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악녀 메이커 51화
성가심만 가득했던 린다의 시선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는 눈을 가린 채 해맑게 웃고 있는 바실리를 향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도 알고 있었다고?”
아, 그래서 갑자기 바실리가 코보스 길드장의 허락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거였군. 린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잠시 얼굴을 쓸어내렸다.
“역시……! 알고 있을 줄 알았어. 린다는 모르는 게 하나도 없잖아!”
바실리는 흥분하면서 외쳤지만, 린다는 많고 많은 인물 중 왜 하필 바실리인지 절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뭐, 짐승의 감 같은 건가?’
이미 같이 하루가 돌아간다는 걸 알아차린 시점에서 바실리나 린다나 어느 부분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었으나, 린다는 그 사실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있지, 린다. 하루가 돌아가는 거 우리 빼고 아무도 모르더라. 왤까?”
린다는 품 안을 뒤적여 새로운 궐련을 입에 물었다. 그러자 곁에 선 조직원이 재빨리 불을 붙여 주었다.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연기를 뿜어내며 머리를 박박 흐트러트렸다. 뭐…….
“우리 빼곤 세상엔 그만한 능력도 없는 머저리가 넘쳐나서 그런 것 아니겠어? 네 머리 쪽은 회생할 수 없어도, 능력만큼은 쓸 만하잖아.”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하다는 뜻이지? 바실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신이 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럼, 우린 선택받은 걸까?”
“불쾌하니까 한데 묶지 마. 너하고 내 공통점이라고는 영장류라는 것 빼곤 하나도 없으니까.”
린다는 신랄하게 대꾸하며 영 대화가 되지 않는 바실리 착잡하게 응시하며 생각했다. 하루가 반복되는 현실을 유일하게 자각한 사람이 바실리인데 그가 과연 도움될까, 하는.
‘없는 것보단 낫겠지.’
……정말 나을까? 사약이라도 마시는 듯 괴로워하던 린다는 뒤편에 서 있던 조직원을 향해 손짓했다.
“얘 소속 길드장한테 연락 온 거 있었어? 내가 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단속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한 시간 전 코보스 암살 길드장에게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바실리가 표적의 저택 전체를 아예 붕괴시켰다고 하더군요. 도저히 그를 제어할 수가 없다는 하소연은 덤이고요.”
“……너, 암살이라는 뜻이 뭔지는 알기는 해? 우리 아이 공용어 공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냐?”
어쩐지 저놈이 하루가 돌아간 걸 알아차렸다고 했을 때부터 그럴 것 같더라니. 린다는 자신이 지난날 저질렀던 묻지 마 살인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암살이란 말이다, 어? 몰래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야. 설마 몰래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목격자도 빠짐없이 죽였다는 점에서 은밀하긴 하네! 이렇게 허를 찌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마!”
“앗, 역시 그렇지? 나름 그 부분을 신경 써서 건물에 깔리지 않은 목격자도 다 죽였거든! 알아주다니 기뻐! 린다밖에 없다니까?”
비꼬는 거잖아!
역시 예상했던 대로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바실리 때문에 린다는 잠시 뻐근한 뒷목을 문질렀다.
“건물을 요란하게 무너트려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 응? 내가 널 암살자로 키웠지 테러범으로 키웠나? 그러니까 그냥 만지라고 했잖아. 네가 닿으면 알아서 죽으니까.”
“꼭 죽지만은 않아. 확률이니까.”
오히려 죽게 될 확률은 낮지. 무조건 불행해지긴 하지만. 바실리는 고개를 숙이며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정신계 쪽을 다루는 건 여전히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나?”
그러자 바실리는 이제야 깨달았는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어라, 칭찬이 아니라 잔소리하는 거였어?”
“화내는 거다!”
“화내지 마…….”
조직원들은 빠르게 쏘아붙이는 린다와 귀를 틀어막으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바실리를 떨떠름하게 응시했다. 하루가 돌아간다는 미친 소리부터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린다 본인은 스스로 굉장히 이성적인 보호자라고 생각하며 하는 말인가 본데, 사실 저건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금수만도 못한 괴물 둘이서 서로 아웅다웅 저러고 있으니 확실히 기묘한 광경이었다. 괴물 이 인간 흉내를 내고 있었으니.
쫑알쫑알, 쫑알쫑알.
린다의 잔소리가 거의 그칠 때쯤에야 바실리는 귀를 막은 손을 떼어 냈다.
“나도 계속 그러려고는 했는데, 난 터트리거나 죽이는 거나 무너트리는 것 외에는 잘 안 되는 거 알잖아.”
그 말이 맞았다. 바실리의 주술은 파괴적이었으나 세심한 컨트롤이 전혀 되지 않았다. 또한, 단조로웠다.
바실리는 다른 능력 없는 인간과 비교하면 뛰어난 편이었으나 린다에게는 실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큰 법이었다. 린다는 바실리를 암흑가를 구원해 줄 복덩이로 여겼던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골칫덩이일 뿐이었다.
주워 오기 전엔 주술의 재능이 있다니까 뭔가 대단할 줄 알았지. 로툴로의 주술사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터트리고 죽이는 것밖에 못해.
‘폭약을 쓰는 것과 다를 게 뭐야.’
심지어 구속구 없이 돌아다닐 수 없는 데다가, 구속구를 하면 주술의 힘이 약해지고 더더욱 방향성을 잃었다. 게다가 멍청해. 이러나저러나 암살 의뢰 외에는 영 쓸모가 없다.
“그리고 분명 처음 몇 번은 평소대로 멀쩡하게 죽였어. 하루가 수도 없이 돌아가니까 화가 나서…….”
린다가 상념에 잠긴 사이 바실리는 여전히 뭐라고 변명을 주절대고 있었다.
“후…….”
린다는 밤하늘처럼 짙은 제 쪽빛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그리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으며 말했다.
“뭐, 좋아. 같은 경험을 한 입장에서 이번 한 번은 용서하지.”
바실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확 돌아서 어떤 충동적인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웬만하면 얌전히 말을 잘 듣는 편이었지만, 한 번 돌발 행동을 시작하면 답도 없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굉장히 단순하므로 평소에는 고분고분하니 통제하기 쉬운 편이었다.
“화풀이는 그쯤이면 충분해. 앞으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살기 지겨워진 거라 판단할 테니 알아서 해.”
“앞으로라고 해 봤자, 하루가 반복되니까 결국 어제랑 똑같잖아.”
“그러니까 네가 그런 미친 짓을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널 살려 두는 거 아니냐.”
물론, 더한 미친 짓을 하려고 한 그가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린다 본인밖에 없으니 그는 뻔뻔했다.
“할 말 끝났으면 썩 꺼져.”
린다는 결국 바실리가 묵묵히 하던 일이나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리려고 했다. 그가 꺼지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아!’ 하고 뒤늦게 꺼낸 말만 아니었더라도.
“나 있지, 하루를 계속 돌리는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어디 있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아.”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니, 그 전에 하루를 반복하는 게 사람의 짓이었던 말이야?”
예상치도 못한 말에 린다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바실리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하다니, 말할 줄 모르는 갓난아기가 유창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것만큼이나 충격이었다.
그러자 바실리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답했다.
“그냥 감으로 알아. 수도 근처에 지독한 기운이 느껴지는걸. 난 원래 임무 때문에 찾지 못하지만 말이야.”
제대로 탐색하면 잡아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바실리는 린다가 머리를 쥐어뜯다가 결국 자살마저 기도했을 정도로 고민했던 문제의 해결법을 아주 가뿐히 제시하고 있었다.
감으로 안다느니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느니 평소였으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텐데. 지금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선택권이 없었다.
“야, 임무는 잠시 관둬.”
“어……? 아까 한 말이랑 다른데?”
“지금은 비상 사태니까 예외다. 네게 따로 시킬 일이 있으니까.”
“뭔데?”
린다는 혼탁한 연기를 후, 하고 뿜어낸 뒤에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그 인간, 찾아내.”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하루를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간. 린다가 그런 능력자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바실리는 눈가리개 아래에서 커다란 눈을 연신 깜빡였다. 린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아직 수도 근처에 있다는 것밖에 몰라. 그리고 아주 오래 걸릴걸?”
“내가 그걸 상관할 것 같아? 며칠이 걸리든, 몇 달이 걸리든.”
“……음,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내 구역 이탈해도 된다고? 임무 외에는 밖에도 못 나가게 했잖아.”
“돼.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밤의 거리 밖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줄게.”
린다는 흔쾌히 말했다. 하지만 새장 속에서 태어난 새에게 갑자기 자유를 준다고 해 봐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바실리는 갑자기 덜컥 겁을 집어먹고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싫어. 린다가 멋대로 밖에 돌아다니면 신전에 끌려가서 고문당하다가 죽을 거라고 했잖아.”
평생을 나고 자란 밤의 거리에서 쫓겨난다고? 밖에서 평범한 인간들과 섞여서 산다고? 차라리 어린 시절처럼 방에 갇혀 목줄을 차고 발에 족쇄를 차더라도 이곳이 나았다.
“신의 조각을 알아?”
“신? 조각?”
“쉽게 말해 죽은 신의 잔해지.”
신도 죽어? 하고 바실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왜 신이 죽어 흔적을 남겼는가, 그 이야기를 하려면 레테 제국의 신화부터 설명해야 하므로 린다는 여러모로 굉장히 귀찮아졌다. 어차피 설명한다고 저놈이 그 말을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예로부터 그런 말이 있었지. 죽은 신의 조각을 먹으면 신의 권능을 얻을 수 있다고. 영생을 얻고 전지전능해질 수 있다고 말이야. 물론, 그만큼 찾기도 어렵고 구해내기는 하늘의 별 따는 일이지만 내가 알아냈거든. 신의 조각이 있는 위치를.”
“흐응, 대단하네.”
바실리는 남 일 듣듯이 성의 없이 호응했다. 린다는 그의 반응을 보더니 히죽 웃으면서 덧붙여 말했다.
“네 불행도 없애 줄 텐데…….”
그 말에 바실리는 동상처럼 굳어져 있다가 홱 하고 린다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이 빠진 음성으로 바보처럼 더듬거렸다.
“그, 그게 정말이야?”
불행을 끌어들이는 마력은 주술의 원천, 힘의 원천이었다. 바실리는 밤의 거리에서 능력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신의 권능도 얻고 불행도 없앨 방법이 존재한단 말이야?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인간들 사이에 섞여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닿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누구도 널 두려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고.”
린다는 그가 얼마나 남들과 같은 평범함을 갈망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이 없는 말 잘 듣는 인형으로 키우려다가 실패했을 만큼 감성적이라는 것도 아주, 잘.
“이제 생각이 좀 바뀌었나?”
“……그게 어디 있는데?”
린다는 몸을 잘게 떨며 간절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바실리를 빤히 응시하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 귀한 것의 위치를 네게 알려 줄 마음이 들게 하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