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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딤이라고 불리게 될 세르딤이 막 북부로 떠날 즈음, 루비아나의 추천장을 받은 릴리 로투스가 기숙사제 기사 학교에 입학했다.
루이먼드가 보호자로 따라나서서 릴리 로투스의 입학 원서를 작성하고, 릴리 로투스의 뒤에 자신이 있으니 애를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을 때.
마담 크라터의 의상실이 있는 거리는 예고 없이 몰 온 수도 경비대와 황실 관리들의 단속에 몸살을 앓았다. 아니, 단순한 몸살 정도가 아니라 썩어 빠진 환부를 도려내는 대수술이었다.
단속팀을 이끌고 거리를 급습한 행동대장은 황실 행정관의 최고 실세 내무국장이었다.
그녀는 반차를 내고 아쉴레앙 공작저에 쳐들어갔던 날 이후로 처음 보는 뜨거운 태양볕에 괴로워하며 양산을 펼쳐 들었다.
그러고는 경비대가 거리를 봉쇄하고, 가게 점원들의 나이와 근무 조건, 업무 강도 등을 확인하고, 악덕 업주들을 붙잡아 바닥에 무릎 꿇릴 때까지 기다렸다.
당연히 멀뚱하니 서 있지는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비서가 챙겨 온 서류를 읽으며 급한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황실 관리들이 실수로 엄한 가게를 들쑤시려 하거나 정작 단속해야 할 가게를 지나치려고 하면, 귀신같이 눈치채고 고개를 들어 지적했다.
“눈이 머리에도 달려 있어.”
“머리에만 달려 있으면 다행이지, 난 어깨랑 등에도 달려 있다고 들었는데?”
“떠들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실수하지 말고 빨리빨리 합시다. 신속, 정확할수록 퇴근 시간이 빨라집니다, 여러분.”
관리들은 수군대다가 또 한 소리를 듣고는 입을 꾹 다물고 얼른 움직였다.
“현장 감독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가 너무 부족해에에에.”
내무국장은 내가 현장 감독을 나올 순번이냐고 투덜댔다.
“거기, 그쪽으로 가면 안 되지. 다음 골목!”
그러면서도 또 헛발질하려는 길치 관리들을 놓치지 않고 지시했다.
“대부분 동부에 내려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번 일은 직접 오셨을 거잖습니까.”
비서가 대답했다.
제국 전역에 평민을 위한 무료 학교를 세우게 해주겠다는 황제의 꼬임에 넘어가 내무국장이 황실 관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황실 관리는 거의 없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보고를 듣자마자 분개해 서둘려 단속팀을 꾸려 직접 행차한 것이었다.
끄응. 내무국장은 아니라고는 대답하지 못하고 신음했다.
비서는 그런 내무국장을 더없이 존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무국장을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서류를 공손히 내밀었다.
이후로도 비서는 여러 번 더 왔다갔다하며 서류를 가져왔다.
내무국장이 마차에 싣고 온 서류 중 절반 정도를 해치우고 나머지를 돌아가는 길에 보려고 남겨두려 할 즈음, 상황이 정리됐다.
경비대에게 잡혀 온 악덕 업주들의 맨 앞에 있는 건, 이 단속을 가능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마담 크라터.
어린아이들을 싼값에 고용해 종일 일 시키기로 유명한 이 거리에서도 특히나 악명 높은 아동 학대, 착취범.
그녀는 루비아나와 루이먼드가 릴리 로투스를 데리고 떠난 뒤, 돌변하여 이렇게 떠들어 댔다.
“공작이면 다야? 황제의 언니면 다냐고! 요즘 황제와 사이도 별로 라면서, 왜 남의 가게 운영에 이래라저래라야? 제국법에, 평민의 사유 재산은 귀족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뺏으면 안 된다고 써 있는데! 내가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줄 알고?”
그녀는 제국법 운운하며, 루비아나에게 복수를 꿈꿨다.
그 제국법에 성년식을 치르지 않은 아동을 고용할 시, 월급을 제대로 지급해야 하며 하루에 몇 시간 이상 과도하게 일을 시키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는 건 모르는 듯했다.
마담 크라터는 승률 높은 변호사와 계약하여 아쉴레앙 공작에게 소송을 걸려고 준비했다. 신문사에 연락해 일을 크게 벌일 계획도 세웠다.
제대로 망신 주고야 말리라. 마담 크라터는 감히 그런 꿈을 품었다.
아쉴레앙 공작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계약금까지 치렀건만, 소송을 걸기도 전에 내무국장의 단속에 걸려들고 만 것이었다.
“제가,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요? 그저 세금 내라는 대로 열심히 내고, 먹고살고자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요.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마담 크라터가 우는 시늉을 하며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하아.”
내무국장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 쉬었다.
“왜 이렇게 일을 어렵게 만들지요?”
“흐어엉,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아아.”
“설마 내가 죄 없는 사람을 줄줄이 붙잡아 놓을 만큼 한가해 보이나요?”
비서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눈치채지 못한 마담 크라터는 더욱 목 놓아 외쳤다.
“그러면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아아!”
“당연히 죄를 지어서지요.”
“무슨, 무슨 죄 말입니까! 성실하게 산 것도 죄라면……”
“아동 학대 및 착취.”
“…….”
마담 크라터가 입을 딱 다물고 눈을 데굴 굴렸다. 그제야 경비대 옆에 서 있는 직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혹시나 마담 크라터와 눈이 마주칠까 싶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경비대 병사들에게 귓속말로 소곤소곤 증언을 늘어놓았다.
‘저것들이!’
마담 크라터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지들이 그런다고 내가 갑자기 감옥에 가거나 그럴 것 같아? 이건 그냥, 형식적인 거야. 뒷돈 좀 쥐여 주면 잘 마무리될 거라고. 그것도 모르고 감히 날 배신해?’
풀려나기만 해 봐라, 다들 가만 안 두리라. 그리 다짐하는데, 내무국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한테 아쉴레앙 공작을 편들게 한 거.”
“……예?”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두 가지인데, 그런데 당신이 그 두 가지를 모두 저질렀어요.”
“예에?”
내무국장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담 크라터에게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야근에 찌들었는데, 더더욱 야근에 찌들게 된 내무국장의 분노를 받아야지.
“감당할 수 있지요?”
“뭐, 뭘요? 아, 아, 아니요! 아니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건 분명했다. 마담 크라터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는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무국장의 분노는 마담 크라터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에게 내리꽂혔다.
“그리 어렵지 않아요. 감히 수도 한복판에서 아동을 학대하고 착취한 것도 모자라, 나한테 아쉴레앙 공작 편을 들게 했잖아요? 그런 일까지 해낸 사람이 약간의 고문과 처벌과 재산 몰수와 오랜 감옥 생활을 견디지 못할 리 없어요.”
“그게 무슨……!”
마담 크라터가 입을 쩍 벌렸다.
내무국장은 마담 크라터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서류에 쓴 글자를 읽듯 덤덤히 말을 이을 뿐이었다.
“네가 학대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널 짓밟을 힘을 기를 동안만 갇혀 있는 거예요. 네가 뺏고 착취한 그 아이들의 청춘만큼만 감옥에 갇혀 있어 봐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잘 자라 이 거리의 훌륭한 장인, 가게 주인이 되었을 즈음 세상의 빛을 보게 되리라.
마담 크라터뿐 아니라, 줄줄이 묶여 있는 악덕 업자들의 얼굴이 모두 하얗게 질려 버렸다.
“사, 살려 주세요.”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십시오!”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약자 앞에서 한없이 강했던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내무국장은 이 악독하고 약한 야근거리들을 보며 헤실, 웃었다.
“늦었어요. 그러니 법을 잘 지켰어야지요.”
근무 조건이 열악하고, 성인식 전 아이들을 데려다 일 시키는 걸로 악명 높았던 의상 거리의 악습은 이렇게 사라졌다.
악습의 주체였던 악덕 업자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마담 루르를 비롯해 끝까지 양심을 지키며 가게를 운영해 온 사람들은 살아남았을뿐더러, 국가로부터 지원금도 받았다.
악덕 업자들이 사라진 거리에는 ‘엘리스 의상 학교’가 세워졌다. 거리의 직인들은 낮에는 가게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이름에 내무국장의 이름을 딴 건, 루비아나가 건의했기 때문이었다.
“흥, 그런다고 내가 감격할 줄 알고? 하나도 안 고맙거든요!”
내무국장은 고작 그딴 걸로 자신의 마음을 사려고 한 루비아나의 얕은 수를 꿰뚫어 보고 코웃음을 쳤지만.
지난번 예술가들의 거리에 오르카 미술 학교를 세웠을 때처럼 공작저로 달려가 루비아나의 목을 잡고 짤짤 흔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제국은 오늘도 평화로웠다. 겉으로 보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