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131)

***

사흘간 각방을 썼던 신혼부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방을 합쳤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각자 따로 목욕하고 중앙 계단 위 침실로 향했다.

루이먼드는 목욕도 함께하자고 말했다가 루비아나의 차가운 미소를 돌려받았다.

“옷시중도, 목욕 시중도 다 제가 하겠다고 했지 않습니까?”

“난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만.”

“그럼 지금이라도 허락해 주십시오.”

“거절하겠습니다.”

“어째서!”

“손에 물 묻히려고 결혼한 거 아닙니다. 그런 일은 하녀들에게 맡겨도……”

“그게 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비아, 당신의 몸을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 읍.”

“한 번만 더 그 말,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으면 앞으로 내 드레스 룸 출입을 금지하겠습니다.”

“아치에느 조으아흐아해으어서!”(아침에는 좋아했으면서!)

“…….”

아침에 드레스 룸에서 편히 루이먼드의 시중을 받은 건 사실인지라 루비아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루비아나가 멈칫하자, 루이먼드는 그 기세를 몰아 기어이 목욕 시중까지 쟁취하려 들었다.

“안 됩니다.”

루비아나의 말 한마디에 금방 꺾이고 말았지만.

한 침대를 쓰며 뼈와 살이 불타는 밤을 보낸 뒤, 정신없는 와중에 욕실에 함께 들어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제정신으로 한 욕실을 쓰는 건 좀 그랬다.

딱히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지만, 요즘 들어 자신을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시녀장과 하녀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지던 차였다.

시녀장에게 더는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루비아나는 루이먼드를 매몰차게 동쪽 욕실로 내몰았다.

섭섭해서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노라니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직접 시중을 들겠다며 욕실로 들어온 시녀장을 보자, 역시나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비아나가 자신을 거부한 이유가 시녀장의 흐뭇하고 인자한 눈빛 공격 때문이라는 걸 루이먼드가 알았더라면, 루이먼드와 시녀장 사이의 끈끈한 동지애에 처음으로 금이 갈 수 있었으련마는.

루비아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간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나중에 문득 이날을 떠올리며 ‘아,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아쉬워할 것이다.

아무튼, 두 사람은 아직 욕실은 내외하나 사흘 만에 한 침실에 섰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붙들었다.

한차례, 아니 여러 차례 타오르고 난 뒤 두 사람은 이불을 몸에 둘둘 만 채로 침대에 기대앉았다.

루이먼드는 루비아나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그녀의 머리에 턱을 기댔다.

사흘간 각방을 쓰며 시렸던 옆구리가 다시 차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비슷한 만족감을 공유했다.

“……황제 폐하는 어떤 분이신가요?”

루이먼드는 혼자 목욕할 때부터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질문을 꺼냈다.

황제가 자신에게 초대장을 보냈다고 차마 말은 못 하고, 빙 에둘러 말한 것이었다.

내가 왜 새삼 황제에 대해 궁금해하겠어? 황제가 나한테 뭔 짓을 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그렇게 신호를 팍팍 보냈지만, 루비아나는 그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였다.

“폐하 말입니까? 무엇이 궁금한가요?”

내 말을 못 알아들었구나. 루이먼드는 낙담하는 와중에도 착실히 대답했다.

“그냥. 비아 당신이 보는 황제 폐하가 어떤 분이신지 궁금합니다.”

“내가 보는 폐하라…….”

루비아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픽,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주 제멋대로고, 나한테 좋은 거 있으면 못 뺏어 가서 안달이고, 그런 동생이었는데 똑똑하기는 얼마나 똑똑하던지…….”

폐하, 폐하 하고 꼬박꼬박 존칭으로 부르면서 말하는 내용은 영락없는 동생 자랑이었다.

루비아나 본인은 오랜만에 동생의 험담을 늘어놓는다고 신이 났으나, 루이먼드가 듣기에는 자랑투성이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매를 향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루이먼드는 신나게 말하는 루비아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한쪽 가슴이 찌르르하게 아파 왔다.

‘다른 사람, 아니, 황제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할 때도 이런 모습일까?’

설마. 그럴 리가.

그리 확신하면서 실망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을 질투하다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차라리 카드릭을 질투하는 게 덜 비참했다.

그걸 아는데. 모르지 않는데.

이렇게 즐겁게 이야기하는 루비아나를 보는 건 처음인지라 썰물처럼 밀고 들어오는 질투심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말하지 마요.”

루이먼드는 저도 모르게 툭, 말을 내뱉었다. 질투심은 수치심을 짓밟아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루이?”

“나랑 있을 땐 나만 봐요. 그렇게 남 얘기하면서 웃지 말아요.”

“말해 달라고 그랬던 건……”

“비아, 제발.”

루이먼드는 루비아나를 꼭 끌어안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왔다. 그녀에게 자신이 유일무이하고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

이렇게 실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3년의 계약 결혼으로 매여 있을 뿐인데. 혼자서만 진심이 돼서 이렇게 안달복달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동생 이야기만으로도 저런 표정을 짓는 루비아나가 야속하기도 했다.

마음속이 총체적 난국이었다.

‘왜 그러지? 내가 한 말 중에 뭔가 이상한 게 있었나?’

루비아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루이먼드를 자극할 만한 말을 한 기억이 없었다. 한 말이라고 해 봤자, 동생을 까는 내용뿐인 것을.

루이먼드가 제게 매달려 오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루이먼드의 팔과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루이먼드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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