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57화 (57/65)

< 윈윈 >

“아무래도 여기서 우주 널 만난 게 우연이 아닌 모양이구나. 그렇지?”

“죄송해요.”

“아까 성함이 서지오 씨라고 하셨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김주령이라고 합니다.”

김주령?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누구였더라.

설마 그 김주령인가?

남부건설 회장 김주령?

“혹시 김주령 선생님이시면 남부건설 김주령 회장님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일반분들은 잘 모르시던데 저를 아시네요.”

남부건설이면 알짜배기 1군 건설회사인데 모를 수가 있나. 비록 1군 끝자락에 간신히 걸쳐 있긴 하지만. 서울에만 남부건설이 지은 아파트가 몇 개인데. 물론 남부건설이라는 회사의 명성에 비해 오너인 김주령은 덜 알려져 있긴 하다. 너무 겸손하시네.

“실은 저희 부모님께서도 예전에 남부건설이 지은 아파트에서 사셨습니다. 아주 튼튼하고 관리비도 적게 나온다고 칭찬이 자자하시던데요.”

“핫하하하.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제일 기쁘네요. 오늘 만난 기념으로 차라도 대접해야겠네. 같이 가시죠.”

“정말 감사합니다.”

무려 1군 건설사 오너가 나 같은 일개 샐러리맨에게 이리도 소탈하게 대해주니 괜히 송구스럽네.

이것도 다 내가 이진수 화가의 ‘무제’ 얘기를 꺼낸 덕분이겠지.

김주령 회장이 근처 전통찻집으로 인도한다.

단번에 길을 찾는 걸 봐서 원래 아는 집인 것 같았다.

“여긴 쌍화차를 기가 막히게 끓여주는 곳입니다. 한번 맛보시겠어요?”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초면에 그럴 순 없지요. 우주야 내가 꼬마일 때부터 알던 딸 친구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그나저나 아까 그 말씀. ‘무제’가 진품이란 얘기 말입니다. 상세히 듣고 싶군요.”

“네. 제가 경기도에 있는 이진수 화가 작업실에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래요?”

“이진수 화가님이랑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어떤 약속이죠?”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비밀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고요.”

“훗. 그런데 나한테 털어놓는단 말입니까?”

“저와 선생님이 한 팀이 되면 외부에 발설하는 건 아니죠. 내부자끼리 정보는 공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핫하하하. 말씀을 아주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시네요. 흥미가 생기는군요.”

김주령 회장과 나는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다.

김 회장은 ‘무제’를 갖고 싶다. 나는 그걸 팔고 싶고.

1군 건설사 오너인 김주령에게 몇 퍼센트 싸게 사는 건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확실하게 ‘무제’를 차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 아닐까?

“이번 경매에 나오는 그 그림은 노리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직접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해요. 한 사람이 평생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숫자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역량이 한계치까지 도달해서 최고의 실력이 발휘되는 걸작은 단 하나뿐이다.”

“이번 ‘무제’가 그 단 하나라는 말씀이십니까?”

“글쎄요. 우주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저도 아버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화가로서의 이진수는 지금이 최전성기가 맞아요. ‘무제’는 분명 한국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작품이 분명하고요. 소장가치는 충분합니다. 다만 진품이 맞다면요.”

“우주도 진품이라는 증거에 대해서 아는 눈친데. 둘이 함께 이진수를 만나셨나 보구만.”

산전수전 다 겪은 건설사 오너답게 눈치가 빠르고 정확하다.

“혹시 경매사 놈들이 일부러 도난당했다는 소문을 낸 겁니까?”

역시 예리하네.

“네. 맞습니다.”

“흐으음.”

“경매 시작 3일 전에 진품이라는 증거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게 제일 핵심이겠군요.”

“네. 원래 이진수 화가의 시그니처인 ‘1ㅅ1’이외에도 2개가 더 있습니다. 이번 ‘무제’에는 특별히 캔버스 바닥 얇은 공간에 ‘hyunky’, 그리고 오른쪽 제일 하단 부분에 ‘Migo’. 특히 ‘Migo’는 빈 여백처럼 보이지만 시그니처 위에 흰 물감을 칠해뒀다고 합니다.”

“누가 기획했는지 몰라도 아주 머리를 많이 굴렸군요. 노이즈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끌어올린 후에 비밀을 밝혀서 오히려 몸값을 높이겠다는 뜻인데.”

김주령 회장이 눈을 가늘게 뜬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불쾌감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경쟁심이 더 발동한 듯싶었다.

저런 걸 보면 임태수나 김주령 정도의 부자들은 소유욕 그 자체가 남다르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수단 방법을 가지리 않는다.

임태수 회장만 해도 가계약까지 한 차를 포기하지 않고 나한테 팔라고 제의했다.

김주령도 이번 ‘무제’에 대한 애착이 어마어마해 보인다.

“아까 한 팀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무슨 의미지요?”

“회장님의 목적은 ‘무제’를 댁에 걸어놓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목적은 분명합니다. 무제를 이번 경매에서 낙찰받은 후 다시 회장님께 팔고 싶습니다.”

“저는 장사꾼이라 그런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왜 경매수수료까지 부담하면서 비싸게 사 놓고는 다시 싸게 팔려는 건가요?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한 팀이 되는 건 힘들어요.”

내 비트코인 캐시백은 항상 이 부분이 고비다.

‘220퍼센트가 다음에 들어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만 빼고 나머지는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최고의 전략.

“개인적인 사정으로 카드 실적을 채워야 합니다. 이번 경매에서 저는 카드로 ‘무제’를 구매할 겁니다.”

“경매에서 굳이 카드로요? 서지오 씨의 정체가 아주 궁금해지는군요. 법인 카드는 아닐 텐데.”

“네. 제 개인카드입니다. 이번 경매수수료는 15퍼센트입니다. 경매수수료, 부가세, 카드수수료까지 모두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낙찰받은 그림을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가격으로 다시 사주십시오.”

김주령 회장이 말이 없다.

단지 카드 실적 때문에 수억을 한순간에 포기한다?

납득할 수가 없겠지.

“그리고 경매가 과열돼서 제 총알보다 많아지면 돈을 빌려주십시오. 제 카드는 신용카드지만 예치금을 미리 납부하고 그 범위에서만 결제가 가능합니다. 빌려주신 돈은 나중에 저한테 다시 구매하실 때 그림 대금에서 제하면 됩니다.”

여전히 김주령 회장은 나를 100퍼센트 못 믿고 있다.

하지만 임우주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이분 믿을만한 분이세요. 제가 보증할게요.”

“후흐흐흐. 네가 보증을 선다고? 핫하하하.”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신 겁니까.

그런데 임우주. 말이라도 정말 고맙다.

너 결혼하면 의외로 굉장한 현모양처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생긴 건 너희 언니가 더 현모양처 같은데.

“이런 말씀 드려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무제’를 직접 낙찰받으시면 세간의 관심이 쏠릴 겁니다. 회장님께 득 되실 게 전혀 없지 않을까요.”

“서지오 씨가 앞에서 방패가 되고 그림은 내가 뒤로 차지하라는 말씀입니까?”

김주령 회장이 빤히 쳐다본다.

“경매 당일 갤러리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그리고 총알 걱정은 전혀 하지 마시고 쏘고 싶은 대로 쏘세요. 살다 보니까 남의 사정을 굳이 내가 알 필요 없을 때도 있더군요.”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주가 보증을 선다잖아요. 핫하하하.”

김주령 회장이 떠나고 임우주가 고시원까지 차를 태워줬다.

“과장님은 제가 아는 남자들이랑 많이 다르시네요.”

“어떻게 다른데?”

“과장님에 비해서 제 친구들은 전부 애송이 같아요. 관심사라고 해봤자 여자는 어떻게 꼬시고, 여행은 어딜 가고, 무슨 사진을 찍고, 패션이니 유행이니 그딴 거나 신경 쓰고. 시시해요.”

그 친구들도 어느 날부터 갑자기 220퍼센트 캐시백을 받게 된다면 나처럼 변할 거야.

사람은 누구나 거기서 거기지.

나라고 특별할 리가 있냐.

“아무래도 과장님을 제 주변 인물 관계도에서 어디에 배치할지 고민해봐야겠어요.”

“너한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내가 결정해서 알려줄게.”

임우주가 홱 돌아본다.

“과장님.”

“왜?”

“나쁜 남자셨군요.”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려고.

“다 왔어요. 내리세요.”

“오늘 정말 고마워. 어떤 차로 바꿀지 미리 정해놔.”

“정말 차 사주실 거예요?”

“니가 아니었으면 김주령 회장님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경매에서 ‘무제’를 낙찰받는 즉시 사줄게.”

“선물이 꼭 자동차여야만 하는 건가요?”

“뭐든 상관없어.”

“좋아요. 각오하세요.”

**

이지영은 똑같은 이름의 또 다른 지영에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지오 씨의 변호사 김지영입니다.]

이름을 듣자마자 짜증부터 치밀었다.

결정적인 순간 증거랍시고 도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알 수 없는 영상을 갑자기 들이미는 여우 같은 년.

눈앞에 있으면 머리채를 휘어잡고 온몸의 털이란 털은 다 쥐어 뜯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변호사를 거치지 않고 굳이 곧바로 전화한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전화했죠?]

[한 가지 제안 드릴 게 있습니다.]

[제안이라면 제 변호사한테 할 것이지 굳이 왜 나한테?]

[나민수 씨랑 요즘도 계속 만나십니까?]

[그게 왜 궁금하지?]

[위자료를 깎아 드릴 수 있습니다. 단 제가 원하는 정보를 주신다면요.]

[무슨 정보?]

[저는 서지오 씨의 변호사지만 동시에 나민수 씨의 전처이신 하수진 씨의 변호사기도 합니다.]

[그게 왜? 나랑 무슨 상관인데?]

[하수진 씨는 현재 나민수와 재산분할 청구 소송 중이십니다.]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알기로 재판은 몇 년 전에 이미 다 끝났을 텐데.]

[그 전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죠.]

[뭘?]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저도 말을 놓을까요? 어떤 걸 원하시나요.]

[좋아요. 일단 계속 들어보죠.]

같이 말을 놓으면 나이가 많은 이지영 자신이 손해다.

[나민수에 대해서 언제부터 알고 계셨죠?]

[몇 년 됐어요. 이렇게 취조당하는 분위기는 별론데.]

[나민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십니까?]

[처음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차고 다니는 시계부터 해서 돈 씀씀이가 왠지 졸부라도 된 느낌이랄까.]

[나민수는 코인으로 갑자기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그래서요?]

[나민수가 현재 재산을 얼마나 어떤 식으로 숨기고 있는지 그 증거를 확보해주십시오.]

[나더러 탐정이라도 되라는 소리예요?]

[방법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민수가 숨기고 있는 코인에 대해서 법원이 판단할 수 있도록 증거를 부탁드릴 뿐입니다.]

[그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증거를 찾을지는 이지영 씨가 스스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그건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요.]

이지영은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꽤 반반하게 생겼던데 변호사면 얼굴로 남자들한테 영업이라도 하는 거예요?]

[변호사와 접대부는 전혀 다른 직업입니다. 본인 직업과 다른 사람의 직업을 착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입조심 하셔야지. 지금은 잘난 척 까불지만, 그딴 식으로 원한 사다간 무슨 짓을 당할지 어떻게 알아. 안 그래요?]

[원한은 그쪽이 더 조심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빚쟁이들이 벼르고 있을 텐데요.]

[신경 꺼요. 서지오랑 다정하게 서로 쳐다보던데. 벌써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에요?]

[곧 이혼하실 분이 불필요한 곳에 관심을 쏟으시네요.]

[아니라고 대답 못 하는 걸 보니 맞네. 벌써 깊은 사인가?]

[불쾌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습니다.]

[했네. 했어. 훗후후. 내가 잠깐 만나주던 남자랑 해보니까 기분이 어때요? 남이 바르다가 피부에 안 맞아서 버린 화장품을 주워 쓰는 느낌일 것 같은데.]

[국민 걸레나 되시는 분 입에서 나올 말씀은 아닌 것 같네요.]

[뭐? 지금 뭐라고 했어?]

[본인 별명 모르고 계셨습니까?]

[야. 너.]

[쓸데없는 얘기는 관두죠. 가지고 오는 증거에 따라서 위자료를 대폭 깎아 드릴 수 있습니다. 솔직히 댁에게는 돈이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위자료를 팍 깎아준다는 말이 제일 솔깃했다.

[대폭이면 얼마나?]

[그건 나민수의 코인에 대한 증거가 얼마나 구체적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기본적인 예의를 따져봤자 소용없는 분 같으니 반말이든 뭐든 신경 안 쓰겠습니다.]

[이게 말끝마다 살살 약을 올리네. 나이도 어린 게.]

[위자료 한 푼이라도 아끼셔야죠.]

[그럼 위자료 말고 아파트랑 재산분할은?]

[그건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파트는 당연히 원상 복구하고 재산분할은 일체 포기하세요.]

[그럼 겨우 위자료 조금 깎아주는 게 끝이야?]

[감옥에 가면 제일 먼저 뭐부터 하는 줄 아십니까? 바지 내리고 항문부터 보여줘야 합니다. 운 좋게 최신 시설 갖춘 곳이면 엑스레이로 끝날지도 모르겠네요.]

[···.]

이지영은 곧바로 대꾸하려다가 잠시 생각해봤다.

만약 오히려 나민수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어떨까?

그 대신 나민수에게 대신 합의금을 내달라고 부탁해보는 거지.

아니다. 그 새끼가 호락호락하게 돈을 내줄 리가 없다.

딸 2명도 자신 몰래 DNA 검사까지 마친 새끼다.

딸 둘의 양육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해도 쥐꼬리만큼 겨우 보내주는 아주 더러운 시발놈이다.

직접 정보를 알아내서 서지오 쪽과 협상하는 게 훨씬 낫다.

[연락할 일이 생기면 다시 전화할 테니 오늘은 이만 끊어.]

뚜우우 뚜우우.

동탄의 아파트는 신원이 노출된 이후 가끔 누가 찾아온다. 빚쟁이들이 분명했다.

이지영은 그래서 나민수가 얻어준 전세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나민수는 며칠에 한 번씩 아파트에 방문하곤 했다.

그때를 노려야 할 텐데 현재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일단 핸드폰을 열어보는 게 좋을 텐데.

문제는 나민수가 항상 핸드폰을 쥐고 살다시피 한다는 점이다.

삐삐삐삑.

김지영 변호사와 통화를 끝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민수가 도착했다.

“나 왔어.”

“응. 샤워부터 해.”

“그래.”

설마 샤워할 때는 놔두고 들어가겠지.

예상대로 나민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서 옷과 함께 벗어둔다.

나민수가 욕실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핸드폰을 터치했다.

하필 지문인식 잠금이 걸려 있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급한 대로 인터넷을 뒤져봤다.

‘지문인식 뚫기’를 검색했다.

의외로 방법이 몇 가지 있었다.

거기 적힌 대로 비슷한 실리콘 케이스를 전면에 씌우고 이지영 자신의 지문을 대봤다.

띠링.

정말로 잠금이 풀린다.

“뭐해?”

이지영은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 윈윈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