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31)

6. 공작 부군의 능력은

아쉴레앙 공작의 결혼식 날 있었던 습격 사건으로 인해, 제국 수도가 떠들썩해졌다.

귀족, 백성 가리지 않고 이런 저런 뜬소문을 뭉쳐 가며 떠들어 댔지만, 정작 아쉴레앙 공작가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황궁에서 그날 일을 철저히 조사하여 반란 세력을 뿌리 뽑겠다며 공식 성명을 냈다.

루비아나는 공작저를 방문한 루단테와 황실 기사단에게 결혼식을 습격한 괴한들의 시체를 직접 넘겼다. 물론, 루이먼드를 노렸던 두 놈의 시체는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자신의 결혼식을 망쳐 분노한 아쉴레앙 공작이 북부에서 마수를 이끌고 와 수도의 세력을 당장 쓸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떠들어 대던 사람들은 너무도 조용한 아쉴레앙 공작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큰 뜻이 있는 거 아닐까?”

“맞아. 조용한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지난밤, 우리가 잠들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도 몰라. 밤중에 마수들을 이용해 반란 세력들을 다 잡아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잡아먹게 했을지도!”

그렇게 아쉴레앙 공작에 대한 새로운 뜬소문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무렵.

정작 그 아쉴레앙 공작 루비아나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녀의 정신을 빼놓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 루이먼드였다.

가악, 가악-.

오늘도 루비아나는 낮부터 우는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아침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난, 아침이라기보다는 낮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또 이 시간에 일어났어…….’

루텔 수도원에서 지냈던 시절이 떠오르는 이 방만한 늦잠이라니. 루비아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아직 늦잠 자는 삶에 익숙해지지 않은 몸은 알아서 긴장했다. 온몸의 근육이 단단해지며 부풀어 오를 때였다.

맨몸이 맞닿아 있던 루이먼드가 웃으며 루비아나의 이마에 입 맞췄다. 루비아나는 자신이 루이먼드에게 안겨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뺨에 찰싹 닿은, 보드라우면서도 단단하고 따뜻한 느낌은 그의 가슴이었다. 귓가에 쿵, 쿵, 쿵.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잘 잤어요, 비아?”

아침에 듣는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허스키했다.

문득 어젯밤, 저 목소리에 어떤 욕망을 더해 자신을 불렀는지가 생각나 아랫배가 확 뜨거워졌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남편이 그녀를 꼭 안은 채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루이도, 잘 잤…….”

무심결에 대답하려고 말을 하다 보니, 제 목이 잔뜩 쉰 걸 깨달았다.

나는 지난밤에 목이 다 쉬도록 무얼 했는가? 기억을 더듬을 새도 없이, 얼굴에 키스의 비가 쏟아졌다.

“저, 루이…… 읍. 루, 이?”

“하아, 비아.”

“…….”

달콤한 숨에 섞여 흘러나오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면, 마수의 독에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루이먼드의 품에 안겨 자고 있었고, 원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지만, 더더욱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졌다.

“루이, 저기, 아침인데…….”

“네, 비아. 아침이라서 당신 얼굴이 더 잘 보여 좋네요.”

“저기, 곧 리먼스 부인이 올 텐데. 우리 옷이나 입고……”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 비아는 가만히 누워서 쉬어요. 옷도 내가, 조금 있다 다 입혀 줄게요.”

“아니, 그게 누워 있는다고 쉬는 건 아니던…… 읍. 내가, 옷, 입고 싶, 웁.”

입술로 입술이 막히고, 맞붙은 입술을 통해 서로의 숨이 섞여 들었다. 막 잠에서 깬 정신이 또 혼미해지려고 했다.

‘아니야, 더는 이래선 안 돼.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정신을 차리자.’

이대로 넘어가 버리면, 또 침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흠흠, 헛기침하며 음식이 든 트레이를 침실로 끌고 들어오는 시녀장을 매일 보는 건, 아무리 강철 같은 신경줄을 가진 루비아나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때론 한창 불타오르는 중이라 루이먼드가 다급하게, 문 앞에 두고 가라고 말하고, 그 말에 어쩔 줄 모르고 도망치듯 타닥타닥 뛰어가는 시녀장의 발소리를 듣는 것도 그렇고.

루비아나는 이번에야말로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겠노라 굳게 마음을 먹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어느새 마주한 검은 눈이 살풋 눈웃음치며 루비아나를 홀렸다.

루비아나는 애써 그 눈웃음을 무시했다.

이번에야말로 절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이 정력적인 남편을 엎어뜨리든 발로 차 날려 버리든 떨어뜨리고, 오랜만에 식당에 가서 제대로 밥을 먹으리라.

“비아.”

그 결심을.

“나의 비아.”

그 결심을.

“비아, 비아.”

……이번에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딱 두 음절.

그 두 음절이 눈앞의 이 희대의 미남을 흥분시키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걸까? 루이먼드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달려들어 거칠게 입을 맞췄다.

루비아나는 그 입맞춤에 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

결혼식 날 밤 아무것도 안 하고 잤던 건, 그 다음 날부터 미친 듯이 달리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루이먼드는 그때 눈을 뜨고 낭패라는 표정을 지은 이후로 아주 정력적인 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었다.

벌써 2주째. 루비아나는 그의 품에서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흔히 신혼의 단꿈에 젖는다고들 말하는데, 루비아나가 경험하기로 이건 젖은 정도가 아니라 익사 수준이었다.

헤어나려고 허우적허우적 발버둥 쳐 보곤 있으나, 발목을 잡고 쑥 잡아당기는 힘 좋은 남편 때문에 도무지 헤어날 길이 안 보였다.

사실 2주나 지난 것도 오늘에야 알았다. 오늘도 역시나 트레이에 점심 식사를 담아 들고 온 시녀장이 말해 준 덕분이었다.

‘2주? 2주 동안, 난 뭘 한 거지?’

뭘 하긴? 루비아나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는 남편과 함께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물론 씻으러도 가고, 급한 결재 문서를 처리하러 잠깐씩 서재에도 갔지만. 그래도 하루 중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 보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야, 내가 루텔 수도원에서도 이렇게 살진 않았던 것 같은데.’

루비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시녀장이 뚝딱뚝딱 식사 준비를 마쳤다.

루비아나는 절 안아 들고 가려는 루이먼드를 매섭게 노려보고는, 스스로 걸어 테이블에 앉았다.

뭔가 할 말 많은 눈빛으로 절 쳐다보는 시녀장을 애써 외면하며 스푼을 들었지만, 오늘도 역시 그 스푼을 사용할 수 없었다.

“비아, 아-.”

맞은편에 앉은 루이먼드가 스푼을 내밀었다. 루비아나가 먹으려고 마음 먹었던 수프가 그득 담겨 있었다.

“…….”

옆에 서 있는 시녀장의 따사로운 눈빛을 느끼며 잠깐이라도 머뭇거리면.

“아, 너무 뜨겁나요? 미안해요, 비아.”

루이먼드가 눈썹을 서글프게 늘어뜨리고는 다시 스푼을 가져가 후후- 입김을 불어 식혔다. 그러고는 다시 내밀었다.

꿀꺽.

루비아나는 오늘도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시녀장을 쳐다볼 용기 따윈 날아가 버렸지만, 만족하며 웃음 짓는 루이먼드의 얼굴을 정면에서 볼 수 있으니 매우 가치 있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맛있어요?”

“맛있, 읍!”

“음, 맛있네요.”

“……나한테 준 게 마지막 한 입이었습니까?”

“아니요,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여기요, 아-.”

“아니, 또 먹고 싶다는 게 아니라, 맛을 보려면 그걸 먹으면 되지 왜 굳이 내 입안에 든 걸 가져가나 해서…….”

달칵.

시녀장이 루비아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눈치 주려고 일부러 소리 나게 내려놓은 게 분명했다.

“저는,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식사를 마치시면 그릇을 문밖에만 내놔 주세요.”

차마 더는 못 보겠다는 듯, 시녀장이 돌아서 나갔다.

“늘 고마워요.”

루이먼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까지 흔들며 시녀장을 배웅했다.

“어? 자, 잠깐. 잠깐!”

루비아나가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손까지 뻗었으나, 시녀장의 치맛자락은커녕 그림자에도 닿지 못했다.

매몰차게 문이 닫히고, 다시 침실에는 루비아나와 루이먼드, 둘만 남게 되었다.

루비아나는 루이먼드를 경계 어린 눈초리로 바라봤다.

루이먼드는 턱을 괴고, 한 손으로는 포크를 든 채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너무 위협적이었다.

“저, 루이……?”

언제 난폭해질지 모를 마수를 상대하듯 조심조심, 절대 도망치려 한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몸을 뒤로 조금씩만 물렸다.

“네, 비아.”

루이먼드가 생긋 웃으며 빵을 찢어 내밀었다.

“걱정 말고 먹어요. 식사 중일 땐 안 건드릴게요.”

“…….”

그렇게 말하고 매번 건드렸지 않았느냐? 루비아나가 불신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루이먼드는 이번엔 정말이라며 빵을 든 손을 좀 더 내밀었다.

“비아, 어서요. 배고프잖아요? 아까 스푼 들 힘도 없다고 그랬으면서.”

루비아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살랑살랑 웃는 루이먼드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입을 벌렸다.

루이먼드가 기다렸다는 듯 입안에 쏙 빵 조각을 넣어 주었다.

갓 구운 듯 부드럽고 따끈따끈했다.

“음!”

루비아나는 쫄깃한 식감이 마음에 들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바람에, 루이먼드의 손끝에 입술이 스쳐 버렸다.

당연히 루이먼드의 눈이 뒤집혔다.

루비아나는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빵 맛을 음미하고만 있다가 뜻밖의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식사는 이따 마저 하죠.”

루이먼드가 음식을 내팽개치고 벌떡 일어나 루비아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루비아나를 먹여 주느라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했을 텐데. 그 빈속에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음?”

루비아나는 빵을 문 채로 다시 침대로 끌려들어 갔다.

“자. 잠깐! 아까 분명히……”

“응, 비아. 괜찮아요.”

“뭐가 괜찮……”

“이따가, 이따가 먹어요. 내가 다 먹여 줄게요.”

“아니, 먹여 줄 필요 없…… 읍.”

루비아나를 침대에 눕히고 올라탄 루이먼드가 얼른 이불을 들어 머리 위까지 덮어 버렸다.

대뜸 시야부터 차단하다니. 학자의 집 출신 주제에, 적을 당황시키는 법을 너무 잘 알았다.

“어, 어딜, 만지는 겁니까!”

“어제 만졌던 곳이요.”

“마, 만지지 말아요. 간지럽단 말입니다.”

“간지럽기만 한 거 아니잖아요, 비아. 응?”

“…….”

침대 위에서 쪽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테이블 위에선 갓 구운 빵이 천천히 식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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