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61화 (61/65)

< 나이스 샷 >

이지영이 김지영 변호사를 노려보더니 싱긋 웃는다.

“변호사라길래 어떻게 영업하나 했더니 결국 몸로비였어? 성공 보수란 게 그런 뜻이었구나.”

“야.”

“지오 씨. 상대하지 마세요.”

선생님이라고만 불리다가 이름을 말해주니 기분이 새롭네.

어떤 시처럼 역시 이름을 불러주어야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마련이지. 적어도 이지영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그게 필요했던 걸까.

“다른 여자가 신다 버린 구두나 주워서 신는 주제에. 꼴에 변호사라고 잘난 척은 있는 대로 하더니.”

“지오 씨가 구두라면 댁은 온 국민이 한 번씩은 신어보는 찜질방 슬리퍼인가요?”

“뭐? 이년이.”

조금 전 청혼 이벤트를 펼쳤던 바로 옆 그 테이블이었다.

이지영이 그 테이블 위의 물컵을 거머쥔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김지영 변호사를 향해 냅다 뿌렸다.

촤아아악.

하지만 내가 김지영 변호사를 재빨리 온몸으로 감쌌다.

“지오 씨.”

“내 여자한테 지금 무슨 짓이야.”

내가 이렇게 뻔뻔하게 연기를 잘 했던가.

우리 테이블은 아직 메인요리가 안 나왔다.

하지만 바로 옆 그 테이블은 커다란 스테이크가 접시에 탐스럽게 담겨 있었다.

접시째로 집어 들었다.

“접시는 빼세요.”

김지영 변호사가 던지지 말라고는 안 했다.

법률 전문가로서의 충고를 들어야지.

접시를 양손으로 잡고 이지영에게 그대로 투척했다.

스테이크가 턱에 제대로 명중.

소스가 이지영의 가슴을 타고 흐른다.

“으아아악. 어떡해. 이 미친 새끼야.”

이지영이 아닌 옆 테이블 커플에게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더 비싼 메뉴로 새로 시켜드리겠습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직원이 수건을 가지고 와서 이지영을 닦기 바쁘다.

“너희 두 년놈들. 어디 두고 봐.”

“고소장에 한 줄 추가해라. 스테이크가 날아와서 맞았다고. 나도 물벼락 맞았다고 추가할게. 동탄의 그녀로 유명해졌으면 동탄 바닥에서 놀 것이지 왜 서울까지 원정 와서 지랄이야.”

“어머.” “저 사람이 ‘이것이 이혼이다’에 나오는 그 동탄녀?” “저렇게 생겼었네.” “전직 접대부라던데 역시.”

식당 전체가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만 나가는 게 어떨까요?”

당황해서 계속 구경만 하던 옆의 남자가 이지영에게 나가자고 제의한다.

“나가긴 우리가 왜 나가요? 나가려면 저것들이 나가야지.”

“하지만 옷도 다 버렸고. 아무래도 지금은.”

“시끄러워요. 우리 예약한 자리로 가요. 저것들한테 질 수 없지. 저기요. 오늘 저녁 예약했는데요. 자리로 안내해주세요.”

“네? 아 예.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직원이 허둥지둥 당황해한다.

아직도 온몸에 스테이크 소스가 덕지덕지 묻은 채로 이지영이 그리 멀지 않은 테이블로 향한다.

식당 안 모든 시선이 우리와 이지영의 테이블로 집중됐다. 수군대는 음성도 여전하다.

잠시 후에 지배인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기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저희 매장에서 소란이 있었다면서요.”

“괜찮습니다. 물이 좀 묻은 것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네요.”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여긴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최고급 식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물관리를 전혀 안 하시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것이 이혼이다 라는 프로그램 아십니까?”

“갑자기 그 방송은 왜 그러십니까?”

“동탄의 그녀도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지영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동탄의 그녀가 지금 저기 앉아 있습니다. 저렇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을 여기 앉히시면 안 되죠. 다른 손님들이 불쾌해하시잖아요. 그리고 제 옆 테이블 분들에게는 이걸로 다시 내드려주세요.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지배인이 우리와 이지영 테이블을 번갈아 쳐다본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대강 상황 파악이 되는 모양이네.

“저렇게 혐오스러운 불륜녀랑 같은 장소에서 밥 먹는다는 게 너무 불쾌하네요.”

“이봐요. 그 테이블에만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주문받아주세요. 먼저 시비를 건 건 그쪽 두 년놈들이라고요.”

“모든 손님들이 보셨겠지만, 저희 테이블에 먼저 다가온 것도 저 여자였고 더구나 물까지 먼저 뿌린 것도 저 여자였습니다.”

지배인이 중간에서 몹시 당황해한다.

멀리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어떤 중년 남성이 일어서서 우리에게 걸어왔다.

“제가 처음부터 유심히 지켜봤는데 어느 한쪽 편을 들자면 이분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저쪽 테이블의 여자가 먼저 시작했어요.”

명함을 하나 꺼내더니 지배인에게 건넸다.

명함을 읽던 지배인이 그 중년 남성의 얼굴을 급하게 쳐다본다.

갑자기 지배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 대표님께서 여긴 어. 어떻게.”

“오랜만에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란스럽더군요. 알아서 잘 처리해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불편을 끼쳐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지배인이 저렇게 납작 엎드리는 걸 봐서는 여기 식당 오너와 무슨 상관이 있나.

나중에 한 번 찾아봐야겠네.

우선은 인사부터 드리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중간에서 보기에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남자라면 자기 여자를 보호해야죠. 물 뿌리는 걸 막아선 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성함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서지오라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저녁 마저 드시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시 일행이 기다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지배인은 그동안 이지영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저기 여사님.”

“주문 안 받아요? 옷 닦을 물수건 좀 주세요.”

“죄송하지만 나가주십시오.”

“뭐? 뭐라고요?”

“저희 가게에서는 손님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야.”

“자리는 당장 비워주시죠. 다른 분이 사용하셔야 합니다.”

“아~. 그러니까 지금 날 내쫓으시겠다?”

“여긴 점잖으신 분들이 많이 찾으시는 곳입니다. 손님은 저희 가게에 어울리지 않으시니 다른 곳을 찾아주십시오.”

“아무래도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가 왜 나가? 저것들이 사라져야지.”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 게다가 여전히 우릴 보고 수군거리지 않습니까. 오늘은 그만 일어서죠.”

“···.”

“두 분 다 일어나 주시죠.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굳이 경찰까지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갑시다.”

“변호사 저 개 같은 년 때문에.”

아무리 이지영이라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은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나 보네.

결국에는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식당을 나가면서 우리 테이블을 노려본다.

그래서?

뭘 어쩔 건데?

노려보는 것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말없이 물컵을 들어서 잘 가라고 인사까지 해줬다.

“핫하하하. 선생님. 너무 통쾌한데요.”

이지영이 나가자마자 ‘지오 씨’에서 다시 ‘선생님’이라니. 변호사님 예상은 했지만 좀 아쉽네요.

하긴 여기서 갑자기 ‘절 지켜주시는 그 모습 보고 반해버렸어요’라는 건 너무 아침드라마 적인 전개겠구나. 빨리 의사나 소개해드려야겠다.

“저도 스테이크가 그렇게 정확히 턱에 꽂힐 줄은 몰랐습니다. 스테이크가 꽤 묵직하더라고요. 오랜만에 손맛을 제대로 봤습니다. 배팅연습장에 가 본 지 한참 됐네요.”

“야구 좋아하세요?”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고요. 요즘은 그게 참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동네에 가끔 있었는데. 동전 넣고 치는 거 있잖습니까.”

“네. 저도 알아요. 해본 적 있어요.”

“그러세요?”

“아빠가 하는 걸 옆에서 봤는데 재미있겠더라고요. 저도 쳐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던데요.”

“식사 마저 하시고 근처에 있으면 오랜만에 한 번 가 보죠.”

“네. 그래요.”

옆 테이블의 청혼 남녀는 촛불까지 켜놓고 둘이 손을 꼭 잡고 있다.

나가면서 그 커플에게 다시 용서를 구했다.

“아깐 정말 죄송했습니다. 중요한 날인데 저 때문에 불쾌하진 않으셨는지요.”

“괜찮아요. 사과는 아까 그 여자분이 하셨어야죠. 오히려 오늘이 더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계산은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두 분 백년해로하십시오.”

“정말 괜찮은데. 핫하하. 감사합니다.”

두 젊은 커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선배의 전철은 밟지 말기를.

“선생님. 오늘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겁니다.”

“전 신경 안 씁니다.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 되죠. 가끔은 강하게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물까지 맞으시고.”

“마르면 그만인데요 뭘. 이지영이야 음식 냄새 오래가겠네요.”

즐거운 저녁 시간이었다.

추억까지는 모르겠고 기억에 오래 남긴 하겠네.

옆테이블의 청혼 남녀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카드로 계산하겠습니다. 저희 옆 테이블 것도 같이 계산해주세요.”

아까 그 지배인이 싱긋 웃는다.

“이미 다른 분께서 계산하셨습니다.”

“네?”

“선생님 테이블뿐만 아니라 옆 테이블 커플 분들까지 모두 계산이 끝났습니다.”

혹시 아까 그?

“그분이신가요?”

“그건 저희가 말씀드릴 수가 없겠네요. 보통 이럴 때는 생색을 내면서 자기가 샀으니 꼭 알려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분은 전혀 아니시거든요.”

지배인이 알아서 충분히 힌트를 주네.

졸지에 잘 얻어먹고 갑니다. 나중에 또 만나 뵙게 되면 감사 인사를 꼭 드려야겠네.

“행복한 시간 보내셨습니까?”

“네. 저희 때문에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김지영 변호사의 차를 얻어탔다.

괜찮다는 데도 굳이 가까운 지하철역까지는 데려다주겠단다.

“어? 선생님. 저기 아까 말씀하신 야구연습장이 있는데요.”

“그러네요.”

“소화도 시킬 겸 잠시 해보고 갈까요?”

“핫하하하. 좋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

까아앙.

시원한 타격음이었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는 이것만 한 게 없지.

옆 타석에는 김지영 변호사가 들어섰다.

타격폼은 엉성하지만 제법 운동신경이 있네.

요령껏 공을 잘 맞힌다.

괜히 충고랍시고 어설프게 이래라저래라 설교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치게 내버려 뒀다.

“선생님. 재미있네요.”

“저도 오랜만에 즐거웠습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저녁 식사를 하고 야구연습장에서 함께 공을 친다?

이건 변호사와 의뢰인이라는 관계를 빼고 보면 마치 데이트 같잖아. 데이트라는 게 꼭 무슨 연애니 결혼이니 목적이 필요한가. 이것도 엄연히 데이트 맞지.

김지영 변호사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래.

슬슬 이제는 갈 시간이 됐구나.

오랜만에 아주 즐거운 저녁이었다.

“선생님. 아까 이지영 옆에 있던 그 남자 말입니다.”

“네?”

“검색해봤는데. 역시 맞네요.”

“혹시 이지영의 변호사 아닙니까?”

“네. 서류에 적힌 상대 변호사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서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오주현 변호사. 하수진 씨 재산분할 소송의 상대 변호사가 맞습니다. 나민수의 변호사지요.”

이지영이 나민수의 변호사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고급 식당에 왔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

이지영은 남자를 만날 때 반드시 목적이 있다.

이지영이 나민수의 코인에 대해서 알아낼 방법은 2가지뿐이다.

직접 자신이 나민수의 핸드폰과 컴퓨터를 뒤지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듣는 것.

이지영은 코인에 대해서 잘 아는 여자가 아니다.

그런 이지영이라면 분명 누군가에게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장점을 발휘했겠지.

나민수의 변호사 오주현.

이 사람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봐야겠네.

“변호사님. 상대 연합을 무너뜨리려면 가장 약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합니다. 나민수, 이지영, 오주현 변호사. 우리가 공략할 대상은 오주현입니다.”

< 나이스 샷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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