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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먼드는 우울했다.
그는 커다란 창고에 꽉꽉 들어찬 세르딤 원단의 산을 보며 중얼댔다.
“……왜 망한 거지?”
매주 님 지역에선 세르딘 옷감이 두세 수레씩 올라왔다.
님 지역의 가난한 농민들은 루이먼드가 세르딤을 좋은 값에 모두 사 주겠다고 약속하자, 세르딤 제작에 매달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철광이 문을 닫아 할 일 없이 굶어 죽게 생겼던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감사한 일이 또 없었다. 사람들은 밤낮으로 최선을 다해 세르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제국 수도에서 한 주에 팔리는 세르딤 원단은 고작 한 롤, 혹은 열 마 내외.
그마저도 루이먼드와 친한 사람들이 피먼스 상점에 찾아와 사 준 것이었다. 에릭 시모어나 아이샤나, 예비 신부. ‘우리 루이먼드가 경제학 실습을 한다고?’라고 우르르 달려온 황실 관리들.
학자의 집 출신의 경제학자들은 루이먼드의 직물 사업 이야기를 듣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경제학에 특히 관심을 가지는 줄 우리가 진작 알았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온 학자의 집 출신 경제학자들은, 막상 세르딤을 사 가면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뭘 잘못 가르친 거지?”
“그러고 보면 루이먼드는 첫날 우리 과목을 0점 맞았지…….”
경제학자였던 황실 관리들이 돌아가고 난 뒤.
루이먼드는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이상해. 분명 이즈음…… 분명 세르딤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세르딤이 제국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했다. 때문에 세르주 드 님은 하룻밤 만에 돈벼락을 맞은 행운아로 유명해졌고, 님 지역에는 아예 세르딤을 파는 정기 시장까지 열렸다. 다른 지역에서 만든 세르딤까지 님 지역으로 모여들어 판매되었다.
독점적으로 세르님을 팔았던 펠트하르그 공작가 소속 상단들도 더는 독점권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늘 생산량과 판매랑 절반 이상을 가져가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런 장밋빛 미래를 바라려야 바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냥 다 사들인 다음에, 사람들이 필요할 때 팔면 되는 거 아니었어?”
루이먼드는 아름다운 은발을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학자의 집 경제학자 출신 황실 관리들의 조언대로, 수익을 포기하고 절반 가격에 옷감을 내놓았는데도, 귀족이든, 백성이든 수도 사람들은 누구도 세르딤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은근히 아쉴레앙 공작 부군의 회심의 역작이라는 소문을 흘려 보았지만, 그래도 판매량은 미미했다.
장사의 세계는 냉정했다. 사람들은 필요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물건에 지갑을 열지 않았다.
이쯤 되니 루이먼드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다 꿈이거나 망상인 걸까? 난 사실, 일곱 번 죽고 여덟 번째 사는 게 아닌 거야. 그냥 내가, 꿈을 꾸고 그걸 현실이었다고 믿은 거 아닐까?’
오르카와 폴 네리오, 위대한 예술가가 될 줄 알았던 두 사람을 키우는 데 실패했을뿐더러, 세르딤 사업까지 망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어찌 일곱 번 회귀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루이먼드는 곧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몰아냈다.
‘아냐, 그건 진짜였어.’
다른 건 몰라도 목을 뎅겅 잘렸던 삶의 마지막 감각,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생생한데, 그걸 감히 꿈이나 망상이었다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목을 잘렸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루이먼드는 손으로 목을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잘 생각해 보자. 분명,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을 거야.’
세르딤 사업이 망해 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완전히 망한 건 아니다. 정말 망할 때까진 망한 게 아니니까. 분명 고민하다 보면 망하지 않을 길이 있으리라.
살려야 한다, 세르딘 사업을!
루이먼드는 약해진 마음을 다잡고 사각사각, 빈 종이를 채워 나갔다.
“세르딤이 제국에서 유행한 건, 황제 폐하께서 세르딤으로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나가셨기 때문이야. 음…… 어쩌다 폐하께서 세르딤으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으셨던 거더라……?”
결과부터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루이먼드는 학자의 집에서 배웠던 사고력을 발휘하며, 자신이 놓친 고리가 무엇인지 찾고자 애썼다.
하지만 루이먼드는 세르딤이 어떻게 유행했던 건지, 그 시작점만은 알지 못했다.
이전 삶에선 세르딤이 유행한 다음에야 세르딤을 접했고, 세르딤이 어떻게 유행했는지 소문으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세르딤이 유행한 것은, 동부 치수 사업과 관련이 있었다.
동부 치수 사업으로 동부에 일자리가 많이 생기자, 제국과 인근 왕국의 가난한 백성이 제국 동부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하루 일하고 하루 삯을 받는 임노동자가 되었다.
공사장에서 물과 흙과 싸우며 일하던 임노동자 중에는 폴딘 왕국 님 지역 출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위에서 나눠 주는 작업복이 금방 해지고, 물에 닿자마자 젖는 걸 불편하게 여기다가, 고향에서 만드는 세르딤을 떠올렸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세르딤을 보내 달라고 해서, 그걸로 작업복을 만들어 입었다.
세르딤은 쉽게 해지지도 찢어지지도 않았고, 방수가 돼서 젖지도 않았다.
그들이 입은 세르딤 작업복은 같은 임노동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특히 물 근처에서 일할 때가 많은 사람들은 며칠 일해 받은 삯을 모아 건네서라도 세르딤을 사길 원했다.
그렇게 임노동자들 사이에서 세르딤이 유행하자, 동부 치수 사업 총책임자였던 펠트하르그 공작이 세르딤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가문 소속 상단을 님 지역으로 보내 세르딤 생산을 독려하고, 만들어진 세르딤을 모두 사들여 동부 치수 사업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만들어 썼다.
임노동자들 중 한몫 벌어 떠난 사람들이 그 작업복을 들고 고향에 돌아가니, 험한 일을 하는 동네 사람들이 세르딤에 관심을 가졌고. 그렇게 백성들 사이에서 세르딤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보고를 받은 황제는 동부 치수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는 걸 치하하고, 또 세르딤이라는 직물의 생산과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세르딤으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연회에 자주 나갔다.
그때에도 그냥 황실 전속 의상 디자이너에게 만들도록 한 게 아니라, 세르딤을 사용한 의상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제국 전역의 내로라하는 의상 디자이너들은 모두 참가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덩달아 쏠렸다.
당연히 세르딤이란 직물은 유명해졌다.
황제가 즐겨 입는 직물. 값도 싸고 거칠지만, 그 위에 진주 가루나 금가루를 뿌리고 징이나 보석을 박으면, 다른 직물에선 느낄 수 없는 나름의 매력이 있는 직물.
백성은 물론이거니와 귀족들이 황제를 따라 세르딤을 즐겨 입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르딤은 제국이 사랑하는 직물이 되었다.
루이먼드의 실수는, 세르딤을 너무 일찍 알아보고 독점했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귀족에게서 님 지역을 아예 사들이고, 광산이 폐광되어 살길이 막막했던 그 지역 사람들에게 세르딤을 만들게 하고 그걸 좋은 값으로 전부 사 주니, 먹고 살 일거리가 없어 제국 동부로 떠나야 하는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없어졌다.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일하며 돈 벌 수 있는데, 어느 누가 가족들과 떨어져 세찬 강물과 싸우며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 써야 하는 험한 일을 하러 간단 말인가?
그래서 세르딤은 제국 동부로 전해지지 않았다.
제국 수도에서 손꼽히는 상단의 창고에 세르딤이 가득 쌓였지만, 수도 사람들 누구도 세르딤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루이먼드의 세르딤 사업은 순조롭게 망해 가는 중이었다. 재고만 잔뜩 남긴 채.
루이먼드는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걸 알지 못하고, 중간 단추라도 제대로 끼워 보려 낑낑댔다.
그러다가 겨우 기억해 냈다.
“맞아! 그 천재 의상 디자이너! 릴리 로투스!”
세르딤을 사용한 의상 디자인 공모전에서 당당히 우승하여 황제 폐하의 드레스를 만들고, 이후 계속해서 세르딤을 사용한 독보적인 드레스 디자인을 마구마구 발표했던 천재 의상 디자이너.
“그녀를 찾아서 세르딤을 이용한 의상을 만들도록 하면 될 거야!”
루이먼드는 아마도 자신만큼 괴로워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피먼스 상단주에게로 달려가려다가, 루비아나에게 걸렸다.
“어딜 갑니까? 루이?”
“컥, 이, 일단 이걸 놓고 이야기를 좀…….”
“아, 미안합니다. 너무 급하게 어딜 가기에.”
루비아나는 루이먼드의 목 뒤쪽 옷깃을 잡고 있던 걸 놓아주었다.
루이먼드는 잔뜩 조였다 풀려난 제 목을 손으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피먼스 상단주에게 갑니다.”
“이 밤중에?”
“밤중이라니요, 비아? 아직 시간이…….”
루비아나가 창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하늘이 까맸다. 달도 높이 떠 있었고.
아름다운 남편이 늦은 밤에 밝게 웃으며 집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니, 어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급한 마음에 뒷목부터 잡아챘던 것이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던 겁니까?”
“그게…….”
루이먼드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루비아나가 자신의 세르딤 사업이 폭삭 망해 가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왜냐면 자신이 말하지 않았고, 어쨌든 겉으로 보기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사정을 아는 상인 길드 소속 다른 상단주들과 루이먼드, 그리고 피먼스 상단주만 속앓이를 하는 중이었다. 아, 학자의 집 경제학자였던 황실 관리들도.
희망 없이 망할 일만 남았다면 모를까, 릴리 로투스라는 희망을 발견했는데 사업이 망할 것 같아 발등에 불이 떨어져 이런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사업으로 펠트하르그 공작가 상단을 쫄딱 망하게 하겠다고 장담까지 했는데!’
루이먼드는 루비아나가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또 역으로 펠트하르그 공작을 난놈이라고 생각해 관심을 가지게 될까 봐, 주저했다.
“루이.”
루비아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단 침실로 이끌었다.
당장 저택을 뛰쳐나가려 했던 루이먼드지만. 감히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루이먼드는 터덜터덜 끌려갔다.
“자, 이제 말해 봐요, 루이. 여기엔 나밖에 없으니까.”
“…….”
‘비아, 다른 사람에겐 다 말해도 당신에겐 말할 수 없는 건데요.’
루이먼드가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내리깔았지만, 루비아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두운 밤중에도 찬란히 빛나는 그의 외모를 즐거이 구경하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건 루비아나가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한참 전쟁 때는 적장의 목을 화살로 꿰기 위해, 높은 나무에 올라 닷새씩 버티기도 했더랬다.
루이먼드는 그런 루비아나를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이길 생각도 없었다.
아내님이 궁금하시다는데 어쩌랴? 쪽팔리고 부끄러워도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사실은 말이에요, 비아…….”
루이먼드는 쭈글쭈글해져서는 요즘 자신이 세르딤 사업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말했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릴리 로투스라는 의상 디자이너만 찾으면, 분명 세르딤 사업의은 활로를 뚫을 수 있을 겁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미래를 내다보는 듯 확신에 찬 말투였다. 하지만 루비아나는 더는 루이먼드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내 남편은 뭔가 일을 벌일 때, 단정적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군.’
오르카와 폴 네리오 때도 그렇고, 이번에 세르딤 사업도 그렇고. 루비아나는 곁에서 두 번의 실패를 구경했다. 이번이 세 번째.
특히나 세르딤 사업의 실패가 너무 인상 깊어서일까? 루비아나는 더는 루이먼드를 의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릴리 로투스라는 의상 디자이너는 어떻게 찾을 생각입니까?”
“피먼스 상단주와 의논해 볼 생각입니다. 이 사업을 그와 함께 꾸려 가고 있으니까요.”
루이먼드는 성실하고 신의 있는 동업자였다. 사업 아이템을 잘못 찾아온 게 유일한, 하지만 치명적인 흠일 뿐.
“피먼스 상단주는 아마 한동안 바쁠 겁니다. 루이, 당신이 찾아가 이 일을 의논하면 그를 좀 더 바쁘게 만들 뿐일 겁니다.”
“예?”
“그는 이 세르딤 사업 말고도 다른 여러 사업을 거느리고 있는 상단주니 말입니다.”
“아아, 하긴…… 제가 의욕이 앞서 그를 너무 귀찮게 했군요. 이번에도 역시, 그럴 뻔했고요.”
“그는 감히 당신을 귀찮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뭐 루이, 당신이 그렇게 배려를 해 주면 그로서는 감사할 테지요.”
루비아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피먼스 상단주는 당분간 길드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할 테니까.
루비아나는 그가 고작 이번 일 때문에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일을 기회로 삼으면 삼았지.
‘이 참에 길드 내에 있는 자신의 반대 세력을 뿌리 뽑으려고 하겠지.’
그러니 어찌 보면 이번 세르딤 사업 실패가 피먼스 상단주에게는 수도 상인 길드를 휘어잡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된 건지도 모른다……고 루이먼드의 아내 된 사람으로서 애써 좋게 생각해 봤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내가 루이와 좀 어울려도 되겠지?’
루비아나는 그동안 피먼스 상단주에게 루이먼드를 빼앗겼던 나날을 떠올리며, 개구지게 웃었다.
“그러니 뭔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또 그 릴리인지 밀리인지 하는 자에 대해 의논할 게 있다면. 나랑 해요, 루이.”
그러니까 이제 나랑 놀자.
루비아나는 한밤중 자신을 까맣게 잊고, 배는 안 나왔지만 아무튼 중년인 남자를 만나러 달려 나갈 뻔한 남편을 꼭 붙들고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비아, 당신은 나랏일만으로도……”
“급한 일은 다 끝냈습니다. 앞으로 얼마간은 크게 급한 일도 없고요.”
동부 치수 사업 관련 업무가 전부 펠트하르그 공작에게로 넘어가 버려서, 그래도 숨 돌릴 정도는 되었다.
집안의 금고가 가득 차고 넘치는 줄도 모르고, 돈 벌어 오겠다고 깡총깡총 밖으로 나도는 남편과 어울려 놀 정도의 여유는 있다는 의미였다.
루비아나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루이먼드는 퍽 감격하여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그제야 그도 요 얼마간 서로 바빠 함께 있는 시간이 한참 부족했다는 걸 깨닫고는, 끓어오르는 애정을 참지 못하고 루비아나의 손등에 짧게 입을 맞췄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등에 입 맞추는 것은 애정의 의미라는 걸 부디 루비아나가 알아주길 바랐지만,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반드시 세르딤 사업을 성공해서! 비아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인정받겠어.’
그러기 위해서 일단, 루비아나와 당장의 어려움을 오손도손 이야기 나눌 생각이었다.
루비아나가 바빠서 관심이 없다면 모를까, 이렇게 관심 가져 주는데 어찌 고민을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실, 그 의상 디자이너의 이름만 알고…… 어디에 사는지를 모릅니다. 앞으로 찾아봐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루이먼드는 피먼스 상단주와 의논하려 했던 걸 루비아나에게 술술 말했다.
“일단 정보 길드에 의뢰해 보려고 하는데요.”
“그렇군요. 아직 수도의 정보 길드는 조직이 완성되지 않아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보도 불확실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나마 많은 정보가 오가는 곳이니까요.”
“그건 그렇지요.”
흐음. 루비아나는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루이먼드의 말대로 하는 게 맞는다.
특수한 경우라면 도미넨트 공작의 정보 조직을 이용하는 게 빠르겠지만, 고작 의상 디자이너 한 명을 찾고자 황제를 위한 조직을 움직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루비아나는 아예 그쪽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릴리 로투스라는 이름, 확실한 겁니까?”
“예?”
“가명이라거나 중간에 이름을 바꿨다거나.”
“아마 그건…… 아닐 겁니다.”
루이먼드는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릴리 로투스는 어느 의상점에서 오랫동안 직인 생활을 했고, 그 의상점을 나오면서 주인과 원수 지간이 되었다.
의상점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의상점 주인이 꽤나 악질이어서 릴리 로투스의 과거에 대해 마구 떠벌리고 다녔던 건 기억이 났다.
그 소문 중에 릴리 로투스가 이름을 바꿨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었다.
“수도에 살고 있고?”
“예. 수도에 사는 건 분명해요. 수도 빈민가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으니까.”
“그럼 일이 좀 쉽게 풀릴 수도 있겠군요. 루이, 그 릴리 로투스라는 자는 내가 찾아보겠습니다.”
“비아, 당신이요? 뭔가 방법이 있는 건가요?”
“네.”
“어떻게?”
“부하들을 시키면 되지요.”
“네?”
“추적에 능한 자들이라, 사람 찾는 건 어쩌면 정보 길드보다 빠를지도 모릅니다.”
루비아나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와이번을 손바닥만 한 금고에 넣는 방법? 부하를 시키면 될 일이었다. 이 커다란 수도에서 릴리 로투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빠르게 찾는 방법? 그 역시 부하를 시키면 될 일.
루비아나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월급날을 맞아 잠시 행복했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수도에서 릴리 로투스 찾기.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은 이 일을 자신의 유능한 부하들이 며칠 만에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러고는 루이먼드와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