 내밀었다.

“사건 당일 동탄에는 밤늦게부터 날씨가 급변해서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특히 자정쯤에는 우산을 써도 온몸이 젖을 정도로 말이죠.”

이지영의 변호사가 서둘러 엉거주춤 일어섰다.

“검사님. 이지영 씨가 잠시 저와 얘기할 수 있게 휴식시간을 주십시오.”

“자정에 왔다던 서지오 씨의 옷이 정말 멀쩡했나요? 물 한 방울 묻지도 않고 말입니다. 이지영 씨 대답해보세요.”

“그···. 그건. 어~. 아마.”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하던 김지영 변호사가 손을 들었다.

“검사님. 저희가 최근에 입수한 추가 증거 한 가지를 지금 제출하겠습니다. 역삼역 부근의 어느 호텔 엘리베이터 영상 사본입니다.”

역삼역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지영이 오른쪽으로 돌아본다.

이지영 대 김지영.

두 지영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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