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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최초의 재상이 임명된 뒤에도 반란자 처벌은 계속되었다. 오딜 후작과 리사나 같은 굵직한 주도 세력들의 처벌이 끝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 안에 시종장과 하녀장이 남아 있었다.
초반부터 반란 세력에 참여했으며 반란 세력이 황궁을 습격할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니,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루비아나는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못한 건지, 안 한 건지. 그 경계가 흐렸다. 칼레나는 재판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사형을 선고받은 날.
루비아나는 칼레나를 찾았다. 칼레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루비아나를 맞이했다.
“괜찮아?”
“내가 괜찮지 않아 보여?”
“아니.”
“근데 왜 내가 안 괜찮기를 바라?”
“바란 건 아니고, 그냥.”
“언니나 상처받지 마.”
“상처받지 않았어.”
“그럼 함부로 동정하지도 마. 그들은 정당한 복수를 한 거야. 그리고 실패한 것뿐이니까.”
“그렇겠지.”
루비아나가 씁쓸히 웃었다.
“그들이 죽는 걸 각오하지 않았겠어? 우리랑 같아. 우리도 실패했다면 죽었을 거야.”
“글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난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언닌 목숨이 여러 개야? 실패해서 사형 당해도 안 죽을 자신 있었어? 요즘 수도사들은 기도하면 그런 능력을 막 얻기도 해?”
“네가 똑똑한데 우리가 패할 리 없잖아?”
아니, 사실은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피의 맹세를 바쳤다고, 신께서 이쪽 편을 들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신이라면 애초부터 부모님을 죽게 만들었을 리 없으니까.
설령 반란이 실패하더라도, 그래서 자신과 카드릭과 루단테가 모두 죽게 되더라도. 칼레나만은 빼내어 도망치게 만들 생각이었다.
늘 실패를 대비해 칼레나 곁에 믿을 만한 수도사들을 몇 명씩 두었다.
여차하면 무조건 칼레나를 들고 남쪽으로 튀라고 명령을 내려놓았다. 칼레나가 도망칠 때까지 길을 막고 시간을 버는 건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렇게 준비했다는 걸,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뭐야, 그게. 내가 무슨 전쟁의 신이야? 무조건 이기게?”
칼레나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왜 그런 입발린 말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지만 모른 척해 줄게. 원한다면 사형수들을 만나러 가도 좋아.”
“……모른 척 해주는 게 아니잖아.”
“뭐래. 이 정도면 모른 척 해주는 거거든?”
칼레나는 픽 웃으며 돌아섰다.
루비아나는 어느새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감옥 출입증을 보고는 하하, 웃고 말았다.
***
루비아나는 바로 시녀장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갔다. 다행히 감옥은 상태가 좋았다.
습하고 어둡긴 했으나, 벌레와 쥐가 들끓고 오물이 차고 넘치는 끔찍한 곳은 아니었다.
루비아나는 간수들의 깍듯한 인사를 받고 나서 그들을 물렸다. 그리고 홀로 어두운 복도를 걸어 어느 감옥 앞에 섰다.
그 안에 시녀장이 반듯이 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공작님.”
시녀장은 루비아나를 알아보고는 차분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잘 지냈어?”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뭐 불편한 점은 없고?”
“그 역시. 배려해주신 걸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담담하다 못해 개운해 보이기까지 하는 시녀장을 마주하니, 하고 싶은 말이 다 사라져버렸다.
“끝까지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래, 미안해하라고.”
루비아나가 타박하듯 말했다.
“큰일이야. 내가 일찍 죽으면 수도의 내 저택을 물려받아야 하는 사람이 사라져 버렸으니. 거길 채울 사람을 찾기 힘들 거 같아.”
루비아나의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그럼 계속 공란으로 비워두세요.”
시녀장은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오래 사세요. 공작님.”
“…….”
“자식들이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아이가 다시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말입니다.”
“아주 저주를 하지, 그래?”
“저주라니요. 축복이랍니다. 신께서 이 낮은 곳까지 임하셔서 제 바람을 들어주실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리먼스 부인.”
루비아나는 참았던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왜 그랬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그녀도 루비아나도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까.
“수도에 온 날 지극정성으로 도와줬지.”
“공작님의 신임을 얻을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내가 죽은 줄 알았을 때, 펠트하르그 공작가 사람을 내쫓고 루이먼드를 지켜줬다면서.”
“아쉴레앙 공작가의 유산이 펠트하르그 공작가로 흘러들어 두 세력이 합쳐진다면, 반란 세력에 위협이 될 테니까요.”
“참 대단도 하시군.”
“칭찬 감사합니다.”
“금방, 끝날 거야.”
유일한 위안은 그녀의 죽음이 아주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 누구의 위안인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루비아나는 간다는 말도 없이 돌아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루비아나가 창살 앞에 두고 간 전등이 아른아른 흔들렸다. 어둠 속 유일한 빛이었다.
시녀장은 그 등불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눈에선 눈물이 흘렀지만, 그녀의 입술은 웃고 있었다.
‘알아요. 당신은 내가 지금 가면 화를 내겠죠. 왜 그랬냐고. 당신의 죽음은 정당한 것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고.’
올가 리먼스. 그녀는 몰락 귀족이었으나 그녀의 남편은 평민이었다. 그리고 하급 기사였다.
폭군은 말년에 이르러, 주변의 귀족들을 믿지 못하여 평민으로 기사대를 조직해 제 호위를 담당하게 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 기사대의 기사였다.
평민이었기에 원래대로라면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으나, 그 기사대에 입단하여 기사 작위를 얻고 그녀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가문은 왕의 호위 기사인 그를 내칠 수 없어 그녀와의 결혼을 허락했으나 혼인신고서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했으나 서류상으로는 미혼의 귀족 영애였다.
새벽 전투가 있던 날.
그녀의 남편은 비번이었으나, 왕궁으로 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같은 연락을 받은 기사들은 입궁하긴커녕 오히려 수도 밖으로 도망갔다. 그녀 역시 그걸 바랐으나 그녀의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나 같은 말단은 그냥 후방에서 짐만 좀 나르고, 창 몇 번 휘두르면 끝일 거라고.”
“하지만…….”
“우리 전하께서 폭군이라 불릴 정도로,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날 기사로 만들어주신 분이야. 그분이 날 기사로 임명해주셔서 내가 당신과 이렇게 함께 살 수 있게 됐잖아? 충성을 다해야지.”
남편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한 번 꼭 끌어안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시체로 돌아왔다.
반란을 일으킨 젊은 룩센 백작은 관대하여 항복한 적들을 용서해주고 지위를 보전해주었으나, 끝까지 폭군의 편에 선 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새벽 전투가 끝났을 때. 칼레나는 성 안의 모든 사람을 죽였다.
칼레나의 명령이 칼레나 본인에게 옳은 것이었던 것처럼. 칼레나와 그녀를 따르던 반란 세력을 원망하는 것은 리먼스 부인에게 옳은 것이었다.
“당신이 나한테 허락받지 않고 멋대로 죽었으니까. 나도 내 마음대로 당신의 복수를 하려 한 거였어요. 성공하진 못했지만…….”
등불이 흔들리며 벽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그림자일 뿐이지만, 그녀를 덮을 정도로 커진 그 그림자는 그녀의 남편을 닮아 있었다.
“성공하지 못해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행복하시길. 올가 리먼스는 진심으로, 루비아나의 행복을 바랐다.
벽이 기대 시녀장의 말을 듣고 있던 루비아나는,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그녀는 칼레나를 위험에 빠뜨렸다.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었다. 사형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루비아나 자신이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사형을 선고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과는 별개로, 루비아나는 시녀장을 미워할 수 없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마음과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마음. 배신감과 연민.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감정이 하나의 마음 안에 공존했다.
어째서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만들어진 걸까.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이, 이런 마음도 만들어 넣은 걸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이런 마음을, 이런 세상을 만든 걸까.
아마도 답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한낱 인간이니까.
그러니 그저 할 수 있는 한 발버둥 치며 살아갈 수밖에.
아무래도 신이 존재하는 건 믿을 수 있어도, 그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믿기 힘들 것 같다고. 한때 수도사였으며, 신께 피의 맹세를 바친 신실한 초대 아쉴레앙 공작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