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131)

***

결혼식은 한낮에 시작됐다.

루이먼드와 시녀장이 밤잠까지 줄여 가며 준비한 식장은 완벽함, 그 자체였다. 하객들은 섬세한 장식과 생생한 백합 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식장엔 동쪽과 서쪽, 양쪽으로 길게 꽃길이 나 있었다. 저택의 동쪽과 서쪽에서 걸어올 두 사람을 위한 길이었다.

루비아나는 서쪽 서재의 베란다에 연결한 간이 계단을 걸어 내려와 식장의 서쪽 길을 걸었다. 루이먼드 또한 그렇게 식장의 동쪽 길에 도착했다.

마침내 두 길이 하나로 합쳐지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를 보았다.

“아악, 아쉴레앙 공작이 드레스를 입었어.”

“내 돈!”

“……정말, 아, 쉴레앙 공작님?”

“말도 안 돼. 공작님이 왜!”

사방에서 비명과 탄식이 퍼져 나왔지만,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역시.’

루비아나는 새삼 루이먼드의 미모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실감했다. 새하얀 턱시도를 입은 루이먼드는 아름답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얼굴의 핵심인 검은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루이?”

루비아나가 부케 든 손을 뻗어 루이먼드의 팔을 잡았다.

“……비아.”

루이먼드가 그 손을 꼭 붙잡고 뚝뚝 눈물을 떨어뜨렸다. 루비아나는 혀를 깨물 뻔했다.

“설마, 우는 겁니까?”

“…….”

루이먼드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어,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저었다.

‘너무 예뻐. 어쩜 이렇게 예쁠 수 있지?’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루비아나는 천상에서 방금 내려온 천사 같았다. 적어도 루이먼드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루비아나는 서글피 우는 - 걸로 보이는 - 루이먼드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설마, 이제 와서 나와의 결혼을 후회하는 건 아니겠지?’

하필이면 생각이 이쪽으로 튀었다. 설마 자신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 감격해 우는 걸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도망갈 기회는 이미 여러 번 줬다. 그런데도 옆에 남아 있었던 건 루이먼드, 본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지금, 루비아나는 더 이상 루이먼드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3년.

‘그동안, 이 남자는 내꺼야.’

3년의 결혼 생활과 루이먼드를 꼭 닮은 두 명 이상의 아이,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양심으로, 평생 붙잡아 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과 달리 이 남자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한 피오니 로렌, 그녀에게 고이 돌려보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자극하다니.

루비아나는 서늘하게 웃었다.

‘후회하려면 진즉에 했어야지. 이제 와서 이러면 곤란해.’

독점욕이 감도는 녹색 눈으로 루이먼드를 바라봤다.

만약 루단테나 카드릭이 이 모습을 봤다면, 역시 자매가 맞다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카드릭은 그 눈이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에 씁쓸해했을 것이고.

‘가, 갑자기 왜 저래?’

‘역시 웨딩드레스를 본인이 입기 싫었던 거야.’

‘그래서 새삼, 결혼식 날 식을 치르다 말고 화를 낸다고?’

‘역시 오는 게 아니었어. 열 받는다고 하객 중 절반을 죽인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하객 중에는 그 둘만큼이나 루비아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그들은 그저 루비아나의 눈치만 살피며 덜덜 떨었다.

식장을 싸늘하게 만드는 살기를 눈치채지 못한 건 우느라 정신없는 루이먼드뿐이었다.

루비아나는 손안에 쥔 새를 움켜잡듯, 루이먼드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제야 루이먼드가 고개를 들고 루비아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루비아나는 그 가련하고 청초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픽 웃었다. 결혼식장에 선 새 신부의 웃음이라기엔 너무 싸늘하고,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울지 말아요, 루이.”

속삭이며 뺨을 닦아 주는 손길마저 차갑기 이를 데 없었다.

“비아……?”

“오늘, 좋은 날이잖아요. 그렇죠?”

“…….”

루이먼드는 멍하니 루비아나를 바라보았다.

웨딩드레스 입은 루비아나에게 폭 빠진 루이먼드에겐 루비아나의 모든 모습이 예쁘고 아름답고 따사로웠다.

차가운 비웃음은 수줍은 미소로 보였고, 더 차가운 손길은 절 다독여 주는 천사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좋은 날이라고 말해 주는 이 상냥한 목소리가 루이먼드의 심금을 울렸다.

‘나랑 결혼하는 오늘이, 좋은 날이래. 특별한 날이래.’

루이먼드는 그 차가운 손길을 꼭 움켜잡고 아예 펑펑 울기 시작했다.

고맙다고, 내가 정말 잘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데, 목이 메어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루비아나가 우는 자신을 ‘약한 사내다.’라고 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신랑은 식장에 서서 펑펑 울고, 신부는 그런 신랑을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완성됐다.

둘 중 누구도 하객들이 자신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웨딩드레스 입지 말라고 할걸. 너무, 너무 예쁘잖아. 펠트하르그 공작, 그놈이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요망하게 나랑 내 저택 사람들을 다 홀려 놓고, 이제 와서 결혼하기 싫다고 울어? 그래도 소용없어. 이 결혼 못 물려. 아니, 안 물려.’

하객들은 그 광경을 보며, 숨죽인 채 눈빛만 교환했다.

‘역시 납치당해서 결혼하는 거라는 말이…….’

‘그렇지 않고서야 신랑이 저렇게 서럽게 울 리가 없지.’

‘아쉴레앙 공작이 홀딱 반해서 그레이움 백작가에 쳐들어갔다더니…….’

‘하긴, 폐하와 두 공작이 참석하지 않은 것만 봐도…….’

더는 아무도 싱싱한 백합 향을 느끼지 못했다.

루비아나는 루이먼드의 팔을 잡고, 그를 식장으로 잡아끌었다. 루이먼드는 기꺼이 따랐으나 하객들에게는 여전히 다르게 보였다.

그건 제단 뒤에 서서 신부와 신랑이 오길 기다리고 있던 사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택에 도착한 이래 루이먼드는 본체만체하고 오직 루비아나만 우러러보던 그 콧대 높은 사제가 루이먼드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루비아나를 볼 때는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이 결혼을 하셔야겠습니까?’

그의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루비아나는 사제의 눈길에 기꺼이 화답했다. 어. 오늘 반드시 해야겠으니까 알아서 잘해라.

“보지 말아요.”

우는 와중에도 루비아나와 사제가 눈빛 교환하는 걸 본 건지, 루이먼드가 얼른 루비아나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

“딴 남자를 왜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보는 거죠? 그렇게 보지 말아요, 비아.”

루이먼드가 루비아나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그는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사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루이먼드는 눈을 가렸던 손을 내려, 루비아나의 손을 꼬옥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루비아나를 대신해 사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정작 사제는 루이먼드를 친애의 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먼드가 루비아나의 눈을 가려 준 게, 자신을 도와주려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루이먼드는 절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제에게, 빨리 식을 시작하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재촉했다.

‘뭐야, 나랑 결혼하기 싫어서 울었던 건 아닌가 보네?’

싸하게 굳어 있던 루비아나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오해가 단번에 풀렸다. 하지만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왜 운 거지?’

루비아나는 훗날, 루이먼드가 쑥스러워하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여 줄 때까지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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