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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60화 (60/65)

< 그것만 알고 싶다 >

[돈도 못 버는 너 같은 등신 새끼한테는 절대 안 가르쳐 줘.]

[그래? 마음대로 해. 다음 월드컵 때까지 재판해보자.]

[이 미친 새끼가 진짜. 해달라는 대로 해주겠다잖아.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나민수 코인이 얼마인지, 그 코인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판사가 알 수 있게 증거 마련해서 와. 그럼 곧바로 이혼해줄게.]

확실하다.

이지영은 나민수의 코인에 대해서 알아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태도가 변하고 이혼을 급히 요구하는 걸 봐서 최근에 알게 됐을 것이다.

만약 나민수가 빈털터리였다면 나랑 쉽게 이혼해줄 리가 없지. 내가 10억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는데도 말이야. 평소 이지영이라면 그 10억을 어떻게든 최소 절반 내놓지 않으면 이혼 못 해준다고 악을 써댔을 인간이다.

이지영에게서 최대한 많이 정보를 캐내야만 한다.

김지영 변호사에 의하면 나민수가 숨긴 재산 중 잘하면 절반까지도 하수진의 몫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코인을 직접 벌어들인 건 나민수였겠지만 하수진은 자금을 댔다.

하수진 자신의 돈뿐만 아니라 친정 부모님의 집까지 팔아서 마련했다. 나민수가 회사를 그만두고서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오로지 하수진 혼자 생활비를 벌었고.

모든 정황을 고려하면 나민수의 코인은 사실상 나민수와 하수진이 함께 번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지금 이지영은 나민수의 코인, 즉 그중 절반은 하수진의 코인에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어떻게든 나민수와 결혼까지 성공한다면 나한테 그랬듯 나민수의 재산을 해 먹으려고 들겠지.

그게 이지영이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참으로 기생충 같은 여자다. 돈 있어 보이는 남자를 골라 빨아먹고 버린다. 흡혈귀라고 해야 하나.

[오 그래. 이혼 못 해주시겠다? 어디 마음대로 해봐.]

[코인 정보만 넘겨. 그러면 우린 당장 법적으로 완벽한 남남 되는 거니까.]

[누구 좋으라고? 내가 모를 줄 알아? 너희가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나민수 전 마누라한테 그 코인 못 넘겨. 2년 되기 하루 전날 재판 걸었다면서.]

[정보 넘기고 재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 그런데 민수가 너랑 결혼해줄지는 모르겠다. 남자는 시간 지날수록 더 어린 여자 찾는 거 알지? 민수는 대학 때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어떤 녀석인지는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걸. 민수 걔 어린 여자라면 환장해.]

[우리 이혼하고 나면 코인 얼마인지 얘기해줄게.]

너 같은 인간이 그때 가서 어지간히도 속 시원하게 알려주겠다.

[이혼이 다급한 쪽이 누군지 잘 생각해. 이만 끊어.]

[야 서지오. 얘기 마저 끝내.]

[코인 정보 주면 당장이라도 이혼해줄게. 더 할 말 없어. 그럼 잘 생각해봐.]

[야. 기다려.]

뚜우우 뚜우우.

이지영은 지독한 인간이다.

나민수가 가진 코인이 만약 그놈 말대로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거액이라면 이지영의 눈이 뒤집혔을 것이다.

코인 정보를 주면 하수진에게 상당 부분 뺏길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혼을 안 하면 나민수와 재혼할 수가 없다. 이지영으로서는 앞뒤가 막힌 상황이다. 어떻게든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

현재로서 나민수의 코인 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이지영을 통해서 뿐이다.

미끼는 던져놨다.

지금은 기다려야 한다. 대어를 낚으려면 서둘러서는 안 되지.

이지영은 반드시 미끼를 물게 되어 있다.

**

김지영 변호사와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대국밥만으로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가 좀 그랬다.

최고급 식당으로 예약을 하고 따로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사심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별도의 선물 같은 건 준비하지 않았다.

“주문은 이따가 하시겠습니까?”

“네. 일행이 곧 도착합니다. 그때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서울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네온사인을 보면서 쓸쓸함과 동시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저 불빛 아래 어딘가에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이라던데.

이제 곧 이혼이 마무리되면 내 인생도 새롭게 시작되겠구나. 암 그래야지.

“선생님.”

창밖을 보는 사이 김지영 변호사가 도착했다.

어!

로펌 사무실 밖에서 몇 번 만났지만 거의 일 때문이었다. 김정민 변호사 사무실에 핸드폰 촬영 영상을 얻으러 갔을 때나 역삼역 호텔에 CCTV를 확인하러 갔을 때. 검찰청에서 대질신문 받을 때 등등.

오늘도 명목은 이지영과 통화한 내용을 상세히 얘기해주기 위해서였다. 하수진의 재산분할 재판도 어떻게 되고 있나 알아보고.

평소 늘 입고 다니던 어두운색 계열의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

엄청 화사하네.

누가 봐도 소개팅 아니면 데이트 복장인데.

머리도 단정이 묶은 스타일이 아니다. 방금이라도 헤어샵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

괜히 외모에 대해서 쓸데없는 칭찬을 늘어놓으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굳이 날 만나기 위해서 저리 꾸미고 왔다면 또 몰라도.

변호사도 엄연히 개인 사생활이 있다. 괜히 내가 궁금해할 필요는 없겠지.

“어서 오세요.”

“일찍 오셨나 봐요?”

“아닙니다. 저도 금방 도착했습니다. 주문할까요?”

“네. 그러죠.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고프네요. 핫하하하.”

호탕하게 웃으시기는.

역시 내숭이 없다. 물론 데이트였다면 저렇게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았겠지.

비싼 곳답게 본격적으로 코스가 나오기 전이지만 뭘 이것저것 먹으라고 내준다.

그냥 한꺼번에 내놓고 알아서 먹으라고 하지.

꼭 보면 이렇게 비싼 티를 내요.

“맛있는데요.”

“다행이네요. 여기가 평판이 아주 좋아서 골랐습니다.”

“미리 찾아보신 거예요?”

“네 인터넷을 좀 뒤졌습니다.”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진다.

“어?”

“왜 이러죠? 정전은 아닌 것 같은데요.”

바로 옆 테이블이었다.

남자가 잠시 일어서더니 여자 옆으로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는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설마?

“나랑 결혼해줄래?”

어디선가 음악 소리도 들려온다.

이곳에서 틀어준 게 분명했다.

“···.”

여자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잠시 말이 없다.

그러더니 남자의 내미는 손을 맞잡는다.

남자는 반짝거리는 작은 그것을 여자의 손가락에 끼운다.

짝짝짝짝.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하게 웃어준다.

그제야 조명이 다시 들어왔다.

“여기에서 해주는 이벤트인가 봐요.”

“그러게요. 조명까지 꺼주네요.”

내가 감정이 너무 메마르게 살아온 건가.

왜 봐도 별로 감흥이 없지.

차라리 그런 생각이 든다.

너희 단둘이 있는 곳에서 프로포즈든 뭐든 할 것이지 왜 사람들 많은 곳에서 불까지 끄고 난리세요.

사고라도 난 줄 알았잖습니까.

“부럽네요.”

응?

“저도 남자가 저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당당하게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더라고요.”

의외네. 전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러셨군요.”

역시 이혼에 너무 시달려서 내가 이상하게 변한 게 맞구나.

“변호사님은 저런 이벤트 별로 안 좋아하실 거라고 착각했어요.”

“저 정도는 괜찮아요.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벤트는 그런 거죠. 예를 들면 풍선 든 어린아이들을 잔뜩 직장에까지 데리고 와서 동료들 보는 앞에서 당황시킨다거나. 아니면 확신도 없는 남자가 갑자기 급발진해서 결혼하자고 들이댄다거나.”

“메모해놔야겠네요. 직장에서 풍선 든 어린이는 안됨. 급발진 사절.”

“핫하하하.”

슬슬 본론을 꺼내도 괜찮겠지.

“어젯밤 늦게 이지영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뭐라던가요?”

“아무래도 나민수가 가진 코인에 대해서 이지영이 알아낸 것 같습니다. 갑자기 모든 조건을 들어줄 테니 당장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그랬군요. 굳이 저한테 전화하지 않고 곧바로 선생님께 먼저 접촉을 시도했다면 이지영이 많이 다급한가 보네요.”

“네. 저도 통화하면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혹시 저희 예상보다 나민수가 훨씬 더 돈이 많은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정보를 주면 바로 이혼해주겠다고 말하고 일단 끊었습니다.”

“통화를 길게 하셨으면 말싸움만 나고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죠. 이지영 스스로 고민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최고입니다. 아주 잘 대처하셨습니다.”

항상 잘했다고 칭찬해준다. 나중에 육아 잘하시겠네요.

“그런가요. 음식은 입에 잘 맞으세요?”

“아주 맛있는데요.”

잘 먹네. 순대국밥만 잘 먹는 줄 알았더니 식성이 좋다. 저녁 안 먹어서 배고프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선생님께서는 이혼이 마무리되면 어쩌실 계획이세요?”

김지영 변호사와는 모든 대화가 이혼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주제로는 아예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구나.

“당분간은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 생각입니다. 돈 많이 벌면 언젠가 하와이로 가서 느긋하게 인생을 즐겨보고 싶네요.”

“하와이 좋죠. 저도 신혼여행으로 꼭 하와이를 가고 싶어요. 주변 친구들이 그러던데 신혼여행으로는 하와이가 최고라고 하더군요.”

하마터면 언젠가 신혼여행 같이 갈 남자친구는 있으세요 라고 물어볼 뻔했다.

“먼 얘기죠. 결혼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판에 하하하.”

“변호사님같이 조건이 훌륭한 분이시면 결혼 당연히 하셔야죠. 비혼주의세요?”

“그건 아닙니다만 괜찮은 남자 만나기가 힘들더라고요.”

보니까 항상 늦게 퇴근하는 것 같던데.

죽어라고 일만 하니 남자 만날 시간도 없겠지.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있으면 소개라도 시켜드리고 싶지만 쓸만하다 싶은 녀석들은 이미 모두 장가를 가버려서 죄송합니다.”

김호창 대리가 미혼이긴 한데···.

흐으음. 김 대리가 그렇게 모자란 놈은 아니다. 나름 성실하고 직장도 열심히 다니지.

그런데 아무래도 김지영 변호사에게 소개해주기에는 내가 좀 죄송하다. 최소한 남자도 같은 전문직이어야 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여자 변호사면 눈이 아주 높을 텐데.

“말씀이라도 감사하네요.”

“주변에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제 친구 중에 의사도 있거든요. 물론 조아람 말고요. 그 녀석 후배 중에 괜찮은 남자가 있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정말이요?”

괜히 섭섭하네.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엉뚱한 상상을 잠깐이라도 한 내가 창피하다.

남궁형이 한 말이 생각난다.

‘한 번 대시 해봐. 혹시 아냐.’

형. 뭘 대시해. 의사랑 소개팅이나 주선해 드려야지.

“저는 빈말로 언제 보자 이런 무책임한 멘트 싫어합니다. 제가 오늘 밤에 그 친구한테 전화해서 내일까지 후배 한 명 아니지. 여러 명 준비해놓으라고 하겠습니다. 사진도 받아놓죠. 보시고 그중 마음에 드는 남자로 고르십시오.”

“핫하하하. 굉장히 적극적이시네요. 같이 일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선생님은 항상 생각을 곧바로 옮기세요.”

“변호사님 정도 스펙이시면 남자가 의사는 되어야죠. 요즘 의사가 신랑감으로는 최고 아닙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예전 남자친구가 의사였어요.”

그랬구나.

개인적인 얘기는 처음으로 듣네.

“너무 바쁘고 그때는 둘 다 어려서 오래 못 갔죠. 대학교 다닐 때 소개팅으로 만났거든요. 제가 로스쿨 준비하면서 더 멀어졌어요.”

“그러셨군요.”

“조건만 따지면 불행해진다잖아요.”

외모만 따지면 훨씬 더 불행해지더군요.

조건이라도 실컷 따져서 결혼하십시오.

결혼 한 번 한 선배로서 드리는 충고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스타일 여자 좋아하세요? 저도 주변에 아는 언니 소개시켜드릴까요?”

당장 고맙다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 내 상황이 그렇지를 못하다.

“전 됐습니다. 일단 이혼부터 마무리 지어야죠. 아직 여자를 만날 때는 아닌 것 같아요.”

“사랑은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시작되는 거 아닐까요.”

어디서 이 비슷한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 남궁형이 포장마차에서 주절주절 늘어놓던 청춘 그거 금방 지나가니 사랑할 수 있을 때 놓치지 마라던 말이 생각나네.

“선생님 못지않게 저도 빈말을 싫어합니다. 선생님처럼 괜찮은 분이면 누구에게 소개해드려도 전혀 부끄럽지 않죠.”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변에 말씀드려볼게요. 좋은 인연 만나셔서 행복하시면 저도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돈만 받고 끝이 아니라 사후 AS까지 완벽하네.

정말 좋은 변호사다.

김지영 변호사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한다.

“선생님. 뒤돌아보지 마세요.”

“네?”

“뒤돌아보지 마시라니까요.”

뭐가 있기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하필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지영이었다.

어떤 남자와 같이 서 있었다.

대질신문 날 검사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았다.

이지영은 내가 아닌 김지영 변호사를 노려봤다.

“아닌 척 잡아떼더니 결국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맞네.”

이지영의 오해는 바로잡고 싶다.

“우린 그런.”

“그렇다면 어쩔 거죠?”

아니 변호사님. 그렇게 나오시면.

< 그것만 알고 싶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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