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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루비아나의 유능한 부하들은 며칠 만에 수도에 사는 릴리 로투스란 여자를 찾아냈다.
루비아나는 원망 가득한 부하의 눈빛을 흘려 넘기며 보고서를 확인했다.
“……?”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릴리 로투스는 릴리 로투스니까 뭐…….”
루비아나는 일단 루이먼드를 데리고 릴리 로투스가 살고 있다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저 사람이 당신이 찾는 릴리 로투스가 맞습니까?”
“…….”
루이먼드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참담한 상황이었다.
고작 열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소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등 뒤에 산더미같이 쌓인 빨랫감은 척 보기에도 소녀의 키보다 높았다.
우물물을 푸는 바가지는 소녀의 머리보다 컸다.
소녀는 얇은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루이먼드가 입는 잠옷보다 얇아 보였다.
요즘 날씨가 아무리 좋다 해도 가을이라 제법 쌀쌀하니까, 전혀 날씨에 어울리는 옷차림이 아니었다.
삐죽 밖으로 튀어나온 손발은 한겨울의 비쩍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했다.
신발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발가락이 다 보였다. 그마저도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손에 든 빨랫방망이는 소녀의 다리보다 두꺼웠다.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소녀의 몸이 다 휘청거렸다.
옷에 가려지지 않은 손발엔 상처가 가득했다. 척 보기에도 그냥 실수로 나뭇가지나 돌에 긁힌 상처가 아니었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세게 움켜잡거나 매질한 흔적이 역력했다.
보이는 곳이 저 정도인데, 보이지 않는 곳의 상처는 얼마나 심할까? 루비아나는 냉정히 가늠해 보았고, 루이먼드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후하- 호오- 후-.”
소녀는 파랗게 질린 손에 입김을 불어 가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주변엔 소녀와 비슷한 또래, 혹은 몇 살 더 많은 아이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 소녀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빨랫감이 버거울 정도로 많지도 않았고, 옷은 낡았지만 그럭저럭 입을 만해 보였다. 무엇보다 몸에 상처가 없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노래를 부르며 일을 했다. 소녀만이 외따로 떨어져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딱 봐도 주변 사람들이 소녀를 따돌리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말도 안 돼. 저 아이가 릴리 로투스?”
“릴리 로투스. 열다섯. 크라터 의상실 소속 직인이라고 합니다.”
루비아나는 보고서 내용 중 일부분을 읊어 주고는 이어 말했다.
“당신이 수도의 의상실에서 일하는 릴리 로투스라는 사람을 찾는 거라면, 저 사람이 맞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릴리 로투스, 열다섯 살의 소녀는 찬물에 손을 담그고, 방망이로 빨랫감을 두드리고 있었다.
찬물이 온몸에 튀었고 주변에서 그녀를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마른 얼굴은 계속 무표정했다. 수렁 같은 현실에 치여 지칠 틈도 없이 버텨 나가는 얼굴이었다.
‘말도 안 돼, 이럴 리 없어.’
루이먼드는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천재 의상 디자이너, 릴리 로투스. 원래대로라면 그녀가 천재성을 짜잔, 하고 드러내는 건 내후년쯤일 터였다.
그러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한데, 그렇다 해도 지금 시점에서는 어엿한 의상실 직인이나 디자이너로 인정받아 일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루이먼드 앞에 놓인 릴리 로투스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빨랫감에 파묻혀 있는 하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루비아나가 말해 준 의상실의 이름을 듣지 않았더라면, 저 사람이 릴리 로투스일 리 없다고 현실을 외면하기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을.
루비아나의 말을 듣는 순간 생각났다.
‘맞아, 마담 크라터였어. 릴리 로투스가 공모전에 당선하기 직전까지 릴리 로투스를 데리고 있었다는 의상실 주인.’
릴리 로투스는 공모전에 당선하자마자, 크라터 의상실을 그만두고, 상금으로 자신의 의상실을 열었다.
마담 크라터는 그런 릴리 로투스를 배은망덕하다고 욕하며 길드의 힘을 이용해 그녀를 괴롭혔다.
릴리 로투스가 세르딤 직물 전용 디자이너가 된 것도 그 이유가 없지 않았다.
포목점 상인들이 길드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직물을 팔지 않으니, 길드의 힘이 통하지 않는 펠트하르그 공작가 소속 상단들이 주로 취급하는 세르딤 직물에 매달릴 수밖에.
다행히 세르딤을 이용한 릴리 로투스의 의상 컬렉션은 오래도록 황제와 제국의 사랑을 받았다.
루이먼드는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마담 크라터와 릴리 로투스가 사이가 안 좋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조금만 더 지켜봐요. 정말 제가 찾던 그 릴리 로투스인지…….”
“그러죠. 루이, 좀 더 안쪽으로 들어와요. 거기 계속 서 있으면 들킬지도 모릅니다.”
루비아나는 릴리 로투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루이먼드를 잡아끌어 골목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혹시나 은발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로브의 후드 부분을 꾹꾹 눌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