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131)

10. 반란 이후

제국 건국 초. 옛 왕국의 귀족들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아덴 왕국의 반란 세력은 대담하게도, 제국의 세 공작 중 한 명인 아쉴레앙 공작 남편을 납치했다.

새 아덴 왕국의 왕으로 세운다고 떠들어댔으나, 알고 보니 오딜 후작의 딸이 아쉴레앙 공작 부군의 미모에 반해 저지른 일이었다고 한다.

평소 아쉴레앙 공작은 마수와 범죄자들이 드글드글한 북부에만 머물며, 좀처럼 수도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납치되자 태도가 돌변했다.

아쉴레앙 공작은 무려 와이번을 타고 수도에 돌아와 황제를 알현하고, 동부로 가 반란 세력을 단숨에 쳐부쉈다.

그 과정에서 동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르니에 강의 물줄기를 완전히 틀어 반란군을 수장시켜버렸다.

아쉴레앙 공작 부군은 뛰어난 미모 때문에 반란군에게 납치당한 피해자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를 안쓰러워하고, 그의 미모를 궁금해하는 건 아니었다. 그를 고깝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튼 반란 세력의 왕씩이나 해먹었으니 벌을 받아야 하지 않나?”

“적어도 이혼은 해야지.”

“폐하께서 가만 안 두실걸?”

“아니, 정말 납치당한 게 맞긴 한 거야? 말이 납치지, 그 작자도 지 왕 시켜준다니까 좋아서 쫄래쫄래 따라간 거 아냐? 키도 훤칠하고 생각보다 덩치도 있다며? 납치는 무슨.”

“공작님이 폭군의 사생아랑 결혼한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어.”

폭군의 사생아. 반란군의 왕.

아쉴레앙 공작 부군에게 따라붙는 꼬리표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근거 없는 험담과 이유 없는 악의를 먹고 자라나려 할 때였다.

“아쉴레앙 공작 부군을 모욕하는 건, 우리 루텔 수도원을 모욕하는 것.”

“감히 우리 자매님의 남편을! 신께서 피의 맹세를 지키라며 내려주신 귀한 남편을 모욕하려 하다니!”

제국 전역에 300여 개의 수도원을 가지고 있는 루텔 수도원이 들고 일어났다.

루텔 수도원은 공식적인 발언으로, 또 공고문에서 아쉴레앙 공직이 신께 피의 맹세를 바쳤다고 밝혔다. 그 바람에 예배당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생아는 단번에 신께서 아쉴레앙 공작에게 내려주신 귀한 남편이 되었다.

“진짜 너무 한 거 아냐? 내가 누나 남편 소문이랑 초상화 퍼트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누나가 이렇게 날로 먹으면 어떡해? 오딜 후작도 내 꺼라고 그랬는데 멋대로 죽여 놓고. 우씨, 수도로 돌아오기만 해봐!”

일찌감치 루텔 수도원의 공고문을 전달받고, 또 백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을 수집해 들은 도미넨트 공작 루단테는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댔다.

루단테에게 보고를 받은 칼레나는 픽, 웃고 말았다.

그리하여 아쉴레앙 공작, 루비아나가 루텔 수도원의 수도사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고 수도로 돌아왔을 때.

성대한 개선식과 수도를 꽉 채운 백성들의 환호 소리가 그들을 반겼다.

백성들은 뚜껑이 없는 마차에 탄 루비아나와 루이먼드를 보며 환호했다. 특히나 루이먼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성원이 열렬했다.

루이먼드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원망하고, 조롱할 거라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다. 루비아나가 걱정할까 봐 티 내지 않으려 애썼으나, 루비아나가 모를 리 없었다.

루이먼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루비아나는 빙긋 웃으며, 그의 턱을 올려주었다. 헙.

꺄아아악!

사람들은 다정한 공작 부부의 모습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봐요, 루이.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아하는군요.”

루비아나는 꽃비에 덮인 루이먼드의 은발을 살살 흔들어 꽃잎을 떨구며 말했다.

“…….”

루이먼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화려한 세 번째 개선식 후. 반란자들의 처벌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사형을 당했고, 죽은 오딜 후작은 목이 잘려 성벽에 걸렸다. 리사나는 남부의 어느 수도원에 유폐되었다.

부모를 죽이면 자식은 건드리지 않는다. 귀족의 수를 보전하기 위한 귀족 처벌의 불문율을 따른 것이었다.

폭군마저도 이 불문율을 어기지 못해, 룩센 백작 부부를 죽인 후 새로운 룩센 백작인 칼레나에게 손대지 못했다.

루비아나가 그 옛날 칼레나에게 룩센 백작 위를 넘긴 이유이기도 했다.

반란에 가담한 자들을 대부분 벌하고, 반란을 쳐부순 세 공작과 군대가 큰 상을 받고 나자 제국은 언제 반란 같은 게 있었냐는 듯 안정되었다.

그 안정을 떠받치는 건, 밑바닥에서 갈갈 갈리는 황실 관리들이었다.

황실 관리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했고, 동부로 파견된 치수 사업 담당 관리들은 수도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다시 만나 누구의 다크 서클이 더 짙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살수대첩이 있은 지 몇 달 뒤의 어느 날이었다.

황실에 행정관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행정관에서 관리들이 사라졌다.

사라진 관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정갈히 예복을 차려입고 황궁에서 가장 큰 홀에 모였다.

매년 신년제가 열리고, 올해는 반란 세력에게 황제가 습격당하기도 했던 그 홀이었다.

굳이 그 홀에서 행사를 여는 건,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감히 아직도 반란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하지만 너희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황제는 반란을 진압하고, 제국을 안정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황실 관리들을 치하하고 개개인에게 특별 상금을 듬뿍 주었다.

그리고 가장 큰 공을 세운 관리를 제국 최초의 재상으로 임명했다.

“너무 돈을 뿌리면 물가가 오를 텐데.”

“괜찮아, 어차피 우린 돈 쓸 시간이 없잖아. 우리가 가지고만 있고 돈을 안 쓰면, 제국의 물가엔 전혀 지장이 없을 거야.”

“그건 그래.”

학자의 집에서 경제, 경영을 공부했던 황실 관료들은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금으로 인해 제국 경제에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아니, 관리 중 누구도 황제의 재상 임명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괜한 시간 낭비였다. 어떤 학문을 공부한 학자가 봐도 완벽한 선택이었으니까.

최초의 재상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은 단 하나. 그 자리에 앉은 관리 본인뿐이었다.

그녀는 단상 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 중 유일한 내 편.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이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내 아내를 재상으로 삼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내 손목을 휘어잡고 이곳을 벗어나. 어서.’

강렬하게 눈빛을 보냈으나 회계국장 리스 시모어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아내를 사랑한다. 너무 사랑하지만, 재상 자리에 대신 앉아줄 수는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아내가 완벽한 적임자였다.

“배신자.”

제국 최초의 재상은 남편의 배신에 분노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그 자세. 앞으로도 제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 달라고.”

칼레나는 그 모습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임명장을 내밀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내무국장, 아니, 제국 최초의 재상은 임명장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저는 너무 어립니다아아, 좀 더 연륜 있는 관리를 임명하시는 게…….”

“괜찮아. 우리 다 어리잖아?”

칼레나가 자신과 세 공작을 가리켰다. 카드릭과 루단테. 그리고 루비아나.

루비아나의 옆에는 루이먼드가 꼭 붙어 있었다.

루이먼드는 루비아나가 숨을 조금만 크게 내쉬어도 화들짝 놀라며 안절부절했다.

카드릭은 그런 루이먼드를 고깝게 바라보았고, 루단테는 휘익- 휘파람을 불었으며. 루비아나는 제 남편에게 괜찮다 속삭이며, 두 공작에게 눈을 부라렸다. 나 남편한테 눈치 주지 마.

거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 칼레나까지.

차암 믿음직해 보였다.

“그러니까 재상만이라도 나이 지긋하신 분으을!”

제국 최초의 재상은 그들과 한 데 묶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마지막까지 몸부림쳤다.

“그럼 오래 못 부려먹잖아, 싫어.”

“하, 하지만!”

“황제의 명령이니까 해.”

칼레나가 산뜻하게 말했다.

으아아아아. 최초의 황제는 성은이 망극하여, 다시금 흐느꼈다.

재상은 제국에서 황제 다음가는 자리였다. 제국에 셋뿐인 공작들마저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 임명되고도 좋아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칼레나는 만족스러워했다.

“역시 잘 뽑은 거 같아. 추천 고마워, 아쉴레앙 공작.”

“아, 굳이 이 자리에서 말씀하실 필요는…….”

루비아나가 칼레나의 말을 돌리려 했으나 한발 늦었다.

원흉이 너구나. 제국 최초의 재상이 활활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루비아나를 바라보았다. 루비아나는 흠흠,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비아, 왜 그래요? 몸이 안 좋아요? 역시 너무 오래 서 있어서-”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루이. 난 괜찮아요. 그냥 목이 좀 말…… 아니, 그냥 해본 말이에요. 전혀 목마르지 않으니까, 음료 가지러 가지 말아요. 루이.”

단상 위엔 두 쌍의 부부가 있었는데 한쪽은 부부싸움 직전이었고, 한쪽은 아주 설탕이 쏟아졌다.

아래에서 자신들만의 연회를 즐기는 관리들은 단상 위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알지 못했다. 알 생각도 없었고.

개중 가장 열렬히 단상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동부 치수 사업 파견 사무관 피오니 로렌이었다.

그녀는 내무국장이 황제의 임명장을 받아들고 제국 최초의 재상이 되는 순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박수쳤다.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동부의 치수 사업도, 살수대첩도, 그리고 오늘의 임명식도. 모두 다 제국의 중요한 역사로 기록될 터였다. 격동의 역사 현장 한가운데 서서 그 모든 사건을 경험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그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활활 불타올랐다.

‘더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아야지. 그래서 반드시 국장님 다음 자리를 내가 잇고야 말겠어!’

제국의 2대 재상은 바로 나야, 나.

제국 초의 번영을 이어 나가며 제국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제국의 3대 재상, 피오니 로렌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참고로 제국의 2대 재상은 스이 모겐이었다.

그는 이웃 대륙으로까지 제국의 외교망을 넓힌 업적을 인정받아 2대 재상이 되었으나.

재상이 되자마자 황실 관리의 조기 퇴직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를 가장 먼저 사용해 황제의 인가도 받지 않고 퇴직해버려 제국 역사상 가장 짧은 임기의 재상으로 기록되었다.

스이와 피오니가 사이좋게 제국의 재상 자리를 이어받는 건 먼 미래의 일. 루비아나가 루이먼드와 피오니 사이를 오해했던 걸 완전히 해소한 건 아주 가까운 과거의 일이었다.

오해는 길게 마음고생 했던 것에 비해, 너무 쉽게 풀렸다.

수도로 돌아온 후 루비아나와 루이먼드, 두 사람은 오래도록 침실에서 나오지 않고 함께 했다.

딱히 뭔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서로를 안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잠들고, 함께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이참에 루비아나는 루이먼드에게 추천을 받아, 여주인공들이 툭하면 도망치는 연애 소설들을 몇 권 읽어보았다.

루이먼드는 토끼가 나오는 동화책을 루비아나와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루비아나가 스르륵 잠들면 그녀의 이마와 뺨에 연거푸 입을 맞추곤 했다.

루이먼드는 종일 루비아나를 껴안고 있어도 부족한 사람처럼 굴었다.

눈만 마주치면 얼굴 어디에고 입을 맞추었고, 배에 손을 올렸다가 작은 움직임이라도 느껴지면 입을 꾹 닫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눈물을 참는 거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루비아나는 루이먼드의 목에 난 상처를 손으로 쓸었다. 울고 싶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루비아나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졌다.

여전히 남부식 청어 절임과 미트파이가 당겼으나, 루이먼드가 먹어보라고 내미는 음식을 보면 이상하게 식욕이 돌았다.

잘 움직이지 않고 잘 먹으니 살이 올랐다.

“먹는 입덧도 있어요. 다행이죠.”

나이 지긋한 하녀가 신께 감사하라고 말했으나, 못 먹고 토하기만 하는 입덧을 경험해본 적 없는 루비아나로서는 그 말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옆에서 하녀의 말을 함께 들은 루이먼드만 오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루이먼드는 헛구역질이 싹 사라졌다. 음식을 보면 속이 메슥거릴 때도 있었으나 루비아나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루비아나가 걱정할 테니 먹어야겠다고 생각해 음식을 씹어 삼켰던 첫날. 헛구역질도, 토악질도 나오지 않는 걸 느끼며 눈물을 글썽였더랬다.

오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풀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피오니 로렌의 이야기가 나왔다. 루이먼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루비아나는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그래서 과거의 여자라는 건가? 날 사랑하게 됐으니까?’

여전히 오해의 한 가닥을 풀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한 친구예요.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학자의 집 역대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스승님께서 말씀하곤 하셨어요.”

루이먼드가 너무 밝고 맑은 목소리로 피오니를 칭찬했다.

‘그래서? 똑똑한 여자가 좋으시다? 근데 왜 날 더 사랑하게 된 건데?’

순간 울컥, 했으나 오래 가지 않았다. 이어지는 루이먼드의 말에 그 울컥함이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만약 내게 누나가 있었으면 피오니 같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실제로 학자의 집에서 공부할 때 피오니가 절 많이 챙겨주기도 했구요. 아, 물론 피오니는 나 같은 남동생 갖기 싫다고 싫어했어요.”

루이먼드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서 누나동생 안 하고 친구가 되었지요.”

“……친구? 그냥 친구?”

“그냥 친구는 아니고, 평생 친구요.”

루이먼드는 키득 웃으며, 학자의 집에서 피오니가 눈 피곤해지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던 일을 말해주었다.

결국 두꺼운 로브를 뒤집어 써서 얼굴을 가리고야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는 것도.

연인이 아니었다는 것도, 그런 감정이 밀알 한 톨 만큼도 없다는 것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루이먼드는 피오니에 대해 말할 때는 더없이 담백했다. 길가의 돌멩이가 참 똘똘하게 생겼네, 수준이었는데.

그러다 루비아나와 눈이 마주쳐 쪽쪽 입을 맞출 땐, 금세 눈빛이 돌변했다.

세상에 이렇게 달콤한 남자가 또 없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주제에 팔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또 어찌나 끈적하던지.

루비아나는 자신이 조심해야 하는 상태라는 것도 잊고, 루이먼드에게 달려들 뻔했다.

‘진작에 루이에게 피오니 로렌 사무관에 대해 물어봤으면 오해할 일도 없었을 거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해왔던 게 어이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뭐 기분 좋은 일이 생각 났나요?”

루이먼드가 왜 웃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루비아나가 숨만 크게 쉬어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화장실 갈 때 외엔 계속 붙어 있으면서, 그마저도 함께 해야 한다고 우겼다가 루비아나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겨우 포기했지만.

“글쎄요.”

루비아나는 루이먼드의 목을 잡아당겨 먼저 입을 맞추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냥, 당신이 좋아서.”

그런 어이없는 착각을 하며 속앓이를 할 만큼, 앞뒤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난 꽤 오래전부터 루이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거군.’

어느새 불쑥 찾아온 사랑인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조금씩, 계속, 끊임없이 사랑하게 되었던 걸까?

‘그럴 수밖에.’

루비아나는 부끄러워 새빨갛게 익은 루이먼드의 얼굴을 보며, 납득했다.

“비아.”

루이먼드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더니 참지 못하고 루비아나를 끌어안았다.

등 뒤에서 조심조심. 그리고는 루비아나의 머리카락 한올 한올.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입을 맞추지 못하면 죽게 되는 저주에 걸린 사람처럼 굴었다.

루비아나는 간지러워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끌어안았다.

겨우 되찾은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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