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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모자란 시간 (105/145)


105. 모자란 시간
202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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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다리를 심하게 다쳤던데, 그건 치료를 했나요?”

나란히 지하 감옥으로 향하면서 리에네가 물었다.

블랙이 슬쩍 고개를 돌려 표정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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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크게 다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목숨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어쩌면 사내구실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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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다행이네요. 다 나으면 걷는데도 지장이 없다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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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조금 절 수도 있겠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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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알리토 대공이 문제를 삼으면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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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은 팔다리가 멀쩡히 붙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겁니다.”

리에네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대공은 아들의 다리와 몸통을 각각 따로 받았을 것이다. 리에네는 모르지만 남들은 다 아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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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두 분이 함께 오셨습니까?”

지하 감옥은 간만에 한가한 분위기였다.

우글우글 갇혀 있던 경비대가 석방됐고, 대신 신의 광장에 매달아 두었던 죄수 둘이 들어왔다. 그중 하나는 턱뼈가 부서진 터라 몹시 조용했다.

디에렌은 대공자라는 신분 덕에 혼자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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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토의 공자를 보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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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입니다.”

두 사람을 감옥으로 안내한 용병은 리에네와 블랙이 사이좋게 손잡고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블랙이 먼저 걸음을 뗐다.

디에렌은 혼자 끙끙 앓느라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도 블랙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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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요.”

별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블랙이 손을 내밀었다. 리에네가 그 손을 잡고 감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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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답장이 왔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창백한 얼굴로 진땀을 줄줄 흘리며 디에렌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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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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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온 겁니까? 내 꼴을 구경이라도 하러 왔습니까?”

디에렌이 뾰족한 음성으로 비꼬았다.

블랙이 짧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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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는 게 어떻습니까? 저렇게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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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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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아깝습니다. 그럴 시간을 나하고 쓰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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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같이 쓰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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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껴 있잖습니까.”

리에네가 웃으며 블랙의 손에 들린 바구니를 열었다.

디에렌에게 온다고 불만이긴 했지만 블랙은 착실히 바구니를 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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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끝난 얘기예요. 그리고 디에렌 공자, 나는 공자를 구경하려는 게 아니라 도우러 왔어요.”

바구니에서 붕대와 면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디에렌이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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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요.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갈아 주세요.”

리에네가 바구니를 가져가며 대신 그 안에서 꺼낸 물건을 블랙의 손에 쥐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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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 주고…….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

디에렌이 울컥 화를 냈다.

블랙도 썩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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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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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내가 직접 하겠다고 나서면 당신이 공자를 더 싫어할 거잖아요. 맞죠?”

블랙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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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들켰군요. 그럼 곤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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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할 일은 없어요. 당신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미리 아는 건 부부 관계에 썩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지금처럼.”

블랙은 붕대와 약을 받아든 채 리에네의 귓가에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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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드는 생각인데, 나는 혼인을 잘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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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래요.”

디에렌이 이를 갈고 싶다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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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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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안 돼요.”

리에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디에렌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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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소중한 인질이거든요. 사과즙을 가져왔는데 좀 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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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렌이 인상을 확 썼다. 그러나 막상 리에네가 아직 시원해 보이는 병을 꺼내 들자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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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

리에네는 디에렌의 손에 병을 쥐여 주었다. 디에렌이 거친 동작으로 병을 들어 입술을 대고 사과즙을 꿀꺽꿀꺽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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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억! 쿨럭, 쿨럭!”

그러다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마시던 사과즙이 사방에 튀었다. 그 와중에도 병을 꼭 쥐고 있던 탓에 놓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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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블랙이었다.

그가 실로 꿰매 놓은 상처 위에 약을 퍽, 소리 나게 펴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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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있기도 모자란 시간을 내주는데 감사하도록. 네 팔다리가 멀쩡히 붙어 있는 것에도. 네가 나우크의 땅에서 한 짓을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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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렌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입 속에서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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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리니 왕자비가 가지고 있는 반지를 돌려받고 싶어요.”

리에네는 사과즙 외에도 음식이 넉넉히 담겨 있는 바구니를 디에렌의 손이 닿는 곳에 놓아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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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보살피는 건 그런 의미예요. 공자가 내게 한 짓을 잊어서가 아니라. 그게 별일 아니어서가 아니라.”

리에네의 침착한 말투는 지금 하는 말을 곱씹어 듣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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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나우크에서 저지른 일의 대가는 블리니 왕자비나 알리토 대공이 치르게 되겠죠. 나는 그 과정이 필요 이상으로 험악해지는 건 원치 않아요. 내가 원하는 건 확실하고, 거기에 공자에게 일부러 앙갚음을 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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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건…….”

무슨 말을 하려던 디에렌이 도로 입을 다물었다.

리에네가 악한 감정 없이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건 그도 알았다. 자신이 블랙이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제 목부터 자르고 전쟁을 준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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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렌이 블랙을 힐끗 곁눈질했다.

약을 처바를 땐 그때 못 자른 다리를 이제 마저 뜯어내나 싶었는데, 붕대를 갈아 주는 손길은 그렇게 험하지 않았다.

……리에네 공주 때문이겠지. 저렇게 가까이 있으니까 눈치가 보여서.

그렇게 생각하니 또 기분이 묘해졌다.

리에네의 남편이 된 블랙은 그가 알던 티와칸의 수장, 전쟁의 신과는 다른 인물 같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티와칸의 수장은 이제껏 대륙의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바뀌지는 않았을 테고…….

순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에게서 사랑받기 위해.

하, 진짜…….

두고 볼수록 누이가 등신 같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저걸 어떻게 뺏으려고 한 거야, 대체.

차라리 실패한 게 다행이었다.

그가 계획대로 리에네 공주를 샤르카 왕국으로 보냈다면 결과는 훨씬 더 끔찍했을 것이다.

부친이 누이와 뜻을 같이했다는 바이야르의 말은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거짓이었을지도 몰랐다.

부친은 그보다 블랙을 더 잘 알았고, 단 한 차례도 티와칸에 보내는 금의 양을 속이지 않았다. 단순히 겁을 먹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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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가…….”

디에렌이 억지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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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잘못했다는 건 나도 압니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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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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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국에도 편지를 보내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대공께 일의 전말을 알리겠습니다. 결과가 험해지길 원치 않는다는 공주님의 뜻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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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일이군요.”

리에네 공주가 보일 듯 말 듯 조용히 웃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디에렌은 자신이 누이의 말대로 독을 쓴 일이 몹시 수치스럽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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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쉬도록 해요. 시종이 자리를 비웠으니 돌아올 때까지 하루에 한 번 사람을 보내겠어요.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미리 말을 해도 되고요.”

리에네 공주의 말은 고마웠으나, 그렇다고 냉큼 뭔가를 요구하자니 그것도 퍽 한심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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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게 해 주시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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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상처가 어서 낫길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이만 돌아가요.”

리에네 공주가 블랙의 팔에 손을 밀어 넣었다.

턱을 들고 눈을 마주치며 웃는 공주를 바라보는 블랙의 눈가가 부드러워졌다.

그가 알기로 저 눈은 한 번도 타인에게 경계를 늦춘 적이 없었다. 늘 사람이 아니라 더 차가운 무언가로 보였던 옅은 푸른색이 지금은 따듯하게 데워지다 못해 녹아 흐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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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조심해요.”

블랙이 미리 손을 뻗어 문을 잡으며 말했다.

공주는 딱히 부딪칠 것 같지도 않았던 문턱을 안락하게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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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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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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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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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이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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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매번 하는 행동인데도 그때마다 설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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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그러는 공주님이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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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죠? 나는 늘 솔직히 말하는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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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알 때가 된 것도 같은데. 공주님이 나를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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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문이 닫히는 바람에 그다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대신 발자국 소리가 하나로 줄어들고, 리에네 공주가 숨 막히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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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한 시간만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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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낮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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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건 없습니다. 신혼이니까.”

아무래도 블랙이 리에네 공주를 안고 침실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듣고 있자니 입맛이 너무 씁쓸해져서 리에네 공주가 주고 간 사과즙을 한입에 삼켜야 했다.

디에렌이 쓴 편지는 나흘 뒤 알리토 대공에게 전달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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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아주 재미있게…… 아니, 차마 이런 말을 못 하겠군요.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샤르카 왕국의 정보상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소식을 보내왔다.

그만큼 샤르카 왕국의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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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대공녀가 동생이 보낸 편지를 받긴 했답니다. 답장을 미루는 것 같답니다. 이쪽을 간 보려는 건 아니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합니다.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터라.”

페르모스가 이제껏 알아낸 블리니 왕자비의 동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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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왕제에게 덜떨어진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음, 이름은 위스타드라고 하는군요. 이 인간이 감옥 경비를 매수하다 걸렸답니다. 감옥에 갇힌 인간을 죽이려 했다는데, 재미있게도 죽이려고 한 인간이 하나 살려 보냈던 바셰드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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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러면?”

리에네가 눈을 크게 뜨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집무실의 낡고 커다란 의자 팔걸이에서 끼걱대는 소리가 났다.

신혼임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바빴다. 샤르카 왕국과 알리토 공국이 얽힌 일을 처리하느라 혼인식 준비를 하던 그때보다 더 바빠진 듯했다.

요새 건설에 경비대 재편, 클라인펠터를 처형하는 일과 신전 문제 등등 할 일은 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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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요.”

블랙이 삐걱대는 의자를 재빨리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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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별일 아니에요. 이 의자는 오래돼서 늘 그래요. 그나저나 살아남은 바드셰군을 죽이려 했다는 게 무슨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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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니 왕자비가 바드셰군을 나우크로 보낸 일을 발뺌하려는 것 같습니다. 위스타드는 배후가 누군지 밝히지 않아 제5왕제가 애를 먹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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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왕제의 아들인 위스타드 공이 블리니 왕자비를 감싸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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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심약한 인물이라는데 버티고는 있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위스타드가 자택에 갇혔는데, 제5왕제가 이 일로 기분이 상하면서 왕실 분위기가 살벌하답니다. 왕이 체면상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블리니 왕자비 편을 드는 쪽이라.”

페르모스가 힐긋 블랙의 눈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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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왕과 왕비의 관계도 좋지 않답니다. 뭐, 그 집구석이야 사이좋게 지낼 때가 드물겠지만. 게다가 왕비는 바드셰 왕자의 죽음에 아직도 의혹을 품고 있다 했습니다. 블리니 왕자비가 아들을 죽였다고 믿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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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이 없진 않아.”

블랙이 별 감정 없이 한마디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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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비는 남의 목숨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나 정말로 죽였다면 너무 멍청한 짓인데. 왕실에서의 입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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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 역시 그게 좀 헷갈립니다. 생각 없이 남편을 죽일 것 같진 않은데 말이지요. 그 정도로 싫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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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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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왕일까요? 흠, 그 집안이면 왕과 왕자비가 그런 관계라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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