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악녀 메이커 101화
그럴 때가 있다.
그전까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몸에 상처가 생긴 것을 알아챈 그 순간, 갑자기 상처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가.
물론, 아무리 그래도 팔이 절단 났다고 말해 주기 전까지 인지하지 못한 건 굉장히 심각한 수준 아닌가.
“아아아악!”
어쨌든 소년은 뒤늦게 끔찍한 격통을 느꼈는지 비명을 지르며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반응 느려…….’
나는 바닥에 풀썩 쓰러져 흐느끼는 소년을 착잡하게 내려다보았다.
“흐으……. 아아…… 내, 내 팔…….”
그런데 끅끅거리며 눈물을 떨어트리는 소년을 유심히 지켜보니 신체 일부가 절단 난 고통 때문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파…… 팔이 없어졌어…….”
오히려 팔을 잘렸다는 사실 자체에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뭐, 있던 팔이 없어지면 절망스럽기야 하겠지만…… 아프지는 않은 거니? 분명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일 텐데.
‘얜 대체 뭘까…….’
아무리 봐도 평범함과는 심각하게 동떨어져 보였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아는 사이 아니에요?”
킬리안이 주술사들이 사는 왕국의 왕이라고 했으니까 혹시나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바닥을 기어 다니는 소년의 턱을 본인의 구두 끝으로 들어 올려 확인한 뒤에 답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
저 소년이 다짜고짜 날 죽이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주술사일 텐데 취급 한번 정말 가차 없었다.
‘분명 쟤가 나한테 넌 하루를 돌릴 줄 아니까…… 라고 말했었지.’
그러고 보니 남들은 다 모르는 루프를 자각한 게 둘 다 주술사라는 것부터 이상했다. 킬리안은 주술사의 왕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 이거 주술사라면 다 아는 거야?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돌아보자 킬리안이 대충 내 생각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감이 좋은 모양이야.”
그럼 보통은 아니라는 거군.
일단 소년의 언동으로 미루어 봤을 때 정말 날 죽일 생각은 없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죽는다고 해서 다시 하루가 돌아간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확실치 않으니 하루가 돌아가나 안 돌아가나 한번 시험해 본 거잖아. 내가 그대로 세상 하직했으면 어쩌려고 이놈의 꼬맹이가…….’
멋대로 목숨을 건 배팅을 시작하려고 하다니, 네가 무슨 직쏘냐?
그리고 만약 정말로 다시 하루가 돌아가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소년은 억지로 날 끌고 갔을 터였다. 날 어딘가에 이용하려 하는 게 빤히 보였으니까.
정확한 것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예를 들면, 하루를 돌릴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나를 죽인다든가. 적어도 그런 엇비슷한 거겠지.
내게 만약 주술이 통한다거나, 곁에 킬리안이 없었다면 분명 저 소년의 뜻대로 되었을 것이다. 죽어 가는 고통을 간직한 채 평생 하루를 돌리며 살아야 한다니, 겪어 보지도 않았는데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그러니까 킬리안에 의해 정의 구현 당한 소년을 보고 통쾌하게 여기는 게 당연할 텐데, 그보다는 찝찝함이 먼저인지라 내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어쩌면 전생의 동생들이 떠오르는 소년의 앳된 얼굴 때문인지도 몰랐다.
키만 멀대 같이 컸지 눈을 가렸던 붕대를 푸르고 나니까 드러난 얼굴이…….
“진짜 어려 보이긴 하네요…….”
그리고 겉모습만큼은 진짜 쓸데없이 성스럽게 생겼다. 어디 신전 성가대에서 소년 합창단의 단원으로 있을 것 같은 고운 얼굴과 미성으로 이런 추잡한 짓이라니. 킬리안은 적어도 겉과 속이 같은 마왕이었다고.
나는 역한 피비린내 때문에 코와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조금씩 내리며 속삭였다.
“10대 중반일지도 모르겠는데요?”
물론, 저 소년이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그게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어리면 일단 본인의 의지가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킬리안이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하는 의아한 얼굴을 하더니 대답했다.
“본인이 한 일을 인지하고 충분히 책임을 져야 하고도 남을 나이로군. 잘못을 저질렀으면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세 살배기도 알아.”
그거야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십니다마는…….
“해명할 기회는 줘야 하지 않을까요? 사정은 물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그, 웬만하면 팔도 좀 붙여 주고.”
내 말을 들은 킬리안이 불만스럽게 눈썹을 휘자, 눈썹 주위에 박힌 피어싱이 자연히 따라 올라갔다.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데.”
“할 수는 있는 거죠?”
“그렇다면?”
“애초에 지금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니까요. 일단 붙여 놓고 자세한 사정을 들은 뒤, 이거 글러 먹었다 싶으면 다시 자르면 되잖아요?”
어차피 킬리안은 능력을 쓰든 안 쓰든 거짓말 판독기 수준이니까. 소년이 개수작을 부리려고 해도 다 알아채겠지.
애초에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유도 팔이 잘린 소년이 아직은 무고한 피해자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듣고 나면 죄책감을 순식간에 털어 낼 수 있겠지.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말없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상당히 묘한 표정이었다.
“……왜요?”
“아무것도.”
내게서 시선을 거둔 킬리안은 소년을 향해 물었다.
“계속 제국 땅에서 자랐나?”
“흐으…… 으윽…….”
킬리안은 한쪽 무릎을 꿇어 흐느끼는 소년의 앞에 앉아 눈을 맞췄다.
“쉬이, 괜찮아.”
그리고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년의 새하얀 은발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런, 엄살이 많구나. 네 다른 곳도 같은 꼴이 나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입을 여는 편이 좋을 텐데.”
나는 저도 모르게 슬슬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가 킬리안이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걸 새삼 인식하고 나서야 발끝에 힘을 주고 섰다.
“돼, 됐어. 이제 난 끝났어…….”
그런데 소년은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하지 않고 벌써 망연자실해 있었다. 물론, 킬리안을 적으로 두면 덤벼들 생각이 싹 사라지긴 하겠지만, 포기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그런데 소년은 킬리안에 대한 공포보다 오히려 다른 쪽에 더 정신이 쏠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젠 없어진 그의 오른쪽 팔에 말이다.
“팔이 없어서 술식을 못 그리면 이제 어떻게 해……? 으읏…… 나, 나는 주술을 못 쓰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그랬단 말이야…… 나 역시 그냥 죽는 게 나을까?”
그러자 소년의 머리를 개 다루듯 살살 쓰다듬고 있던 킬리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소년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리며 상냥하게 물었다.
“언제부터 주술사가 누군가의 쓸모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였지?”
“응? 무, 무슨 소리야. 그냥, 그런 거잖아…….”
“누가 네게 그런 생각을 심어 준 거냐고 묻는 거란다, 아가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후…….”
킬리안은 골치 아프다는 듯 잇새로 한숨을 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결 좋은 머리카락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사르르 흘러내렸다.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드러난 은회색 눈동자는 마치 금속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악마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러고 눈물로 얼룩진 천사 같은 외형의 소년을 마주 보고 있으니 대체 누가 악당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누가 봐도 킬리안 쪽이 대악당이야…….
하지만 다른 사지도 전부 잘라 버릴 기세와는 다르게 그는 내 말대로 주술로 소년의 팔을 다시 붙여 주었다. 소년은 눈물로 그렁그렁하던 황금색 눈동자를 번쩍 뜨더니 코를 훌쩍거리며 멀쩡해진 자신의 오른팔을 만지작거리며 빙빙 돌렸다.
소년은 이제 전처럼 다시 팔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순식간에 눈물을 뚝 그쳤다. 그리고 킬리안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이게 뭐야, 이런 주술도 있어?”
대단하다는 말투였다. 엄청나! 하고 외친 소년은 그의 팔을 붙여 준 게 결국 자른 당사자라는 사실도 잊어버린 듯했다.
“나를 만졌는데 왜 멀쩡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주술사니까.”
“뭐야, 같은 주술사끼리는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처음 들어! 신기해!”
“……정말 아는 게 없는 모양이군.”
여기 오기 전에 어딘가에 나사를 빠트리기라도 한 건가.
나는 천진난만함을 지나친 백치미에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킬리안의 말마따나 정말 아는 것도 없고 생각도 지나치게 없어 보이는걸.
“역시 주술사는 너와 나 둘뿐이야? 불행이 안 통하는 사람은 처음 봐. 다른 데도 더 만져 봐도 돼?”
나는 ‘너’라는 호칭에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뻗는 킬리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고, 고정하시옵소서.
그리고 소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이름이 뭐지?”
“바실리.”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자, 잠깐만, 어쩌면 이거 어쩌면 10대 중반보다 더 밑일 수도 있겠는데…….
“……아가, 몇 살?”
그러자 본인을 바실리라고 소개한 소년은 커다란 눈을 연신 깜빡이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몇 살이 뭔데?”
“…….”
아니, 그것부터 묻는 거야?
“몇 년을 살아왔느냐는 거야.”
“안 세 봐서 모르겠는데.”
“…….”
주술사들은 원래 다 이런가. 나는 말없이 킬리안을 돌아보았다.
“설마 얘도 600살…….”
“그럴 리가 없잖아.”
“역시 그렇죠?”
나는 고개를 살짝 털어 내며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다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바실리가 입을 열었다.
“음, 내가 독방에서 나온 뒤부터라면 아마 5년째일 거야. 그럼 나는 다섯 살이야?”
“일단 그건 절대 아니라고 본다.”
반사적으로 답하긴 했지만, 그보다 먼저 어딘지 아동 학대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독방’이라는 단어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 사이를 좁히면서 물었다.
“설마 그전엔 계속 갇혀 있었니?”
“응.”
“……어떻게?”
“목줄도 차고 족쇄도 차고? 거기까진 상관없었어. 손바닥만 한 창문이 하나 있었거든. 그걸로 하늘도 보고 햇빛도 보고…… 하지만 가끔 안대도 쓰고 입마개도 같이 해서 그럴 때는 더더욱 시간 파악하는 게 힘들었어. 그래서 다섯 살로 괜찮은 거지?”
이제 질문 끝났으면 만져 봐도 돼? 하고 킬리안을 가리키며 바실리가 물었다.
‘맙소사, 마치 맹수처럼 길러지듯 자라 왔잖아…… 대체 어쩌다가……?’
아무래도 자신과 같은 주술사를 본 것 자체가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불행이 통하지 않은 상대를 만나 본 것도 처음인 듯하고.
그때, 잠시 침묵한 채 생각에 잠겨 있던 킬리안이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기억나. 몇 년 전에 우리 쪽에서 놓친 아이가 있었었지.”
“놓친 아이요?”
“마력의 힘은 유전적으로 물려받기도 하지만 전혀 연고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거든. 뭐, 그건 아마 신성력도 마찬가지겠지만.”
킬리안이 다스리는 로툴로라는 곳에서는 전 대륙 어디든 마력의 힘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찾아가 그들의 왕국으로 데려온다고 했다. 마력의 힘을 타고나면 주변에 불행을 몰고 오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림받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마력의 힘을 가진 채 제국 땅에서 자랐다면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을 리가 없는 건 당연하지.”
킬리안이 예상외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왕이면서 저렇게 책임감 없는 발언 괜찮은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을 때, 빛이 들지 않아 짙어진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신전에 끌려가지 않은 게 다행으로 칠 정도니까…….”
그의 눈은 잠시 예전의 기억을 더듬는 듯 아득히 멀어졌다가 다시 새까맣게 광채를 띠었다.
“그래서 누구지?”
“응?”
“누가 우리 쪽 아이를 데려가 멋대로 이렇게 키웠느냐고.”
그러니까 광염, 아니 그보다는 살육의 여운에 가까운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