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31)

***

루바아나가 시녀장을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황궁을 나갔다는 보고가 도착했다. 칼레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시종장을 찾아갔다.

그는 황궁의 비밀 통로를 사용하여 반란 세력을 황궁 안에 들이고, 또 도망치게 만든 중죄인이었다. 재판하기 전부터 그가 받을 벌은 사형으로 정해져 있었다.

칼레나는 그간 그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시종장은 차가운 돌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칼레나를 보고도 예의를 표하긴커녕 눈을 내리깔았다.

“언제부터 아셨던 겁니까.”

그렇게 말 많던 사람이 이렇게나 짧게 물었다.

“집사가 언니 말고 날 따라 황궁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칼레나는 순순히 답해주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원래 당신 성격이었으면 나 말고 루비 언니 옆에 남았을 거야. 그렇지 않아?”

“……처음부터 알고 계셨군요. 과연 폐하십니다.”

시종장은 끝까지 루비아나가 룩센 백작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루비아나와 칼레나 둘 모두를 사랑하고 보살폈으나, 첫째가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칼레나가 룩센 백작이 되자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이건 루비아나가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런 사람이 황실 시종장이라는 자리에 눈이 멀어 루비아나를 모실 기회를 버리고 황궁에 들어온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뭐,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아. 나쁘지 않았어. 내가 룩센이라는 성을 그대로 쓰고, 룩센 왕조를 열었기에 룩센의 가신인 집사가 날 따르는 거라고 내가 착각할 수도 있었으니까.”

“또 무엇을, 제가 실수했던 건가요?”

“황궁에 들어온 이후부터 아들 이야기를 안 하던데.”

“…….”

시종장의 핏발 선 눈이, 떨렸다.

“늘 자랑스러워 했잖아?”

“……바쁘신 분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쓰셨습니까.”

“자랑스러워해도 돼. 그만큼 당신이, 내게 가까운 측근이었다는 거니까.”

“……그렇군요.”

시종장이 빙그레 웃음지었다.

루비아나도, 칼레나도 무장 해제하게 만드는 인자한 웃음이었다. 비록 루비아나와 칼레나, 둘 모두를 배신하고 철창 안에 갇혀버린 인자함이지만.

“아들이 폐왕의 기사였나?”

“호위를 맡게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해달라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받았습니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 왕을 가까이서 모시게 된 뒤. 한낱 지방 귀족 가문의 집사일 뿐인 아비를 부끄러워하여 연락을 끊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들에게 피해를 입힐까 두려워 먼저 연락하지도 못했다.

얼마 뒤, 룩센 백작 부부가 수도로 불려갔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들이 수도에서 룩센 백작 부부가 죽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자신이 막을 수 없으니 아버지에게 피해가 갈까 봐 스스로 연락을 끊은 거였다는 걸.

피해를 입힐까 두려워 먼저 연락하지 못한 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아들이 새벽 전투 때 죽고 난 뒤. 아들의 살아남은 동료를 통해 전해 들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노라고.

“왜 내게 말을 안 했지?”

“…….”

시종장은 그저 웃어 보였다.

“그럼, 지금은 왜?”

“제 아들의 아비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군.”

칼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후회는 안 하지?”

“네, 죄송하게도.”

“아니, 죄송할 것 없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어떻게 끊겠어?”

칼레나가 산뜻하게 대답했다.

“난 내 부모님의 복수를 해서 성공한 거고. 당신은 당신 자식의 복수를 실패한 거야. 그뿐.”

“……이용당한 거뿐이라고, 멍청한 짓을 했다고 꾸짖거나 화내지 않으시는군요.”

“내가? 왜?”

나의 복수가 옳듯, 남의 복수 또한 옳다. 특히나 힘없는 사람들의 복수는 더더욱 옳다.

하지만 늘, 가장 슬프고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최전방으로 내몰리고 이용당한다.

그렇게 그들의 슬픔은 다시 짓밟힌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의 선택.

그 선택을 조롱하거나 동정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설령 이용당했다 한들, 그게 뭐 어떻다고? 이용당해서라도 복수하고 싶었을 그들의 마음은 진짜인 것을.

“죽으면 아들 곁에 묻어주지.”

“감사합니다. 폐하. 그리고-”

“고맙다는 말은 집어치워. 원수에게 그런 말을 하고, 죽어서 아들을 만나 뭐라고 말하려고?”

“…….”

시종은 희미하게 웃으며 칼레나에게 인사를 올렸다.

칼레나는 받지 않겠다며 돌아서 떠나버렸다. 시종장은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며, 오래도록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

사형 집행이 예정된 시녀장과 시종장이 감옥에서 독을 먹고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독은 저녁 식사로 나온 수프에 들어있었다.

본인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구해 몸에 지니고 있던 약을 스스로 수프에 넣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그들을 노리고 독에 수프를 넣은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감옥의 간수들은 조심스럽게, 전자라고 생각했다.

수프에 든 독은 맹독으로 한두 방울의 적은 양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맛과 향이 고약한 데다가 어디에 섞든 보라색 빛이 나서 쉽게 눈에 띄어서였다.

아무리 감옥 안이 어둡다 한들, 그 맛과 향을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다.

고약한 약을 탄 수프를 한 모금 먹은 대가로 얻은 건 고통 없는 죽음.

아마 자신이 죽는 것조차 모르고 조용히 숨을 거뒀을 것이었다.

간수들은 쉬쉬하며, 두 사람의 시체를 끌어내 목을 자르고 성벽에 내걸었다.

***

루이먼드를 떼놓고 혼자 황궁에 다녀왔던 루비아나가 돌아왔다.

루이먼드는 이미 오래전에 나와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 문이 열리고 루비아나가 계단을 밟고 천천히 내려왔다. 루이먼드는 그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루비아나에게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

루비아나는 루이먼드를 마주 끌어안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이먼드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하게 맺혔다.

“매번 이렇게 반응하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당신에게 매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루이.”

루비아나가 웃으며 루이먼드를 구박했다. 루이먼드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잠깐 뜸을 들였다.

“내 반응이 재미있어서 계속 말하는 거 아닌가요?”

마음이 좀 진정됐는지, 루이먼드가 제법 매섭게 반박했다.

“아, 그건 그렇지.”

루비아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차 싶어 루이먼드를 올려다보았는데, 루이먼드가 웃으며 그녀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렇다면 난 평생,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울게요, 비아.”

그리고 루비아나가 그랬던 것처럼, 오직 루비아나만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나도 사랑합니다. 당신이 내 유일한 사랑이에요.”

유일하니까. 이 세상 무엇보다, 혹은 어떤 사람보다, 라는 비교의 말은 할 수 없었다.

으으. 루비아나가 닭살이 난다며 팔을 긁었다. 하핫, 루이먼드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대답했다.

그때였다.

퉁.

루비아나의 배에서 어떤 움직임이 느껴졌다.

“……?”

“……!”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겹치고 루비아나의 배에 올렸다.

“제발.”

“한 번만 더 해봐. 한 번만 하는 건 너무하잖아?”

두 사람이 배 속의 아이에게 절실하게 매달렸다.

통.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한 번 더, 배를 찼다.

“그 봐요. 엄마 괴롭히지 말라고 하잖습니까, 루이.”

“네? 아빠를 울리지 말라고 그러는 거 같은데요, 비아.”

“아닌 거 같은데.”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만.”

“으음.”

“비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 end.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