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31)

***

에릭 시모어의 살롱에 다녀온 이후, 루이먼드는 한동안 외출을 자제하고 저택에 틀어박혔다.

루비아나는 모처럼 외출 나갔던 루이먼드가 살롱에서의 일로 크게 낙심한 거라 생각하고는 리사나와 그녀의 추종자들에 대한 원한을 더욱 불태웠다.

하지만 루비아나의 예상과 달리, 루이먼드의 칩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조심하자, 어설프게 움직였다간 또 일을 망치게 될 거야.’

신중. 또 신중. 루이먼드는 에릭 시모어의 살롱에서의 일을 반성하며, 성공한 공작 부군이 되기 위한 계획을 수정하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에릭 시모어와의 교제는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에릭 시모어 쪽에서 먼저 루이먼드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날, 두려움을 꾹 참고 제 앞을 막아서는 공작 부군의 모습을 보며 깨달은 바가 큽니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존경하는 형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절 편하게 에릭이라고 불러 주세요.

‘날 보고 뭘 깨달아?’

편지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쓰여 있었으나, 어찌 됐건 반가운 일이었다.

루이먼드는 기꺼이 답장을 보냈다.

에릭 아우, 저도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한 줄이 한 사람의 인생을 180도 바꿔 버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에릭 시모어가 달라졌다. 공작저 안에 콕 박혀 있는 루이먼드에게까지 금세 소문이 들려올 정도로.

지난번 리사나의 살롱 강탈 사건 이후 에릭 시모어의 살롱은 사교계에서 유명해졌다.

어떤 곳이기에 아쉴레앙 공작 부군이 결혼식 이후 첫 사교계 모임으로 그곳을 골랐는가? 오딜 후작 영애와 그녀의 추종자들이 우르르 몰려갈 만큼 매력 있는 곳인가?

관심이 생긴 귀족들은 마치 맡긴 걸 찾아가는 사람마냥 에릭 시모어에게 살롱 초대장을 요구했다.

루비아나가 그의 살롱에 엄청난 규모의 사치품을 선물했다는 소문까지 더해져, 그 선물을 나눠 가지고 싶다고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뻔뻔하고 무례했다. 에릭 시모어를 존중하는 척이라도 하는 귀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설마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랴, 이렇게 태평하게 생각하며 에릭 시모어를 재촉했다. 초대장 내놔, 어서! 그리고 얼른 다시 아쉴레앙 공작 부군을 불러.

그런데 에릭 시모어는 그들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내, 내 살롱은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다른 의도로 참여하고자 하는 사, 사람은 올 수 없습니다. 죄송하, 하지만 초대장은 드릴 수 어, 없습니다.”

다른 의도로 접근한 루이먼드마저 괜히 뜨끔하게 만드는 선언이었다.

“아, 앞으로 저의 살롱에 오, 오실 수 있는 분은 아쉴레앙 공작 부군뿐이십니다. 그, 그분이 보증한 분이라면 뭐…… 받아들일 수 있, 있겠지만요.”

앞에서 헛기침만 해도 움찔움찔 떨며 뽀르르 도망 다니기 바쁘던 그 에릭 시모어가 이런 말을 하면서, 절 찾아온 귀족들을 내치다니. 사교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한편으로, 그 순한 에릭 시모어를 저렇게 완벽하게 제 편으로 만들어 버린 루이먼드의 매력에 대한 소문이 부풀었다.

“괴물 공작을 홀리더니, 이제 에릭 시모어까지?”

“남자 여자 안 가리고 마구 홀리고 다니는 건가?”

하인들을 통해 소식을 들은 루이먼드는 놀라지 않았다

“지난번에 오딜 후작 영애에게 살롱의 주인 자리를 뺏긴 게 충격이 컸던 건가? 벌써 이렇게 각성하다니…… 그런데 마지막에 왜 날 걸고넘어지는 거지? 난 아직 그 살롱에 제대로 참석해 본 적도 없는데.”

그는 이리 말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소문을 고해 바치던 하인은 떨떠름한 눈으로 루이먼드를 바라보았다.

‘눈치 없는 것도 전염되는 건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하필, 닮아도 공작님의 가장 큰 단점을 닮나?’

한편, 루비아나 역시 놀라는 군중 속에 속해 있었다.

에릭 시모어의 살롱을, 루이먼드가 가고 싶어 하던 그 살롱으로 되돌리고자 손을 쓰려 하던 참이건만, 에릭 시모어가 알아서 잘 버텨 주니 기특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모처럼 의욕적으로 움직이려고 했건만.

‘왜 사람이 한순간에 변한 거지?’

루비아나가 가진 의문은 에릭 시모어에게 퇴짜 먹은 귀족들이 가진 의문이기도 했다.

물론 게으른 루비아나와 달리, 퇴짜 먹고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은 귀족들은 의아해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회원 중 그나마 귀족 딱지가 붙은 건 준남작인 에릭 시모어뿐이고 가난한 무명의 평민 예술가들만 드글드글한 모임. 존재하는 줄도 몰랐을뿐더러, 알고 있었다 해도 딱히 관심 가지지도 않았던 모임이었다.

참석할 생각 따윈 아예 하지도 않았고, 초대장을 받으면 모욕받았다고 생각해 열어 보지도 않았을 것이건만.

가볍게 참석 의사를 밝혔다가 퇴짜 맞은 귀족들은 돌변하여 에릭 시모어의 살롱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날 거절해? 반드시 참석하고야 말겠어.”

“내가 갈 수 없다면 부숴 버리겠어!”

그들은 에릭 시모어를 납치, 감금, 협박, 회유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살롱에 참석하고자 하는 목적이 애초부터 순수하지 않았기에, 살롱의 주인을 존중하는 마음 따위는 밀알만큼도 없었다.

에릭 시모어의 형이 황궁 행정관의 회계국장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평민이었던 주제에. 황제의 총애를 받아 준남작위를 받았다고 감히 우리와 같은 귀족 행세를 하려 들어?”

“보자 보자 했더니 정말 우리랑 자기들이 같은 귀족인 줄 아나?”

황제가 대거 기용한 행정관 출신 신귀족들에 대한 불만이 오히려 화를 부채질했다.

몇 번 감금하고 협박하고 납치하고 윽박지르고 살살 달래면 금방 꼬리를 말고 납작 엎드리겠지. 예전의 에릭 시모어처럼.

귀족들은 그리 생각했다. 역시나 큰 착각이었다.

에릭 시모어는 그들에게 납치당하지 않았고 감금당하지 않았다.

협박을 하든 윽박을 지르든 들은 척도 안 했고, 회유하는 말을 들으면 ‘역시, 이럴 줄 알았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후다닥 도망갔다.

마치 그들이 그럴 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아닌 게 아니라 에릭 시모어는 일부 귀족들이 과격하게 나올 줄 이미 알고 있었다. 루이먼드가 여러 번 편지를 보내 경고하고 또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나로 인해 에릭, 네 살롱이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어.

문제는 살롱만이 아니라 너마저 위험해졌다는 거야.

분명 그들은 네게 거절당한 걸 수치스러워하고, 어떻게든 네게서 살롱의 초대장을 받아 내고자 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겠지. 그걸 미리 대비해 놔야 해.

루이먼드는 진심으로, 에릭 시모어를 걱정했다.

처음 그의 살롱에 방문했을 땐 그와 그의 살롱이 미래에 가지게 될 명성에 올라타 보고자 하는 생각뿐이었다. 이후엔 자신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몇 통의 편지가 오가는 동안, 마음이 바뀌었다. 단지 목적, 도구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친구로서 에릭 시모어를 지키고 싶어졌다.

에릭 시모어가 정말로 자신을 좋아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피오니 이후로 두 번째로 가지게 된 친구였다. 루이먼드는 그가 납치, 감금되거나 협박, 회유당하는 걸 친구로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루이먼드는 에릭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납치, 감금, 협박, 회유당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귀족들이 그런 짓을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어떤 귀족들이 특히나 과격하게 굴었는지도.

그것만으로도 에릭 시모어가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에릭은 루이먼드의 걱정을 흘려듣지 않고, 바로 친형 리스 시모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리스 시모어는 나이 차 많이 나는 동생을 아들처럼 제 손으로 키워 낸 사람이었다.

회계국장이 된 이후엔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행정관에 박혀 있느라 동생에게 소홀했으나, 동생이 위험에 처했다고 하니 밀려 있던 휴가를 한 번에 몰아 쓰며 장기 휴가계를 내는 만용을 부렸다.

“감히 내 동생을!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진, 내 동생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할 거다. 이 나쁜 귀족 놈들! 두고 봐라, 내년에 다 세금 폭탄을 안겨 버릴 테다!”

그는 그간 너무 바빠 벌기만 하고 쓰지 못했던 봉급을 물 쓰듯 쓰며 용병들을 저택 주위에 주렁주렁 달아 놓았다.

물론 아내인 행정국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심하지만 착하고, 자신을 잘 따르는 시동생을 아꼈던 행정국장은, 비록 함께 장기 휴가계를 내지는 못했지만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개같이 벌어서 이럴 때 써야지. 이러려고 돈 버는 거야!”

그녀는 리스 시모어가 보낸 하인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루이먼드 역시 자신의 개인 예산을 써서 도왔다.

이렇게 돈을 아끼지 않은 고객을 만난 용병들은 두툼한 돈주머니를 약속 받고는 모처럼 의욕적으로 일에 뛰어들었다.

거기에 이번 의뢰가 제국 신법의 보호를 받으며 합법적으로 귀족과 귀족의 수하들을 족칠, 아니, 방어란 이름으로 때리고 협박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는 더더욱 의욕에 차올랐다.

그 이름도 찬란한 정당방위.

이 마법의 단어만 있으면 한낱 용병도 귀족을 때릴 수 있었다.

제국 만세, 만만세. 위대한 황제 폐하, 오래오래 건강히 사시길! 용병들은 우렁차게 외치며 시모어 가문의 저택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순찰했다.

노련한 용병들은 귀신같이 수상쩍은 냄새를 잘 맡았다.

그들은 감히 에릭 시모어를 납치, 감금, 협박, 회유하러 온 귀족과 그 수하들을 눈에 띄는 족족 잡아냈다.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기 위해 예의상 몇 대 맞아 주고는 신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얻어맞은 귀족과 귀족의 수하들은 더욱 분노하여 더 많은 수하들을 끌고 에릭 시모어를 빼앗으려 덤벼들었다.

그럴수록 리스 시모어와 그의 아내인 행정국장과 루이먼드는 더더욱 많은 돈을 쏟아부어 더더욱 노련하고 힘센 용병들과 계약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구경만 하고 있던 귀족들도, 황실 관리들도 더는 보고만 있지 못했다.

“감히 우리에게 덤비다니! 용병 따위가 귀족을 패?”

“귀족이면 다 같은 귀족이지. 게다가 우린 매일같이 뼈 빠지게 일하면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제국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우릴 무시해?”

옛날부터 귀족이었던 귀족들도, 황실 관리가 되어 귀족 작위를 새로 받은 귀족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이번 사건에 감정 이입하기 시작했다.

세습 귀족들은 은근히 에릭 시모어를 공격하는 일부의 몰지각한 귀족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에 황실 관리들은 대놓고 모금 활동을 벌여, 시모어 가문의 용병 고용 자금을 보조해 주었다.

수도는 에릭 시모어를 지키려는 자들과, 에릭 시모어를 빼앗으려는 자들, 두 패로 나뉘었다.

그 사이에서 신이 난 건 용병들이었다.

정복 전쟁이 끝난 이래, 대부분의 용병들은 사실상 실업자, 백수 상태가 되었다.

황제와 세 공작은 이 강대하고 너저분하고 제멋대로인 무력 집단을 잘 흐트러뜨려 제국의 백성으로 정착시키고자 여러 정책을 펼쳤다.

성공한 정책도 있고 실패한 정책도 있어서, 꽤 많은 수의 용병들이 농사를 짓고 가게를 열어 정착했다.

그럼에도 훨씬 더 많은 수의 용병들이 제국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에서 돈 벌 일이 생겼다는 말에 우르르, 수도로 몰려들었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면 거칠고 제멋대로인 용병들로 인해 일반 백성이 큰 피해를 입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해야 옳으나, 다행히 수도 치안을 담당한 펠트하르그 공작 카드릭이 유능한 탓에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도 거리에 용병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녀도 백성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초반에 길거리 패싸움이나 용병과 보통 평민 사이에 시비가 생기는 일이 있긴 했으나, 카드릭이 초장부터 강력하게 제재하고 때려잡았기 때문에 용병들은 알아서 몸을 사렸다.

모처럼 돈을 벌 수 있고 합법적으로 귀족을 때릴 수 있는 일거리가 생겼는데 태도가 불량해서 수도 밖으로 내쫓기면 본인만 손해였다.

이로써 수도는 별 탈 없이 굴러갔다. 아니, 아쉴레앙 공작의 결혼식 이래 최대로 시끌벅적해졌다.

수도의 골목골목에 몰려 있는 상점들은 용병들로 인해 매출이 증가했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귀족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이번 싸움은 좀 더 길어졌으면 좋겠어.”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황제 폐하 만만세라니까.”

백성은 아무튼 황제에게 감사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커지는 것 같은데? 지난 삶에서 내가 들었던 바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루이먼드는 잠깐 불안해지기도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기꺼이 자신에게 할당된 예산을 쏟아부어 용병 계약서 수십 장에 사인을 마쳤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니, 황제 또한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대외적으로 알려졌으나. 칼레나는 이미 회계국장이 장기 휴가를 낼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동부 치수 사업으로 국가 예산에 대한 회계, 감사 업무가 중요해진 이때.

회계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회계국장이 장기 휴가를 냈다. 황실 관리가 된 이래 단 하루도 휴가를 낸 적 없는 그 회계국장이.

어찌 황제가 모를 수 있겠는가?

칼레나는 일찌감치 카드릭에게 수도 치안을, 루단테에게 백성의 여론 관리를, 루비아나에게 승리를 주문해 둔 상태였다.

“이왕 싸울 거면 언니 편이 이겨야지.”

내가 싸우는 게 아니라 내 남편이 싸우는 건데, 하고 한발 물러설까, 아니면 부부는 한 몸이라며 뻔뻔하게 이기고 오겠다고 말할까? 칼레나는 루비아나의 반응이 궁금했다.

“괜히 다음 월례 회의 때까지 오지 말라고 했나 봐.”

칼레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옆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시종장에게 투덜댔다.

“오지 말란다고 정말 오지 않는 거 봐 봐. 변했다니까.”

“그분은 언제나 그러셨습니다, 폐하.”

“아니야. 오지 말란다고 정말 안 오고 그러지는 않았어.”

“그런가요? 그럼 이 늙은이의 기억이 뭔가 잘못됐나 봅니다.”

“아무튼, 늘 언니 편이지.”

“허허허, 아쉴레앙 공작님께서는 절 볼 때마다 반대로 말씀하십니다만.”

칼레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루단테가 거기에 서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조만간 자리를 마련해야겠어. 점점 더 궁금해지네. 우리 언니를 얼굴로 홀린 것도 모자라서, 이런 재미난 소동까지 만들어 낸 그 남자 말이야.”

“지난번에 그레이움 백작과 함께 입궁했을 때 인사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그때 보는 것과 지금 보는 것이 같아? 게다가 그땐, 이렇게 앙큼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말이야.”

칼레나가 손에 든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루단테가 그녀에게 바친 것이었다.

종이엔 루이먼드가 에릭 시모어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루단테의 정보 기관은 수도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수도 밖 제국 전역으로 뻗은 정보망은 아직까지 부실했지만, 수도 안에서만큼은 웬만큼 촘촘하다고 루단테는 자부했다.

주요 귀족 가문들을 감시하고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 정보를 빼내는 루트는 이미 완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분명 납치, 협박, 감금, 회유를 일삼을 거다.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을 살롱에 들이고 싶지 않은 네 마음이 굳건하다면.”

루비아나는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 내렸다.

더 대단한 건 그다음 부분이었다. 대략적으로, 어떤 귀족들이 에릭 시모어를 납치하려고 할지, 그의 살롱을 노리고 예술가들을 빼 가려고 할지 알려 주고 있었다.

“대단하지 않아?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미리 예언하는 것 같잖아?”

“글쎄요.”

루단테는 칼레나가 자신 말고 다른 남자를 칭찬하는 꼴을, 그가 유부남이니 참고 넘어가야 할지 아니면 그 정도는 아니라고 반박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칼레나는 그의 고민에 금방 마침표를 찍어 줬다.

“폭군의 핏줄 주제에 제법이네.”

찌이익, 종이를 반으로 찢어 내리는 칼레나의 얼굴을 보며, 루단테는 루이먼드에 대한 경계심을 거둬들였다.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칼레나가 루이먼드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될 일은 없으리라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한 표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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