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31)

***

루비아나가 수도원으로 떠나기 전날 밤.

칼레나가 잠옷 차림으로 루비아나의 침대에 기어들어 왔다.

“언니.”

“…….”

“자는 척하지 마, 눈동자 움직이는 거 보여.”

“……언니 잔다.”

“안 자네.”

“진짜 자는 중이야.”

“그럼 빨리 깨. 눈떠.”

칼레나는 베개로 루비아나의 배를 꾹 눌렀다.

“윽.”

루비아나는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하나도 졸린 눈이 아니었다.

칼레나는 들고 온 베개를 루비아나의 베개 옆에 내려놓고 팡팡 내리쳤다. 깃털이 한 움큼 빠져나와 루비아나의 얼굴을 덮었다.

루비아나가 콜록거리며 깃털을 털어 낼 동안 칼레나는 자리를 잡고 누워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렸다.

“뭐야, 천둥도 안 치는데.”

“이제 천둥 안 무서워하거든!”

“그럼 왜 온 건데?”

하아암. 루비아나가 길게 하품하며 칼레나의 옆에 누웠다. 안 자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졸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언니한테 할 말이 있어서.”

“해.”

“언니가 왜 수도원에 가는지 알아. 거기 들어가서 평생 편하게 놀고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야, 하란다고 그렇게 바로 말하냐?”

“말하라며.”

“그렇긴 한데, 보통 이런 경우엔 딴 이야기 좀 하다 말하지 않나?”

“그사이에 잘 거잖아.”

“설마.”

“아니, 언니 항상 그랬어. 지금도 자려는 눈이잖아. 눈 제대로 떠.”

칼레나가 루비아나의 팔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아야야, 루비아나는 엄살을 부리며 몸을 뒤치락거렸다.

“왜 그 수도원을 선택했는지 알아. 우리 가문에서 매년 가장 많이 기부금을 내는 곳이잖아. 정말 속세를 등지고, 부모님의 명복을 빌며 신께 귀의하려고 했다면 거기 말고 옆의 에이멜 수도원으로 갔겠지.”

“야, 백작이 되면 됐지, 거긴 죽어도 안 가.”

“루텔 수도원은 수도원장이 우리 먼 친척이기도 하고, 규율이 느슨하다 못해 없다시피 한 곳이니까. 언니 같은 게으름뱅이는 하루에 스무 시간씩 자면서 펑펑 놀고먹을 수 있겠지.”

“……뭐, 정말로 스무 시간씩 잘 건 아니고.”

“삼시 세끼는 챙겨 먹어야 하니까 열다섯 시간?”

“…….”

역시 동생은 똑똑했다.

저렇게 말하는 동생 앞에서 굳이 신실한 척할 필요가 무어 있을까?

루비아나는 친척들을 속이려 얌전하고 우울한 척했던 표정을 지웠다.

“앞으로도 잘 좀 기부해 줘. 거기 수도원장이 욕심쟁이라, 기부금이 줄어들면 날 구박할 수도 있어.”

“언니 하는 거 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먼저 편지하라고는 안 할게. 언니 같은 게으름뱅이가 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대신, 내가 편지를 보내면 반드시 사흘 안에 답장을 써. 일주일 안에 나한테 부치고.”

“노력해 볼게.”

“노력하지 말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

칼레나가 와락, 루비아나의 품에 안겼다.

“어우, 야. 왜 이래, 징그럽게.”

루비아나는 기겁하며 칼레나를 떼어 내려 했으나 품에서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는 더는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칼레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우냐?”

“꼭 그렇게 멋없게 말해야겠어?”

“곧 죽어도 한마디도 안 지는 건 누군데?”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거지.”

“그래, 그래. 다 내 잘못이다.”

루비아나는 어깨 부분이 젖어 드는 걸 모르는 척했다. 대신 내내 말할까 말까 망설였던 속마음을 꺼내 놓았다.

“레나.”

“응.”

“복수할 생각 하지 마.”

“…….”

“언니가 게을러서, 그래서 안 하기로 한 거야.”

“날 지키려고 그런 거였지.”

“아냐, 진짜 귀찮고 덧없고, 그래서 그래. 그러니까 언니가 포기했으니까 너도 하지 마.”

“…….”

“그냥, 이렇게 살자. 나는 적당히 놀고먹으면서, 똑똑한 너는 가문을 잘 다스리면서.”

“……언니.”

“언니 말 듣고, 하지 말고. 다 잊어. 그냥, 살아. 그냥 살자.”

“…….”

칼레나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 팔에 안긴 루비아나는 숨이 막혔다.

하지만 언니의 자존심이 있지, 숨 막히니까 손을 풀라고 말할 순 없었다.

실수로라도 억,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꾹 다물고 동생의 어깨를 쓸어내릴 뿐이었다.

동생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동생의 얼굴이 맞닿은 어깨가 뜨끈해지는 건 애써 모른 척했다.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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