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 불꽃 (3) (34/145)

34. 불꽃 (3)2021.07.28.

어깨를 떠는 리에네에게 블랙이 물었다.

16550945652107.jpg“무섭습니까?”

16550945652113.jpg“…….”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16550945652107.jpg“그래도 참아요.”

그리고 입술이 내려앉았다. 리에네가 순간 헉, 하고 숨을 삼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입술이 뒷목에 닿는 느낌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이 낯설었다. 아직 그 누구도 입술을 대어 보지 않은 곳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블랙이 꽁꽁 감춰진 어딘가를 열어 남김없이 끄집어내 낙인을 찍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걸 싫다고 할 수가 없었다. ……미쳤어. 목선을 따라 움직이는 입술의 느릿한 감촉이 살갗에 불을 지피는 듯했다. 처음에는 어깨가 떨린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몸속이 떨려왔다.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도 그가 남기는 자극을 해소하지 못할 것 같았다.

16550945652113.jpg“…….”

결국, 숨소리가 터졌다. 그제야 입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입맞춤이 끝나도 블랙은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리에네를 두 팔로 감았다.

16550945652113.jpg“왜…….”

리에네가 당황해 입을 벌리는데, 그가 팔에 힘을 실어 리에네를 눕게 만들었다. 익숙한 이불이 몸에 덮였다. 블랙은 그 옆에 누웠다.

16550945652107.jpg“나도 여기서 잘 겁니다.”

이것도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억지를 섞은 말과는 다르게 그는 실수로라도 몸이 닿을 일이 없는 이불 밖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다정하지만 강압적이었고, 강압적이지만 끝내 다정했다.

16550945652113.jpg“……이불도 안 덮고요?”

16550945652107.jpg“그건 바라지 않겠습니다.”

16550945652113.jpg“추울 텐데요.”

16550945652107.jpg“몸에 열이 많아 괜찮습니다.”

대신 그는 몸을 옆으로 돌려 리에네를 보는 자세를 만들었다.

16550945652107.jpg“자요, 이제.”

옆얼굴이 따끔했다. 리에네는 그를 마주 볼 자신이 없어 천장을 응시했다. 벌써 코끝이 찼다.

16550945652113.jpg“그럼…… 이불을 가져오세요.”

옆자리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블랙이 어깨를 움찔대는 것 같았다.

16550945652107.jpg“옆에서 자라는 뜻입니까?”

16550945652113.jpg“어차피 그럴 거잖아요.”

16550945652107.jpg“내가 우기는 것과 공주님이 그래도 된다고 하는 건 다릅니다.”

16550945652113.jpg“뭐가 다르죠? 결과는 같은데요.”

16550945652107.jpg“……같아도 되는 겁니까?”

16550945652113.jpg“이미 같아요. 그런데 괜히 춥게 잘 필요 없잖아요.”

16550945652107.jpg“……공주님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 말은 너무 나직해서 거의 한숨처럼 들렸다. 리에네는 그에게 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한테는 당신이 그래요. 당신이 너무 이상해. 정중하든 무례하든, 다정하든 차갑든 전부 다 당신 같아서 나는 그냥 받아들이게 돼요.

16550945652113.jpg“그럼 그냥 계세요.”

블랙이 영 이불을 가져올 것 같지 않자 리에네가 침대에서 일어섰다.

16550945652107.jpg“어딜 갑니까?”

16550945652113.jpg“옷장이요.”

침대 뒤편의 옷장으로 간 리에네는 지금보다 더 추운 계절에 덮는 여분의 이불을 꺼냈다. 왜인지 모를 이유로 굳어 있는 블랙에게, 리에네가 이불을 펼쳐 덮어 주었다. 이제 그가 제 옆에서 추울 일은 없을 것이다. 제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안도감이 들었다.

16550945652113.jpg“이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16550945652107.jpg“…….”

그러자 블랙이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방금 전처럼 저가 이상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 리에네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16550945652113.jpg“그럼 잘 자요.”

각자 다른 이불을 덮은 채 한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이 비슷하게 눈을 감았다. 이상한 밤이 이상한 새벽으로 흘러갔다. 먼저 잠이 든 쪽은 리에네였다. * * * 눈이 떠질 때쯤 든 생각은 너무 따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 없는데. 이맘때의 새벽은 춥기 마련이었다. 코가 차가워서 머리는 아직까지 잠이 들었는데 몸이 먼저 깨어났다.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로 이불 속에서 미적대다 플램바드 부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억지로 눈을 뜨는 그런 계절이었다.

16550945652113.jpg“…….”

리에네가 눈꺼풀을 깜박 들어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블랙에게 푹 안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로 덮고 자던 이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가 됐고, 몸에 열이 많다는 블랙의 말대로 뺨이 닿아 있는 가슴은 계절이 믿기지 않을 만큼 후끈했다.

16550945652113.jpg“읏…….”

일단 놀라는 소리가 나오려고 했다. 그 전에 리에네가 재빨리 입술을 꾹 깨물었다. 블랙은 아주 곤히 잠들어 있었다. 미간에 작게 구겨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리에네는 그가 어제 다친 일로 몸이 지쳐 있고, 그래서 지금은 휴식이 간절히 필요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깨우지 말자. 이 사람은 지금 환자야. 아픈 게 맞아. 잘 수 있을 때 자게 해야 해. ……그런데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자게 되었는지 좀 어이가 없었다. 잘 때는 분명히 따로 이불을 덮고 반듯하게 누웠단 말이야. 옆에 블랙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긴장을 해서 손을 가슴 위에 얹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대체 언제. 남이 저를 끌어안는데 한 번 깨지도 않은 게 놀라웠다. 놀라는 지금에도 끌어안긴 자세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편하고 아늑해서 더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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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뭐가 이렇게…… 싫지 않은 건데. 그가 제 얼굴에 내쉬는 고른 숨소리가 듣기에 싫지 않았다. 머리를 뒤척이며 한 번씩 들려오는, 머리칼이 바스락대는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단단하지만 아프지 않게 저를 감싼 두 팔의 강도가 나쁘지 않았고 두근대는 심장이 내는 소리도 그랬다. 잠이 든 블랙의 눈매가 바로 보이는 것도 싫지 않았다. 이제 보니 속눈썹이 길었다. 우뚝한 코는 자로 그린 것처럼 반듯했다. 색이 옅은 입술은 대신 선이 아주 뚜렷했다. 그 입술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어제 했던 키스가 떠올랐다. 뒷목에서 시작해 몸속으로 번지던 저릿한 열기가 되살아났다.

16550945652113.jpg“…….”

온몸으로 번지는 옅은 긴장감도, 그 긴장감으로 꼼짝할 수가 없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모든 게 싫지 않았다. 다만 알 수 없는 건 이유였다. 나는…… 모르겠어. 왜 싫지 않은 건지. 왜 이대로 계속 더 있고 싶은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데, 갑갑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다 싫지 않아. 너무 이상해…….

16550945652107.jpg“으음…….”

잠결에 블랙이 몸을 뒤척였다. 제 몸을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가며 그가 더 바짝 몸을 붙여 왔다. 방금 전까지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던 코가 이마를 스쳐 갔다. 눈썹에 금방이라도 입술이 들러붙을 것 같았다. 깨어나려고 그러는 건가. 리에네는 눈을 깜박대는 것도 잊고 코앞에서 보이는 블랙의 감은 눈을 살폈다. 조금만 더 잤으면 좋겠는데. 조금만 더 이렇게 있었으면 좋겠……. 무의식중에 드는 생각에 퍼뜩 놀라는 그 순간, 거짓말처럼 블랙이 눈을 떴다.

16550945652113.jpg“……!”

16550945652107.jpg“…….”

리에네의 눈이 커다래지고, 반대로 블랙의 눈은 좁아졌다. 그 역시 어제 잠들 때와는 자세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걸 지금 알게 된 눈치였다.

16550945652107.jpg“……내가 이랬습니까?”

16550945652113.jpg“모르겠어요.”

16550945652107.jpg“이런 버릇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놀란 것치고 두 사람은 아무도 먼저 나서서 자세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안고 안긴 채 서로를 마주 보는 상태에 그대로 머물렀다. 리에네는 저를 보는 블랙이 눈을 깜박대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또한 블랙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했다.

16550945652107.jpg“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 같습니다.”

16550945652113.jpg“……그러게요.”

너무 가까워서 꼼짝하지 않고 있어도 시선이 서로를 만지는 것 같았다.

16550945652113.jpg“여기도 흉터가 있어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렀다. 눈이 아파진 리에네가 먼저 눈꺼풀을 깜박대다 블랙의 눈썹 위에 보일 듯 말 듯 작게 난 상처를 발견했다.

16550945652107.jpg“어디에?”

16550945652113.jpg“여기.”

리에네의 검지 끝이 주변의 피부보다 살짝 하얗게 된 자그마한 상처를 건드렸다.

16550945652107.jpg“거기에 흉터가 있습니까?”

조금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16550945652113.jpg“아주 작아요. 잘 보이지도 않아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뚫어져라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다면 내내 몰랐을 것이다.

16550945652107.jpg“공주님은 여기에 점이 있습니다.”

블랙이 귓불 아래, 목선이 시작되는 부근을 톡 눌렀다. 마찬가지로 있는 줄도 몰랐던 곳이었다.

16550945652113.jpg“거긴 제 눈에 안 보이는 곳이네요. 어떻게 생겼어요?”

16550945652107.jpg“머리카락 색과 비슷하고 아주 작습니다.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겁니다.”

16550945652113.jpg“네…… 거기에 점이 있다는 얘긴 처음 들어봐요.”

블랙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그가 유일하지 않을까도 싶었다. 제 얼굴을 이렇게 열심히 쳐다보는 사람이 또 있지는 않을 테니까. 추웠어야 할 이른 아침은 따스했고, 원래는 비어 있을 옆자리에 누군가가 있었다. 저는 그 누군가의 얼굴을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는 중이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서로만 아는 흔적들을 찾는 중이었다. 그 모든 게 싫지 않았다.

16550945652113.jpg“또 있나요?”

16550945652107.jpg“원하시면 찾아보겠습니다.”

16550945652113.jpg“네. 찾아주세요.”

스윽. 블랙의 얼굴이 좀 더 가까워졌다. 그는 리에네를 안고 있던 팔을 풀지 않은 채 손만 움직여 머리칼을 한쪽으로 치웠다. 옆얼굴과 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가락 하나가 턱선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16550945652107.jpg“여기까지는 없습니다.”

블랙은 잠옷으로 가려진 목덜미 아래까지 손가락을 짚어 내렸다.

16550945652107.jpg“더 찾아봐도 됩니까?”

16550945652113.jpg“…….”

그 말은 왠지 숨을 막히게 했다.

16550945652113.jpg“그럼…… 옷을 끌어 내려야 하잖아요.”

16550945652107.jpg“네.”

16550945652113.jpg“그러니까…….”

16550945652107.jpg“안 됩니까?”

16550945652113.jpg“…….”

손가락이 잠옷의 경계를 따라 느리게 선을 덧그렸다. 오늘따라 너무 가까이에 있는 푸른 눈은 그 손짓에 담긴 노골적인 의미를 조금도 숨기려 들지 않았다.

16550945652113.jpg“네, 안 돼요.”

그래서 알았다. 원래 목적이 뭐였든 간에, 복수건 뭐건 간에 그는 저를 원하고 있다는 걸. 제 마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우크에서 무얼 하려는 것과 별개로, 자신은 그를 원했다. 그가 저를 원하길 원했다. 이 마음은, 독이 될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그걸 알고 싶었다. 간절히.

16550945652113.jpg“지금은…… 너무 환해요.”

16550945652107.jpg“환하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을 텐데요.”

16550945652113.jpg“꼭 환하지 않아도…… 자세히 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16550945652107.jpg“더 자세히 봐도 된다는 말입니까?”

16550945652113.jpg“지금처럼 환하지 않은 곳에서라면.”

16550945652107.jpg“…….”

잠옷 선을 덧그리던 손가락이 멎었다. 리에네는 알지 못할 생각이 블랙의 눈썹 위에 주저앉았다. 그가 눈가를 찡그린 채 리네에의 뺨을 엄지로 느리게 문질렀다.

16550945652107.jpg“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공주님이 알고 있는 거라면 좋겠는데.”

16550945652113.jpg“알지…… 않을까요.”

16550945652107.jpg“아니요. 모릅니다.”

블랙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16550945652107.jpg“그러니까 눈을 뜨고도 계속 이러고 있는 거잖습니까. 공주님이 지금 내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도 모르고.”

16550945652113.jpg“어떻게…… 보이는데요?”

툭, 손짓이 멎었다.

16550945652107.jpg“별로 듣고 싶지 않을 겁니다.”

16550945652113.jpg“안 좋게 보여서요?”

16550945652107.jpg“그 반대라서.”

그건 리에네에게 몹시 이상한 얘기였다.

16550945652113.jpg“좋게 보이는데 왜 듣기가 싫은가요?”

16550945652107.jpg“…….”

블랙은 대답 대신 또다시 한숨을 뱉어냈다.

16550945652107.jpg“그래서 모른다는 겁니다.”

16550945652113.jpg“그러니까 말해 주면 되잖아요.”

16550945652107.jpg“말로 할 만한 얘긴 아닙니다.”

16550945652113.jpg“왜요?”

순간 블랙의 눈빛이 돌변했다.

16550945652107.jpg“이래서요.”

뺨에 닿아 있던 손이 침대를 짚는 것 같았다. 그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블랙은 옆으로 누워 있던 몸을 들어 올렸다.

16550945652113.jpg“……!”

그러나 일어나진 않았다. 그는 양팔 사이에 리에네를 가둔 채 반듯하게 누운 리에네를 몸으로 덮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16550945652107.jpg“지금은 알겠습니까?”

16550945652113.jpg“그…… 알 것…… 같아요.”

16550945652107.jpg“아니. 아직도 모릅니다.”

16550945652113.jpg“아뇨. 알…….”

블랙이 그럴 리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16550945652107.jpg“알면 벌써 나를 한 대 치고 달아났겠지.”

16550945652113.jpg“네?”

16550945652107.jpg“늦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불쑥 고개를 내렸다. 블랙의 윗입술이 살짝 벌어진 리에네의 입술 사이로 들어왔다. 입술이 입술을 열었다. 다음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16550945652113.jpg“…….”

처음에는 천천히, 감질날 정도로 부드럽게 시작했던 입맞춤이 어느 순간부터 정신없이 몰아치는 폭우가 되어 있었다. 두 팔이 블랙의 목을 감았다. 블랙의 팔은 리에네의 어깨와 등을 휘어감았다. 자세가 바뀌었다. 블랙이 리에네를 안은 채 몸을 굴리자 이번에는 리에네가 그의 위에 올라가 제 몸으로 그를 누르는 모습이 되었다. 엉망으로 뒤엉킨 자세라 무릎이 그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었다.

16550945652113.jpg“잠깐…….”

입술이 떨어지는 틈을 타 리에네가 숨을 몰아쉬었다.

16550945652113.jpg“잠깐만요. 다리를 좀…….”

16550945652107.jpg“다리가?”

16550945652113.jpg“아프실 것 같아서.”

16550945652107.jpg“전혀.”

블랙의 커다란 손이 뒤통수를 감싸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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