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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택일 [유료 전환 시작] >
“잠시만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죠?”
이지영 측 변호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왜 증거를 이제야 제출하는 겁니까? 이렇게 갑자기 들이밀면 저희가 반박할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검사님. 이 증거 자료는 증거능력 자체가 심히 의심됩니다.”
“그건 나중에 법정에서 따지세요. 역삼역 부근의 호텔 엘리베이터 영상이라고요? 거기와 피의자 간에 무슨 관련성이 있죠?”
“피의자는 역삼역 호텔에서 불륜남 중 한 명인 고준호와 만납니다. 고준호와 함께 있는 장면이 담긴 영상입니다. 일단 보시면 모든 게 설명될 겁니다.”
이지영이 자기 변호사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소곤거린다.
“저건 ···. 안 돼요. 일단 ···.”
이지영 측의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검사님. 잠시 휴식시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지오 씨 측이 제출한 영상 자료를 보고 나서 쉬도록 하죠.”
“아닙니다. 지금 저희 의뢰인께서 굉장히 힘들어하십니다. 조사가 계속되면 기절할지도 모른다고 하시네요. 인권 보호 차원에서도 저희 의뢰인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가혹한 조사는 절대 안 됩니다.”
“음. 으으으으윽. 아아악.”
이지영이 손으로 자기 이마를 짚으며 비명을 토해낸다.
“우욱. 우웨에에엑. 토할 것 같아요. 우우욱. 휴지통. 어서 빨리.”
“이런 식으로 조사를 방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시지 않았습니까. 자리에 똑바로 앉으세요.”
“으으윽.”
변호사가 이지영을 부축하자 이지영이 눈을 감으며 변호사에게 쓰러졌다.
“이분은 환자입니다. 남편의 폭력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요. 조사받는 과정에서 저희 의뢰인이 쇼크라도 받으면 검사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매번 이런 식으로 조사를 방해하실 겁니까?”
이우철 검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휴게실에서 1시간만 누워서 안정을 취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의뢰인을 데리고 나갈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우우욱.”
“이지영 씨. 괜찮아요? 이거 큰일 나겠네.”
“만약 지금 나가시면 정말 곤란해질지도 모릅니다. 잘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저는 분명히 경고해 드렸습니다.”
이지영의 변호사가 이지영을 부축해서 조사실을 떠난다.
“할 수 없네요. 두 분도 잠시 휴식을 취하시죠.”
“우리끼리라도 영상을 보면 안 되나요?”
“선생님. 절차상 그건 곤란합니다. 우리도 여기 있을 게 아니라 나가서 기다리는 게 좋겠습니다. 바람도 쐬시고요.”
“그러죠.”
김지영 변호사가 하자는 대로 조사실을 나왔다.
아무래도 김지영 변호사가 무슨 할 말이 있는 듯싶었다.
“선생님. 저렇게 나오는 상대가 제일 피곤합니다. 상식이 전혀 안 통하고 막무가내죠.”
아주 정확하게 파악했네.
난 이미 지겹도록 겪어본 여자다.
“피의자 이지영은 지금 코너에 몰렸습니다. 우리가 역삼역 호텔 영상을 확보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겁니다.”
“그랬겠죠. 김정민이 위치추적 어플을 이지영의 핸드폰에 몰래 설치하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네요. 김정민 변호사한테 괜히 고마워지네요.”
“우리한테 제일 좋은 경우의 수는 조만간 저쪽 변호사가 우리한테 접근하는 겁니다. 제발 합의해 달라고 자세를 낮추는 거죠.”
“최악의 경우는요?”
“법정까지 끌고 가는 겁니다. 이 증거는 사실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재판에서 판사가 증거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왜요?”
“구체적인 건 지금 말씀드리기 곤란하고요. 제 말씀은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재판을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증거로 인정되기만 하면 이지영은 절대 무고죄에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증거로 인정 안 되면 어떻게 되나요?”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만 재판이 길어지면 불확실한 요소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재판이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역시 세상일은 쉬운 게 없구나.
최선의 수는 이지영의 변호사가 우리에게 접근해서 합의를 요청하는 것.
최악은 법정에서 지루하게 다투는 것.
둘 중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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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년이 도대체 어떻게.”
“이지영 씨. 저한테 얘기 안 한 게 또 뭐가 남았습니까? 다 털어놓으세요. 그래야 방어를 하든 뭘 하든 할 게 아닙니까.”
“물 좀 따라줘요. 멀쩡한데 헛구역질을 하려니까 속이 뒤집혀서 죽겠네.”
“참.”
이지영의 변호사 김승재는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건넨다.
“역삼역 호텔은 뭡니까? 게다가 엘리베이터 영상이라니요?”
“물 마시고 있잖아요. 좀 기다려요.”
“지금 한가하게 숨이나 돌릴 때가 아닙니다. 빨리 얘기해보세요.”
“아는 남자랑 거기 간 적이 있어요.”
“몇 번이나요?”
“그게 중요해요?”
“검사가 물어보면 또 오락가락할 겁니까? 정확하게 대답하셔야 합니다.”
“고준호라는 새낀데.”
“고준호라면 그 치과의사잖아요.”
이지영은 물을 다 마신 후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기절하는 척하는 것도 되게 어렵구나.”
그 모습을 김승재 변호사가 답답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고준호 그 새끼가 거기 호텔에서 날 때렸어요.”
“뭐라고요? 서지오한테 맞은 게 아닙니까?”
“목소리 낮춰요.”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는 겁니까. 와아. 미치겠네.”
김승재 변호사가 주먹을 입에 가져다 대고 말이 없다.
“일단 그 영상을 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네요. 영상이 흐릿할 수도 있고. 아니지. 상대가 굳이 그 영상을 들고 나왔다는 건 뭔가 자신이 있다는 소린데.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뭘 했습니까?”
“그냥 타기만 했지 거기서 뭘 해요.”
“엘리베이터에서 고준호에게 얼굴을 맞은 겁니까?”
“아니요. 호텔 방안에서 그 새끼가 또 누구랑 만나고 다니냐면서 갑자기 지랄을 해대더니.”
“그럼 맞는 장면이 직접 찍혔을 리는 없겠군요. 엘리베이터라. 이건 너무 위험한데. 만약에 호텔 방에 들어가기 전 화면에서는 멀쩡했는데 나올 때 화면에서는 상처가 생겼다면 우리한테는 치명적입니다. 끝장이라고요.”
김승재 변호사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 호텔 방안에서 맞았다는 날은 정확히 언제였습니까?”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해요. 아마 그 인간이 아파트에 다녀간 이후였을 거예요.”
“시점이 중요합니다. 아파트에 다녀간 며칠 뒤였어요?”
“모르겠어요.”
만약 그 간격이 길다면 어찌어찌 우겨볼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
남편인 서지오에게 맞은 후 다 나았다고 둘러대고 우연히 또 같은 부위를 고준호에게 맞았다는 거지.
아니야. 이건 아니다. 너무 투박하고 조잡하다. 이걸로 이우철 검사를 납득시키는 건 택도 없지.
“휴우우~. 골치 아프네.”
“이길 수 있죠?”
이지영이 김승재 변호사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아까 부축할 때부터 느꼈지만 왜 남자들이 이 여자에게 빠져서 허우적대는지 충분히 알겠다.
살 냄새가 본능을 자극한다.
단 한 번이라도 선을 넘으면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여자였다.
정신 차리자.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하나?
“변호사님. 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오늘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실래요? 제가 대접하고 싶은데.”
“지금 저녁 식사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럼 일이 무사히 끝나면 제가 밥 한 번 살게요. 좋은 와인바를 알거든요. 드릴 말씀도 있고.”
“나중 일은 그때 생각하시죠.”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여기까지 왔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여자다. 잘만 마무리하면 김승재 자신의 커리어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일단 가는 데까지는 가보자.
“검사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우리에게 좋을 게 없습니다. 일단 돌아가시죠. 영상을 보고 판단합시다. 지금 우리가 피한다고 쳐도 어차피 재판 과정에서 볼 수밖에 없을 영상입니다.”
김승재 변호사는 이지영을 데리고 조사실로 복귀했다. 나갈 때처럼 여전히 이지영을 부축하고 방에 들어섰다.
“이지영 씨가 아직도 건강이 안 좋으십니다. 무리한 조사는 자제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우철 검사가 양쪽을 골고루 쳐다본다.
“그럼 서지오 씨 측이 제출한 자료 동영상을 지금 시청하는 데 양쪽 모두 동의하시는 겁니까?”
“네.”
“네.”
“좋습니다.”
이우철 검사가 노트북을 펼쳤다. 동영상 파일은 2개였다. 첫 번째 동영상 파일을 클릭한다. 몇 초 되지도 않는 짧은 영상이었다.
별 내용은 없었다. 남자가 이지영을 더듬거리는 장면이 그나마 유일한 특이사항. 그것조차도 남녀가 호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첫 번째 영상 끝날 때쯤 이지영이 고개를 CCTV 쪽으로 돌리며 얼굴을 매만진다.
얼굴에는 상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김승재 변호사는 아차 싶었다.
이렇게 되면 분위기를 역전시킬 수단이 별로 없다.
CCTV가 찍힌 날짜가 최대한 사건 당일 먼 이후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그동안 상처가 다 나았다고 주장해볼 수 있다.
“이지영 씨. 이거 본인 맞으시죠?”
“잘 모르겠는데요.”
“영상이 이렇게 또렷한데 아니라고 우기실 겁니까?”
“거기 간 기억이 없어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영상도 이어서 보겠습니다.”
이우철 검사가 두 번째 동영상 파일을 클릭한다.
김승재 변호사는 긴장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첫 번째 영상에서 본 두 남녀가 다시 엘리베이터에 탔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첫 번째에서는 둘이 꼭 붙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이지영으로 추정되는 여자 얼굴이 아직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각도 상으로 CCTV 카메라를 등지다시피 서 있다.
멈춰.
거기서 움직이지 마. 그대로 가만 서 있어.
김승재 변호사는 동영상 화면 아래 화살표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재빨리 체크했다.
영상은 곧 끝난다. 얼마 안 남았다. 제발 이대로만.
됐구나.
이걸로는 아무것도 밝힐 수 없다. 승산이 미약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있다는 겁니까? 제가 보기에···.”
클릭.
이우철 검사가 동영상을 정지시켰다.
아주 정확하게.
엘리베이터 CCTV 카메라를 향해 이지영이 고개를 돌리는 장면에서 화면은 멈췄다.
정면에 보이는 여성은 누가 보더라도 이지영이 분명했다.
눈 주변이 퍼렇게 변할 정도의 상처.
이우철 검사가 동영상 화면을 곧바로 캡쳐한다.
그리고 첫 번째 동영상을 다시 재생해서 이지영의 얼굴이 정면으로 잡힌 화면도 캡쳐했다.
두 사진을 노트북 한 화면에 좌우로 동시에 띄웠다.
“이지영 씨. 보이십니까? 양쪽을 비교해보시죠.”
이렇게 노골적인 위기는 김승재 변호사의 경력 20년 동안 처음이었다.
아니지.
이대로 포기하지 말자.
“검사님. 조사 중에 죄송하지만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뭔가요?”
아직 최후의 방법은 남아있다.
“CCTV 영상이 찍힌 날짜는 언제인가요? 사건 발생시각보다 한참 뒤라면 이건 증거가 될 수···.”
“제가 말씀드리죠.”
김승재 변호사와 이지영은 동시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영이란 이름을 가진 또 한 명의 여성이었다.
“피의자 이지영 측이 사건 발생시각이라고 주장하는 다음 날입니다. 정확히는 19시간 55분 경과 이후입니다.”
듣자마자 김승재 변호사는 직감했다.
시발. 아주 좃됐구나.
“이지영 씨.”
“검사님 조작이에요. 저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만 지껄이더니 이제는 조작질까지. 핫 참.”
“영상 감식을 해보면 되겠네요.”
“변호사 넌 끼어들지 마.”
“그게 제 직업입니다. 반말은 불쾌하네요. 기본 예의조차 없는 겁니까?”
“뭐? 이게.”
“다들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이지영 씨.”
“네. 검사님.”
“자백하세요. 피곤하게 이러지 맙시다.”
“조작부터 밝혀주세요. 전 떳떳합니다.”
“기어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겁니까? 좋습니다.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겠습니다.”
이우철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간다.
“어린 딸이 두 명 있다고 하셨죠? 자녀가 한창 자랄 나이에 엄마가 감옥에서 썩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유치원에 소문이라도 나면 어떻게 될까요? 친구들이 놀릴 텐데요. 누구 엄마는 감옥에 산대. 감옥이 뭔지도 모를 어린애들이 말이죠. 안타깝지 않습니까?”
“아니 검사님.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
“무고죄 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 혹은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거기에 이지영 씨는 다른 죄까지 있습니다. 최대 15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을 수도 있어요. 집행유예를 노리나 본데 이번 사건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이우철 검사가 창문을 닫으면서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습니다. 눈 주위 상처. 누구에게 맞아서 생긴 겁니까? 서지오 씨입니까? 고준호입니까?”
< 양자택일 [유료 전환 시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